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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림의 소리 스크랩 (부여기행2) 세계최대 와불상을 자랑하는 부여 미암사
현림 추천 0 조회 35 16.11.13 05:1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부여기행2)  세계최대 와불상을 자랑하는 부여 미암사(米岩寺)

 

부여의 천년고찰 만수산 무량사 가는 길 우연히 도로 이정표에 <세계최대 와불상 미암사>라는 안내판을 보고

들러 본 미암사는 충남 부여군 내산면 저동리에 위치한 나즈막한 계향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었다.

미암사의 홈피에 의하면 미암사는 서기 602년 백제 무왕 4년에 관륵이라는 스님이 창건한 절인데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침공할 때 모두 전소되었다가 여러 차례 중건을 거쳐 1997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재건된 것이라고 한다.

 

미암사(米岩寺)의 미(: 쌀 미)가 뜻하는 것은 <비장기(秘藏記)>

는 천축에서 사리(舍利)라 한다. 불사리(佛舍利)가 쌀알과 같으므로 이렇게 부른다.고 했다.

그럼으로 는 진신사리를 의미하고 따라서 미암(米岩)은 사리로 뭉쳐진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미암사가 최근 일반 참배객인에게 알려지게 된 것은 세계최대 와불이라고 불리는 와불이지만

이전에는 바위에서 쌀이 나왔다는 전설을 지닌 거대한 쌀바위 때문인 것 같다.

사찰 초입을 들어서면 196개의 금불상과 33층으로 된 석탑도 눈길을 끈다.

경내에는 와불상을 비롯하여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71호로 지정된 쌀바위와

강당 겸 요사채로 쓰이는 대각궁과 산신각 등 기타 몇몇 요사채가 있다.

미암사는 현재 대한불교 대각종 총본산 사찰로 알려져 있다.


미암사 초입에서 33층 진신사리탑까지 이런 196기의 불상들이 조성되어 있다.


33층 진신사리탑. 미암사 홈피에 의하면 1998년에 진신사리를 봉안했다고 하니

이 탑도 그때 조성된 것으로 사료된다.





@석가모니부처님은 쿠시나가라의 사라나무 숲에서

自燈明(자등명) 法燈明(법등명)이란 열반송을 남기시고 열반에 드셨다.

와불은 바로 열반에 드신 석가모니부처님 모습을 조성한 것이다.



@열반은 번뇌와 망상이 일어나고 꺼짐이 없어져 지극히 고요하고 청정한 경지를 의미한다.

범어(梵語) Nirvana 의 음을 따서 니반나(泥畔那), 니원(泥洹), 열반나(涅槃那)라고 하며,

(), 적멸(寂滅), 멸도(滅度), 원적(圓寂), 안락(安樂), 해탈(解脫) 등으로 번역한다.

 


@세계최대 와불이라고 자랑하고 있는 미암사의 와불은 전각 안이 아닌 노천불로 모셔져있다.

와불은 길이는 27m, 높이는 6m, 폭은 6m로 와불상 안에 작은 법당까지 마련하여

2만여개의 작은 불상을 법당 안에 조성되어 있다.

와불의 발바닥에는 18천여 자가 새겨져 있다.

발바닥에 새겨진 16천여 자의 옴 자를 손으로 만지면

번뇌와 업장이 소멸된다고 하여 많은 불자들이 참배를 하고 있다.


와불의 발바닥 옆 신발들이 놓여 있는 것은 와불 뒤편이 법당으로 들어가는 문이있기 때문이다.



법당 옆에 있는 약수터






달마비







<부여 저동 쌀바위>

백제 침류왕 때 유모라는 할머니 한 분이 가세도 궁하면서도 손까지 귀하여

매일 이 바위 앞에 지극정성으로 손주도 보고 잘 먹고 살도록 기도를 드렸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비몽사몽간에 관음보살을 현몽하고 호리병 안에 들어있는 쌀 3알을 꺼내 매일 이 바위 위에 올리면

그날 먹을 세끼 쌀이 나올테니 그리하라고 하는 관음보살의 말씀을 따라 이튼 날부터 그리했더니

정말 꿈속에 들은 그대로 하루 먹을 3끼 쌀이 나왔다. 그리고 바라던 손주까지 보게 되어 행복한 나날을 지내게 되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욕심이 생겨 쌀이 나오는 저 바위를 파내면 더 많은 쌀을 얻어 금방 부자가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부지갱이로 쌀이 나오는 구명을 파 보았다. 그랬더니 그날부터 쌀은 한 톨도 나오지 않고 핏물만 흘러내렸다고 한다.

