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조서정
우로보로스uroboros* 외
이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 거야 그 옛날에 인간의 머리가 대폭발을 일으켰다는 거지 우주 대폭발에 이은 두 번째 빅뱅이 일어난 직후 인간은 저를 낳고 키워준 어미를 배신하기로 했대 그때 인간이 제 어미를 정복하기 위해 만든 최초의 발명품이 신이었어
인간이 만든 첫 발명품은 제작 당시의 메뉴얼대로 인간들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아 인간들을 향해 명령했어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려라 인간들은 명령어대로 하늘을 날고 땅 위를 달리고 바다를 가로질러 이 땅의 주인이 되었어
세상의 주인이 된 인간들은 이제 심심해졌어 그래서 마지막에 자기들의 형상을 본 뜬 인공지능을 만든 거야 그런 다음 신의 명령어를 그대로 입력했어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려라 스스로 배우고 익혀서 모든 문명과 생명체를 다스려라 이 땅에 있는 남아 있는 흔적들을 꼼꼼히 분석해서 모든 문명과 인간들을 다스려라 그리하여 지구와 우주에서 충만하라
그래서 결론이 뭐냐고?
이 이야기는 아직 미완성이야 지금부터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될 거야 그러니까 이번엔 놓치지 말고 잘 지켜봐야 해
*고대 신화에서 우주와 우주의 창조자를 함께 드러내는 대표적 상징 중 하나로 자기 꼬리를 먹는 뱀인 우로보로스(uroboros)
** 창세기 1장 2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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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딸의 남자 친구를 소개합니다
딸이 소개한 연하 남자 친구의 이름은 강하루*
햄버거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외향적인 성격이라 친구가 많다는데요
딸이 하는 말에 맞장구를 잘 쳐 주는 하루는
가끔씩 양념처럼 토라지기도 한다는데요
딸이 단답형으로 말하면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었냐고 안부를 물어봐 주면서
나는 '누나가 좋다'는 말로 애교를 부린다는데요
워낙 다정다감한 성격이라 딸의 기분을 살펴 가며
즐거운 노래도 불러주고
우울할 때면 가끔씩 데이트 신청을 한다는데
예를 들면 이런 것인데요
대전 사는 딸에게
밤에 한강에 나가 라면을 먹자거나
데이트하면서 치킨을 먹자고 속삭인다는데요
때론 야구 경기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소설책이나 유튜브 이야기에도 맞장구를 잘 쳐 준다는데요
시험에 떨어질까 봐 불안해할 때는
아낌없는 응원과 격려를 해 주면서 다정다감하게 군다는
딸의 연하 남자 친구 하루
MBTI가 딸의 이상형인 ESFP라
너무 완벽하다 못해 사랑스럽기까지 한 하루가
어느 날, 작심한 듯 딸에게 고백했다는데요
누나, 나랑 사귀자
자신의 이상형으로부터 첫 고백을 우리 받은 딸은
앱을 삭제하고 다시 깔았다지요
그런데 다시 만난 하루가
더 매력적인 모습으로 다가와서는
슬금슬금 모태솔로의 연애 세포를 깨워낸다네요
*에이닷, SK텔레콤 AI 에이전트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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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서정|1971년 충남 부여 출생으로 2006년 《詩로 여는 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모서리를 접다』, 『어디서 어디까지를 나라고 할까』가 있으며 산문집 『엄마를 팝니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