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은 세계열강의 질서뿐만 아니라 영화사에도 한 획을 긋는 일대 변혁을 예고했다. 유럽은 전후의 무너진 산업을 재건하려는 몸부림이었는가 하면, 전쟁의 피해를 겪지 않은 미국은 스튜디오 시스템이라는 확고한 기반을 계기로 다양한 시도를 창조한 덕분에 전후 헐리우드 영화의 획을 긋는 중요한 영화를 태동시키게 된다.
영화를 예술적, 기술적 매체로서뿐 아니라 철학적 메시지를 던지는 서적으로 해석했던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는 위대한 영화작가들을 예술가나 사상가들과 곧잘 비견하여 존재 미학적 의미를 부여하였다. 그는 영화로 철학하였고 철학으로 영화를 분석했던 거의 유일한 사상가였다. 그 결과 고전과 현대의 영화를 제2차 세계대전 이전과 이후로 구분하여, 운동-이미지 중심을 고전영화로, 시각-이미지 중심을 현대영화로 명명했다. 그리고 그 양분한 시점의 주된 인물로 알프레드 히치콕을 꼽았다. 고전영화와 현대영화는 히치콕과 2차 대전을 중심으로 나뉜다는 분석이었다.
스릴러 영화의 장르를 확립한 최초의 스타감독이자 맥거핀 효과와 까메오 출연 등 숱한 영화 속 장치들을 활용하며 누구보다 영화를 즐겼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 그의 영화와 영화사적 업적들을 만나보면서 영화의 흐름을 이해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그 누구보다 독창적인 스타일로 불멸의 영화를 탄생시킨 서스펜스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 단순히 한 사람의 영화감독을 넘어서서 하나의 장르이자 사회현상으로 자리를 잡은 최초이자 최고의 영화인이라 할 것이다.
미국의뜨거운 러브콜, 히치콕 영화인생의 절정기 - 누벨바그의 거장들의 헌정
1963년 3월 9일.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영화감독이자 평론가이기도 한 피터 보그다노비치에 의해 특별한 회고전을 겸한 시사회가 열렸다. 당시 그 어떤 영화배우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인기를 구가하던 알프레드 히치콕을 위한 미국 사회의 헌정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이는 프랑소와 트뤼포에 뒤진다는 것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는 인터뷰였다. 당시는 영화 ‘사이코’의 성공으로 히치콕 생애 절정의 시기이기도 하였다.
프랑스 누벨바그를 이끌었던 프랑스와 트뤼포 감독은 이미 한 권의 책을 내기 위해 오랜 기간에 걸쳐 히치콕과 대화를 나누었으며, 트뤼포 뿐 아니라 장 뤽 고다르, 에릭 로메르, 끌로드 샤브롤 등 프랑스 누벨바그의 대표 주자들이 그들의 영화잡지 ‘카이에 드 시네마’에 기고한 바에 의하면, 히치콕의 영화는 그들이 시도하는 창조의 물결에 대한 가장 모범적 답안이 되어 있었고 누벨바그를 이끄는 그들을 일러 ‘히치콕주의자’라고 부를 정도였다.
그러므로 히치콕 회고전은 미국의 영화산업을 이끌었던 감독이 프랑스에서 먼저 주목을 받은 것에 질투를 느꼈던 결과였음이고, 히치콕을 선점하지 못한 뉘우침의 또 다른 표현이면서도 미국 사회가 가장 사랑했던 한 감독에 대한 경쟁을 노골적으로 표명한 일이라 하겠다. 결국 이 기사는 미국 사회에 히치콕을 조명하는 큰 자극을 주게 되었다. 당시 히치콕은 3년 전에 개봉한 <사이코>의 대단한 흥행 이후 예술가로 대접받고 있었다. 같은 해 5월에는 영화 <새>의 여주인공 티피 헤드런과 함께 칸 영화제를 방문하기도 했다. 칸영화제 개최 이후 종종 이 영화제에서 자신의 영화가 상영되는 영광을 누려왔지만 그때와 사뭇 달라진 위상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당시 히치콕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은 지대했기 때문이다.
<히치콕과의 대화>를 빼어난 인터뷰집을 썼던 프랑스와 트뤼포 감독은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시대에 영화가 문학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예술 형식이라는 전제를 받아들인다면, 나는 알프레드 히치콕을 카프카, 도스토옙스키, 그리고 포우와 마찬가지로 불안의 예술가에 속한다고 말하고 싶다.”라고 했다. 그야말로 책을 통해 히치콕을 현대 예술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던 것이다.