전설이나 야사로 전해오고 있는 인간의 탐욕에 경종을 올리는 이와 유사한 쌀바위 이야기는 

 아마도 미암산의 이 쌀바위가 원조가 아닌가 사료된다.

지금 이 쌀바위는 충남 지방문화재 자료 제371호로 지정되어 있다.





산신각













@불교의 발생지 인도의 열반상을 잠시 살펴보자.

쿠시나가르 마하파리니르바나사원의 열반당에 최초로 조성되었다는 부처님의 열반상이 있다.

이 불상은 5세기에 하라발라스님이 진흘과 모래로 조성해놓은 열반상으로 길이는 6.2m라고 한다.

열반상은 머리를 북쪽으로 두고 서쪽을 향하여 누워있다.

열반상의 왼쪽다리가 위에 올라져 있으며 그리고 황금색 천이 부처님을 덮고 있다.


 

그리고 현재 이곳에는 벽돌을 재료로 하여 조성된 반구 모양의 열반탑도 세워져 있다.

이 열반탑의 상부에는 평두라는 신성한 곳임을 상징하는 사각형의 난간과 정상부에는 3개의 일산을 조성하고 있다.

와불은 그 옆에는 모셔져 있다. 와불을 모신 현재의 열반당은 13세기 이슬람교도들의 침공으로 파괴된 것을

최근에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이 열반당으로부터 1.6km 떨어진 곳에 석가모니부처님을 화장하고

다비식을 치룬 장소에 불탑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람바르 스투파(Rambhar Stupa)이다.


?

람바르 불탑은 불탑신앙의 대표적 상징이 되는 곳이다.

왜냐하면, 석가모니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시신을 화장하고 사리를 수습한 장소에 조성된 불탑이기 때문에

불교역사에 있어서 그 의미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현재 이 불탑은 기단부의 둘레가 47m이며,

그 위에 세워진 반구형의 탑신 둘레는 34m에 달한다. 높이는 약 15m에 달하는 대형 불탑에 속한다.

?1910년 고고학자 히라난다 샤트리(Hirananda Shatri)에 의하여 발굴 복원 되었으며,

이 때 경전을 비롯한 많은 유물이 출토 되었다.




<세계의 최대와불>

@미암사의 와불은 사천 백천사의 와불상과 비슷하다. 경남 사천시 와룡산 백천사는 일붕선교종 사찰로

이 와불은 노천불이 아닌 전각안에 모셔져 있다. 와불의 길이는 14m, 높이는 4m.

우리나라의 와불은 영천 만불사, 강화 보문사 등 많은 곳에 있다.



참고로 동남아시아 불교권에서는 와불이 많다. 모두 세계최대 와불이라고 자랑하고 있는데 대략 살펴 보면.

@방콕(태국) 와포(wat pho) 사원의 와불은 길이 46m, 높이 15m이며,

@미얀마 양곤 치욱따지 와불은 길이 65.8m, 높이 17.6m.

@방콕의 왓 로까야?타람 사원의 와불은 높이5m, 길이 42m,

@미얀마 바고 쉐모드 파고다 와불은 높이18m 길이 56m.

@일본이 자랑하는 후쿠오카 남장원 청동와불은 길이41m 높이 11m 무게300ton이며

@중국 하서주랑 대불사 와불은 길이 35m 어깨폭 7.5m 발크기 5.4m

중국최대와불로 꼽히며 노천불이 아닌 전각 안에 모셔져 있다.




<最古의 열반상>

@가장 오래된 열반상으로는 최근에 파키스탄에서 발견된 와불상이다.

이 와불은 2천년 이상된 석가모니 열반상으로 알려져 있다.

