莊子 外編 16篇 繕性篇 第3章(장자 외편 16편 선성편 제3장)
옛날 자기 몸을 안전하게 보존했던 사람은 말재주로 자신의 지혜를 꾸미지 않았으며, 지혜로 천하天下 만상萬象을 다 알아내려 하지 않았으며, 또 지혜로 덕德을 궁구窮究하지 아니하고, 홀로 자신의 자리에 똑바로 서 있으면서 자연의 본성으로 돌아갔을 뿐이다. 그밖에 또 무엇을 했겠는가.
도道는 본시 자잘한 행실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덕德은 본시 자잘한 지식으로 엿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자잘한 지식은 덕德을 해치고 자잘한 행실은 도道를 해친다. 그래서 “내 몸을 바로잡을 뿐이다.”고 말하는 것이니, 즐거움이 온전해지는 것을 일러 뜻을 얻었다고 일컫는다.
옛날의 이른바 뜻을 얻었다는 것은 〈수레를 타고 면류관을 쓰고 다니는〉 높은 벼슬아치가 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어떤 즐거움도 더 보탤 것이 없는 경지를 말할 따름이었는데, 오늘날의 이른바 뜻을 얻었다는 것은 〈수레를 타고 면류관을 쓰고 다니는〉 높은 벼슬아치가 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가령 〈수레나 면류관 따위의〉 높은 벼슬이 내 몸에 미쳤다 하더라도 그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천여天與의 본성이 아니고, 〈벼슬이라는〉 외물이 우연히 밖에서 들어와 내 몸에 기생寄生한 것일 뿐이다. 외물이 밖에서 들어와 기생하는 경우, 오는 것을 막을 수도 없고, 가는 것을 붙들 수도 없다. 그 까닭에 〈옛날 뜻을 얻었던 사람은 수레를 타고 면류관을 쓰고 다니는〉 높은 벼슬아치가 되었다 해서 뜻을 멋대로 부리지 아니하며 곤궁 빈핍하다고 해서 세속에 영합하지 않아서 그것을 이것과 똑같이 즐겼다. 그 때문에 마음속에 근심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기생했던 외물이 떠나면 곧 앙앙불락怏怏不樂하나니 이로 말미암아 살펴본다면 비록 〈높은 벼슬이 찾아와〉 즐거움이 있었다 하더라도 처음부터 본연의 즐거움은 망실되지 않은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자기를 외물外物에 잃어버리고 세속에 끌려 자기의 본성을 상실한 자, 이런 사람을 일러 본말本末이 전도顚倒된 인간이라 한다.”
古之行身者 不以辯飾知 不以知窮天下 不以知窮德
危然處其所 而反其性已 又何爲哉
道固不小行 德固不小識 小識傷德 小行傷道
故曰 正己而已矣 樂全之謂得志
(고지행신자는 불이변으로 식지하며 불이지로 궁천하하며 불이지로 궁덕이오
위연처기소하야 이반기성이니 우하위재리오
도고불소행이며 덕고불소식이니 소식은 상덕하고 소행은 상도하나니라
고로 왈 정기이이의라하니 락전지위득지니라)
옛날 자기 몸을 안전하게 보존했던 사람은 말재주로 자신의 지혜를 꾸미지 않았으며, 지혜로 천하天下 만상萬象을 다 알아내려 하지 않았으며, 또 지혜로 덕德을 궁구窮究하지 아니하고,
홀로 자신의 자리에 똑바로 서 있으면서 자연의 본성으로 돌아갔을 뿐이다. 그밖에 또 무엇을 했겠는가.
도道는 본시 자잘한 행실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덕德은 본시 자잘한 지식으로 엿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자잘한 지식은 덕德을 해치고 자잘한 행실은 도道를 해친다.
그래서 “내 몸을 바로잡을 뿐이다.”고 말하는 것이니, 즐거움이 온전해지는 것을 일러 뜻을 얻었다고 일컫는다.
☞ 고지행신자古之行身者 : 행신行身을 자기 몸을 보존한다는 뜻으로 위의 존신지도存身之道의 존신存身과 같다.
☞ 이변식지以辯飾知 : 천하天下편에서 “혜시惠施는 날마다 자신의 지혜를 가지고 다른 사람과 변론하였다.”고 했는데 ‘이변식지以辯飾知’란 바로 혜시와 같은 경우를 지칭한다.
☞ 불이지궁천하不以知窮天下 : 궁窮은 궁구窮究한다는 뜻. 천하天下는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 상上〉편에 보이는 “감응하면 마침내 천하 사사물물의 연고를 안다.”고 할 때의 ‘천하天下’와 같이 천하의 사사물물事事物物의 이치를 의미한다.
☞ 위연처기소하야危然處其所 : 위연危然은 홀로 똑바로 선 모양.
☞ 우하위재又何爲哉 : 자연스러운 본성을 따라 움직일 뿐 무위無爲함을 말한 것이다.
