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비극의 단면
영화“ 최종병기 활” 을 보고
얼마 전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 액션 사극영화 “최종병기 활“을 보았다. 제작비 90억에 누적관객 수 740만 명을 넘어 올해 국내영화 최고의 흥행의 덕분인지 지난 10.17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 48회 대종상에서 영예의 남우주연상과 신인여우상 음향. 영상기술상을 받기도 하였다.
영화의 줄거리는 역적의 자손으로 당시 조선최고 신궁인 남이(박해일)가 오직 유일한 피붙이 여동생 자인(문채원)의 행복만을 위하여 생명을 바친 내용으로 병자호란 비극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어렵게 성혼된 동생 자인의 결혼식 날 청나라 정예부대(니루)의 습격을 받아 자인과 신랑 서군(김무열)이 포로로 잡혀간다. 동생 구출을 위해 남이는 아버지가 남겨준 활로 청군을 공격 신궁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하며, 청나라 왕자 형제를 지켜야하는 청 명궁 쥬신타(류승룡)와 끈질긴 활 싸움을 벌이면서 동생과 매부는 살리고 두 궁사는 운명을 마친다.
영화를 통하여 추운겨울에 청군에 끌려가는 백성들의 아픔과 여동생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오라버니의 끈끈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주인공 명궁 남이 역의 박해일과 청나라 쥬신타 역의 류승룡과의 박진감 넘치는 활솜씨는 노병의 가슴도 뭉클하게 하였으며, 무인의 딸로서 적장 앞에 칼로 맞서는 여장부 자인 역의 문채원의 연기도 돋보였다.
그러나 이 영화는 우리나라 최초로 강력한 무기로 활의 역할을 재조명하고 숨겨진 전쟁영웅을 부각시킨 것에 큰 의의를 가졌지만, 관중을 끌기위한 스릴에만 치우쳐 병자호란 비극의 실상을 널리 알리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었다.
병자호란은 우리민족사에 최대비극의 하나였다. 1636년 12월9일 청 태종이 만주족, 몽골족, 한인(漢人)으로 구성된 2만 명의 대군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9월 16일 남한산성에 도달하였다. 10만 여명의 청군에 포위당한 조선은 약 3개월 버티다가 1937년 1월 30일 삼전도에서 항복하였다. 군신(君臣)의 의를 맺고 소현세자와 빈궁, 봉림대군과 부인 척화론자 오달제, 윤집, 홍익한 등 대신들을 불모로 잡혀가고, 특히 5만여 명의 젊은 여성들이 오랑캐들의 성노리개로 끌려갔다. 끌려가서 정조를 빼앗기고 늙은 몸으로 돌아온 그들은 환향녀(還鄕女)라 불렀다. 조정에서는 각 도별로 회절강(回節江)을 지정하여 이들의 몸과 마음을 씻겨 과거허물과 정절을 회복시켜 주었으나 대부분 시가(媤家)에도 못가고 친정에서 우울증에 걸려 자살과 눈물로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조공(朝貢)관계가 유지되어 한일합병까지 265년간 청국에 세폐와 방물(方物)을 바쳤다.
병자호란은 우리역사에서 국가안보를 소홀(疎忽)로 나라를 잃은 표본으로 유비무환의 정신을 일깨워준다. 당시 나라를 잃은 백성들의 슬픔과 사랑하는 딸 며느리를 빼앗긴 부모들의 마음은 어떠했겠는가?
흔히 과거의 역사는 현재의 거울이요, 미래의 좌표라고 한다. 우리는 과거 역사를 재조명하여 현재의 문제점을 보완하며 미래를 개척 발전시켜야한다. 현재 중국의 패권과 북한의 위협이 가중되고 있는 안보현실에서 병자호란의 아픈 교훈은 우리 국민모두와 국군장병들에게 대단히 중요하다. 이 영화를 통하여 우리 모두가 국가안보의 중요성을 다시 인식하고 유비무환의 자세를 가다듬는 기회가 되어야한다. 병자호란의 슬픈 역사의 단면을 보여준 김한민 영화감독과 출연자 제작진 여러분께 고마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