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대의 종말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주가가 곤두박질쳤다. 1862년 의회가 화폐법을 통과시켜 ‘그린백(Gree Ack)이 발효되어 화폐를 발행하자 주식시장에 자금이 모인다. 전쟁특수로 공업과 농업이 활력을 얻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금 시장 시세조종이 발생했다. 국민이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동안 금 시세조종에 환멸을 느낀 링컨 대통령이 금 선물거래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를 두고 행정부가 조정할 힘이 없다는 것으로 받아들여 금값이 30% 오른다. 결국 정부는 시장의 압력에 굴복하고 법을 폐기한다.
1860년대 최고의 투기꾼은 ’다니엘 드루‘였다. 늙은 곰이란 별명으로 불리는 그는 교활하고 비양심적이며 지독한 까막눈이면서, 성격 좋고 후한 모습을 보였다. 미신을 믿으며 신을 부정하고, 과감하면서도 겁이 많은 성격 조합을 가진 인간이었다. 당시 월스트리트의 작전꾼에 ’레오나도 제롬‘은 주식폭락을 예측해 명사로 부상한다. 대담한 작전으로 탈출해 유럽으로 가버렸다. 그의 딸인 ’제니‘는 사우스 시 버불 당시의 전설적인 여성 투기꾼이던 말보로 공작부인의 후손 ’랜돌프 처칠’(처칠 수상의 아버지)과 결혼한다. 윈스턴 처칠 수상도 외할아버지를 닮아 주식시장에서 과감성과 냉정함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투기 열풍으로 미국에 증권거래소가 많이 설립된다. 오픈 보드는 석탄 저장고 창고에 싼 수수료로 24시간 거래를 했다. 지금 뉴욕 증권거래소가 된 곳이다. 시장에서 허위정보, 헛소문 등이 난무했고, 정보꾼, 불에 그을린 고양이, 미끼 등으로 불리는 거덜 난 투기꾼들이 매집세력들에 고용되어 투자자들의 매도를 부추겼다. 부패한 언론이 유용하게 장구를 치고 특종인 양 대서특필했다.
이리 철도 회사의 쟁탈전은 ’제이 굴드‘와 ’짐 피스크‘가 선두주자로 부상하는 계기가 된다. 두 사람은 기묘한 커플로 행상인의 아들이다. 이들은 예수 이후 최악의 인간이고 사기성이 농후하고 결점이 많았으며 비겁하기 짝이 없는 데다가 관대함이 없는 비열한 벌레와 같다는 평을 받는 사람들이다. 한마디로 악덕 자본가의 표본이었던 셈이다. 그들은 국가라는 조직이 정당성을 근거로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기 시작한 이후 미국과 유럽을 좌지우지했던 개인들 가운데 자장 강력한 인물들이었다. 그들은 미국의 입법부와 사법부를 주물렀고, 제한 없는 자금동원력을 휘둘렀다. 한 사회가 그들의 자비에 의존해야 했단다.
당시 미국 정부의 금 보유량은 1억 달러 수준, 유통 금은 1,500만 달러 수준이었다. 온스당 138달러의 금은 매집으로 145달러로 상승했다 순간에 135달러로 하락한다. 주가표시기가 출현한 이후 ”주식시세와 싸우지 말고, 시장에 대들지 말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즉 주식시장에서 쉽게 얻을 수익이란 없다는 의미로 시장가격이 적정가격을 반영한다는 의미이다. 효율적인 시장론자들은 투기꾼들이 ’가치‘를 발견하고 정보를 주가에 반영하기 때문에 가격이 출렁인다고 주장한다. 최신 정보에 따라 미래가격이 변동한다는 ’랜덤워크 설(Random Walk)은 소수 작전 세력이 대량매집으로 조작하는 변칙성을 의미한다. 증시의 속성은 3M( mystery 미스터리, manipulation 작전, margins 시세차익)으로 알려진 효율적 자본 배분이라는 이론적 기능을 수행하지 못 하게 하는 원인이다. 따라서 필요가 없는 곳에 철도가 건설되고, 증시가 없었다면 번창했을 회사들이 망가지며, 불필요한 은행파산이 발생한다.
1929년 가을 ”주가가 높은 고원에 이르렀다“고 경제학자 ‘어빙 피셔’가 선언했다. 몇 주 뒤 다우존스지수가 30% 이상 곤두박질쳤다. 세계증시 최악의 폭락이 시작됐다. 고전 기준 90%가 폭락한 것이다. 대공황이 발생한 것이다. 투기 세력은 두 부류다. 첫 번째가 자동차산업으로 돈을 벌어 증시에 투기를 벌인 부류다. “이들은 전통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주식투기에 제격이다. 제너럴모터스의 설립자 ‘크리포 듀랜트’가 대표이다. 두 번째 부류는 아일랜드 출신 부자들이다. 보스턴 교외에 이민 와 극장표를 팔며 생계를 잇던 ‘마이크 미핸’과 케네디 대통령의 아버지이면서 공항 직전에 주식을 매도해 엄청난 차액을 지켜낸 ‘조지프 케네디‘ 등이다.