프랑스와 트뤼포의 책이 어우러지면서 그의 영화는 지적인 영화비평의 반열에 올랐고, 세계 각지에서 칸 영화제를 찾아온 저널리스트들이 앞 다투어 그 앞에 마이크와 카메라를 들이댔다. 무엇보다 전작 <사이코>의 대대적인 흥행 뒤 3년 만에 선을 보이는 신작 영화 <새>는 여론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스릴러와 서스펜스 뒤에 숨겨진 행복하고 유머러스한 캐릭터
히치콕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내용이 거의 살인과 죽음이다 보니 그의 실제 성격 또한 어둡고 폐쇄적일 거란 생각을 갖게 되지만, 그의 성격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유머감각일 만큼 밝은 성격이었다. 가정 또한 사랑이 넘치는 대가족이었고, 가족들은 그를 ‘앨프’나 ‘앨피’라고 불렀으며 가정을 꾸린 뒤에도 친밀함을 유지했던 사람이었다. 실제 그의 외관상을 보아도 짧은 키에 토실토실 살이 찐 모습은 상당히 희극적인 모습이고 공포와는 무관하게 비친다. 무섭거나 긴장감을 주는 영화를 찍으면서도 그는 늘 천연덕스런 표정으로 대중 앞에 등장했다.
히치콕의 어린 시절에 관한 유명한 일화로 ‘아버지가 아들의 버릇을 고쳐주기 위해 인근 파출소 철장에 가뒀다’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히치콕은 이 경험을 근거로 자신이 평생토록 체포와 감옥과 경찰에 대한 공포를 지니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의 영화를 보면 체포, 감옥, 경찰에 대한 공포는 꽤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히치콕의 외할아버지가 경찰관이었으며, 히치콕 가족에게 경찰은 꽤 친숙한 존재였다고 설명한다. 그의 영화처럼 친숙함이야말로 심리적인 공포를 제공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는지도 모른다. 프로이드는 이를 ‘낯익은 두려움’이라는 용어로 설명한 바 있다. 히치콕의 영화를 설명하는 데 있어 이 ‘낯익은 두려움’은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용어 중 하나였다.
그가 사용하던 유머 감각을 나타내는 유명한 어록 속에서도 재치가 발휘된다.
‘나는 월트 디즈니를 부러워했답니다. 그는 오로지 카툰만 그리지 않아요? 만약 배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찢어버릴 수도 있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는 촬영현장에서 배우와 스텝을 호령했는가 하면, 영화를 바라보는 관객들이 영화에 적극 개입하게 할 만큼 이전의 영화에서 시도한 적 없던 일대 전환을 마련한 공헌을 새운 것으로 평가받는다.
스펜스의 거장이 말하는 서스펜스와 관객의 구도
‘나는 삐걱거리는 문소리로 서스펜스를 자아내 본 적이 없습니다. 어두운 거리에서 죽은 고양이와 폐물들이 나뒹구는 것보다 밝은 대낮에 졸졸 흐르는 냇가에서 일어나는 살인이 더 흥미 있습니다. ……서스펜스가 무엇인지 알려 드릴게요. 네 사람이 포커를 치러 방에 들어갑니다. 갑자기 폭탄이 터져 네 사람 모두 뼈도 못 추리게 됩니다. 이럴 경우 관객은 단지 놀랄 뿐이죠. 그러나 나는 네 사람이 포커를 하러 들어가기 전에 먼저 한 남자가 포커판이 벌어지는 탁자 밑에 폭탄을 장치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네 사람은 의자에 앉아 포커를 하고 시한폭탄의 초침은 폭발시간이 다 되어갑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똑같은 무의미한 대화도 관객의 주의를 끌 수 있는 것이죠. 관객은 ‘지금 사소한 얘기를 할 때가 아니야. 조금 있으면 폭탄이 터질 거란 말이야'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 되니까요. 폭탄이 터지기 직전 게임이 끝나고 일어서려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말하죠. '차나 한잔하지.' 바로 이 순간 관객의 조바심은 폭발 직전이 됩니다. 이 때 느끼는 감정이 '서스펜스'라는 겁니다.’
그가 쉽게 설명한 서스펜스에 대한 개념은 히치콕 이전의 영화에서는 그저 수동적인 관람객에 불과하던 관객을 철저히 영화에 개입하도록 이끎과 동시에 그것이 당시로서는 얼마나 획기적인 시작인지를 증명하고, 아울러 긴장감의 역학구도를 이끌어낸 탁월한 비법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그의 영화가 얼마나 이야기 중심의 영화이고, 상업적인 부분을 콕 찍어 관람객의 기호를 반영하려 했는지를 가장 적절히 이해시킨 인터뷰도 참고할 필요가 있겠다.
