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A6TWrLcU_Tk?si=Tto0Gw6uai6LGotF
〔제1회:호로고루.경순왕릉〕
1.일시:‘25.10.8.연천
2.참석:가족5
3.코스:집(09:20)-호로고루-경순왕릉-귀가(18:20)
추석명절 내내 비가 내리고 있다.
대전에 살고 있는 사위가족이 추석연휴 교통체증을 피하여 새벽4시에 출발하여 아침 7시에 도착하였다.
올해는 추석명절이 늦게 찾아온 탓으로 익은 과일이 시장에 나왔다.단감이 제 맛이 들어 텃밭 가는 대신 망원시장에서 장을 본다.
재래시장은 싱싱하고 저렴하다.
(단감20개8천. 브로커리1500.바나나세송이4500)
수도권 가까운 연천에 고구려의 기상 호로고루와 망국의 왕 경순왕릉 가는 길은 가을정취 완연하다.
코스모스 가을바람에 나부끼고 벼이삭 노랗게 물들고 있는 산과 들판이 보기 시원하다.
집에서 제2자유로를 타다가 서울문산고속도로와 국도로 1:10분만에 호로고루에 도착하였다.
호로고루성 드넓은 평원이 가슴을 확 트이게 한다.
호로고루는 넓은 들판과 성곽 아래로 유유히 흐르는 임진강이 천혜의 자연환경이다.
북쪽을 향해 망향단이 놓여있고 망향단에서 바로 앞에 있는 산은 남방 한계선이 이곳이 최북단임을 알려 주고있다.
홍보관 건물 옆 향토 식품 판매 부스와 넓은 밭에 시들어 있는 해바라기들이 며칠전에 축제가 있었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다.
홍보관 앞에 우뚝 세워저 있는 광개토왕비는 2002년도(김대중민주정부시절)에 북에서 기증하였는데,
6.39m.무게 37톤 동아시아에서 가장 큰 광개토대왕릉비는 고구려의 20대 414년 장수왕 3년 19대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찬양하고 추모하기 위해 고구려의 수도 국내성(중국 지린성지안현 퉁거우) 능묘 곁에 세운 높이 6.39m.무게 37톤 동아시아에서 가장 큰 비석이다.
아차산 전투에서 승리하고 백제수도 한성을 함락한 광개토대왕이 호로고루를 지나갔다하여 이곳에 비를 두게 된다.
’1999년 여름 7월31일부터 8월4일까지 4박5일 동안 용두열 40주년 행사로 43명은 민족의 영산 백두산을 종주하였다‘
왕릉과 비석을 대하며 감격하던 그 날을 상기하니 어느듯 26년 세월이 무상하기만 하다.
호로고루에서 4분거리에 경순왕릉이 있다.
신라 56대 마지막 왕인 경순왕(재위 927∼935)은 927년 경애왕이 경주 포석정에서 놀다 견훤의 습격을 받아 시해된 후 견훤에 의해 왕위에 올랐다.
백제에 패하고 결국 망국의 군주 경순왕이 식읍지인 경주가 아니라 연천에 왕릉이 있게 된것은 군주의 장례가 민심을 격앙시켜서 신라 복벽운동을 촉발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는데,
'왕릉은 수도 개경에서 100리 안에 있어야 한다.'라는 원칙을 명분으로 경주까지 못 가게 하여라고 하며 당시 수운 교통이 편리한 임진강 고랑포 근처 현 위치에 능을 세우게 했다.
(성종 때 완성된 경국대전에서 인용)
끝까지 신라를 부흥코자 했던 첫째 아들 마의 태자 무덤은 금강산 비로봉 아레에 잠들어 있고 둘째 아들은 절로 들어가 스님이 되었는데 경순왕릉 가는 길 왼쪽 능하나가 넷째 아들이라고 되어 있는데 그 내력은 확인 못한다.
호로고루와 경순왕릉을 답사는 지금으로부터 1100년 전 아득히 먼 후삼국시대 역사를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다.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진 민족이라야 번성하고 미래로 나아갈 것이다’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진 자라야 훌륭한 사람의 자질을 갖추게 된다’
오늘 고적 답사를 하고서 손주 녀석 이 무슨 깨달음을 가졌을까.
손주녀석이 아빠와 합작하여 행운의 네잎 클로바 두 개를 찾았으니 올해 어떤 좋은 일이 일을지.......🍀
긴 추석 연휴 가족이 함께한 오늘 좋은 나들이 하고서 후기로 남기려 한다.
2025.10.8.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