신기술에 대한 투기꾼의 환상은 지속되어 자동차에서 라디오 비행기로 이어진다. 제너럴 모터스의 주가는 10배 이상 뛰었고 10년 전이 이 주식에 1만 달러를 투자했다면 150만 달러가 됐을 것이라 말할 정도이다. 라디오는 온 나라에 유행을 전파하는 구실을 했다. 그리고 대서양 횡단에 비행기가 성공하자 보잉사 주식이 인기종목이 된다. 무성영화에 목소리를 불어넣는 데 성공하자 영화사 인수전이 치열해진다. 투기꾼들은 마진론으로 돈을 끌어와 묻지마 투자를 벌인다. 뉴욕증시에서 우글거리는 군중들은 이성적인 사고나 판단보다는 주식으로 일확천금을 거머쥔 운전수와 농사꾼의 부인, 무용수들에 대한 루머를 믿었다 다음 기사를 보자
빈곤과 고통에서 해방된 미국을 꿈꿨고, 새로운 과학과 번영 위에 구축한 요술과 같은 체제를 보았다. 수백만, 수천만 대의 자동차로 가득 메워진 도로와 하늘을 뒤덮는 비행기들, 노동력을 절감할 수 있는 수많은 기계의 작동을 위한 전기공급 라인, 하늘을 찌를 마천루, 엄청난 석재와 콘크리트로 구출된 거대한 도시, 줄지어 달리는 도시의 자동차들, 잘 차려입고 앞날을 예측한 덕에 거머쥔 돈을 물 쓰듯 하는 남녀들 이것들 다음에는 무슨 일이 발생할까?
운명의 날이 1929년 9월 3일 찾아온다. 영란은행이 이자율을 올리고 미국 투신사 주식을 팔아치우며 원금환수에 들어갔다. 미국증시가 출렁이고 검은 목요일에 대폭락을 시작한다. 증시 공황에서 경제 붕괴로 이어지자 호텔 투숙객에 종업원이 자살한 것인지 잠을 잘 것인지를 물어서 투숙을 시킨다. 폭락은 11월까지 이어진다. 114달러이던 라디오 회사 RCA는 1932년에 2.5달러로 추락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증권감독 기관을 설립하여 초대 위원장에 작전 세력의 일원이던 조지프 케네디를 임명한다. 시대에 반하는 움직임을 보인 셈이다. 뉴딜정책은 개인주의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자유방임주의는 시장의 정부 간섭으로 대체되었다. 시장을 대신해 정부가 복지와 주택, 노동, 금융, 물가, 소득, 최저임금을 결정하고 이는 케인스의 ’일반이론‘에 근거한 것이다. 케인스는 투기의 치유책으로 자본이득에 과세를 주장했다. 단기차익보다는 장기투자 이익을 선호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투기의 속성인 이윤을 좇는 동물적 정신에서 자유롭고 이윤보다는 사회적 이윤을 추구할 수 있으므로, 정부가 투자자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논리로 유럽에서 국유화의 시대가 열린다.
후 버는 루스벨트와 민주당이 공포와 미국 사회의 불신을 키웠다고 주장했다. 금본위제 거부가 대중들의 화폐은닉을 촉발하게 시켰고, 1933년 은행의 줄도산을 유발했다고 주장하고 루스벨트가 증시폭락과 대공황의 원인이라 결론을 내린다. 1990년대 투기와 인터넷의 발달은 1920년대와 마찬가지로 연방준비제도 이사회가 유지한 저금리정책에 기인한 것이다. 임금상승률이 낮아 기업의 이익은 늘고 노동자는 미래의 이익을 담보로 신용카드 소비를 유지했다. 1990년대 미국인은 5천 만 명이 주식을 보유하고, 술집과 골프장, 클럽, 기숙사, 미장원, 텔레비전 토크쇼에서 주식이 화제가 되고 있다. 성인용 잡지 플레이보이에 퓨츠얼펀드가 등장할 정도다. 플로리다의 초등학교에서는 ’물질적 부와 주식시장’이라는 과목이 편성되었고, 학생들은 미래의 직업이 증권업에 진출한다는 포부를 밝힌다. 비즈니스 채널인 CNBC의 시청률이 주식 호황으로 가장 높은 신장세를 보이고 투자클럽이 10년 새에 6천에서 3만7천으로 늘었다.
뮤추얼펀드 수탁액은 1997년 4조2천억 달러로 이는 미국 전체 은행의 자산합계와 맞먹는 규모다. 개인들이 노후를 위해 저축해놓은 돈을 주식에 투자하기 때문에 증시가 장기간 유지될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증시는 한 가정의 재산을 모두 건 사람들이 10%의 이익을 얻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훌륭한 카지노”라고 말한 1920년대의 ’E L 스미스‘의 주장과 유사하다. ‘제임스 그랜트’가 ”buy and hod(매수 뒤 장기 보유)라는 말이 영어에서 I love You“를 밀어내고 가장 대중적인 세 단어 자리를 차지했을 정도다.
2021.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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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챈슬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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