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일은 하면 된다
하면 된다. 그냥 하면 되는 것이다.
‘내가 포기했다‘라는 순간, ’실패했다’라는 순간,
그 순간이 없다면 모든 것은 이미 이루어지고 있다는 현재형이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봐라.
수 백 명이 올라타고, 사람 무게 보다 더 무거운 짐을 보태고....
수 천 톤의 쇠덩어리가 하늘을 나는 모습을 보라.
핸드폰을 보라. 손에 있는 작은 기계에서, 영상이 보이고, 음성이 들리고,
지구 반대편의 사람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무엇이 안 될 것인가? 무엇을 못 할 것인가?
된다고 하는 사람만이 세상을 만들고, 창조하고, 변화시켰다.
이제 그런 사람들은 1%가 아니라 99%가 될 것이다.
물현세계에 앞서 정영세계를 보라.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공지물은 그렇게 해서 현실화 된 것이다.
생각한 것은 반드시 물질로 현실화 시킬 수 있다.
구하라. 믿어라, 결과물을 미리보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ㅡ좋은 글에서ㅡ
지금 서울시장 선거는 크게 잘못 가고 있습니다
- 후보에 대한 사상검증도 하지 않고 어떻게 투표하란 말인가? -
서경석 목사 (선진화시민행동 상임대표, sksgo21@hanmail.net)
1. 미꾸라지 진짜 용된 나라 대한민국에서 황당한 일이....
누가 제게 <미꾸라지 진짜 용된 나라 대한민국>이란 소책자를 주었습니다. 그 내용을 읽어보니 우리나라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선진국대열에 들어섰다는 것입니다. SONY를 포함한 일본의 10대 전자회사가 낸 흑자를 다 합쳐도 삼성SDI가 낸 흑자보다 못하고 세계 TV판매의 1,2등은 삼성과 LG이고 차세대 3D TV시장에서도 삼성과 LG만 경쟁하고 있습니다. 인천국제공항도 6년 연속 세계최우수공항상을 받았고 삼성전자는 영업이익 17조원으로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GE)를 넘어섰는데 IT기업중 세계1위가 되었고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사와 1, 2위를 다투고 있습니다. 또 한국은 세계2위의 철강대국이고 세계 10대 경제대국이 되었습니다. 아프리카 53개국의 연간 GDP가 6천억불인데 한국의 연간 GDP는 6천7백억불로 아프리카 전체보다 많습니다.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어떻습니까? 김정은으로 3대 세습을 하고 있고 죽은 김일성을 우상화하기 위하여 시신을 안치한 금수산 궁전을 짓는 동안에 경제는 더욱 피폐해져서 3백만명이 굶어죽었고 참혹한 인권유린은 전 세계 사람들의 公憤을 사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너무나 황당한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금년 6월30일 수원지방법원 제410호법정에서 종북(從北)까페인 ‘사이버민족방위사령부’ 운영자인 황길경 피고는 국가보안법 위반 재판을 받으면서 “위대한 김정일 장군님 만세”를 외쳐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또 8월20일에는 서울시청 앞에서 보수 대학생단체가 북한인권문제 다큐멘타리 영화 '김정일리아'를 상영하고 있었는데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 비정규직 철폐 등을 주장하며 서울 숭례문에서 집회를 마친 희망시국대회 시위대 4천명이 서울광장으로 몰려와 전선을 끊어 이 영화의 관람을 중단시켜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지금 이명박 보수정권임에도 불구하고 요즈음 종북(從北)좌파들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2. 왜 한국에서 종북좌파 세력이 강대한가?
이 이유를 알아보려면 과거 민주화운동 시절로 돌아가야 합니다. 87년6월 민주화 대항쟁 당시 민주화를 이룩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학생세력이 대부분 김일성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세력이었습니다. 왜 그런가? 혹독한 군사독재 치하에서 민주화세력은 스스로를 흑백논리로 무장해야 했습니다. 그래야 강고한 투쟁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국상황에 맞는 논리가 없었기 때문에 운동권은 이 논리를 외부에서 빌려와야 했습니다. 그래서 한국 내에서 맑스 레닌주의, 김일성 주체사상, 마오이즘 등이 이념적인 각축을 하게 되었습니다. 기독교운동 안에서는 민중신학이라는 흑백논리가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김일성 주체사상론(NL)이 맑스레닌주의(PD)보다 훨씬 더 유연했고 그 결과 NL파가 학생운동의 주류가 되었습니다. 나아가 이 세력은 한국을 민주화시키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민주화 대항쟁 때 한국을 민주화시킨 세력이 바로 從北좌파였다는 점은 지금 생각하면 정말로 살 떨리는 일입니다. 그러나 사실입니다. 이점을 생각하면 우리는 아직도 군사독재 시절의 후유증을 앓고 있는 셈입니다.
