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보는 BTN] 한국의 명찰 3회 - 지리산 천은사 편
[ 천은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인 화엄사의 말사입니다. 화엄사·쌍계사와 함께 지리산 3대 사찰의 하나로서, 828년(흥덕왕 3) 인도에서 온 덕운(德雲)스님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앞뜰에 있는 샘물을 마시면 정신이 맑아진다고 하여 감로사(甘露寺)라고도 하였습니다. 그 뒤 875년(헌강왕 1)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중건하였고, 고려 충렬왕 때에는 남방제일선찰(南方第一禪刹)로 승격되었다가 임진왜란의 전화로 완전히 불타버렸으나, 1610년(광해군 2)에 혜정(惠淨)스님이 중창하였고, 1679년(숙종 5)에 단유(袒裕)선사가 중건하여 천은사라 하였습니다. 절이름이 바뀐 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합니다. 단유선사가 절을 중수할 무렵 절의 샘가에 큰 구렁이가 자주 나타나 사람들을 무서움에 떨게 하였으므로 이에 한 스님이 용기를 내어 잡아 죽였으나 그 이후로는 샘에서 물이 솟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샘이 숨었다’는 뜻으로 천은사라는 이름이 붙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절 이름을 바꾸고 가람을 크게 중창은 했지만 절에는 여러 차례 화재가 발생하는 등의 불상사가 끊임없이 일어나 마을사람들은 입을 모아 절의 수기(水氣)를 지켜주던 이무기가 죽은 탓이라 하였습니다. 얼마 뒤 조선의 4대 명필가의 한 사람인 원교 이광사(李匡師, 1705~1777)가 절에 들렀다가 이런 이야기를 듣고 마치 물이 흘러 떨어질 듯 한 필체[水體]로 ‘지리산 천은사’라는 글씨를 써 주면서 이 글씨를 현판으로 일주문에 걸면 다시는 화재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의아해 하면서도 그대로 따랐더니 신기하게도 이후로는 화재가 일지 않았다는 전설이 전해집니다. 보물 제2024호인 극락보전을 비롯하여 팔상전(八相殿)·응진당(應眞堂)·칠성각·삼성전(三聖殿)·첨성각(瞻星閣)·감로전·불심원·회승당(會僧堂)·보제루(普濟樓)·방장선원(方丈禪院)·종무소·일주문·수홍문(垂虹門) 등이 있습니다. 또 문화재로는 보물 제924호 극락전아미타후불탱화·보물 제1340호 괘불탱(掛佛幀), 보물 제1546호 금동불감(金銅佛龕), 보물 제1888호 삼장보살도(三藏菩薩圖), 보물 제1889호 목조관세음보살좌상 및 대세지보살좌상(大勢至菩薩坐像) 등이 있습니다. 한국의 명찰 다큐가 제작될 당시 1995년경의 지리산과 천은사 인근 마을, 그리고 사찰의 고즈넉한 모습을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김유식의 펜화로 찾아가는 사찰기행] ④ 지리산 천은사
지리산 산수와 풍광 품은 아름다운 사찰
수홍루는 작은 누각이지만
자연과의 조화를 이룬 아름다움을
창조한 건축가에게 경의를 표하며
펜으로 전경을 담아 보았다
구례 천은사 수홍루 풍경. Pen drawing on paper, 54x 38cm.
전남 구례에 위치한 지리산 천은사는 1박2일 코스로 가 봄직한 곳이다. 예전에는 교통이 불편하였으나 지리산이라는 지역 명칭에 안 어울리게 사찰로 가는 지방도가 잘되어 있고 주차장에서 바로 사찰로 이어진다. 천은사는 지리산의 빼어난 산수와 풍광을 품고 있고 우람한 봉우리가 가람을 포근히 감싸는 밝고 따뜻한 곳에 자리한 참 아름다운 사찰이다.
일주문을 지나면 천은지라는 호수를 건너는 무지개 같은 모양의 피안교가 아치형 교각으로 거기에 포토존으로 유명한 다리 위에 지은 정자인 수홍루가 나타난다. 영화 '미스터 선샤인'의 촬영지라는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수홍루는 생각보다 아담하여 그냥 지나면 누각의 아름다움을 모른다. 상류 쪽에 다리가 하나 더 있는데 여기에서 바라본 모습이 제일 멋진데 역광일 때 풍광이 최고다. 사계절 모두 아름답지만 가을에는 울긋불긋 단풍에 어우러진 수홍루는 정말 아름답다. 작은 누각이지만 이런 자연과의 조화를 이룬 아름다움을 창조한 건축가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펜으로 담아 보았다.
수홍루를 지나면 계단을 올라 천왕문을 통과하게 되어 있고 지나면 작은 마당이 나온다. 2단 기단 위에 법요식을 치르는 보제루와 운고루가 나온다. 다시 2계단을 올라서면 너른 마당 저편에 주법당인 극락보전이 웅장한 모습으로 자태를 뽐낸다.
