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두하나에 추억하나.
설이 다가온다.
청도표 떡국떡도 잔뜩 있고
만두만 있으면 그런데로 설은 지내겠다 싶어서
어제는 작정하고 만두를 만들기로 마음을 먹고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며 만두 만들 준비를 했다.
고기만두와 김치만두로 나누어
만두소 두종류를 각각 만들어서 두통 그득 담아놓고
혼자서 만두를 빗기 시작한다.
적지않은 양을 혼자서 다 할려니 외롭고 조금 벅차지만
손으로 만드는건 뭐든 겁을 안내는데다가
그쪽 방면으로는 한가닥 하는 나니까 즐겁게 작업을 시작~
채반에 가지런히 채워지는 줄지어있는 만두를 보니
문득 옛생각이 난다.
옛날 어릴적 우리집에서 만두를 빗는 날은
할머니와 식구들이 모두 둘러앉아서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나누며 참 즐거웠는데....
만두를 빗을땐 그 무뚝뚝하셨던 아버지께서도
함께 한자리에 앉으셔서 갖은 솜씨를 부리면서
각가지 모양의 만두를 만들어 우리에게 보여주시며
딸들을 놀라게 하셨고
또 우린 그걸 따라 만들며 재밋어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바로 명절을 준비하며
가족의 정이 쌓여지는
명절전의 설레임과 행복감이
솟아나는 시간들이었던 거 같다.
옛날 이렇게 우리집에선
명절만 가까워지면
제일 먼저 만두를 빗고 그 다음이 빈대떡 이었는데
이젠 나도 빈대떡은 사서 먹게 되고
그래도 만두는
지금도 겨울철만 되면 간간히 만들어서
겨울내내 두고 먹게되니
어릴적 맛들여진 입맛과 습관들이 무섭단 생각이 든다.
고향이 서울인 할머니와 아버지 ,
아버지 직장따라 경상도로 내려오셔서
반평생을 사셨는데도 풍습과 음식은 변함이 없어
우리집 음식은 늘~ 이웃집들과는 사뭇 달랐다.
음식의 종류도 식재료도 달랐고
요리과정도 전혀 달라 모양도 맛도 달랐다.
우리집의 모든 음식들은 다
집안의 어른인 할머니와 아버지의 식성과 기호에 따라
음식들을 만들다 보니
어릴적에는 우리집과 다른
이웃집 음식들이 낯설고 이상했다.
지금이야 전국이 하나로 통일된 시대니까
음식들도 남쪽 북쪽지방 따지지 않고
각자의 기호에 따라
선호하는 입맛데로 찾아다니며 먹는지라
조선 팔도의 음식들이
다 친근해진지 이미 오래 되어버렸지만
우리 어릴 때만 해도
각 지방마다 음식들이 다 다르고
낯도 설고 입맛도 설어
듣도 보도, 먹어보지도 못한 음식들도 많았으니
음식들이 오가며 정을 주고받는 명절 날이면
토박이 서울식인 우리집 음식은
신기해 하는 동네분들과 나눠 먹느라 동이 났고
그래서 그랬든지
늘 양을 엄청나게 많이 만들었던 걸로 기억된다. .
옛날엔 만두에 넣을 돼지고기도
다져서 파는건 아예 없었으므로
덩어리채 사와서
일일이 도마에 놓고 다지느라
팔에 말이 설 정도니
그 많은 양을 어찌 다 준비했을지
지금도 상상을 못할 일이다.
이웃에서 가져온 배추전을 처음 보신 할머니는
신기하다며 박장 대소를 하시며 먹어보신 후
모양과는 달리 맛은 있다며 그 후로는
빈대떡 다음으로 배추전이 맛있다시며
손쉬운 배추전을 가끔씩 찾곤 하셨던
할머니 얼굴이 떠올라
이번설엔 배추전도 붙여야지.....하며 혼자서 웃는다.
그때 할머니에게 배웠던
보자기 만두며
제비꼬리 만두를 에쁘게 만들어 놓고
" 니께 제일 예쁘다"는
할머니의 칭찬이 그리워지니
나 도 참~~ ㅠㅠ
그때 그시절에는
집안에서 할머니가 왕이셨었다.