‘나는 영화가 삶의 단면이기를 원치 않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집에서, 거리에서, 또는 극장 앞에서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관객은 삶의 단면을 보려고 돈을 지불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가 그럴듯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부해서는 안 됩니다. 드라마라는 것은 재미없는 부분을 잘라낸 인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영화는 삶의 단면이라고 하지만 내 영화는 케이크 한조각일 뿐입니다.’
영화 ‘사이코’를 통해 본 히치콕식 스릴러
‘맥거핀’은 작품 줄거리에는 영향을 주지 않지만, 관객의 시선을 영화에 묶어둠으로써 관객에게 긴장과 서스펜스를 불어넣는 역할을 하는 스크린 용어이다. 히치콕은 맥거핀이란 이름을 직접 명명하고 그에 대한 정의를 내린 바 있는데, 대단할 것처럼 의미를 지닌 물체나 사물이 지극히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사라지는 것 모두를 맥거핀이라고 하였다.
긴장감을 불어넣고 극적인 전개를 위해 영화를 이끌고 가는 속임수용 장치이지만,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스스로 추리하게 하는 지능적인 장치라 할 수 있다. 의도적인 장치인 만큼 관객이 줄거리를 파악하지 못하도록 하며 틀림없이 저 매개체는 어떤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게 하며 영화에 몰입하게 이끈다. 그러나 그것은 황당한 속임수처럼 느닷없이 소멸하게 되고, 뒤늦게야 감독의 의도에 걸려들었음을 인식하게 된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소품이나 인물, 사건을 총칭하는 것으로, 히치콕 감독이 직접 고안하고 이름까지 붙였으며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필수불가결한 트릭이다.
불멸의 영화 ‘사이코’의 맥거핀과 심리적 접근
1960년에 만든 <사이코>는 히치콕의 명성을 가장 드높인 스릴러 영화의 고전으로, 앞서 열거한 맥거핀 효과를 가장 탁월하게 사용한 히치콕 영화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이 영화에는 정신분석적으로 접근하게 하는 노먼 베이츠(안소니 퍼킨스)의 이중성이 심리적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와 단 둘만이 살던 어느 날, 어머니에게 남자가 생기게 되고 노먼은 어머니가 자신을 버린다는 피해의식을 갖게 된 나머지 남자와 어머니를 죽이게 된다. 존속살인이라는 범죄를 자신의 마음에서조차 부정하고 싶었던 노먼은 어머니의 시신을 썩지 않게 보관하였고, 급기야 어머니의 목소리까지 흉내 내며 두 개의 인격으로 살아가기에 이른다. 이곳 베이츠 모텔에 돈다발을 훔쳐 도주 중이던 마리온이 투숙하게 되고 그 마리온이 샤워 중 살해된 후에야 보안관의 증언으로부터 이 사실이 드러나게 된다.
스릴러 영화의 고전답게 이야기의 힘과 음악의 효과가 공포감을 극대화시키는데, 비명처럼 내지르는 음악과 대조적으로 주인공 안소니 퍼킨스의 섬세한 표정 연기는 모성 결핍의 행동 등을 자연스럽게 표현해 탁월한 명품연기로 손에 꼽히고 있다. 특히 벽을 통해 마리온을 살피는 관음증적 장면을 해낼 때에는 그 유명한 샤워 살해신보다 오히려 극적 긴장감이 높을 정도다.
흑백영상임에도 어둠을 적극 활용한 시간적인 배경과, 돈을 훔쳐 달아난 마리온이 외진 베이츠 모텔에 투숙하면서 더 어두운 공간으로 이끌기까지 스릴러의 배경으로선 최적의 조건을 갖추었는데, 상대적으로 순수한 청년의 인상으로 나타난 안소니 퍼킨스의 섬뜩한 광기가 내재된 모습은 수많은 반전 스릴러 영화의 교본처럼 남았다. 안소니 퍼킨스의 유약하고 섬세한 이중성을 떠올리면 <살인의 추억> 속 박해일의 캐릭터가 이 장면에서 영감을 얻었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갖게 한다.
결국 마리온을 죽인 건 노먼의 어머니 역할에 들어간 노먼이었다. 샤워실 커튼 밖에서 여장을 한 실루엣이 칼을 휘두르는 모습은 관객의 공포감을 극대화시키는 음악적 장치와 더불어, 세계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 되었다. 결국 영화 초반을 이끌었던 맥거핀이었던 돈다발 역시 아무렇지 않게 마리온의 시체를 태운 차량과 함께 늪으로 사라지고 만다. 관객들의 몰입을 이끌었던 빠른 전개처럼 빠르게 사라지는 맥거핀은 영화에 다시 한 번 더 등장하는데, 그녀의 돈다발을 추적하던 탐정의 어이없는 죽음이 그것이다.