원래 승리의 경험을 한 세대는 氣가 ?섦求?. 이 세대가 시간이 경과하면서 시민운동을 좌파로 만들고, 교사가 되어 전교조를, 노동자가 되어 민노총, 민노당을, 기자가 되어 언론노련을 만들었으며 나아가 학계, 정관계, 법조계 등 사회각계로 진출했습니다. 이들은 규모도 3-40만명이 되는 대한민국 최대의 세력입니다. 그리고 기회있을 때마다 反美, 反韓 투쟁을 전개해 왔습니다. 미순이효순이 촛불시위, 대통령 탄핵반대운동, 맥아더동상 철거사건, 평택 미군철수투쟁, 한미FTA 반대투쟁, 광우병 촛불시위, 제주도해군기지반대투쟁, 희망버스 등 대한민국을 흔드는 운동을 전부 주도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민주당조차 이들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박원순 변호사는 희망제작소, 희망과 대안을, 야권은 희망버스 등 희망을 간판으로 내걸지만 이들의 운동은 희망이 아니라 절망을 줄 뿐이었습니다. 6.25때 대한민국을 구해준 미국을 적대하고 6.25때 무력남침을 한 북한의 대남공작에 협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 나도 친북좌파였다.
제가 어떻게 이런 말을 자신 있게 하는가? 저도 젊은 시절 친북좌파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대학 2학년 때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되었습니다. CCC에 갔다가 경제복지회에 가입했는데 그곳에서 한명숙 전총리의 남편인 박성준씨를 만나 그분의 지도하에 사회주의 공부를 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사회주의를 신봉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통혁당 사건이 터지면서 박성준 선배는 징역 15년 형을 언도받았고 나는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훈계방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훈계방면 된 후에도 대학시절 내내 이념적인 문제로 번민했습니다. 다행히 저는 82년에서 88년까지 미국에 유학가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제가 미국에 막 도착했을 때 교포사회에서 북한방문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북한에 한주일간 방문하는 사람은 북한의 실상을 잘 모릅니다. 그러나 가끔가다 아들 집에 한 달간 머물다 온 노인이 있었습니다. 제가 다닌 뉴욕 부르클린 한인교회에도 그런 할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한 밤중이면 아들과 단둘이 이불을 뒤집어 쓰고 아들로부터 북한의 진실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 할아버지가 제게 아들이 들려준 북한의 진실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북한이 거짓으로 가득 찬 나라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야 미망(迷妄)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리고 나서 나는 더 이상 어두운 뒷골목의 음침한 게토에서 음모가(陰謀家)의 삶을 살지 않고 햇볕이 내리 쪼이는 앞마당에 나와 맑은 대기를 호흡하며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저는 88년초에 귀국해서 운동권의 연구기관인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의 원장서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연구원에서 파악해보니 일반 학생운동은 말할 것도 없고 기독학생운동까지 대부분 김일성 주체사상파가 되어 있었습니다. 기독교 단체의 성명서들도 전부 북한방송을 베낀 것이었습니다. 대학 캠퍼스를 가면 反美 플라카드가 사방을 장식했습니다. “미 제국주의자의 가슴에 비수를 꼽자”, “미 제국주의의 각을 뜨자”는 등 너무도 충격적인 구호가 난무했습니다. 저는 처음 6개월간은 후배들의 눈치만 살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내가 이들을 의식화시켜 진보운동을 하게 했기 때문에 지금 이들이 주사파가 된 데에는 나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운동권에서 쫓겨나는 한이 있더라도 후배들에게 바른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후배들에게 기독교운동은 성경말씀에 기초해서 해야지, 주체사상론에 입각해서 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한번은 후배 한 사람을 몰래 불러 사회주의는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이 화근이 되어 후배들이 저를 개량주의자라고 비판하면서 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장 직에서 내쫓는 운동을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진보 기독교 진영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저는 보수 기독교는 전혀 몰랐기 때문에 갈 데라고는 일반 사회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새로 시작한 운동이 경실련이었습니다.