모든 집안의 일은 할머니 위주로 돌아갔고
할머니를 통해야만 뭐든 다 가능했으니
이것 또한
지금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상상조차 안될 노릇이다.
우리 할머니는
그시절 할머니들과는 전혀 다르게
매우 유식하셨고
기품이 선비같아 늘 서책을 가까이 하셨으니
매일 집으로 놀러오시는 동네 할머니들에게
이야기 책을 실감나게 읽어주시던
우리 할머니께서는
동네에 경조사가 생기면
혼인에 필요한 사돈지나
초상때 쓰이는 발인문을 손수 지어셔서
벼루에 먹을 갈아
한지에 붓글씨를 쓰서 주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한데
문장이 수려하고 달필이셨던 우리 할머니!
틈틈히 난도 치시고 수묵화를 즐겨 그리셨던
할머니 옆에서 우리 자매들은
서로 벼루에 먹을 갈려고 다투곤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런 할머니가 너무 좋았고
자랑스럽고 부럽기도 했던것 같다.
그 할머니의 유전자가 아버지를 거쳐
내게도 조금은 전해진건지
"넌 , 날 참 많이 닮았다"고 하시며
셋째손녀인 나를 특별히 이뻐하셨던 할머니,
명절이 다가오면 유독 많이 나는 옛생각은
이것도 노년에 오는 한 증세려니....
혼자서 만두를 만들며
이생각, 저생각, 옛생각에 빠져 만들다보니
어느새 만두소 그릇의 바닥이 보여
완성된 만두를 헤아려 보니 90개가 넘는다.
가지런히 놓인 모습이 너무 이뿌고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만두도 좋아하지 않고 만들줄도 전혀 모르는
울영감한데 자랑을 할 수도 없고
자랑질 할 때가 별로 없으니
조금 허전한 마음이 잠깐 스쳤지만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매번 만두를 빗는 이유는
만두가 먹고싶어서가 아니라
옛날 그시절 설레이며 기다렸던
설날의 추억이 그리워서 일거란 생각이 드네.
명절이 한 때라
쌈짓돈 풀어주시던 할머니의 세뱃돈도 그립고
딸들 쭈욱 둘러 앉혀놓고
아버지가 가르쳐 주시던 민화투도 그립고
살얼음 깨서 먹던
찬방 항아리에 담긴 식혜의 달콤함도 그립고
설빔으로 만들어 주신
색동저고리에 빨간 큰치마 펄럭이며
널 뛰던 앞집 순이네 마당도 그립고
그시절 동무들 어디서든 다 지금 나처럼 늙었겠지.
줄줄이 생각나는 추억들이
90여개의 만두 하나하나에 다 들어가 앉는다 .
만두하나에 추억 한가지씩 담기니,
나 살아있는 동안에 앞으로
또 언제까지 이 짓이 계속 돨지는 몰라도
난 또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만두에 추억을 담으며 오늘처럼 행복해 할 것 같다.
물론 그대들과의 추억도 담게 되겠지.
코로나로 힘든 때이지만
이것 또한 나중엔 웃픈 추억이 될꺼니까
잘 이겨내면서 5명씩, 5명씩, 규정지키며
아들 손녀 잘 만나 새배와 덕담 많이 나누며
추억거리를 많이 남겨 주시게들. ~~~
설날 아침 , 나이 한 살 맛있게 먹고
더 멋있고 건강한 모습으로 우리 만납시다.
새해 복 많이 받읍시다~
명절을 일주일 앞두고 친구가
첫댓글 우리집은 만두는 빚은 적이 없는데 서울 분들이라 음식이 우리 시댁쪽이네
아무리 추억이 좋아도 혼자서 만두 90개를 빚다니 나는 감탄만 할게.
내년 설엔 재현 아빠, 재현부부랑 같이 만두 빚길!
그 옆에 한달쯤 된 손주가 오물락거리며 흔들 침대에서 ~ 아! 그림 좋다!
