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수레의 노래
박해영
늙은 남자가 수레를 끌고 간다
저녁 햇살이 패인 주름 위로 내려앉고
낡은 수레가 덜컹거리며
휘청이는 남자를 따른다
여전히 오리무중인 길 위에서
늙은 남자가 아니었던 남자의 이야기
빈 수레가 아니었던 수레의 이야기가
흰 머리카락을 흔들며 바람결에 들려온다
넘치도록 짐을 싣고도
먼지 나는 언덕길을 잘도 올랐지
움켜쥔 강철 손바닥
굳게 내딛는 발걸음에 내가 반했지
바퀴살도 그전 같지 않고 나무결도 자꾸 갈라지고 있네
늙은 남자가 빈 수레를 돌아본다
바람 한 줌
햇살 한 타래
귀뚜라미 우는 소리
들국화의 미소
이런 것들만 싣고 가자
네가 가벼워지는 만큼
나는 속이 비어가는 늙은 나무가 될 거야
노을 너머 하늘 마을이 곱다
어느 날 갑자기
박해영
모처럼
선선한 바람부는가 했더니
바로 그 바람에
느닷없는 곤두박질이다
까마득한 허공을 오르고 내리며
생각할 겨를도 없다
떨어져 나온다는 게 뭔지
그냥 한 줄기 바람이 불었고
튼실한 둥치도
흔들리던 가지도
햇살 아래 함께 빛나던 잎새들도
예고도 없이
준비도 없이
다 두고 떨어져 나왔다
낙엽 더미를 밟으며 뛰노는 아이들 위로
툭, 잎새가 또 진다
약력
박해영
1990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 「슈뢰딩거의 고양이」, 「명왕성에서 온 엽서」, 동인시집 「열쇠 하나」, 「열 개의 창문 」 외. 현재 경상남도 함양에서 농부 수업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