이 열반상은 약 15m 높이로 간다라 고고학 역사에서 가장 클 뿐만 아니라

이례적으로 광배가 두 개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물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파키스탄 고대 도시유적 탁실라(Taxila) 지방 바말라(Bhamala)에서 발견됐다.

바말라는 거대한 불탑이 있는 불교유적지로 유명한 곳이다.

바말라 유적 발굴은 미국과 현지발굴팀에 의해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

 

이중광배 열반상은 머리와 팔 부분이 훼손된 상태로 감실에서 발견됐다.

이와 함께 510개의 유물들도 함께 출토됐다. 테라코타 상, 진흙으로 빚어진 불두, 철기류,

구리 공예품, 쿠샨왕조 시대(BC20~AD5C)에 통용됐던 주화 등이다.

유물은 탄소연대측정 결과 2천년 이상 된 것으로 밝혀졌다.



@와불은 부처님의 열반상을 의미한다. 그 열반에는 8종의 법미(法味)가 있다.

열반은 생멸변화가 없이 항상 머물러 있는 상주미(常住味)가 있고,

 다시는 미혹된 생사가 계속하지 않는 적멸미(寂滅味)가 있으며,

영원히 늙지 않고不老, 다시는 죽지 않으며不死, 청정하고淸淨味, 허허로이 통하며虛通味,

움직이지 않고不動味, 항상 행복한 맛快樂味을 갖추고 있다.

 

또 이 열반에는 상락아정(常樂我淨)의 사덕(四德)이 있다.

상덕은 상주의 뜻으로 열반에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생멸변화가 없는 덕을 갖추고 있음을 밝힌 것이고,

낙덕은 안락의 뜻으로 생멸변화가 없는 세계에는 생사의 고뇌가 없고 무위안락한 행복만이 있음을 밝힌 것이다.

 

아는 망아(妄我)를 여읜 진아(眞我)를 말하는데, 아덕은 8대자재(八大自在)를 갖춘 아를 표시하는 것이다.

정은 청정의 뜻으로, (()의 고통을 여의고, 담연하게 청정한 과덕이 있음을 말한다.



와불 복장안의 법당

@부처님의 일생을 도식화한 것이 팔상도인데 그 팔상도의 마직막에 열반도가 있다.

열반도는 석가모니가 열반에 드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으로 인도·중국·일본 등지에서 성행하고 있지만

한국의 경우 해인사 사리기에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되었다는 기록은 있으나,

독립된 열반도는 없고 팔상도의 마지막 장면, 즉 쌍림열반상으로 전하고 있다.

사라쌍수(沙羅雙樹)라는 숲에서 열반하셨기에 쌍림열반상이라고 불린다.

사라쌍수 나무가 부처님 열반시 학의 날개처럼 하얗게 변하여 학림(鶴林)이라는 말도 생겼다.




부처님의 입멸시기를 언제인가.

붓다께서 45년간의 설법을 끝내고 고향인 카필라와스투로 가던 중,

쿠시나가르 사라쌍수(雙樹) 아래서 빠리니르바나(Parinirvana 般涅槃반열반)에 드셨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 나온 다비에서 나온 사리가 많았다.

그 사리를 당시 8개 부족왕들이 나누어 가져가 탑을 세우고 항아리에 담아 그 탑에 봉안했다.

 1898년 프랑스의 고고학자 펩페라는 사람이 카필라바스투의 옛터 가까운 피프라바에서

납석(蠟石)으로 된 완전한 한 개의 항아리를 발견했었다.

그 항아리의 표면에는 석존의 유골을 모셨다는 사연을 새겨놓았는데,

그 글씨체가 최소한 기원전 3세기까지는 확실히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에

어쩌면 <열반경>에 기록된 뼈항아리(骨壺)의 하니 일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예전에 인도에서는 연대를 기록하는 습관이 없었으므로 부처님 입멸의 해도 추정할 수밖에 없는데,

세계 학자들의 정설(定說)로는 기원전 480년경(어떤 설에는 478)으로 낙착이 되었다.

여기에서 역산(逆算)하면 탄생은 기원전 560년경(혹은 558)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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