영화의 키를 쥔 듯 카메라가 수시로 담아낸 것이 주인공과 함께 늪으로 사라지는 것이 사건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맥거핀은 히치콕 영화에서 관객을 빨아들이거나 관객을 조롱하는 역할로 자리 잡았다. 영화 <사이코>에는 돈다발 외에도 주인공의 뒤를 추적하던 탐정의 어이없는 죽음까지 두 가지의 맥거핀으로 관객을 조종하는 셈이다.
또 하나 히치콕 영화의 한 특징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 여주인공이 나쁜 행위를 한다는 설정이다. 이 영화 <사이코>에서는 평범하게 직장생활을 하던 여주인공 마리온이 애인과 결혼하기 위하여 4만 달러를 훔쳐 달아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주인공을 과감히 버려서라도 이야기의 충실함을 빠른 전개에 담아내는 것을 보면 히치콕이야말로 대단한 작가주의 감독이라는 생각을 은연중 갖게 된다.
스크린이 사랑한 최초 최고의 스타감독
히치콕식 영상문법은 당시까지의 영화 영상 기법에 일대 혁신적인 카메라 구도를 도입한 감독으로 평가를 받는다. 거기에 정교한 영화편집을 더하고, 스릴러 영화에서는 빠질 수 없는 효과적 테크닉의 사운드트랙까지 더해 압박하는 서스펜스 영화를 이룩해내었다. 오싹한 공포를 도입하여 관객들에게 큰 충격을 안김과 동시에 인간심리를 분석해내는 섬세함과 사실적 표현력은 그가 왜 누벨바그 영화감독들의 추앙을 받았는지를 잘 이해할 수 있다.
현대영화의 지평을 연 프랑스의 장 뤽 고다르는 히치콕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유명한 화가들처럼 그에게는 하나의 그림이 있다. 이 그림에 이어 다음 그림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가 꽃 한 송이를 영상에 담으면 그것은 곧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카메오를 즐기는 영화감독
히치콕 영화의 서스펜스와 감독 특유의 유머러스함은 관객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영화의 기법만큼이나 극명한 차이를 나타낸다. 그것은 어쩌면 그의 영화를 보는 또 다른 즐거움이기도 할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그의 카메오 출연이다. 그는 자신이 감독한 영화임을 그토록 알리고 싶었을까. 그것도 화면의 중심에 서도록 공간을 잡아놓고 카메오에 등장하였다고 하니, 영화의 세계를 떠나서 매우 독특한 심리의 소유자가 아니었나 생각하게 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이미지를 제고하느라 “카메오로 출연할 때마다 죄를 짓는 기분이다.”고 하였다는데, 이후의 영화에서도 어김없이 카메오 출연을 하였던 것으로 전한다.
그의 여러 독특한 일화 중엔 이런 이야기도 전한다. 어느 날 차를 타고 가던 히치콕이 목사가 아이에게 말을 거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는 옆에 타고 있던 일행에게 “내 평생 가장 섬뜩한 광경이로군."(히치콕이 스릴러 영화의 대가인 걸 생각해보면 더욱 웃기다.) 그러고는 창문을 열고 외친다. “도망쳐, 얘야! 도망쳐!"
그의 영화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도 드물 것 같지만, 그의 이름까지 들어보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은 몇 안 되는 영화감독 알프레드 히치콕. 그는 세계가 사랑한 만큼 스스로를 사랑했던 스타 감독이었다. 영화간판에 감독의 얼굴까지 실었던 최초의 영화감독인가 하면 매 작품마다 금발과 푸른 눈의 여배우들을 내세워 그들을 세계적 스타 반열에 올려놓았다.
히치콕식 스타일의 전형을 확립하고 수많은 추종자들로부터 오마주를 받는 천재적 감독 알프레드 히치콕. 그의 영화와 함께 성장을 하고 밤을 새워 명화를 탐하던 속에는 빨려들 수밖에 없는 빠른 전개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러의 매력, 거기에 쫄깃한 로맨스가 적절히 배합된 여러 영화적 특징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영화와 철학을 동시에 지녔다는 누벨바그 거장들의 헌사가 아니어도 그의 작품은 영화 100년사를 훌쩍 넘어서도록 가장 확고한 스타감독으로서 최고의 경지에 남을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은 세계열강의 질서뿐만 아니라 영화사에도 한 획을 긋는 일대 변혁을 예고했다. 유럽은 전후의 무너진 산업을 재건하려는 몸부림이었는가 하면, 전쟁의 피해를 겪지 않은 미국은 스튜디오 시스템이라는 확고한 기반을 계기로 다양한 시도를 창조한 덕분에 전후 헐리우드 영화의 획을 긋는 중요한 영화를 태동시키게 된다.