저는 경실련을 시작하면서 운동권의 운동방식을 전부 뒤집었습니다. 운동권이 사회주의를 지향할 때 경실련은 시장경제체제를 주장했습니다. 운동권이 비합법운동을 할 때 우리는 합법운동을 했습니다. 운동권이 민중운동을 하면 우리는 보통사람이 중심이 되는 시민운동을 했습니다. 운동권이 계급투쟁을 할 때 우리는 사회적 공공선을 추구했습니다. 운동권이 기업을 적으로 돌릴 때 우리는 땅투기 꾼을 적으로 돌렸습니다. 이러한 경실련의 노선은 시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습니다.
경실련이 창립된지 5년이 지난 94년에는 경실련이 한국 사회운동의 주류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영향으로 94년에는 남아있던 재야운동이 시민운동으로 전환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출범한 단체가 <참여연대>입니다. 그 후부터 시민운동 안에서는 경실련과 참여연대의 각축이 시작되었습니다.
4. 낙선낙천운동은 좌파시민운동의 시작
그러다가 2000년 낙선낙천운동을 고비로 참여연대가 시민운동을 장악했습니다. 그런데 박원순 변호사가 주도한 낙선낙천운동은 경실련 운동의 철학을 완전히 뒤집는 것이었습니다. 경실련은 진리는 여론조사나 투표 등 다중의 여론으로 결정되면 안 되고 양식 있는 이성적 토론으로 구해야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경실련 상임집행위원회는 한 번도 표결로 의사를 결정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낙선낙천운동은 국민의 지지가 높으니 이 운동이 옳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과거 운동권이 민주집중제라 하여 민중이 투표로 한 결정은 전부 옳다고 주장했는데 낙선낙천운동 역시 같은 사고방식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경실련式 시민운동은 낙선낙천운동 이후 포퓰리즘 운동으로 대치되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포퓰리즘이란 말이 낙선낙천운동 이후부터 나오게 된 것도 전혀 우연이 아닙니다. 또 낙선낙천운동은 잘못된 선거법은 지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당장에는 인기가 있었지만 사실은 중대한 실수였습니다. 시민운동이 국민을 향해 법과 질서를 호소할 수 있는 도덕적 힘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낙선낙천운동의 獨善이었습니다. 시민운동은 겸손해야 하고 국민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진리도 자기가 결정하지 않습니다. 정보를 국민에게 공개해서 국민이 결정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낙선낙천운동은 법위에 군림하고 스스로 재판관이 되어 정의의 잣대를 마음대로 휘둘렀고 자기들이 정한 낙선자 명단은 무오(無誤)하다고 하여 일체의 변경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낙선낙천운동은 편향적인 특정정당 지지운동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시민운동은 그 후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고 시민운동이 권력화 되고 내부의 言路가 막혀 낙선낙천운동에 대한 비판이 일체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저도 낙선낙천운동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의 상임대표직 취임을 거부당했습니다.
한국역사에서 낙선낙천운동처럼 크게 홍보가 된 시민운동은 없었을 것입니다. 한달 내내 모든 언론의 톱뉴스였으니 말입니다. 어떤 시민운동가는 묘비에 낙선낙천운동을 쓰겠다고 까지 말할 정도로 대성공한 운동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 운동은 시민운동의 묘혈을 판 운동이었습니다. 이 운동이후 시민운동은 완전히 좌편향으로 가고 말았고 시민들로부터 외면당하게 되었습니다. 박원순 변호사는 이 운동의 최대의 수혜자이지만 사실은 시민운동의 몰락의 책임을 져야할 사람입니다. 박원순 변호사는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서 합헌이라고 판시한 국가보안법을 “아무런 죄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을 교도소에 처넣어 피비린내 나는 고문으로 용공을 조작한 악랄한 법”이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김용갑의원과 같은 사람을 국가보안법 폐지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낙선낙천운동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국가보안법 폐지운동을 확산시켰습니다.
