세 잎 클로버
이 영주
침묵과 쉼의 가치를 가르쳐 준 산사의 겨울은,
봄맞이할 준비도 없이 다른 해보다 일찍 봄의 향연을 펼쳤다.
병풍산장으로 이사 와서 첫 봄을 맞는다.
지나간 겨울 언제 눈이 내렸냐는 듯, 연초록 이파리가
산으로부터 내리닫는 봄의 향연에 작은 새싹의 움틈이 경이로워
주저앉아 가만히 들여다본다.
시냇물 소리는 봄의 교향시로 들려온다.
여명에 맞추어 홀딱 벗고 새의 첫 목소리와 함께
새들의 합창은 햇살을 부르는지 구애의 신호인지 정답기만 하다.
다양한 새들의 노래를 한꺼번에 듣기는 처음이다.
연주에서 가끔 커다란 심벌소리가 들리듯 불협화음처럼,
나무를 쪼아대는 딱따구리소리와 아래동네의 꼬꾜,
이장네 멍멍이까지 합세한다.
파라호의 물안개 같은 이불이 서서히 걷히면서 포근함을
선사하는 새벽이 열린다.
나도 봄날의 아침을 맞이하며 하루의 문을 연다.
베란다에서 간단한 체조로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는 것이다.
고추밭과 땅콩 밭, 감자밭, 넝쿨콩밭에 물을 주고 상추,
파프리카, 피망, 쑥갓, 돌나물, 돌미나리 각종 꽃들에게도
물을 주고 김을 매면서 하루의 충만감을 가져본다.
아내의 석 달 외국나들이의 빈자리가 다소 불편했다.
하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필요에 의한
외로움이었음을 절실히 알게 되었다.
제철 쌈으로 반찬을 마련할 줄 알게 된 것도 그중 하나였다.
뒷산 골짜기에서 손수 마련한 두릅 채취와 주변 채소를 밥상에
올려놓으면 나는 신선이 된다.
새로운 나를 찾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진달래꽃 요를 깔고 깜박 잠들었다가 따사로운 햇빛이 깨울 때,
팔베개하고 구름의 대화를 엿들었다.
구름이 하얗게 다가올 때 살며시 눈을 감으면,
구름은 바람 없이는 흘러갈 수 없듯이 인간의 삶속에
사랑 없이는 행복도 느낄 수 없다는 것을
흘러가는 구름이 들려준다.
이곳 아니면 어디서 이렇게 여유롭게 진달래 요를 깔고 봄의
합창소리와 자연이 생동하는 그림을 느긋하게 그릴 수 있을까?
도시에서 공들여 가꾼 꽃들에게 반했다면,
자연의 순리는 감탄을 자아낸다.
이곳 병풍산장은 하루하루 변화하며, 흙냄새 맡고 돋아나는
싹들과 열매 맺는 신기함에 심장은 덩달아 뛴다.
모든 생명이 아픔이라는 제 값을 치르고 탄생하는 신비로움에
이슬비처럼 젖어들 수밖에 없다.
이곳은 창조의 소리로 시작하여 공해 없는 하루를 마감하는 곳이다.
도시에서 차 브레이크 밟는 소리,
먹고살려는 이동슈퍼의 마이크소리,
자기가 적임자라고 우겨대는 정치인들의 우렁찬 공해,
쇠붙이 부딪치는 소리 등 귀가 멍멍할 지경이었다면,
여기서는 삶의 몸부림이 아닌 창조의 소리를 듣는다.
보기 싫은 것과 듣기 싫은 것은 보지 않는다.
TV만 틀지 않으면 세상 돌아가는 것도 모를 지경이다.
그 것도 마음을 편히 가질 수 있는 한 방편인지 모른다.
하루를 마감하면서도 이름 모르는 새들과 뻐꾸기의
구애를 듣다가 스르르 잠이 든다.
지금까지 머리로서의 삶이었다면 남은 삶은 가슴으로 살고 싶다.
남과의 색깔을 맞추기 위해 내가 회색이 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병풍산산장으로 자리를 잡은 것은 이제 내 색깔을 가지고
내 의지대로의 삶을 살고자 함이었다.
크로버가 지천인 길을 한참 걷다가 학창시절 생각이 떠올랐다.
네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운’이다.
여태까지 네 잎의 행운만 좇느라 허둥대지 않았는가. 뒤돌아본다.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인 것을.
많은 사람들은 네 잎 클로버의 ‘행운’은 알지만
대부분 ‘행복’이라는 꽃말은 모르고 사는 것 같다.
꽃말을 모르는 것은 좋다.
그러나 네 잎 클로버의 행운만 찾다가 주변에 널려있는
그야말로 소중하고 절실한 세 잎 클로버의 ‘행복’을
밟지 않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오늘 매미의 첫 노래가 들려오는 것을 듣노라니 병풍산의 봄도
신록 군단에 인계되려나보다.
여리던 잎들은 진녹색으로 짙어가고 있다,
내일의 희망을 약속하며 붉은 해도 잠자리 마련을 위해
서산으로 서서히 모습을 감춘다.
나는 네 잎 클로버가 아닌 내 주변에 무수한
행복의 세 잎 클로버를 찾고 싶다.
2014. 6
첫댓글 자연이 눈에 그려지는 수필 한 편 감동입니다. 등단 작품으로 쓰셨으면. 사랑 없이는 행복도 느낄 수 없다는 말. 세잎크로버의 "행복" 을 밟고 있지는 않는지... 일깨워 주심 감사.
.
어쩌다 있는 행운 보다는 우리 주변에 흔히 있는 행복을 찿아야 하겠지요.
저도 똑 같은 생각으로 글을 써 보고 싶었는데 선배님이 한발 먼저 쓰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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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터 치겠습니다. 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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