만두의 추억도 좋지만 행복한 미래를 꿈 꾸며 또 어떤 메뉴가 나올라나?
이번 90개는 적게 빗은거여 ㅋㅋ
남편과 아들이 만두를 빗어?
서쪽에서 해뜨기를 바래라
내혼자 만드는것도 재현이 아빠 없을때 몰래 만드는데,,,,
먹어주기만 해도 고맙겠다
재현아빠는 만두를 원래 안 먹어여
만두를 집에서도 만든다는걸
장가 와서 처음 알았데여ㅋㅋ
식성이 나하고 안맞는게 많은데
내가 맞혀주는거여 내가,,,
어릴때 먹고 자란 입맛은
잘 안바뀌는거 같어
늙어가면서
더 옛날로 돌아가는거 같더라구
내년 설날풍경도
올해와 별반 다를게 없을거 같으이 ㅠㅠ
그러고 보니 생각난다,
향수기 뿐만 아니라 우리 여생도들 전체가 남자형제들 얘기를 전혀 안한다는게...
생뚱맞게 왠 남자형제 얘기냐고 할지 모르지만 생각이 나서...
나는 원래 만두를 좋아하지 않아서
식당에 점심먹으러 가서도 "떡만두국"을 먹게 되면 만두는 건져서 다른 사람을 주고 나는 떡만 먹을 정도로 안좋아 했는데,
이번에 만두에 관한 큰 발견을 했지....
이북사람인 마누라가 만두 만들기를 좋아해서 만두를 몇백개 만들었는데
아들만 조금 가져가고 딸들은 생각없다고 하는 바람에 냉장고에 만두천지가 되고,
걸핏하면 만두국을 먹게되어 만두가 쐬주안주에 아주 좋은걸 발견했고,
원래 집에서 술을 마시면 인상을 쓰던 망구도 자기가 지은 죄(?)때문에
만두를 끼니 겸 안주삼아 소주를 마셔도 못본척 하두만
야 ~! 만두 많이 만들어 놓은게
무슨 죄냐?
도와주지도 안했으면서,,,
울영감도 만두 좋아하지는 않는데
떡만두국 끓여놓으면 1개정도는
예의로 먹어준다고,,,
왜 그 힘든걸 사서 고생하냐며
먹고싶으면 사서 먹으래여
술안주는 술을 잘 안마시니
해당사항이 없어 너의 그 기발한 아이디어를 못 써먹겠네 ㅎㅎㅎ
난 만두가 냉동실에 잔뜩 있으면
마음이 푸근해여
아들은 파는 만두가 더 맛있다더니
결혼후는 엄마꺼가 점점입맛에
맞는거같다고 ^^
아들네 조금 갖다주고 나머진
거의 내가 다 먹어여
@향수기 나도 냉동실에 만두는 많아, cj만두, 풀무원 만두~ ㅋㅋ
남편이 만두를 좋아해서 간식으로 대여섯개씩 잘 구워 먹는데 만두 빚으면 얼씨구나 하고 같이 빚어 줄걸
나는 엄두가 안나
정수도 처복을 타고 났구만
우리 남편만큼은 아니지만... ㅋㅋ
@성창희 그래 그럴거야
한나아빠는
너보다 더 잘 만들걸 아마도 ,,,
무심한 옛날남자인 울아버지도
만두만들땐 늘 같이 만들면서
우리한테 가르쳐 줬으니까,,,
한번 시도혀 봐
파는 만두랑 맛이 달라여
@성창희 물론, 첼리스트 "장"한나를 알겠지.
성선생 생각만 나면 첼리스트 장한나가 생각나는데,
그건 성선생이 한나네 엄마이기 때문 만은 아니고 왠지 뭔지 모르는 어떤 인연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장한나의 나이도 40가까이 되었으니까 그대의 딸 한나랑 비슷할거 아닌가,
나는 장한나를 생각할때마다 기특해서..... 정경화 언니 정명화 이후 최고의 첼리스트에다 노르웨이 최고의 Orchestra 지휘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