저는 종종 그때를 회상합니다. 내가 좀 더 잘 했으면 좌편향을 막을 수 있었을까? 아니 못 막았을 것 같습니다. 민주화 대항쟁 때 학생세력이었던 386세대가 성장하여 시민운동으로 진출하면서 만든 거대한 좌편향 흐름이 경실련까지도 삼켜버렸기 때문입니다. 결국 저는 제가 창립한 경실련까지 포기하고 다시 좌파와 맞서는 운동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5. 맥아더동상 철거시도 사건과 평택 미군철수 시위
2005년 9월의 맥아더동상 철거시도 사건은 또 하나의 큰 획을 그은 중대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우리사회에 친북좌파세력의 실체를 국민에게 눈으로 보여준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맥아더 동상 철거사건 전에는 우리국민이 우리나라에 친북좌파세력이 광범위하게 존재함을 몰랐습니다. 공산권이 망하고 북한도 비참한 상황 속에 있는데 한국에 어떻게 친북좌파가 있겠는가 하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친북좌파는 극우세력이 진보세력을 메카시즘적으로 공격하는 말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당시 맥아더 동상을 철거하겠다며 수천명이 모인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맥아더동상을 철거하겠다는 사람은 인천상륙작전을 반대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작전이 없었으면 한반도가 김일성에 의해 통일되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분단되어 통탄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맥아더동상 철거사건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처음 從北좌파 세력이 자신의 정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입니다.
저는 이들이 누구인지 조사했습니다. 그랬더니 전교조, 전농, 민노총, 민노당, 범민련, 한총련, 민중연대, 통일연대, 그리고 나중에 진보연대였습니다. 숫자도 3-40만명이 됩니다. 과거의 주체사상파가 교사가 되어 전교조를 종북좌파로 만들고 민노총을 종북좌파로 만들고 종북좌파 정당인 민노당을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구(舊)좌파처럼 사회주의혁명까지는 지향하지 않았더라도 계급주의적, 수정주의적 역사관을 가지고 세계화를 반대하고 반미친북의 입장에 서서 북한인권 문제 제기를 반대하고 국가보안법의 즉각 폐지를 주장했습니다.
저는 박원순, 최열, 한완상 등 시민단체 지도자들에게 메일을 보내어 맥아더동상 철거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질문하였습니다. 그러나 단 한 사람도 답변하지 않고 전부 침묵을 지켰습니다. 저는 이 모습을 보고 우리나라 지식인 사회가 얼마나 허약한지를 절감했습니다. 다음에는 나는 어떻게 할까를 고민했습니다. 내가 從北좌파를 반대하면 틀림없이 후배들이 나를 보고 꼴통보수라고 비난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 수모를 감수하더라도 할 말을 하는 것이 애국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다음부터 저는 길거리에 나가 “친북좌파 척결이 시대정신이다”라고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아니다 다를까 그 다음부터 후배들이 저를 변절자, 꼴통보수라고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좌파들이 평택 미군기지 철수를 주장하며 비무장 군인을 죽창으로 공격하는 것을 보고는 평택까지 내려가서 규탄집회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그 데모에 온 사람들은 거의 다 군복을 입은 재향군인 할아버지들이었습니다. 저는 전에는 군복입고 집회에 오는 재향군인들은 극우라고 생각하여 그들과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평택에서는 그분들에게 눈물을 흘리며 감사해 했습니다. 그분들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자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친북좌파를 척결해야 한다고 말하니까 사람들이 나보고 꼴통보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말을 했다고 제가 꼴통보수가 된다면 저는 이제부터 당당하게 말하려고 합니다. 보수는 좋은 것입니다. 이제부터 저는 자랑스런 보수가 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왜 이명박후보가 압승했는가? 그 이유는 맥아더동상 철거사건과 평택 미군철수시위 때문입니다. 친북좌파에 대한 공포심 때문입니다. 민주당이 정권을 잡으면 친북좌파가 설치는 꼴을 봐야 하는데 그 꼴을 어떻게 보나 하는 생각에서 BBK 의혹을 아랑곳 하지 않고 이명박 후보에게 묻지마 투표를 했습니다.
