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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의 조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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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문무의 조선사 해설 토질(土質)·인종(人種)·체형(體形)으로 본 북경(北京)=연경(燕京)은?
문 무 추천 0 조회 422 16.12.06 20:11 댓글 3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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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6.12.07 12:06

    첫댓글 청나라 연경이 사막지대인 신강성 천산 그어디쯤있었다하더라도 조선사를 이해하는데 해결불가한것이 바로 병자호란 일겁니다. 왜? 거리가 너무 멀다는것이죠.
    인조가 삼전도에서 청군에게 대가리박아가며 항복한것이 조선의도읍지인데 연행사신들이 연경에간 연행록을 근거로들면 너무멀어서 군사학적인 관점에서 이해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그런데 연경이 오늘날 내몽고의 호화호특이라면 병자년의 호란정도는 해결이됩니다. 그렇지만 이곳은 연행록의 여정을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해보입니다. 과연 무엇이 진실일까요?

  • 작성자 16.12.07 19:46

    안녕하세요. <대부여>님!
    연경을 찾아보면 : 고전에서 연경을 찾다보면 그들의 인종이나 체형등과 주변의 지세등은 분명 대륙의 먼 서쪽지방을 말하고 있습니다.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삼전도에서 청군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항복했다는 사실이 정말로 역사적 사실인가? 하는 거지요. 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투지방의 호화호특 정도라면 황하를 도하하여, 일사천리로 조선의 황도를 향해 내려 꽂을 수 가 있지요. 그런데 전의 말씀드린 대로, <황중(湟中)지방을 언제나 수복할 수 있을까?>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적은 기록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 청은 지금 청해성 서녕 동쪽 "황중"까지 일시적으로 점령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 작성자 16.12.07 19:52

    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당면과제는 바로 '연경'과 '장안'과의 '여정'문제입니다.
    너무 멀다는 것이죠.
    우선은 북경이나 연경에 대한 그 지리적 위치를 기록과 매치하여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고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좀 더 찾다보면 뭔가 좋은 단서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관심과 성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늘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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