천은사는 현재 화엄사의 말사로 화엄사, 쌍계사와 함께 지리산 3대 사찰로 꼽히는데 통일신라시대인 흥덕왕 때 인도의 덕운선사가 중국을 통해 들어와 전국 명산을 두루 살핀 후 이곳에 창건하였고, 경내에 이슬처럼 맑고 찬 샘이 있어 이름을 감로사라 하였다고 한다. 영조 때 화재로 소실되고 혜암스님이 다시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는데 사찰이름에 관한 재미난 일화가 전한다. 임진왜란으로 불탄 뒤 중건할 때, 샘에 큰 구렁이가 자꾸 나타나 잡아 죽였더니 샘이 솟아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름을 샘이 숨었다는 뜻으로, 천은사라고 바꾸자 그 뒤로 원인 모를 화재와 재앙이 끊이지 않았다. 이후 조선의 명필 이광사가 '지리산 천은사'라는 글씨를 물 흐르는 듯한 서체로 써서 일주문 현판으로 걸었더니 그 뒤로 재앙이 그쳤다고 하는데 과연 수려한 명필의 글씨를 보며 한참을 서있게 하였다. 조선의 글씨를 이광사가 망쳐놨다면서 추사가 허세를 부렸다고 하는 일화도 있는데 명필은 명필이다.
아담한 사찰인 것 같아도 현재 20여 동의 건물이 있고 아름다운 풍경에 조화로운 사찰이다. 이 사찰에서 템플스테이도 하고 있는데 며칠 묵으며 지리산 공기도 마시고 수행하고 싶은 맘이 들었다.
주불전 법당인 극락보전은 공포가 다포양식을 갖춘 화려한 전각으로 처마 곡선을 치켜 올려 만들다 보니 기둥으로 처마를 받치도록 하고 있다. 이런 형식은 조선시대 후기의 사찰양식이라고 한다. 법당 안에는 극락정토를 주관하시는 아미타여래와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의 삼존불상을 봉안했고 후면의 아미타후불탱화를 볼 수 있는데 보물이라서 그런지 원본 손상을 방지하고자 모사본을 공개하고 있다. 우측에는 삼장보살도 좌측에는 신중도가 걸려 있는데 이 역시 모사본이다. 극락보전 편액을 바라보니 낯익은 글씨체다. 역시 이광사의 글씨다. 극락보전의 주련은 명필 김돈희의 글씨다. 명필들이 그냥 갈 수 없는 곳이었나 보다. 전각내부의 단청은 조선후기 모습 그대로이고 외부는 바래서 다시 한것 같다.
구례 천은사 팔상전과 응진당. 한지에 Pen drawing,74x 40cm.
극락보전 옆으로 계단을 오르면 기단위에 팔상전과 나한을 모신 응진당이 보인다. 극락보전 옆에서 바라본 뷰는 팔상전이 특히 눈에 들어온다. 팔상전에는 협시보살 없이 부처님이 단독으로 모셔져 있고 부처님의 삶을 표현한 팔상도와 영산회상도를 봉안하고 있다. 막돌로 석축 기단을 쌓아 자연미가 넘치고 정면 3칸의 아담한 건물이지만 팔작지붕으로 옆건물 응진당(나한전)이 맞배지붕인 것에 비하면 화려한 편이다.
형식이 다른 두 건물을 나란히 배치하여 단조로움을 극복하고 변화를 준 것이 이채롭고 아늑한 나무숲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영감을 주었는지 뷰에 이끌려 한참을 바라보다 펜화로 그리기로 했다. 물론 대표전각인 극락보전의 모습은 살짝 처마지붕만이라도 그려 넣기로 했다.
팔상전 왼편으로 천수천안 관세음보살상을 모신 관음전이 수려한 자태를 뽐낸다. 가장 높은 곳에 삼성전이 나온다. 이렇듯 지형을 활용하여 계단식으로 전각을 배치한 특징이 보인다. 삼성전을 나오면 산으로 가는 길이 나오며 계단식 구조의 건물배치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다.
경내를 둘러 본 후에 호수가에 나있는 상생의 길 트레킹 코스가 멋드러지는 곳이 있으니 반드시 둘러볼 일이다. 코스도 나눔길, 보듬길 누림길이라는 예쁜 이름이고 중간에 멋진 카페도 있어 여유롭게 쉬어갈 수 있다. 새벽에 들른 천은지에 피어오르는 물안개는 신비로움 그 자체였고 이슬이 걷힌 후 걷는 금강송 숲길은 나를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주었다.
[불교신문3706호/2022년3월8일자]
김유식 펜화가 usikim@naver.com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