영화를 예술적, 기술적 매체로서뿐 아니라 철학적 메시지를 던지는 서적으로 해석했던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는 위대한 영화작가들을 예술가나 사상가들과 곧잘 비견하여 존재 미학적 의미를 부여하였다. 그는 영화로 철학하였고 철학으로 영화를 분석했던 거의 유일한 사상가였다. 그 결과 고전과 현대의 영화를 제2차 세계대전 이전과 이후로 구분하여, 운동-이미지 중심을 고전영화로, 시각-이미지 중심을 현대영화로 명명했다. 그리고 그 양분한 시점의 주된 인물로 알프레드 히치콕을 꼽았다. 고전영화와 현대영화는 히치콕과 2차 대전을 중심으로 나뉜다는 분석이었다.
스릴러 영화의 장르를 확립한 최초의 스타감독이자 맥거핀 효과와 까메오 출연 등 숱한 영화 속 장치들을 활용하며 누구보다 영화를 즐겼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 그의 영화와 영화사적 업적들을 만나보면서 영화의 흐름을 이해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그 누구보다 독창적인 스타일로 불멸의 영화를 탄생시킨 서스펜스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 단순히 한 사람의 영화감독을 넘어서서 하나의 장르이자 사회현상으로 자리를 잡은 최초이자 최고의 영화인이라 할 것이다.
미국의뜨거운 러브콜, 히치콕 영화인생의 절정기 - 누벨바그의 거장들의 헌정
1963년 3월 9일.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영화감독이자 평론가이기도 한 피터 보그다노비치에 의해 특별한 회고전을 겸한 시사회가 열렸다. 당시 그 어떤 영화배우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인기를 구가하던 알프레드 히치콕을 위한 미국 사회의 헌정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이는 프랑소와 트뤼포에 뒤진다는 것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는 인터뷰였다. 당시는 영화 ‘사이코’의 성공으로 히치콕 생애 절정의 시기이기도 하였다.
프랑스 누벨바그를 이끌었던 프랑스와 트뤼포 감독은 이미 한 권의 책을 내기 위해 오랜 기간에 걸쳐 히치콕과 대화를 나누었으며, 트뤼포 뿐 아니라 장 뤽 고다르, 에릭 로메르, 끌로드 샤브롤 등 프랑스 누벨바그의 대표 주자들이 그들의 영화잡지 ‘카이에 드 시네마’에 기고한 바에 의하면, 히치콕의 영화는 그들이 시도하는 창조의 물결에 대한 가장 모범적 답안이 되어 있었고 누벨바그를 이끄는 그들을 일러 ‘히치콕주의자’라고 부를 정도였다.
그러므로 히치콕 회고전은 미국의 영화산업을 이끌었던 감독이 프랑스에서 먼저 주목을 받은 것에 질투를 느꼈던 결과였음이고, 히치콕을 선점하지 못한 뉘우침의 또 다른 표현이면서도 미국 사회가 가장 사랑했던 한 감독에 대한 경쟁을 노골적으로 표명한 일이라 하겠다. 결국 이 기사는 미국 사회에 히치콕을 조명하는 큰 자극을 주게 되었다. 당시 히치콕은 3년 전에 개봉한 <사이코>의 대단한 흥행 이후 예술가로 대접받고 있었다. 같은 해 5월에는 영화 <새>의 여주인공 티피 헤드런과 함께 칸 영화제를 방문하기도 했다. 칸영화제 개최 이후 종종 이 영화제에서 자신의 영화가 상영되는 영광을 누려왔지만 그때와 사뭇 달라진 위상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당시 히치콕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은 지대했기 때문이다.
<히치콕과의 대화>를 빼어난 인터뷰집을 썼던 프랑스와 트뤼포 감독은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시대에 영화가 문학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예술 형식이라는 전제를 받아들인다면, 나는 알프레드 히치콕을 카프카, 도스토옙스키, 그리고 포우와 마찬가지로 불안의 예술가에 속한다고 말하고 싶다.”라고 했다. 그야말로 책을 통해 히치콕을 현대 예술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던 것이다.
