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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생명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백대영
재산은 중독성이 있으며 아무리 모을지라도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1)
좋은 것(good things)이 많으면 그것을 먹는 자도 증가하고 눈의 보는 것 외 이익이 그것의 소유주들에게 있지 아니합니다(전 5:11).
재산(riches)은 기생충 같은 자들을 주위에 모이게 합니다.2)
그 섬기는 자(laborer)의 잠은 적게 먹든지 많이 먹든지 달아도 풍부가 그 부자에게 잠자기에 정착시키지 아니합니다(전 5:12).
“풍부(abundance)”(사바)는 “만족하다”(사바)에서 나왔으며 “포만”(satiety)으로도 번역됩니다. 노동자는 낮에 힘들어도 잠은 달콤하나 부자의 재산은 돈을 지킬 방법을 근심시켜 불면증만 초래할 뿐입니다.3)
2'. 문제점은 인생은 고난과 학대로 가득합니다.4)
전도서 5장 13~17절에 “병드는 악의 존재를 내가 해 아래 보았나니, 부(riches)가 그것의 임자들에게(by) 그 악(hurt)에 지킴을 받는 것이고. 부(riches)가 나쁜 임무 안에 파괴되고 그가 아들을 낳고 아무것도 없고. 그가 그의 모태로부터 벌거벗은 나온 것처럼 그가 되돌아가게 될 것이고 그가 가게 할 그의 노동 안에 아무것도 그가 들어 올리지 아니할 것이고. 이것도 병드는 악이라, 그 온 방식에 모든 점에 그와 같이 갈 것이고, 무슨 이익이 그 바람을 위해(for) 힘써 일하는 그에게 있냐? 또한(also) 모든 그의 날들에 그 암흑 안에 그가 먹고 그가 많게 하려고 성났으며 그의 질병과 분노(anger).”라고 하였습니다.
전도서 5장 13절의 “폐단”이라는 말과 뒤에 “해”라는 말은 같은 말로, “악(惡)”, “나쁜(evil)”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라)가 사용된 것입니다. 창세기 2장 9절에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쓰인 말입니다(전 5:13).
전도서 5장 13절에 “큰 폐단”이라는 말은 “병드는 악”을 뜻하며, “통탄할 악”(grievous evil)이나 “엄한 악”(severe evil)으로 번역됩니다.
재산을 사랑하는 자는 자신에게 고통이 되기까지 그 재산을 지키기도 한다는 것입니다.5) 그 재산을 지키느라고 자신에게 고통이 됩니다. 재산을 지키고자 재산이 있어도 즐기고 누리면서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전도자가 태양의 아래에 나쁜 것을 보게 되었는데, 부(riches)가 그 임자들에 의해 그의 악(hurt)에 지킴을 받는 것입니다.
재산이 지키려고 있는 것 아닌데 재산을 지키다가 죽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재산을 주셨으면 그걸 삶 속에서 누리고 즐기면서 살아야죠! 그 재산 없어질까 봐 누리지 못하고 손에 꽉 쥐고 있다가 죽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소유주가 재산을 자기에게 해가 되도록 지킨다는 것입니다. “재산(riches)”이라는 것은 자기에게 좋게 하려고 필요한 것일 뿐인데도 자기에게 나쁘게 되기까지 자기 재산을 지키기 위해 힘쓴다는 것입니다.
재산을 지키려는 욕심이 마침내는 아무 유익도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자기에게 손해가 될 뿐인데 그것을 지키려고 애쓴다는 것입니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렸듯이, 분당 건물 지키려다가 자기에게 해가 됩니다. 분당 건물 가지고 있으면 뭐하며 건강 잃고 그러다 죽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재산은 지키는 것이 아니라 누리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거 우리 힘으로 소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돈으로 샀습니까? 반은 은행 돈이잖습니까? 반은 은행 돈인데, 전체를 우리 것으로 생각하고 살면 어떻게 됩니까? 은행이 은행 돈이니까 맨날 이자 날아오는 것이죠! 능력은 반밖에 안 되는데 2배나 갖고 있으니 세금은 2배나 물게 되고, 세금 내다가 누릴 수 있는 것 못 누린다는 것입니다.
