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김창식 | 날짜 : 11-12-21 19:27 조회 : 1757 |
| | | 소오명동(笑傲明洞)
지난 8월 11일 자 칼럼 '알테 리베'에서 1970년대 충무로를 거닐었죠. 이번엔 명동 거리를 돌아보기로 합니다. 당시의 명동은 문화, 패션, 예술과 젊음의 거리였죠. 명동 입구에 이르니 마침 시계탑이 시간을 거꾸로 가리키고 있군요.
ㅡ 우린 누구나 홀린 듯 명동으로 갔는데 그곳에서 데이트를 하지 않으면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것 같았답니다. 젊은 여자들은 은성(銀盛)한 무도회라도 가는 양 성장을 하고 남자 친구와는 30cm 거리를 두고 걸으며 쇼윈도 글라스에 자신의 모습을 비쳐보곤 했죠. 개중엔 딱히 할 일이 없어도 혼자서 명동 거리를 소오(笑傲)하는 사람도 있었다고요. 누군가 봐 줄 사람이 있겠지 하고. 그러려고 그녀들은 몇 시간이고 정성들여 화장을 했다니까요, 글쎄.
우린 명동성당을 둘러보고 난 후 글렌 캠벨의 노래를 들으며 YWCA 언덕배기 건너편 '타임' 다방에서 차를 마시곤 했죠. 그 시절 '다방 순례'는 가난하지만 낭만을 찾고 싶은 연인들에게 일상의 일이거나 통과의례였다고 할 수 있어요. 낮은 담장의 건물들이 늘어선 골목길에 숨어 있던 '설파'(雪波) 다방에서 귀에 익은 클래식 음악을 듣곤 했지요. 비니압스키의 '전설',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 중에서 히브리 포로들의 합창',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 중 몰다우 강'…. 운이 좋으면 앙드레 프레빈이 지휘하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정경화가 협연하는,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D 장조 Op. 35'도 들을 수 있었고요. 그때 프레빈은 미아 패로우의 남편이었을 거예요, 아마.
술 생각이 날 땐? 자주는 아니지만 유네스코 빌딩 뒷골목 '뢰벤브로이'나 '카이자호프'에서 생맥주를 마셨죠. 주머니 사정이 허락한다면 말이에요. 그 옆 명동의 랜드마크인 맥주홀 '오비스 캐빈'에선 송창식, 윤형주, 서유석, 양희은이 차례를 기다리며 담소하고 있었을 거예요. 뚜아에무아와 라나에로스포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기타 줄을 고르고 있었을 테고. 어디선가 괄괄하고 거친 창법의 노래가 들려왔는데, 그게 바로 한대수의 '행복의 나라로'였어요. 우리 포크음악의 효시가 된 기념비적인 노래죠. 왼쪽으로 골목 하나만 더 꺾어들면 '마음과 마음'(Heart to Heart)이죠. 그곳에선 지금과 똑같은 머리 스타일에 가로 줄무늬 네이비 셔츠를 입은 김세환을 볼 수 있었답니다. 노래는 '사랑하는 마음'이었을 걸요. '길가에 앉아서'였나? 아무렴 어때요.
두어 집 건너 지하 라이브 카페 '청맥'(靑麥)에선 머리칼이 땀에 젖어 이마에 달라붙은 창백한 얼굴의 김정호가 '이름 모를 소녀' '작은 새'를 혼신의 힘을 다해 부르고 있었습니다. 영혼의 가객 김정호는 32세의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자신의 고통으로 우리의 고통을 감(減)해 준' 그를 어찌 잊을 수 있으려나요. 근데, '작은 새'는 어니언스의 노래 아니냐고요? 그 그룹이 불러 유명해지긴 했죠. 그렇지만 원래는 김정호 노래예요. 그 뿐 아니라 '저 별과 달을', '사랑의 진실' 등 대부분의 어니언스 노래는 김정호가 작곡해 준 것이라고요. 이건 뭐 별로 중요한 건 아니지만.
어, 김민기가 빠졌네? 본인은 아니라고 우기지만 그는 우리 젊은이들의 우상이자 우울한 초상이었어요. '아침 이슬'이나 '친구' 같은 노래는 금지곡이었잖아요. 그래서 우린 친구 자취방이나 어둑하고 삐걱거리는 계단을 내려가 지하 창고 같은 가건물에서 알음알음으로 모여 그의 노래를 듣곤 했답니다. 그의 노래를 들으면 마음속에 알 수 없는 파도가 일대요. 그때 우린 고아처럼 느끼기도 했고, 숭고한 이념에다 동지애 같은 것도 설핏 느낀 것 같은데 확실친 않아요. 지금 돌이켜보니 그 감정이 '덤'이었지 않나 생각이 드는군요. 아니, '멋'이라고 해야 하나요? 글쎄, 어쩌면!
1973년 세밑. 어느 날 해질녘의 명동 거리가 떠오릅니다. 제대한 지 일 년여가 돼가던 나는 무어 하나 되는 일 없는 대학졸업반 학생이었습니다. 방학을 맞아 특별히 할 일도 없고 해서(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무작정 명동으로 향했지요. (구)내무부 쪽 '훈목'(薰沐)다방 앞 길목에 서 있는데 사람들이 외투 깃을 올린 채 달력을 몇 개씩 말아 쥐곤 바삐 걸음을 옮겨요. 구세군이 딸랑딸랑 종을 치는데 길가 레코드 가게에서 성가가 흘러나왔어요. "온 세상아 주님을 찬양하라~" ㅡ
설렘과 회한이 교차하는 계절입니다. 갑작스런 추위까지 닥쳐 마음이 더욱 스산합니다. 올 한 해 제 글을 읽고 격려와 성원을 보내주신 독자 여러분께 머리 숙여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건승과 댁내 평안을 기원합니다.