프랑스와 트뤼포의 책이 어우러지면서 그의 영화는 지적인 영화비평의 반열에 올랐고, 세계 각지에서 칸 영화제를 찾아온 저널리스트들이 앞 다투어 그 앞에 마이크와 카메라를 들이댔다. 무엇보다 전작 <사이코>의 대대적인 흥행 뒤 3년 만에 선을 보이는 신작 영화 <새>는 여론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스릴러와 서스펜스 뒤에 숨겨진 행복하고 유머러스한 캐릭터
히치콕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내용이 거의 살인과 죽음이다 보니 그의 실제 성격 또한 어둡고 폐쇄적일 거란 생각을 갖게 되지만, 그의 성격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유머감각일 만큼 밝은 성격이었다. 가정 또한 사랑이 넘치는 대가족이었고, 가족들은 그를 ‘앨프’나 ‘앨피’라고 불렀으며 가정을 꾸린 뒤에도 친밀함을 유지했던 사람이었다. 실제 그의 외관상을 보아도 짧은 키에 토실토실 살이 찐 모습은 상당히 희극적인 모습이고 공포와는 무관하게 비친다. 무섭거나 긴장감을 주는 영화를 찍으면서도 그는 늘 천연덕스런 표정으로 대중 앞에 등장했다.
히치콕의 어린 시절에 관한 유명한 일화로 ‘아버지가 아들의 버릇을 고쳐주기 위해 인근 파출소 철장에 가뒀다’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히치콕은 이 경험을 근거로 자신이 평생토록 체포와 감옥과 경찰에 대한 공포를 지니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의 영화를 보면 체포, 감옥, 경찰에 대한 공포는 꽤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히치콕의 외할아버지가 경찰관이었으며, 히치콕 가족에게 경찰은 꽤 친숙한 존재였다고 설명한다. 그의 영화처럼 친숙함이야말로 심리적인 공포를 제공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는지도 모른다. 프로이드는 이를 ‘낯익은 두려움’이라는 용어로 설명한 바 있다. 히치콕의 영화를 설명하는 데 있어 이 ‘낯익은 두려움’은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용어 중 하나였다.
그가 사용하던 유머 감각을 나타내는 유명한 어록 속에서도 재치가 발휘된다.
‘나는 월트 디즈니를 부러워했답니다. 그는 오로지 카툰만 그리지 않아요? 만약 배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찢어버릴 수도 있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는 촬영현장에서 배우와 스텝을 호령했는가 하면, 영화를 바라보는 관객들이 영화에 적극 개입하게 할 만큼 이전의 영화에서 시도한 적 없던 일대 전환을 마련한 공헌을 새운 것으로 평가받는다.
스펜스의 거장이 말하는 서스펜스와 관객의 구도
‘나는 삐걱거리는 문소리로 서스펜스를 자아내 본 적이 없습니다. 어두운 거리에서 죽은 고양이와 폐물들이 나뒹구는 것보다 밝은 대낮에 졸졸 흐르는 냇가에서 일어나는 살인이 더 흥미 있습니다. ……서스펜스가 무엇인지 알려 드릴게요. 네 사람이 포커를 치러 방에 들어갑니다. 갑자기 폭탄이 터져 네 사람 모두 뼈도 못 추리게 됩니다. 이럴 경우 관객은 단지 놀랄 뿐이죠. 그러나 나는 네 사람이 포커를 하러 들어가기 전에 먼저 한 남자가 포커판이 벌어지는 탁자 밑에 폭탄을 장치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네 사람은 의자에 앉아 포커를 하고 시한폭탄의 초침은 폭발시간이 다 되어갑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똑같은 무의미한 대화도 관객의 주의를 끌 수 있는 것이죠. 관객은 ‘지금 사소한 얘기를 할 때가 아니야. 조금 있으면 폭탄이 터질 거란 말이야'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 되니까요. 폭탄이 터지기 직전 게임이 끝나고 일어서려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말하죠. '차나 한잔하지.' 바로 이 순간 관객의 조바심은 폭발 직전이 됩니다. 이 때 느끼는 감정이 '서스펜스'라는 겁니다.’
그가 쉽게 설명한 서스펜스에 대한 개념은 히치콕 이전의 영화에서는 그저 수동적인 관람객에 불과하던 관객을 철저히 영화에 개입하도록 이끎과 동시에 그것이 당시로서는 얼마나 획기적인 시작인지를 증명하고, 아울러 긴장감의 역학구도를 이끌어낸 탁월한 비법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그의 영화가 얼마나 이야기 중심의 영화이고, 상업적인 부분을 콕 찍어 관람객의 기호를 반영하려 했는지를 가장 적절히 이해시킨 인터뷰도 참고할 필요가 있겠다.
