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571) 진실되게 썼는데도 솔직성이 부족하대요 - ③ 교묘하게 솔직성을 섞어보자/ 시인 하린
진실되게 썼는데도 솔직성이 부족하대요
티스토리/ 김지은 야간개장
③ 교묘하게 솔직성을 섞어보자
일요일의 호수는 평화롭다 도덕적으로
오리들이 헤엄치고 싱거운 빵을 잘도 뜯어 먹는다
나는 당신 오른손만 사랑해
두 번씩 손을 상상해도 당신 손은 하나다
차 안에 앉아서 우리는 정지하고 관찰한다
살아 있는 날개 살아 있는 주둥이 살아 있는 발목
그런데 오리는 나는 방법을 알고 있을까?
당신은 내 입술을 찾아 당신의 입술을 확인하고
순서대로 옷을 벗긴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윤리적으로
어쩌다 올이 나간 스타킹 때문에
당신의 흔들림에 집중할 수가 없다
어제의 오리는 오늘의 오리와 어떻게 다른지
월요일, 오리. 화요일 오리. 수요일, 오리?
목요일에게 돌아갈 빵은 없고
그러나 주여 일요일에는 울지 않게 하소서
―김지은, 「야간개장」 전문, 『시산맥』, 2016년 봄호.
솔직성이 담긴 시를 색다르게 쓸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각자 만의 시 스타일이나 체질에 따라 연구하면 다양한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현실을 냉철하게 인식하는 태도는 시를 쓰는 사람이든 시를 쓰지 않는 사람이든 모두 가지고 있다.
이것은 윤리적인 문제를 떠나 자아의 독립적인 방향성과도 맞아 떨어지는 특성이다.
그런데 개별자인 자아의 내밀함을 꼭 심각하게만 그릴 필요는 없다.
솔직하게 언어유희나 경쾌한 화법을 통해 암시적으로 그려낼 수도 있다.
진지한 상황과 솔직성을 교묘하게 버무려서 표현하는 방법이 또 하나 있다.
김지은 시인의 「야간개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한 듯,
진지하지 않은 듯 이중성을 띤 채 전개된다.
다른 식으로 말하면 솔직성이 있는 듯, 솔직성이 없는 듯 펼쳐졌다는 뜻이다.
화자는 지금 떨리는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야간개장’한 공원 한쪽 차 안에서 ‘데이트’ 같은, ‘데이트’ 같지 않는 행위를 하고 있는데,
이것이 성적 농간인지, 원조교제인지, 연인 간의 실제 데이트 인지 분간할 수 없다.
그 상황에서 화자는 육체적 행위에 대한 미묘한 거부 반응을 암시적으로 드러낸다.
그런 미묘한 정서 때문에 ‘도덕적으로’ “일요일의 호수는 평화롭”고 오리들이 배고파서
“잘도 뜯어 먹는” 빵은 싱겁게 느껴진다.
우리는 살면서 도덕적이어서 불편한 ‘평화’를 맛보게 될 때가 있고,
생존 때문에 맛없는 ‘빵’을 먹게 될 때도 있다.
그래서 우리에겐 여러 가지 감정을 가진 ‘손’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런 ‘손’을 찾을 수 없다.
타자의 욕망이 하나로 귀결되는 ‘손’만을 만날 수 있을 뿐이다.
어쩌면 현대인들은 호수 안에 오리처럼 생존을 위해
“살아 있는 날개 살아 있는 주둥이 살아 있는 발목”을 가지고 있으면서
‘나는 법’을 잊어버린 채 무덤덤하게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목요일에게 돌아갈 빵”이 없는,
미래를 보장 받지 못한 상황에서 비윤리적인 것도 ‘윤리적으로’ 허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러나 주여 일요일에는 울지 않게 하소서”라고 말한 구절은
감정을 억제한 상태에서 드러낸 소극적인 울분이다.
김지은은 「야간개장」에서 현대인들이 갖는 다층적인 속성을 미묘한 솔직성으로 긴장감 있게,
탁월하게 그려냈다.
절제된 감정선을 유지한 채 심각한 척을 하지 않으면서
암시적으로 심각한 상태를 그려내는 젊은 감각이 돋보인다.
< ‘슬럼프에 빠진 당신에게 찾아온 21가지 질문, 시클(하린, 고요아침, 2016.)’에서 옮겨 적음. (2024. 8. 3.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571) 진실되게 썼는데도 솔직성이 부족하대요 - ③ 교묘하게 솔직성을 섞어보자/ 시인 하린|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