6. 이명박정권의 출범과 광우병 촛불시위
이명박 정권 출범이후 진보진영은 종북좌파와의 관계를 단절하지 않으면 앞으로 진보는 영원히 정권을 잡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변화를 보인 곳이 민노당이었습니다.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 같은 이들이 민노당 주류를 從北주의라고 비판하고 더 이상 그들과 당을 같이 할 수 없다며 뛰쳐나와 진보신당을 만들었습니다. 만일 그때의 분위기가 계속되었더라면 우리 역사 속에서 종북좌파가 청산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광우병 촛불시위가 터졌습니다. 이 촛불시위는 종북좌파들의 작품입니다. 강기갑, 천영세, 박석운, 오종렬, 한상렬 등 맥아더 동상 철거사건을 주동한 사람들이 광우병 촛불시위를 주동했습니다. 그리고 월드컵 붉은악마 축제와 같은 분위기를 만드는데 성공하여 많은 젊은이들을 끌어들였습니다. 이 촛불시위가 성공하는 바람에 코너에 몰렸던 종북좌파 세력이 다시 진보진영의 중심에 서게 되었고 좌파 시민단체들이 다시 종북좌파의 둘러리를 서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7. 역사 속에서 청산되어야 할 종북좌파 세력
우리나라 역사 속에는 청산되어야 할 세력이 있습니다. 사람은 그대로 있어도 세력으로서의 친일파는 청산되었습니다. 세력으로서의 군사독재세력도 청산되었습니다. 세번째로 청산되어야 할 세력이 바로 종북좌파 세력입니다. 대표적인 종북좌파가 민노당과 전교조입니다. 이들은 맥아더동상 철거시도사건과 광우병 촛불시위를 주도했습니다. 민노당이 김정일 추종세력이었기 때문에 민노당 핵심당원들이 일심회, 왕재산사건과 같은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도 민노당은 관련자 출당이나 대국민사과와 같은 조치를 일체 하지 않았습니다.
종북좌파는 낡은 보수세력이지, 진보가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합리적인 진보세력은 손학규 같은 사람입니다. 손학규 대표는 이들 종북좌파를 멀리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되고 종북좌파와의 연대를 끊어야 합니다.
민주당은 지난 大選때 민주당이 집권하면 친북좌파 세상이 될 것을 우려한 국민 때문에 이명박 후보가 5백만 표를 얻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저부터 그런 사람입니다. 저는 어느 면으로 보나 민주당과 가까워야 할 사람입니다. 저는 지금이라도 민주당이 종북좌파를 반대하면 즉시 정치적으로 중립을 선언하고 한나라당과 민주당과 등거리를 유지할 사람입니다. 저는 과거 경실련 사무총장 이래로 항상 정치적으로 중립이었던 사람입니다. 다만 제가 종북좌파를 반대하니까 세상이 저를 右로 분류한 것뿐입니다.
8. 친북좌파의 둘러리가 된 좌파 시민운동
우리나라 시민단체들이 좌파로 기울어진 계기는 2002년 말 미선이 효순이 촛불시위입니다. 그 전에는 그렇게 좌파적이지 않았습니다. 미선이와 효순이의 죽음은 단순한 교통사고입니다. 장갑차가 미선이와 효순이를 보지 못하고 치은 것입니다. 그러나 한총련, 민노총 등 친북좌파들은 이 사건을 성조기를 불태우는 반미운동으로 발전시켰습니다. 당시 시민운동 지도자였던 박원순 변호사나 최열 사무총장은 원래 친북좌파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이들이 한총련과 민노총을 비판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오히려 친북좌파와 손을 잡고 반미운동을 전면에서 이끌었습니다. 거대한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종북좌파의 파도 앞에 결연히 맞서는 대신 그 파도 위에 올라타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한국의 시민운동 주류는 종북좌파의 앞잡이로 전락하고 말았으며 세상사람들이 반미친북세력을 규탄할 때 시민운동도 함께 규탄받게 되었습니다. 이때 박원순변호사나 최열총장이 김지하 선배처럼 이들을 질타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가 미군의 단순한 교통사고를 가지고 도심을 무법천지로 만드는 시위를 합니까? 만일 우리나라가 아프리카의 이름도 모르는 나라의 內戰에 참전해서 5만명의 우리 젊은이가 목숨을 바쳤는데 그 나라에서 태극기를 불태우며 反韓시위를 했다면 우리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그 후 좌파 시민단체들은 종북좌파와의 연대를 더욱 강화했고 한통속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고, 이라크 추가파병을 반대하고,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했습니다. 북한정권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이 우호적이었고 대한민국에 대해서는 형편없이 가혹했습니다.