* 자유칼럼(www.freecolumn.co.kr) 2011. 11. 19(월), 김창식 |
| 이진화 | 11-12-21 23:50 |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essay.or.kr%2Fgnu4%2Fskin%2Fboard%2Fbasic_writefree%2Fimg%2Fco_point.gif) | 며칠 전 작가회 문우들과 함께 그 거리를 거닐며 즐거웠습니다.
글을 읽으며 마치 20대로 돌아가 명동을 소오하는 느낌이 들었답니다. 뢰벤브로이, 오비스 캐빈, 훈목... 그리고 보라색 모노톤의 자켓을 입은 김민기의 음반.
타임머신은 1970년 대로 갔다가 다시 2011년으로 돌아오고 구세군의 종소리가 다시금 울립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 |
| | 김창식 | 11-12-22 09:12 |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essay.or.kr%2Fgnu4%2Fskin%2Fboard%2Fbasic_writefree%2Fimg%2Fco_point.gif) | 그 무렵 명동에서 애띤 단발머리(갈래머리?) 여고생 차림의 이진화 선생님을 뵈었던 듯... | |
| | 임재문 | 11-12-22 02:58 |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essay.or.kr%2Fgnu4%2Fskin%2Fboard%2Fbasic_writefree%2Fimg%2Fco_point.gif) | 참 흘러간 그 옛날을 그립게 하는 글입니다. 누구나 추억은 영원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김창식 선생님 !!!!!! | |
| | 김창식 | 11-12-22 09:13 |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essay.or.kr%2Fgnu4%2Fskin%2Fboard%2Fbasic_writefree%2Fimg%2Fco_point.gif) | 정통 수필이라기보다 그냥 기억을 되살려 가볍게 스케치한 묵탄화입니다, 임재문 선생님. | |
| | 임병문 | 11-12-22 08:40 |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essay.or.kr%2Fgnu4%2Fskin%2Fboard%2Fbasic_writefree%2Fimg%2Fco_point.gif) | 싫은 것, 좋은 것 고단함조차 세월이 가면 그리움이 되고, 그리움은 情으로 쌓여 우리를 자라게하는 자양분으로 남았었지요. 셀렘과 회한이 교차되던 그 시절, 그것 모두가 晩覺의 세월은 아닐 것입니다. 이 계절에 맞는 좋은 글, 잘읽었습니다. | |
| | 김창식 | 11-12-22 09:17 |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essay.or.kr%2Fgnu4%2Fskin%2Fboard%2Fbasic_writefree%2Fimg%2Fco_point.gif) | 이 글은 사실 등단작 <안경점의 그레트헨>의 프리퀄인 셈입니다, 임병문 선생님. 그날 훈목(薰沐) 다방 옆 안경점에 들어갔다가 '미모 종결자 '그레트헨을 보았지요. | |
| | 한동희 | 11-12-22 21:26 |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essay.or.kr%2Fgnu4%2Fskin%2Fboard%2Fbasic_writefree%2Fimg%2Fco_point.gif) | 김창식 선생님 글을 읽으니 새삼스러이 젊은 날이 되살아나는군요. 60년대, 나는 명동쪽보다 종로통의 음악감상실로 자주 나갔지요. 우리 시대의 음악감상실에는 젊은이들의 우울한 영혼이, 그리고 조금은 설레임도 있었죠. 아 아, 흘러간 시간이여! 다시 돌아올 수 없나 그 시절.... | |
| | 김창식 | 11-12-23 10:50 |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essay.or.kr%2Fgnu4%2Fskin%2Fboard%2Fbasic_writefree%2Fimg%2Fco_point.gif) | 한동희 선생님 주 무대가 세시봉, 양지 다방이셨군요. 그래서 조우하지 못했나 봅니다. 올 해로 '숙제'는 모두 마치시고 내년엔 선생님께 '축제'의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 |
| | 정진철 | 11-12-26 00:22 |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essay.or.kr%2Fgnu4%2Fskin%2Fboard%2Fbasic_writefree%2Fimg%2Fco_point.gif) | 그러니까 명동을 순례하셨남요 그 명동을 걸어본지도 한참되었군요 언제인가 이브날 명동에서 오래전인대도 경기도 캠프장까지 가는 관광버스가 있었어요 그버스타고 가서 데이트한 생각이 나는군요 오늘 만큼 추웠던 기억입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 |
| | 김창식 | 11-12-26 13:27 |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essay.or.kr%2Fgnu4%2Fskin%2Fboard%2Fbasic_writefree%2Fimg%2Fco_point.gif) | 당시 명동은 청춘의 배가 닻을 올리고 기항한 '젊음의 포털사이트' 였습니다, 정진철 선생님. | |
| | 김자인 | 11-12-28 22:40 |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essay.or.kr%2Fgnu4%2Fskin%2Fboard%2Fbasic_writefree%2Fimg%2Fco_point.gif) | 김창식 선생님 글을 읽으니 70년대 종로, 명동길이 생각납니다. 직장에서 퇴근 하면 많은 사람들이 명동으로 모여들었지요. 12월 초부터 레코드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캐롤송을 들으며 그곳에 가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들처럼 모든 약속을 명동으로 했던 기억이 납니다. 옛날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글 잘 읽었습니다. | |
| | 김창식 | 11-12-29 09:10 |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essay.or.kr%2Fgnu4%2Fskin%2Fboard%2Fbasic_writefree%2Fimg%2Fco_point.gif) | 김자인 선생님께도 명동에 얽힌 추억들이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그 시절 명동은 '젊은 쇠붙이를 끌어당기는 자석 같은 힘'이 있었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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