☞ 도고불소행道固不小行 덕고불소식德固不小識 : 도道와 덕德은 자잘한 행실로 도달하거나 자잘한 지식으로 엿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
☞ 락전지위득지樂全之謂得志 : “스스로 뜻을 얻어서 홀로 마음을 평안하게 하여 슬픔이나 즐거움이 없게 하니 이것이 즐거움이 온전한 것이다.”(郭象)
古之所謂得志者 非軒冕之謂也 謂其無以益其樂而已矣
今之所謂得志者 軒冕之謂也 軒冕在身 非性命也 物之儻來寄者也
寄之 其來不可圉 其去不可止
(고지소위득지자는 비헌면지위야라 위기무이익기락이이의러니
금지소위득지자는 헌면지위야니 헌면이 재신이 비성명야라 물지당래기자야니라
기지는 기래를 불가어며 기거를 불가지니)
옛날의 이른바 뜻을 얻었다는 것은 〈수레를 타고 면류관을 쓰고 다니는〉 높은 벼슬아치가 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어떤 즐거움도 더 보탤 것이 없는 경지를 말할 따름이었는데,
오늘날의 이른바 뜻을 얻었다는 것은 〈수레를 타고 면류관을 쓰고 다니는〉 높은 벼슬아치가 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가령 〈수레나 면류관 따위의〉 높은 벼슬이 내 몸에 미쳤다 하더라도 그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천여天與의 본성이 아니고, 〈벼슬이라는〉 외물이 우연히 밖에서 들어와 내 몸에 기생寄生한 것일 뿐이다.
외물이 밖에서 들어와 기생하는 경우, 오는 것을 막을 수도 없고, 가는 것을 붙들 수도 없다.
☞ 비헌면지위야非軒冕之謂也 : 높은 벼슬아치가 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 헌軒은 수레, 면冕은 면류관으로 모두 벼슬아치들의 사치스런 물건을 뜻한다.
☞ 물지당래기자야物之儻來寄者也 : 당儻은 우연, 요행의 뜻. 의외로 갑자기 오는 것.
역주12 寄之 其來不可圉 其去不可止 : 외물은 기필할 수 없다는 뜻이다. “외물에 달려 있을 뿐이니 득실을 내가 어쩔 수 있는 것이 아니다.”(郭象)
故不爲軒冕肆志 不爲窮約趨俗 其樂彼與此同 故無憂而已矣
今 寄去則不樂 由是觀之 雖樂 未嘗不荒<亡>也
故曰 喪己於物 失性於俗者 謂之倒置之民
(고로 불위헌면하야 사지하며 불위궁약하야 추속하야 기락피를 여차로 동이론 고로 무이이의니라
금에 기거즉불락하나니 유시관지컨댄 수악이라도 미상불황<망>야로다 고
로 왈 상기어물하고 실성어속자를 위지도치지민이라하노라)
그 까닭에 〈옛날 뜻을 얻었던 사람은 수레를 타고 면류관을 쓰고 다니는〉 높은 벼슬아치가 되었다 해서 뜻을 멋대로 부리지 아니하며 곤궁 빈핍하다고 해서 세속에 영합하지 않아서 그것을 이것과 똑같이 즐겼다. 그 때문에 마음속에 근심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기생했던 외물이 떠나면 곧 앙앙불락怏怏不樂하나니 이로 말미암아 살펴본다면 비록 〈높은 벼슬이 찾아와〉 즐거움이 있었다 하더라도 처음부터 본연의 즐거움은 망실되지 않은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자기를 외물外物에 잃어버리고 세속에 끌려 자기의 본성을 상실한 자, 이런 사람을 일러 본말本末이 전도顚倒된 인간이라 한다.”
☞ 기락피여차동其樂彼與此同 : 피彼는 헌면軒冕, 곧 높은 벼슬아치가 됨이고 차此는 궁약窮約한 처지가 됨을 말한다. 높은 벼슬아치가 되건 곤궁하게 사는 처지가 되건 똑같이 도道를 즐겼다는 뜻이다.
☞ 금今 기거즉불락寄去則不樂 : 기寄는 우연히 찾아와서 기생했던 외물, 곧 헌면軒冕으로 대표되는 높은 벼슬을 말한다.
☞ 수악雖樂 미상불황<망>야未嘗不荒〈亡〉也 : 비록 〈높은 벼슬이 찾아와〉 즐거움이 있었다 하더라도 처음부터 본연의 즐거움은 망실되지 않은 적이 없었을 것임. 황荒은 황망荒亡으로 망실亡失의 뜻이다.
☞ 상기어물喪己於物 실성어속자失性於俗者 : 물物은 우연히 찾아온 높은 벼슬 따위이고 속俗은 세속적 가치로 높은 벼슬을 추구하는 마음을 의미한다.
☞ 위지도치지민謂之倒置之民 : 도치倒置는 본말本末과 경중輕重의 판단이 거꾸로 되었다는 뜻으로 바로 위의 ‘상기어물喪己於物 실성어속失性於俗’에서 보이는 것처럼 자기보다 외물을 중시하고 본성보다 세속적 가치를 더 중시하는 본말이 전도된 경우를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