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슐 커피머신 관심있으신 선생님들께 저희집 이티를 소개합니다.
가 아니고, 이 이야기는 커피머신 개봉기가 아닌 고장 수리기임을 미리 밝혀 드립니다.
다음주에 관내 컨설팅 장학이 있는데 제가 공개수업에 당첨되는 행운의 사건이 있었답니다. 짝짝짝!!!
기쁜 마음으로 세안을 짜다가 저의 오늘 밤을 함께할 커피의 출처에 대해 잠깐 교사회에 자랑질을 하면 더 완성도 있는 지도안이 만들어질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모델명은 일리 프랜시스 x7.1
이마에 버튼이 커다랗게 3개 있어서 생긴게 꼭 이티같아요.
작년에 광주에서 대학원 다니던 제 동생이 갑자기 문자가 와서 20만원만 달라고 하더라구요.
커피머신 사고 싶다길래 성과금 받은거에서 20만원을 투척해 줬답니다.
그리고 동생이 학교를 졸업하고 대구에 올 때 그 커피 머신이 저희 집에 왔어요.
캡슐커피가 향이 없어서 별로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동생이 갖고 온 걸로 몇번 내려 먹다 보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더라구요.
원래 제가 먹는 방식은
1. 커피를 계량한다.
2. 그라인더에 넣고 열심히 돌린다.
3. 드리퍼에 넣고 열심히 다진다.
4. 물을 계량한다.
5. 내린다.
6. 컵에 따른다.
7. 그라인더와 포트와 드리퍼와 서버를 설거지한다.
8. 식은 커피를 먹는다.
였는데 머신은
1. 캡슐을 꽂는다.
2. 버튼을 누른다.
3. 그 옆에 버튼을 누른다.
4. 먹는다.
5. 설거지는 다음에 동생이 마실 때 동생이 한다.
게다가 스팀기가 달려 있어서 라떼를 먹으려고 전자레인지에 우유가 든 컵을 넣고 1분 30초 돌리는 작업을 생략하고도 훨씬 고퀄의 라떼를 마실 수 있게 되었어요.
이렇게 해서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마시던 커피를 매일 매일 아메리카노, 아이스라떼, 카프치노, 아포가토까지 다양한 종류로 바꿔가면서 마시다가 동생이 3월에 취직하면서 기계를 가져가는 바람에
저는 다시 1번부터 8번까지를 반복하려고 했는데 폭풍 같이 터지는 주변의 다양한 사건들 때문에 커피를 못마시고 한 달 정도를 보냈답니다.
그리고 4월이 되어 동생의 첫 월급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던 차에 전화가 왔어요.
"그거 사줄까?"
"엉 사줘."
그렇게 직구신공을 발휘해 물건너 우리 집에 오게 된 하얀색 이티.
동생이 캡슐 12캔을 함께 시켰는데 그 캡슐은 분실과 분실신고와 추적과 제배송 등의 과정을 거친 끝에 어렵게 어렵게 지난 주말에 받았고,
우선 커피 머신이 먼저 도착을 했어요.
다행히 캡슐이 몇개 샘플로 왔고, 우선 세척을 하고 사용하기로 했어요.
새척을 할 때 버튼을 누르면 스팀기와 커피추출구에서 번갈아가며 물이 뿜어져 나오는데 볼을 받쳐 놓았는데 부엌이 물바다가 되었고, 민원이 들어올 정도의 어마어마한 소음이 나길래 전화해서 물어보니 원래 그런거라 하더라구요.
그리고 캡슐을 장착한 후 첫 추출을 시작했죠.
그런데 너무 기쁜 나머지 제가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커피를 내려버리는 사태가 발생하고 말았답니다.
크레마 가득한 에스프레소 방울들은 허공을 날아서 머신 하단에 물받이통으로 쏙쏙 빨려들어갔고, 전 아무 그릇이나 갖다 바치는 순발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그대로 얼음이 되어 그걸 쳐다만 보고 있었답니다.
그렇게 첫번째 추출이 허무하게 끝났는데 그걸 보시던 아빠가 세척을 해야 된다며 갑자기 머신을 싱크대로 가져가시더니 기울여서 물받이에 물을 버리시는게 아니겠어요.
물받이에 고여있던 커피는 제거가 되었는데 물통에 들어있던 커피 내리는데 쓸 물까지 흘려 나와서 기계가 엉망이 되었답니다.
그 사건이 있은 후로 갑자기 커피를 내리는데 굉음이 나기 시작했어요.
아랫집에서 민원을 넣을만한 소음에 커피는 콩만큼 밖에 나오지 않고,
고장이 났다고 판단한 저는 아예 사용을 안하고 방치해 놓고 있었답니다.
그리고 분실되었던 캡슐이 다시 도착을 했고, 동생이 휴가라서 집에 왔어요.
자기가 사준 머신을 잘 쓰고 있냐며, 그런데 고장이 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타까워 하더군요.
새로 온 캡슐을 넣고 내렸는데 여전히 굉음과 함께 콩만큼 밖에 나오지 않는 에스프레소
물통을 어떻게 잘 끼우면 양이 좀 많이 나오기도 하다가 다시 뺐다가 꽂으면 또다시 원상복귀...
전 괜히 아빠를 원망하고 아빠는 고쳐 보겠다고 드라이버로 기계를 열었다가 닫았다가
그렇게 주말 사이에 커피 캡슐을 10개 이상 뜯어서 내리고 또 내리고,
어마어마한 양의 에스프레소를 버리기가 아까워 아포가토로 먹고 아메리카노로 먹고, 다들 잠도 못자고 말똥말똥
그러나 결국 소득 없이 동생은 다시 서울로 갔고,
전 일리 코리아에서는 직구 물건은 유상으로라도 as를 안해준다는 슬픈 소식을 인터넷에서 발견하고,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는 고장 동영상 몇개를 찾아본 끝에
게스킷이거나, 펌프이거나, 모터일텐데 라는 결론을 내리고 사설 업체에 맡길지, 부품을 사서 직접 교체를 할지 고민하다가 오늘 학교에 갔다 왔답니다.
그런데 오늘 집에 와서 갑자기 뭔가 고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불현듯 들었어요.
저누언을 연결하고 세척을 돌렸는데
예전처럼 어마어마한 굉음과 함께 물이 튀어나오더니
갑자기 뭔가 소리가 달라지는 것이었어요.
세척이 끝나고 캡슐을 장착해서 추출을 시도했는데 정말 거짓말처럼 커피가 잘 내려오기 시작했어요.
아마 물이 이동하는 경로에 뭐가 막혔던 모양인가봐요.
씬나서 스팀을 올리고 카프치노에 테스트로 발생한 에스프레소를 몽땅 끼얹어서 동생한테 인증샷을 보내고 자랑을 했답니다.
"내가 고쳤지롱. ㅎㅎ"
그나저나 투샷 반이 들어간 이 카프치노를 다 먹으면 오늘 밤에 잠은 다 잔거겠죠.
첫댓글 다이나믹하네요~
전자제품 고장나면 다은샘의 직관을 구해야겠다는 교훈을 얻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재밌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어쩜 이렇게 글을 잘쓸 까??
잘읽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