9. 좌파시민운동의 획일주의는 어디서 오는가?
그런데 좌파시민운동의 특징은 획일화입니다. 그 많은 좌파인사 중에서 북한 인권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왜 한 사람도 없고 수도분할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왜 한 사람도 없는가? 이점이 미스테리입니다.
왜 이렇게 좌파시민운동은 일사분란한가? 저는 이 원인을 재정지원에서 찾고자 합니다. 좌파단체의 재정을 주로 ‘아름다운 재단’이 지원하면서 좌파시민운동이 ‘아름다운 재단’ 밑에 계열화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박원순변호사의 아름다운 재단과 최열의 환경재단이 대기업의 기부를 싹쓸이 했습니다. 참여연대의 감시 대상인 11개 기업이 ‘아름다운 재단’에 148억원을 기부했고 참여연대가 생명보험사 상장차익 배분 문제를 제기한 후 ‘아름다운 재단’이 교보생명으로부터 47억원을 받았고, 한화를 공격하고 10억원을, LG를 공격하고 LG와 GS로부터 20억원을 기부받았습니다. 또 아름다운재단은 ‘먹튀’ 논란을 빚은 론스타로부터도 7억6천만원을 받았습니다. 이런 식으로 해서 “아름다운 재단”은 지난 11년간 대기업으로부터 928억원을 기부 받았습니다. 무소속의 강용석 의원은 참여연대가 대기업을 비판하면, 대기업은 비판을 무마시키기 위해 아름다운재단 측에 기부금을 내었고 그러면 참여연대는 대기업의 비판을 중지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지금까지 참여연대가 대기업을 비판하면 그 대기업은 대부분 수억원 이상씩 아름다운재단 측에 기부금을 전달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러한 ‘아름다운 재단’과 참여연대의 共助는 조직폭력배와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도대체 928억원이 어디에 쓰였는가? 어려운 이웃을 돕는데도 쓰여졌지만 주로 좌파 단체들을 지원하는데 쓰여졌습니다. 그리고 시민사회로 향하는 기업의 기부금을 ‘아름다운 재단’이 싹쓸이하면서 박원순 변호사와 노선이 다른 우파 시민단체는 위축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름다운 재단’에 대한 재벌의 후원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에서 2007년까지 연평균 113.7억원이었는데 이명박 정부 때인 2008년에서 2010년 동안에는 연평균 107.7억원으로 조금밖에 줄지 않았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재벌이 좌파만 지원하는 현상을 고치지 못했습니다.
‘아름다운 재단’은 거액의 돈으로 좌파시민단체들을 하청 계열화했고 그 결과 좌파 시민단체들은 自由知性을 잃어버리고 획일화되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개탄스러운 점은 재벌이 아름다운 재단을 1년에 백억씩 도우면서도 우파단체는 거의 돕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의 좌파시민운동을 키운 것은 바로 재벌이었습니다.
10. 이명박정부는 무엇을 했는가?
이렇게 좌파시민운동이 발호(跋扈)하는 동안 이명박 정부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無能 그 자체였습니다. 그래서 종북좌파를 크게 키운 책임이 이명박 정부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명박 정부의 국정방향은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대북정책도 옳았고, 세종시 수정론도 옳았고 4대강 사업도 문제는 있었으나 방향은 옳았습니다. 경제정책도 크게 나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이명박 정부가 국정방침을 이해시키는 소통(疏通)에 실패했다는데 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나? 한 마디로 이명박 정부가 시민사회를 동원대상으로만 보고 시민사회를 國政의 파트너로 삼아 공동으로 국정을 운영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등 역대 정권은 전부 시민사회를 파트너십으로 삼아 공동으로 국정을 운영했지만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시민운동을 파트너로 삼는다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마땅히 건전한 중도우파 시민운동 세력을 크게 키우고 젊은이들의 운동도 크게 키웠어야 했지만 정부는 지지세력이 필요할 때는 자유총연맹, 재향군인회 같은 관변단체들을 동원했을 뿐 자발적 시민세력을 육성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이 상황에서 우파가 中道의 바다에서 좌파에게 패하고 안철수에게 中道를 내어준 것은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재벌들은 좌파의 보복이 무서워서 우파를 돕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우파시민운동은 노무현 정부 시절보다 이명박 정부 하에서 더 혹독하게 어려움을 겪었으며 피폐할 대로 피폐해졌습니다.