그것 처분하고 그것 반만 되는 걸 가지고 돈 벌고 누리며 살면 되는데 자기 능력 2배나 되는 건물 지키려고 하니 뱁새가 황새 쫓아가는 것처럼 세금 내고 은행 이자 내느라 힘 드는 문제가 생기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의 분수에 넘는 것을 소유하고 있으니까 문제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싸게라도 팔면 손해 보는 듯할지라도 이런 신세에서 해방될 것입니다. 재산이란 즐기고 누리기 위한 것이지 그것을 지키기 위한 것은 아님에도 사람들은 재산을 지키기 위해 산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판 돈으로 살 건물도 없습니다. 이제는 현대에서 그 건물을 안 팔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모든 것에 때가 있는 법이고 기회는 잡아야 할 때 잡아야 합니다. 설교 끝나면 “아멘” 하면서 현실에서 그대로 하지 아니하여 놓쳤습니다. 최선은 놓쳤으나 지금이라도 파는 때 헛된 수고에서 해방될 것입니다. 소유주가 재산을 자기에게 해가 되도록 지키는 것은 “통탄할 악”입니다. 전도자는 해 아래에서 이런 “큰 폐단” 되는 일이 있는 것을 본 것입니다.
임대료를 받는데 은행에 이자 내고 세금 내고 나면 쓸 돈이 없습니다. 대출 없이 우리 것만 가지고 있으면 은행에 이자 낼 일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금도 누진세가 적용되기에 반 이상 줄어들게 된다는 것입니다.
몇 년을 더 살겠습니까? 10년을 더 살겠습니까? 20년 더 살겠습니까? 남은 인생이 얼마나 된다고, 그것 붙들고 있다고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그것 지키느라 세금 내느라 쉬지 못하고 마음에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어떻게 하면 이자 갚을지를 궁리하느라고 잠도 자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것 지키다가 죽는 것입니다.
지키려고 할수록 더욱 제값 못 받고, 결국은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전무후무한 지혜로 극찬받은 솔로몬 왕이 전도서에 이렇게 쓴 것입니다. 그의 경고를 듣지 않으면, “중대한 악”(grievous evil)을 범하게 됩니다.
우리 개역 성경의 번역을 따르자면 큰 폐단 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소유주가 재산을 자기에게 해가 되도록 지키려는 것이 “큰 폐단”입니다. 이런 우상 숭배자는 그 존재 자체에 “손해(hurt)”를 입게 됩니다.
그 부(riches)가 나쁜 임무 안에 파괴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전 5:14). “임무”는 “투자”(investment), “불운”(misfortune)으로 번역되었습니다.
그 재산이 불행을 통하여 파괴되고 멸망하여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재산이 영원히 자기 것으로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음입니다. 재산은 “나쁜 투자”나 “불행한 일”을 통하여 잃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부자가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나설 수도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6) 하루아침에 집이 없어져서 갈 데가 없어져서 길거리로 나서는 것입니다.
IMF 때 사업하며 떵떵거리며 살던 사장들이 길거리에 나앉게 되었고, 서울역, 지하철역에 노숙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원래부터 거지가 아니었으며, 부자로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루아침에 길거리에 나앉게 될 수 있다는 것이 인생살이라는 것입니다. 돈 좀 있다고 자랑하고 교만했습니까? 말년에 비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원하지 아니한 것을 믿고 교만하였던 우상 숭배자의 말로인 것입니다.
그가 그의 모태로부터 벌거벗고 나온 것처럼 그가 돌아가게 될 것이고 그가 가게 할 노동 안에 그가 아무것도 들어 올릴 수 없습니다(전 5:15).
“그의 노동”은 “그의 노동의 열매”를 뜻하는데 그의 손에 운반하는 그의 노동의 열매로부터 아무것도 취하지 못합니다.
이것도 병드는 악(惡)이라서 그가 온 방식에 모든 점에서 그렇게 가고 바람을 위해(for) 힘써 일하는 그에게 아무런 이익도 없습니다(전 5:16).
또한(also) 모든 그의 날에 그 암흑 안에 그가 먹고 그가 많게 하려고 성이 났고 그 질병과 분노가 있습니다(전 5:17).
전도서 5장 18~20절에 “내가 좋게 본 것이 있으며, 아름다운 것이라, 하나님께서 주신 그 생명의 날들의 숫자 동안(during) 먹기와 마시기와 그 노동 안에 좋은 것을 보기니, 그것이 그의 몫임이라. 또 모든 인류(man) 그에게 하나님께서 부(富)와 부유를 주셨으며 먹고 몫을 들어 올리고 기뻐하게 권력을 휘둘리셨고 하나님의 선물이니. 이는 많게 만들기에 그가 생명의 날을 기억하지 아니할 것이기 때문이니 이는 하나님께서는 그의 마음의 기쁨 안에 응답하시는 분이심이라”라고 하였습니다.
전도자가 좋게 본 것이 있으며(is), 아름다운 것입니다(전 5:18). 먹기와 마시기와 모든 그의 노동 안에 좋은 것을 보기(enjoy)가 그런데, 좋은 것을 본다는 것을 영어 성경들은 좋은 것을 즐긴다고 번역합니다.
