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새총처럼 [문혜연]
우리는 비 앞에 서 있다 겨울비 앞에 우리는 서로의
방이었다가 밤이었다가 이제는 비였다가 눈이었다가 하
는 겨울비를 사이에 두고 우리는 새총처럼 방금 여기였
다가 순식간에 저 멀리로 남는 건 떨리는 줄과 아주 희
미하게 남은 소리 밤이 되면 소리는 더 깊이 더 멀리 흘
러간다 벽을 사이에 두고 옆집에서는 가끔 총 쏘는 소리
가 나다가 소리를 지르다가 조용히 하라고 말할까 하면
먼저 조용했다가 우리는 사이에 보이지 않는 줄을 당겼
다가 풀었다가 줄은 어느 방향으로든 당길 수 있고 우리
사이에 선처럼 겨울비가 내리다가 말다가 어떤 말은 돌
아오다가 돌아오지 않는 밤에 우리는 새총처럼 팽팽하거
나 느슨하거나 당겨진 줄 앞에 서 있다 옆집에서는 죽을
것 같다고 말하다가 살려달라고 말하다가 조용했다가 벽
을 친다 우리는 이미 조용해서 더 조용할 수는 없는데 겨
울비는 어떻게 비인데 눈이기도 할 수 있지 우리는 새총
처럼 돌이 없다가 새가 없다가 남은 건 안으로나 밖으로
나 언제든 날아갔다가 돌아오는 줄이었다가 겨울비가 자
꾸만 투명했다가 하얬다가 겨울비가 깃털처럼 뺨에 떨어
지다가 우리가 어떻게 잠들었을까 자꾸만 귓가에 아주
작은 울음소리가 들리는데 우리는 어쩌다 줄을 놓쳤을
까 자고 나면 베개에 속눈썹들이 자꾸만 떨어져 있는데
겨울비처럼 깃털처럼 옆집은 게임을 다시 시작하는데 우
리는 그렇지만 새총처럼 돌이었다가 새였다가 이미 사라
지고 없는데
- 일곱번째 감각- ㅅ, 여우난골, 2023
* 겨울비가 내리거나 눈이 내리거나
게다가 캄캄한 밤에 우리는 빈 새총처럼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일단 잡을 새가 잠자러 갔을 것이고 준비된 총알인 돌이 없다.
빈 새총처럼 빈 새총을 잡아당겼다 놓으면 고무줄의 탄성만이 되돌아온다.
탄성으로 날이 밝으면 돌맹이 몇 개 집어들고 새 한마리 잡아볼까나.
잡을 수 있을라나 잘 모르겠다.
일단 겨울잠을 자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