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5.14.화 새벽예배 설교
*본문; 왕하 1:1~4
*제목; 신앙의 바로미터
“1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하였더라
2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 있는 그의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매 사자를 보내며 그들에게 이르되 가서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이 병이 낫겠나 물어 보라 하니라
3 여호와의 사자가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 올라가서 사마리아 왕의 사자를 만나 그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4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엘리야가 이에 가니라” (왕하 1:1~4)
우리 구원의 조건은 매우 단순합니다.
하나님(예수님)의 주와 왕 되심을 믿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왕을 따르는 자녀들의 삶의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 우리는 우리 주님을 왕으로 고백하지만 그 삶은 주님을 바로 따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본질상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따르지 못하는 이상하고 안타까운 모습을 늘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애씀”을 믿음으로 여기신다고 했습니다. 늘 주를 따려르는 애씀이 믿음이고, 그 애씀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께 인정받고, 그 인정하심으로 인해 우리가 구원의 은혜를 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애씀”의 첫 번째 단추가 오늘 본문에 다시 등장합니다.
그것은 바로 무슨 일이든지 “여호와께 가장 먼저 여쭘”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지표인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백성이라면,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그것을 가장 먼저 주님께 여쭙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 세상과 우리 삶의 진정한 주관자시고, 이 모든 것이 주의 뜻대로 되어짐을 알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은 늘 그랬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참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받고 사랑받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합왕의 뒤를 이어 북이스라엘의 왕이 된 아하시야는 자신의 믿음 없음을 여기서 그대로 드러냅니다.
이스라엘을 섬기던 모압이 아합이 죽으면서, 이스라엘을 배반한 것입니다.
그러면 다윗 같으면, 하나님의 참된 믿음의 백성 같으면, 가장 먼저 하나님께 여쭈어야 합니다. ‘이를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요? 하나님?’
그러나 아하시야는 하나님께 여쭙지 않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크게 다칩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하나님께 회복을 간구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그의 믿음 없음이 여실히 증명됩니다.
그는 믿음 없을 뿐만 아니라, 여기에 죄를 더하여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이 병이 낫겠는지를 물어봅니다.
하나님께는 묻지 않고 간구하지 않으면서, 헛된 우상에게는 이렇게 묻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이 그렇지 않습니까?
늘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주관자되심을 고백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는 이 아침, 그 믿음으로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이 모습이 하나님께 믿음으로 여겨져 믿음의 놀라운 응답을 누리는 이 아침의 기도의 자리가 되시길 기도합니다. 아멘.
첫댓글 우리 믿음이 진정 바른 믿음이라면, 그 바로미터의 첫 번째가 바로 '무슨 일이든 가장 먼저 주께 묻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의 응답대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믿음의 삶입니다. 언제나 이런 믿음으로 살아갑시다. 그러나 실상은 우리도 '아하시야 왕'처럼 세상에 먼저 묻고, 세상을 따라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