그가 모든 그의 노동 안에 좋은 것을 즐기며 살면 좋고 아름답습니다, 다른 영어 성경은 만족을 찾아낸다(find)고 번역한 것인데, 인생에 노동이 있을지라도 그 노동 가운데에 만족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그의 몫(lot)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먹고 마시는 중에 좋은 것을 보는 삶을 사는 것이 그의 몫입니다.
또 모든 인류 그에게 하나님께서 부(富)와 부유를 주셨고 먹고 몫을 들어 올리게 권한을 휘둘렸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전 5:19).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먹을 권한을 주셨다(empower)는 말씀입니다. 그 몫을 들어 올리고 그 수고하는 것 중에 기뻐할 권한을 주신 것입니다.
이는 많게 만들게 그가 생명의 날을 기억하지 아니할 것이기 때문이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마음의 기쁨 안에 응답하시기 때문입니다(전 5:20).
1'. 문제점은 세상은 부정과 불공평한 일로 가득합니다.7)
전도서 6장 1~2절에 “내가 해 아래서 본 악(惡)이 인류에게 많은지라. 그에게 그 하나님이 재산과 부(wealth)와 영광을 주신 사람이고, 그의 영혼에 그가 바라는 모든 것으로부터 부족하지(lack) 않으며 하나님께서 먹을 수 있게 권력을 주지 아니하시니 외국 사람이 먹음이라 이것이 덧없음이고 악한 병이라.”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해 아래서 본 악의 존재가 인류에게 많이 있다고 합니다(전 6:1). 앞에 5장 13절에서 소유주가 재산을 해가 되도록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 6장 2절에는 또 다른 나쁜 것이 언급됩니다.
그 하나님께서 재산과 부(wealth)와 영광을 주신 사람입니다(전 6:2). 그의 영혼에 그가 바라는 모든 것으로부터 부족하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먹을 수 있게 권한을 주지 아니하시니 외국 사람이 먹음이라 이것이 덧없음이고 악한 병입니다.
제산과 부와 영광을 받은 사람임에도 먹을 권한을 누리지 못하는 자니 외인(外人)이 그것을 먹기 때문입니다.
돈도 많고 엄청난 부잔데 다 가졌는데 정작 자기는 누릴 수 없습니다. 그는 재산을 지키느라 누리지 못하고, 그가 모은 것을 외인이 먹습니다.
그것을 가진 사람과 누리는 사람이 다른 것이며 소유냐 향유냐입니다. 가진 사람은 누리지 못하는데 가지지 않았는데 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리면서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살이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전도서 6장 3~6절에 “만일 사람이 100을 낳게 만들고 많은 해를 있고 그 영혼이 좋은 것으로부터 만족하지 아니하고 매장이 있지 아니하다면, 나는 말하기를 ‘낙태(stillborn child)가 그보다 좋은지라’라고 말하노라. 그가 덧없음 안에 왔으며 암흑 안에 가고 암흑 안에 그의 이름이 덮이며. 또 태양을 그가 보지 아니하였고 알지 아니하였으며 이보다 평온임이라. 비록 그가 천 년의 두 때를 산다 해도 좋은 것을 보지 아니하면, 그 모두가 하나의 장소에 걷는(go) 자가 아닐 것이냐?”라고 하였습니다.
만일 사람이 100명의 자녀를 낳게 만들고 이 세상에서 많은 해를 살고 그 영혼이 좋은 것으로부터 만족하지 아니하고 매장이 있지 아니하다면, 그는 말하기를 ‘낙태된 자가 그보다 더 좋은지라’라고 말합니다(전 6:3).
그 영혼이 좋은 것으로부터 만족하지 아니하고 천국에 가지 못한다면, 낙태된 아이가 그 사람보다 더 좋습니다.
그가 덧없음 안에 왔고 암흑 안에 가고 그의 이름이 덮입니다(전 6:4). 낙태된 아이는 아무도 모르게 왔다가 가고 아무도 기억하지 아니합니다.
그가 태양을 보지 아니하였으나 불만족한 자보다 평온입니다(전 6:5). 낙태된 아이는 세상을 못 보고 죽었음에도 불만족한 자보다 평온합니다.
전도서 6장 4~5절은 낙태된 자의 운명이 덧없다고 상술하고 있는데, 그보다 덧없는 것은 장수할지라도 구원함을 받지 못하고 죽는 것입니다. 결국은 영원한 멸망에 처하여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가 천 년의 두 때를 산다 해도 좋은 일을 보지 않으면 그 모두가 하나의 장소에 걷는(go) 자입니다(전 6:6).
2천 년을 산다 해도 좋은 일을 즐기지 못한다면 장수는 저주일 뿐이며 그 모두가 하나의 장소인 무덤에 가는 자일 뿐입니다.
