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월요시편지_913호
엔딩 크레딧
권태완
너를 보내고 잘했다 매듭지었다
못 한 말 꾹꾹 눌렀다
보고 싶어 비안개 필 때는
강물에 뛰어들고 싶었다
저 혼자 큰 호랑가시나무
제 가슴을 찌르며 산다
공지천 가면 너를 만날 수 있을까
그리움은 죽음보다 오래 남을까
완전 실패 우리가 제작한 인디영화
텅 빈 극장의 엔딩 크레딧
네 얼굴 안고 어둠 속에서 둥실 떠오른다.
- 『텅 빈 극장의 엔딩 크레딧』(달아실, 2023)
***
"시든 꽃밭에 물주기"라는 이름으로 12명의 초짜 시인들이 뭉쳤습니다. 그 중심에는 "역마살에 시마詩魔까지 들어서 달마는 아니고 동가식서가숙하는 시발당주詩醱堂主이자 끄적당주堂主" 시인 전윤호가 있습니다.
12명의 시방당원들인지 끄적당원들인지 이들이 '시든 꽃밭에 물주기'라는 이름으로 뭉쳐서는
- 텅 빈 극장의 엔딩 크레딧
이라는 시집을 펴낸 것이니, 궁금하지 않겠습니까.
눈비 오는 오늘 아침,
시집의 표제시를 띄웁니다.
- 엔딩 크레딧
영화관에서 영화가 끝나고 나면 시커먼 화면으로 엔딩 크레딧이 주욱 흘러내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하나둘 영화관을 빠져나가기 시작하지요.
저는 마지막까지 남아서 "텅 빈 극장의 엔딩 크레딧"이 끝날 때까지 앉아 있습니다.
가끔은 에필로그 영상이 숨겨져 있기도 하지만, 그 때문에 남아 있는 건 아닙니다.
그게 최소한의 예의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영화를 만든 감독과 배우와 스태프들에 대한 예의 말입니다.
아, 아닙니다.
사실은 엔딩 크레딧이 만들어내는 서늘한 풍경을 좋아한다는 게 맞겠네요.
실패한 영화도 성공한 영화도
엔딩 크레딧의 순간만큼은 서늘한 그림자를 지녔지요.
장례의 풍경처럼 말입니다.
사족. 열흘을 꼬박 앓았습니다. 증상은 많이 호전되었는데, 여진이 남아서 며칠은 더 갈 듯합니다. 건강할 때 건강을 지키라는 말이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는 중입니다. 담배와 술도 이 참에 끊든 줄이든 해봐야겠습니다.
2023. 11. 27.
달아실 문장수선소
문장수선공 박제영 올림
첫댓글 많이 아프셨군요. 박시인님.
그 좋아하는 담배와 술을 끊을 생각을 할 정도로 아프셨다는 거지요.
나이 앞에서는 장사가 없습니다.
모쪼록 쾌유하시고 끊을 수 있으면 좋겠고 그게 어려우면 조금 줄이셔야합니다.
박시인님이 건강해야 달아실이 건강하게 시집을 만들어 냅니다.
꼭 건강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