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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호 3차 발사한다 … 한·러 계약서에 명시”
이주진 항공우주연구원장 “한·러 책임공방 벌인 적 없어”
입력 : 2010.06.14
“국민 성원에 보답하지 못해 드릴 말씀이 없어요. 나로호 3차 발사는 기필코 성공하겠습니다.”
토요일인 12일 오후 대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2층 원장실. 남아공 월드컵 한국-그리스전을 앞둔 시점이지만 이주진(58.사진) 원장은 연구원 간부들과 지난 10일 나로호 발사 실패의 후속 대책을 논의하고 있었다.
사무실에 들어선 기자에게 그는 “너무 죄송하다, 실패하고서 무슨 할 말이 있느냐”며 인터뷰를 극구 사양하다 간신히 입을 뗐다. 여러 달 누적된 피로와 신경성 위경련에 시달린다는 그의 말대로 매우 지쳐 보였다. 원장 재임 1년6개월 동안 나로호 1, 2차 발사와 실패, 통신해양기상 위성의 이달 말 발사 준비, 내년 초 발사할 아리랑 위성 5호 개발 준비 등으로 영일 없는 나날을 보내왔다.
이 원장은 논란을 빚는 나로호 3차 발사 문제에 대해 발사를 기정사실로 간주했다. ‘과연 러시아가 3차 발사에 순순히 협조하겠느냐’는 의문 제기에 대해 “한·러 간 계약서에 나로호가 한 번이라도 임무(과학위성을 궤도에 올려놓는 일)를 완수하지 못하면 기본 계약인 두 번 발사 이외에 한 번 더 발사하기로 돼 있다”고 확인했다. 그러나 3차 발사를 위해서는 1단 로켓(발사추진체)을 만들어 제공하는 러시아와 협의할 사항이 많아 추가 논의를 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3차 발사는 발사체와 과학위성 제작 등에 소요되는 시일 등을 감안하면 내년 중 이뤄질 전망이다.
제주도 남쪽 공해상에 떨어진 나로호 잔해의 추가 인양은 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다고 여러 가능성을 열어놨다. 나로호 1단 로켓이 137초간 비행 도중 지상으로 내려보낸 데이터만으로 공중폭발 원인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면 러시아가 막대한 돈이 드는 해저 인양에 굳이 나서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언론에 한·러 간 책임 공방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것으로 비춰지는 데 대해 불편한 심정을 드러냈다. “한·러 기술진 모두 나로호 비행 데이터 분석을 하는 데도 시간이 모자란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나와 미국 존스홉킨스대에서 기계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1년부터 20년 가까이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재직하면서 아리랑 위성을 개발하는 등 우리나라 우주기술 역사의 산증인이다.
-나로호 발사 직후 첫 언론 브리핑 때 공중 폭발 사실을 알고도 ‘위성을 찾아보겠다’고 말하는 등 실패 사실을 숨겼다는 지적이 있다.
“외부에서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로호 발사 당국자 입장에선 나로호가 비행 중 내려보낸 데이터를 분석한 다음에나 폭발·실종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당시에는 ‘통신 두절’이라는 정보 말고는 드릴 말씀이 없었다.”
-나로호 1단 로켓의 이상은 불꽃 색을 보면 알 수 있었다고 로켓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불꽃 색은 햇빛이 비추는 각도, 보는 사람의 착시 현상 등 여러 원인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가장 정확한 건 나로호의 비행 데이터다. 그 분석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어떤 것이 원인이라고 꼭 집어 말하기 어렵다.”
-한·러 간 책임 공방이 치열하다는데.
“한·러 간 공조가 잘 이뤄지고 있다. 나로우주센터에 있는 한국인이나 러시아인 과학자 간에 책임을 서로 따지는 분위기는 아직까지 없다. 발사 당사자가 아닌 외부에서 말이 많은 것 같은데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14일 한·러 공동조사위원회(FRB)를 처음 열어 원인 규명에 나설 계획이다.”
-폭발 원인 규명은 하루 이틀이면 되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 지난해 8월 1차 발사 실패의 원인(위성보호 덮개인 페어링의 한쪽이 분리되지 않은 것)을 확실히 찾는 데 반 년가량 걸렸다. 그나마 완벽하게 밝힌 것이 아니라 두어 가지의 개연성을 찾아내는 데 그친 것이다. 아무도 볼 수 없는 우주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번 폭발도 원인 규명에 꽤 시일이 필요할 것 같다.”
-나로호 잔해는 끝까지 인양하나.
“러시아가 주도하는 일이기에 뭐라 답하기 어렵다. 인양하지 않고 비행 데이터만으로 그 원인을 알 수 있다면 굳이 막대한 인양 비용을 들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로호가 떨어진 제주도 남쪽 공해는 수심이 200m가 넘는다. 천안함 침몰 때 수심이 20~40m인 바다에서도 공격 증거물을 찾아내는 데 그토록 힘들었던 것을 보지 않았는가.”
-나로호 제작과 발사장 건설, 과학위성 개발 등에 8000억원 넘게 들었다. 두 번 실패에서 얻은 것이 있다면.
“수치로 말하기 어렵다. 두 번이나 실패해 할 말이 없지만 발사장 건설과 운용, 2단 로켓의 독자 제작이라는 성과를 얻었다. 미국·러시아 등은 이런 정도의 기술을 얻는 데만 수조원의 예산을 쏟아부었다. 나로호 실패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지만 우주 기술 노하우를 풍부하게 얻은 데서 위안을 찾고 싶다.”
-왜 거액의 국민 세금을 들여 우주발사체를 쏘고 독자 개발해야 하나. 미·러·일 등 9개 국을 제외하면 모두 인공위성을 다른 나라에 위탁해 쏘지 않나.
“선진국치고 우주 개발에 나서지 않는 나라는 드물다. 국격(國格)을 높이는 데, 또 차세대 우주산업의 물꼬를 트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서 국가 안보 측면에서도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독자 발사체가 없으면 위급한 때 원하는 위성을 마음대로 쏘아올릴 수 없다.”
-3차 발사와 독자 발사체 개발에 성공하겠다고 하지만 의지만 가지고 되나.
“2차 발사 실패 때 실망감이 컸는데도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국민의 격려가 여전히 많았다. 이런 관심과 지원은 개발 예산만큼이나 큰 힘이 된다. 우리나라에는 산업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고, 고급 두뇌가 많다. 한국민은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끈기와 강인함이 있는데 우리도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