11. 새로운 시민운동이 나와야 한다.
안철수 현상이란 무엇인가? 이 현상은 건강한 시민운동이 존재하지 않아 생긴 정신적 공황(恐慌) 현상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새로운 시민운동이 나와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어둠의 세력은 그냥 물러가지 않습니다. 빛의 세력이 어둠의 세력을 물리쳐야 합니다. 그래서 방황하는 시민들의 길잡이가 될 새로운 시민운동이 있어야 합니다.
새 시민운동은 우리나라의 최대 세력인 종북좌파와 결연하게 맞서야 합니다. 종북좌파와 연대하는 정치세력이 집권하면 나라는 위기에 빠지고 선진국으로의 진입도 불가능해집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지식인은 이점에 대해 비겁하게 침묵해 왔습니다. 그 결과 시민들은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색깔론은 마치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생각인 것처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안철수 현상까지 생겼습니다. 반면에 좌파들은 이념의 시대는 지나갔다며 이러한 현상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좌파이념을 퍼뜨리고 있습니다.
또 새 시민운동은 복지포퓰리즘과 결연하게 맞서야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포퓰리즘의 ?C에 걸려 있습니다. 여야가 선거를 앞두고 포퓰리즘 경쟁을 하기 때문입니다. 알젠틴, 브라질, 체코 등 여러 나라가 선진국 진입을 앞두고 포퓰리즘의 늪에 빠져 주저앉았는데 우리나라도 똑같은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그래서 시민들이 대신 포퓰리즘과 결연히 맞서야 합니다.
셋째로 새 시민운동은 기득권세력의 횡포와 독점으로 피해당하는 사람들의 편에 서야 합니다. 대기업의 횡포 때문에 중소기업이 타격받고, 재개발정책의 불공정과 모순 때문에 원주민의 85%가 쫓겨나고, 카드수수료가 대형업소는 1.5%에 불과하지만 소상공인은 3%-4.5%인 이 엄청난 불공정이 전혀 시정되지 않고, 사행산업의 막강한 로비력 때문에 도박이 조장되어 도박피해자의 고통은 더욱 커지고, 전관예우로 무전유죄 유전무죄의 관행은 고쳐지지 않고, 정규직 노조의 기득권 때문에 비정규직의 고통이 가중되는 현실과 맞서야 합니다.
그동안 우파단체는 종북좌파 비판이나 복지 포퓰리즘 반대에는 열심이었지만 기득권과의 싸움에는 소극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기득권과의 싸움에 가장 큰 역점을 두어야 합니다.
12. 한나라당도 거듭나야 한다.
그런데 우리를 실망시키는 부처는 청와대만이 아닙니다. 한나라당도 같습니다. 한나라당은 종북좌파에 대한 비판을 분명히 하지 않고 있습니다. 종북좌파를 비판하면 색깔론 시비를 한다고 비판받을까 보아 주저합니다. 그러나 나라를 김정일 추종세력에게 내주게 된 마당에 색깔론을 걱정한다는 것이 말이 되나요?
뿐만 아니라 한나라당은 복지포퓰리즘에 대한 비판도 분명치 않습니다. 이점은 무상급식이슈에서 분명하게 드러난 바 있습니다. 저출산 고령화시대를 맞아 복지예산은 더 늘어나야 합니다. 그렇다면 효율적인 복지, 지속가능한 복지를 추구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당연히 무상급식을 반대해야 합니다. 전면 무상급식을 하면 걸식아동 예산, 방과후 학교예산, 장애인 예산을 대폭 축소해야 합니다. 실제로 경기도 교육청은 무상급식 때문에 장애학생 교육지원, 농어촌학교 교육여건개선 등 저소득 소외계층 지원을 줄였습니다. 부자집 자녀에게도 무상으로 급식하기 위해 소외계층 지원을 줄인다는 것이 말이 되는 일입니까?