전도서 6장 7~9절에 “인류의 모든 노동은 그의 입을 위해서고 그런데도(yet) 그 영혼(appetite)은 충만하게 되지 않는 것이니. 이는 그 지혜로운 자에게 어리석은 자보다 무엇이 이익이며 그 가난한 자에게 생명의 맞은편에 걷기에 알기가 무엇을 가지냐? 눈의 광경(sight)이 영혼의 걷기보다 더 좋으며 또 이것도 덧없음과 영(wind)의 노력함(striving)이라”라고 하였습니다.
인류는 무엇에도 만족하지 않을 것처럼 보입니다(전 6:7).8)
그 영혼의 식욕은 절대 만족하게 채워질 수 없게 되니,9) 물질주의적 영혼은 아무리 물질로 채워져도 만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 지혜로운 자에 어리석은 자보다 무엇이 이익이며 가난한 자에게 생명의 맞은편에 걷기에 알지라도 소용없습니다(전 6:8).
어떻게 살지 아는 지혜가 있더라도 가난하면 지혜가 소용없습니다.10) 지혜로운 계획이 있어도 돈이 없으면 계획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지혜로운 자가 어리석은 자보다 이익이 있지는 않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돈이 없어 못 하고 어리석은 자는 지혜가 없어 못 합니다.
눈의 광경이 영혼의 걷기보다 더 좋고 이것도 덧없음과 영(wind)의 노력함일 뿐입니다(전 6:9).
없는 것을 가지려는 것은 바람을 붙잡으려고 노력함과 같은 것입니다. 붙잡을 수 없는 것을 붙잡으려고 노력함과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
전도자는 세상사에 불가사의가 많은 것을 봅니다. 애써 부자가 되고 명성까지 갖추고 이젠 좀 버젓이 살만하게 되었는데 많은 유산과 명성을 남긴 후 자기는 누려 보지 못하고 죽어 버립니다. 어떤 사람은 다 갖춘 것 같은데 불쌍할 정도로 즐겁지 않게 삽니다.11) 재산을 자기에게 손해가 되도록 지키는 사람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지혜가 있는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 사이에는 아무런 차별이 없습니다. 가난한 자에게는 지혜로운 계획이 있을지라도 실행할 돈이 없습니다.12) 어리석은 사람은 지혜로운 계획이 없어서 실행하지 못하고 지혜로운 자는 돈이 없어서 실행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드럼통은 영화 ‘신세계’에서 조직폭력배들이 시신을 유기할 때 나오며 영화 ‘아수라’를 보고 이재명을 떠올린 국민도 적지 않습니다.13)
언론도 강력한 권력 앞에서는 무력하기에 유익이 되지는 못합니다.14) 언론인들이 드럼통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몸 사릴 수밖에 없습니다.
인생은 조각구름 하나가 일었다가 스러지는 것과 똑같은 것일 뿐이며, 뜬구름 자체는 본래 실체 없는 그림자와 똑같은 것일 뿐입니다.15)
그림자는 영원히 거기 머물지 못하고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변합니다. 이 세상에 변하지 아니하는 것은 없으며 변하는 것을 신뢰하지 아니하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하나님만을 신뢰하여야 하겠습니다(약 1:17).
1) Duane A. Garrett, 『NAC 잠언·전도서·아가』, NAC 성경주석, 황의무 옮김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9), 397.
2) Garrett, 『NAC 잠언·전도서·아가』, 397.
3) Roland E. Murphy, 『전도서』, WBC 성경주석 23A, 김귀탁 역 (서울: 솔로몬, 2008), 190.
4) David A. Dorsey, 『구약의 문학적 구조』, 류근상 역 (고양: 크리스챤출판사, 2003), 306.
5) Garrett, 『NAC 잠언·전도서·아가』, 397.
6) 민영진, 『전도서 아가』, 대한기독교서회 창립 100주년 기념 성서주석 20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9), 134.
7) Dorsey, 『구약의 문학적 구조』, 306.
8) Daniel C. Fredericks, 『전도서』, AOTC 성경주석, 권대영 옮김 (서울: 부흥과 개혁사, 2018), 205.
9) Fredericks, 『전도서』, AOTC 성경주석, 205.
10) 민영진, 『전도서 아가』, 대한기독교서회 창립 100주년 주석, 135.
11) 민영진, 『전도서 아가』, 대한기독교서회 창립 100주년 주석, 150.
12) 민영진, 『전도서 아가』, 대한기독교서회 창립 100주년 주석, 150.
13) https://www.imaeil.com/page/view/2025041612260488513
14) 민영진, 『전도서 아가』, 대한기독교서회 창립 100주년 주석, 150.
15) 민영진, 『전도서 아가』, 대한기독교서회 창립 100주년 주석, 15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