‘나는 영화가 삶의 단면이기를 원치 않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집에서, 거리에서, 또는 극장 앞에서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관객은 삶의 단면을 보려고 돈을 지불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가 그럴듯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부해서는 안 됩니다. 드라마라는 것은 재미없는 부분을 잘라낸 인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영화는 삶의 단면이라고 하지만 내 영화는 케이크 한조각일 뿐입니다.’
영화 ‘사이코’를 통해 본 히치콕식 스릴러
‘맥거핀’은 작품 줄거리에는 영향을 주지 않지만, 관객의 시선을 영화에 묶어둠으로써 관객에게 긴장과 서스펜스를 불어넣는 역할을 하는 스크린 용어이다. 히치콕은 맥거핀이란 이름을 직접 명명하고 그에 대한 정의를 내린 바 있는데, 대단할 것처럼 의미를 지닌 물체나 사물이 지극히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사라지는 것 모두를 맥거핀이라고 하였다.
긴장감을 불어넣고 극적인 전개를 위해 영화를 이끌고 가는 속임수용 장치이지만,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스스로 추리하게 하는 지능적인 장치라 할 수 있다. 의도적인 장치인 만큼 관객이 줄거리를 파악하지 못하도록 하며 틀림없이 저 매개체는 어떤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게 하며 영화에 몰입하게 이끈다. 그러나 그것은 황당한 속임수처럼 느닷없이 소멸하게 되고, 뒤늦게야 감독의 의도에 걸려들었음을 인식하게 된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소품이나 인물, 사건을 총칭하는 것으로, 히치콕 감독이 직접 고안하고 이름까지 붙였으며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필수불가결한 트릭이다.
불멸의 영화 ‘사이코’의 맥거핀과 심리적 접근
1960년에 만든 <사이코>는 히치콕의 명성을 가장 드높인 스릴러 영화의 고전으로, 앞서 열거한 맥거핀 효과를 가장 탁월하게 사용한 히치콕 영화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이 영화에는 정신분석적으로 접근하게 하는 노먼 베이츠(안소니 퍼킨스)의 이중성이 심리적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와 단 둘만이 살던 어느 날, 어머니에게 남자가 생기게 되고 노먼은 어머니가 자신을 버린다는 피해의식을 갖게 된 나머지 남자와 어머니를 죽이게 된다. 존속살인이라는 범죄를 자신의 마음에서조차 부정하고 싶었던 노먼은 어머니의 시신을 썩지 않게 보관하였고, 급기야 어머니의 목소리까지 흉내 내며 두 개의 인격으로 살아가기에 이른다. 이곳 베이츠 모텔에 돈다발을 훔쳐 도주 중이던 마리온이 투숙하게 되고 그 마리온이 샤워 중 살해된 후에야 보안관의 증언으로부터 이 사실이 드러나게 된다.
스릴러 영화의 고전답게 이야기의 힘과 음악의 효과가 공포감을 극대화시키는데, 비명처럼 내지르는 음악과 대조적으로 주인공 안소니 퍼킨스의 섬세한 표정 연기는 모성 결핍의 행동 등을 자연스럽게 표현해 탁월한 명품연기로 손에 꼽히고 있다. 특히 벽을 통해 마리온을 살피는 관음증적 장면을 해낼 때에는 그 유명한 샤워 살해신보다 오히려 극적 긴장감이 높을 정도다.
흑백영상임에도 어둠을 적극 활용한 시간적인 배경과, 돈을 훔쳐 달아난 마리온이 외진 베이츠 모텔에 투숙하면서 더 어두운 공간으로 이끌기까지 스릴러의 배경으로선 최적의 조건을 갖추었는데, 상대적으로 순수한 청년의 인상으로 나타난 안소니 퍼킨스의 섬뜩한 광기가 내재된 모습은 수많은 반전 스릴러 영화의 교본처럼 남았다. 안소니 퍼킨스의 유약하고 섬세한 이중성을 떠올리면 <살인의 추억> 속 박해일의 캐릭터가 이 장면에서 영감을 얻었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갖게 한다.
결국 마리온을 죽인 건 노먼의 어머니 역할에 들어간 노먼이었다. 샤워실 커튼 밖에서 여장을 한 실루엣이 칼을 휘두르는 모습은 관객의 공포감을 극대화시키는 음악적 장치와 더불어, 세계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 되었다. 결국 영화 초반을 이끌었던 맥거핀이었던 돈다발 역시 아무렇지 않게 마리온의 시체를 태운 차량과 함께 늪으로 사라지고 만다. 관객들의 몰입을 이끌었던 빠른 전개처럼 빠르게 사라지는 맥거핀은 영화에 다시 한 번 더 등장하는데, 그녀의 돈다발을 추적하던 탐정의 어이없는 죽음이 그것이다.
