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할 일 많은 금요일입니다.
성령 충만함으로 감당하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높아진 마음, 판단하는 마음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낮고 겸비하여 주님의 은혜를 담을 수 있는 마음이 되게 하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2. 예루살렘아 우리 발이 네 성문 안에 섰도다
3. 예루살렘아 너는 잘 짜여진 성읍과 같이 건설되었도다
4. 지파들 곧 여호와의 지파들이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려고 이스라엘의 전례대로 그리로 올라가는도다
5. 거기에 심판의 보좌를 두셨으니 곧 다윗의 집의 보좌로다
6.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7. 네 성 안에는 평안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함이 있을지어다
8. 내가 내 형제와 친구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에 평안이 있을지어다
9.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너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
(본문 주해)
1. 야훼 집에 가자 할 때, 나는 몹시도 기뻤다.
2. 우리는 벌써 왔다, 예루살렘아, 네 문 앞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3. 예루살렘아, 과연 수도답게 잘도 지어졌구나. 모든 것이 한몸같이 잘도 짜여졌구나.
4. 그 지파들이, 야훼의 지파들이 이스라엘의 법도에 따라 야훼 이름 기리러 그리로 올라가는구나.
5. 재판석이 거기에 있고 다윗 가문이 앉을 자리 또한 거기에 있구나.
6.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화의 소리 외쳐라. "네 집안에 평화!"
7. "네 성안에 평화!" "궁궐 안에 평화!"
8. 내 겨레, 내 벗들을 나 사랑하거늘 "너에게 평화!" 외치게 해다오.
9. 우리 하느님 야훼의 집을 나 사랑하거늘, 너에게 복이 있으라. (공동번역)
이 시편의 표제는 ‘다윗의 시 곧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고 되어 있는데, 만약 이 시편의 기자가 다윗이라면 다윗이 압살롬의 난을 피해 잠시 예루살렘을 떠나 있다가, 귀환할 때의 설레는 마음을 노래한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다윗의 시편이 아닐 가능성도 있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사실 다윗은 성전을 짓지 못했다. 그러므로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표현은 좀 어울리지 않는다. 다만 예루살렘과 성전을 동일하게 여기는 관점으로 본다면 이해될 수 있겠다.
어쨌든 시편 122편은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1~2절 :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3대 절기에 의무적으로 성전에 올라가야 했다.
그러나 의무라기보다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성전에 올라가기를 간절히 꿈꾸었고, 예루살렘에 가까이 살기를 소망했다.
시인의 기쁨은 여호와의 집, 즉 하나님 앞에서 예배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2절의 ‘여기 섰다’는 것은 많은 예배자들의 무리와 섞여 예배를 드리고 있는 모습이다.
그곳에서 이스라엘 백성 중의 하나로서의 선민의식을 충만하게 누리면서, 그 자리에 서 있게 된 자로서 갖는 만족감과 기쁨을 표현하고 있다.
과거에도 기쁨과 감격을 느꼈고 지금도 그렇게 느끼고 있으며 앞으로 느끼게 될 성전 안에서의 기쁨을 담고 있는 말이다.
3~5절 : 예루살렘에 대한 묘사이다.
건물들이 꽉 들어차게 빈틈없이 잘 배치된 도시를 연상시킨다.
5절의 ‘심판의 보좌를 두셨으니 곧 다윗의 집의 보좌’라는 말은 예루살렘이 모든 백성에게 공정한 법의 혜택을 베풀어 주던 공의의 도시임을 말하는 것으로서, 예루살렘이 정치적, 종교적 중심지임을 강조하는 말이다.
6~9절 : 예루살렘의 평안을 구하고 나라와 민족과 이웃과 모든 사람들의 평안을 위해 기도하는 삶은 결국 우리 자신들에게 복이 된다는 말씀이다.
(나의 묵상)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1절)
하나님의 집이 있는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올라가는 시편 기자의 기쁨과 소망을 본다.
그것은 또한 이 세상을 살지만 하나님 나라를 향해, 새 예루살렘을 향해 믿음으로 올라가는 우리들의 기쁨이요 소망이 되어야 한다.
나는 아버지 집을 드나드는 일이 너무도 즐거웠고 지금도 즐겁다.
‘주일이 일주일이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이면 좋겠다.’고 말한 적도 있었다.
옛날에 교회가 직장과 집 사이에 있었고, 퇴근 할 때 직장에서 집으로 바로 오는 버스가 없어서 교회 앞까지 걸어오거나 갈아타거나 해야 했다. 그 때 꼭 교회를 들러서 아무도 없는 예배당에서 기도할 때 그렇게 마음이 기쁘고 평안할 수가 없었다.
퇴직한 이후 그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고 있지만, 그보다 더한 기쁨과 즐거움이 있으니, 그것을 날마다 새벽마다 말씀 앞으로 나아가 주님과 교제함으로 아버지 품속의 평안을 누리는 일이다.
이 일이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는 것’이다.
누군가가 말씀 묵상을 시작한다는 소리를 듣는 순간이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 이다.
그때 나는 시인처럼 너무도 기쁜 마음이 된다.
3절의 ‘잘 짜여진 성읍’은 예수님으로 인해 구원받은 우리들의 심령이 예루살렘성과 같은 곳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시인이 극찬한 예루살렘성은 실제 역사적으로는 다윗 시대를 제외하고는 그다지 화평을 누리지 못했다. 역사 속에서 예루살렘은 바벨론에 이어 로마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었고, 지금도유대교와 이슬람교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잘 짜여진 성읍’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집중된 우리들의 마음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바로 새 예루살렘 성이기 때문이다.
이 새 예루살렘 성에는 온갖 세상 것들이 마음대로 들어와 판을 치지 못하도록 십자가로 짜여지고, 십자가로 정결하게 해야 한다.
십자가로 정결해진 마음으로, 성령을 의지하며, 날마다 말씀 앞으로 나아가는 것.
아버지 집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묵상 기도)
주님,
시인의 기쁨과 즐거움을 공감하며
주님께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아버지 집에 거하는 행복감과
또 아버지 품속에서 누리는 이 평안함이
복음을 전파하는 힘이 되게 하옵소서.
제게 주신 이 평안으로
오늘 주어진 일을 잘 감당하게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