또 한나라당은 웰빙 정당, 가진 자를 위한 정당의 이미지를 벗어야 합니다. 기득권 세력의 횡포와 독점에 맞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억울한 사람들의 편에 서야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한나라당이 웰빙이라고 해서 나라를 종북좌파에게 내어줄 수는 없습니다. 개혁적인 우파시민운동이 하루빨리 등장해서 기득권세력과 맞대결함으로써 우파는 곧 가진 자의 편이라는 등식을 깨야 합니다.
애국시민 여러분! 나라의 앞날을 책임질 새로운 중도우파 시민운동을 건설하십시다! 그렇지 않으면 나라가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관심이 있으신 분은 선진화시민행동 혹은 서경석목사(sksgo21@hanmail.net)에 연락바랍니다.
13. 지금 서울시장 선거는 크게 잘못 가고 있습니다.
지금 서울시장선거에서 학력검증, 재산검증 등 검증작업이 활발합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사상(思想)검증이 빠졌습니다. 서울시장은 대통령 다음 가는 자리인데 서울시장의 사상이 어떤지를 검증하지 않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이점은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나경원 후보는 색깔론이라고 비난 받을까 염려해서 사상검증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중대한 직무태만입니다. 언론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중요한 사상검증은 하지 않는 채 사소한 꼬투리만 잡고 있습니다. 국민의 입장에 서서 생각한다면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박원순 후보는 “이념의 시대가 지나갔다”며 모든 사상적인 질문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후보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모른 채로 그냥 투표하라는 것입니까?
이에 우리는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박원순 후보에게 다섯 가지를 질문하고자 합니다. 이 내용을 알아야 박원순 후보를 찍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닙니까? 더욱이 저는 박원순 후보에 대한 의문점이 해소된다면 박원순 후보와 화해하고 반대를 철회하고 싶습니다.
첫째 민주노동당은 종북좌파 정당이며 김정일 추종세력입니다. 그런데 박원순후보는 민노당의 최규엽씨를 공동 선대위원장으로 세우고 민노당과의 공동정권을 세우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면 박원순 후보가 시장이 되면 서울시가 김정일 세력에게 넘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박원순후보는 민노당과의 관계를 유지할 것인지, 절연할 것인지를 분명히 밝혀야 합니다.
둘째 박원순 후보는 “민주주의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받아들이는 것”이고 “左傾(좌경)·左翼(좌익)을 배제하는 국가는 극우독재정권”이라며 소신있게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해 왔습니다. 낙천낙선운동 때는 집행위원장이 되어 김용갑 의원과 같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반대한 후보들을 낙천낙선운동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금년 6월30일 수원지방법원 제410호 법정에서 종북까페인 ‘사이버민족방위사령부’ 운영자인 황길경 피고는 국가보안법위반 재판을 받으면서도 “위대한 김정일 장군님 만세”를 외쳤습니다. 만일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면 법정에서 ‘김정일 장군님 만세’를 불러도 처벌이 불가능해 집니다. 그렇게 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김정일 장군님 만세를 부를지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박원순 후보는 지금도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고 있는지 분명히 밝혀 주기 바랍니다.
셋째 박원순 후보는 2005년 9월 맥아더동상 철거시도사건에 대해 계속 침묵해 왔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도 맥아더 동상 철거시도 사건은 잘못되었다고 말했지만 박원순 후보는 한 번도 철거시도 사건이 잘못되었다는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지금도 맥아더 동상 철거운동은 잘못되었다는 말을 할 의사가 없는지 묻고자 합니다.
넷째 천안함 폭침사건이 났을 때 참여연대는 유엔에 편지를 내어서 천안함 사건이 북한 소행이라고 믿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참여연대는 박원순 변호사가 만든 단체입니다. 그렇다면 박원순 변호사는 편지를 낸 참여연대의 행위가 잘한 일인지 아닌 지를 밝혀 주기 바랍니다.
다섯째 박원순 후보는 2000년에 낙선낙천운동을 주도하면서 헌법정신에만 부합하면 악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선거법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박원순 후보는 지금도 잘못된 법은 지킬 필요가 없는지 소신을 밝혀주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