영화의 키를 쥔 듯 카메라가 수시로 담아낸 것이 주인공과 함께 늪으로 사라지는 것이 사건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맥거핀은 히치콕 영화에서 관객을 빨아들이거나 관객을 조롱하는 역할로 자리 잡았다. 영화 <사이코>에는 돈다발 외에도 주인공의 뒤를 추적하던 탐정의 어이없는 죽음까지 두 가지의 맥거핀으로 관객을 조종하는 셈이다.
또 하나 히치콕 영화의 한 특징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 여주인공이 나쁜 행위를 한다는 설정이다. 이 영화 <사이코>에서는 평범하게 직장생활을 하던 여주인공 마리온이 애인과 결혼하기 위하여 4만 달러를 훔쳐 달아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주인공을 과감히 버려서라도 이야기의 충실함을 빠른 전개에 담아내는 것을 보면 히치콕이야말로 대단한 작가주의 감독이라는 생각을 은연중 갖게 된다.
스크린이 사랑한 최초 최고의 스타감독
히치콕식 영상문법은 당시까지의 영화 영상 기법에 일대 혁신적인 카메라 구도를 도입한 감독으로 평가를 받는다. 거기에 정교한 영화편집을 더하고, 스릴러 영화에서는 빠질 수 없는 효과적 테크닉의 사운드트랙까지 더해 압박하는 서스펜스 영화를 이룩해내었다. 오싹한 공포를 도입하여 관객들에게 큰 충격을 안김과 동시에 인간심리를 분석해내는 섬세함과 사실적 표현력은 그가 왜 누벨바그 영화감독들의 추앙을 받았는지를 잘 이해할 수 있다.
현대영화의 지평을 연 프랑스의 장 뤽 고다르는 히치콕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유명한 화가들처럼 그에게는 하나의 그림이 있다. 이 그림에 이어 다음 그림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가 꽃 한 송이를 영상에 담으면 그것은 곧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카메오를 즐기는 영화감독
히치콕 영화의 서스펜스와 감독 특유의 유머러스함은 관객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영화의 기법만큼이나 극명한 차이를 나타낸다. 그것은 어쩌면 그의 영화를 보는 또 다른 즐거움이기도 할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그의 카메오 출연이다. 그는 자신이 감독한 영화임을 그토록 알리고 싶었을까. 그것도 화면의 중심에 서도록 공간을 잡아놓고 카메오에 등장하였다고 하니, 영화의 세계를 떠나서 매우 독특한 심리의 소유자가 아니었나 생각하게 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이미지를 제고하느라 “카메오로 출연할 때마다 죄를 짓는 기분이다.”고 하였다는데, 이후의 영화에서도 어김없이 카메오 출연을 하였던 것으로 전한다.
그의 여러 독특한 일화 중엔 이런 이야기도 전한다. 어느 날 차를 타고 가던 히치콕이 목사가 아이에게 말을 거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는 옆에 타고 있던 일행에게 “내 평생 가장 섬뜩한 광경이로군."(히치콕이 스릴러 영화의 대가인 걸 생각해보면 더욱 웃기다.) 그러고는 창문을 열고 외친다. “도망쳐, 얘야! 도망쳐!"
그의 영화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도 드물 것 같지만, 그의 이름까지 들어보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은 몇 안 되는 영화감독 알프레드 히치콕. 그는 세계가 사랑한 만큼 스스로를 사랑했던 스타 감독이었다. 영화간판에 감독의 얼굴까지 실었던 최초의 영화감독인가 하면 매 작품마다 금발과 푸른 눈의 여배우들을 내세워 그들을 세계적 스타 반열에 올려놓았다.
히치콕식 스타일의 전형을 확립하고 수많은 추종자들로부터 오마주를 받는 천재적 감독 알프레드 히치콕. 그의 영화와 함께 성장을 하고 밤을 새워 명화를 탐하던 속에는 빨려들 수밖에 없는 빠른 전개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러의 매력, 거기에 쫄깃한 로맨스가 적절히 배합된 여러 영화적 특징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영화와 철학을 동시에 지녔다는 누벨바그 거장들의 헌사가 아니어도 그의 작품은 영화 100년사를 훌쩍 넘어서도록 가장 확고한 스타감독으로서 최고의 경지에 남을 것이다.
첫댓글 점심 먹고 재미있게 잘 읽었다.
서프라이즈에서 히치콕의 아내 알바 레빌의 조언으로 싸이코가 탄생됐다는데...알바 레빌의 꿈이 영화감독이었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