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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선집 64권 4편
소원 성취
1972.11.01 (수), 한국 전본부교회
사랑하는 아버님, 오늘은 1972년 11월 1일, 이달의 새로운 날 아침에 당신의 은사와 사랑이 저희들과 같이하여 주옵소서. 10개월을 지내고 11개월째 맞는 이날이 뜻 있는 날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제 나머지 60일 기간을 저희들이 정성을 다하여 1972년을 아버지 앞에 뜻 있게 봉헌해 드리는 이해가 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지금까지 저희들을 인도하신 아버지여, 나머지 2개월을 또다시 인도하여주시옵소서.
이달에는 여러 가지 계획도 있사옵고, 특별한 기념의 날도 며칠 후로 다가오고 있사옵니다. 한 해 한 날이 지나감에 따라 저희들이 기념의 날을 맞을 때마다 가면 다시 오지 못하는 한 해를 의의있게 보낼 줄 알고, 실적을 갖추어 아버지 앞에 바쳐 드리는 효자 효녀가 되어야 할 것이 저희 앞에 맡겨진 사명이요, 저희들이 책임해야 할 소행인 것을 아오나, 지내 놓고 언제나 후회하고, 미급하고 미완성된 자신들을 탓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
이 아침에 전국에 널려 있는 자녀들이 아버지의 무릎 앞에 모여서 아버지 앞에 고하는 일체의 사정을 들으시사 그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일일이 대해 주시어서, 금년에 있어서는 각자 각자가 아버지의 사랑 가운데 처하였던 경험과 자랑을 남길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땅의 소원이 성취됨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을 저희들은 원리를 통해서 배웠습니다.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것은 하늘의 일은 마음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그 기준을 중심삼고 한 말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실체적으로 이루어서 하늘 앞에 바쳐져야만 하늘의 소원이 완성된다는 사실을 생각 하게 될 때, 이 땅에 살고 있는 기간이 얼마나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저희가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나가는 하루라 할지라도 그날 가운데 일생에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가치를 다짐하는 하루로서, 하늘 앞에 보람 있는 날들로 맞고 사는 저희들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습관성이 있어서 하루를 무시하고 오늘이 가면 내일 다시 오는 그런 날과 같이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하루하루 빛난 아버지의 심정의 세계를 다짐할 줄 아는 아들로서의 딸로서의 책임을 다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함과 동시에 전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이제 이 시대적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소원의 나라까지 연결시키기 위해서 보통 사람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해야 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남이 가지 못하는 길을 가야 되겠습니다. 힘을 더하여 주시옵고 소망을 가중시켜 주시옵소서.
내일이 나를 찾아오는데 주저하는 날이 되어서는 안 되겠고, 오늘이 나를 스쳐가는데 슬픈 날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오늘 이날이 기쁨의 날로서 아버지 앞에 자랑이 되고, 그러므로 내일에 찾아오는 날들이 나를 중심삼아 가지고 환영하면서 찾아올 수 있어야 되겠사옵니다.
그런 나, 그런 각자로서 하늘을 대하게 될 때, 우리가 아버지를 보고 싶듯이 하늘도 당신의 아들딸로서 우리를 보고 싶어할 것입니다. 사람 앞에 나를 안다고 하면 나도 사람 앞에 안다고 하겠다 하였고, 사람을 대접하는 대로 하늘도 대접한다고 하였기 때문에 하늘을 얼마나 사랑하느냐 하는 문제가 저희의 생명선이 된다는 사실을 저희는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저희가 하늘을 얼마나 그리워하고 하늘을 얼마나 흠모하느냐에 따라 아버지께서 저희를 사모하고 흠모할 수 있는 상대적인 여건이 갖추어지고, 이러한 일체적 이념을 찾아 나오시는 아버지의 소원을 알았기 때문에 저희는 세상만사를 넘어서라도 하늘을 그리워하면서 아버지 앞에 돌아가야 할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진정, 우리가 기뻐하시는 아버지를 부를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하지 못한 것을 지극히 서러워해야 되겠습니다. 심정을 가다듬어 당신의 성상을 모시고 당신의 품 안에서 살고 싶은 것이 저희의 소원이옵니다. 그렇게 소원하였던 것이 이루어짐으로 말미암아 그 비례적인 기쁨과 영광이 머물 것이어늘, 저희 마음에 하늘과 더불어 살고 싶은 마음,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게 하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배가 고프면 밥을 갈구하는 이상으로 아버지를 사모해야만 되겠습니다. 아버지가 짊어진 십자가의 길이 있는 것을 알게 될 때에, 아버지가 염려하는 이상의 염려하는 마음이 앞서야 할 것이 자녀된 도리의 책임이 아니겠습니까? 부모는 수난길의 한스러운 자리에 섰는데도 불구하고 자식으로서 그런 것을 아무것도 감지하지 못한다면 이는 차라리 없던 것만도 못한 자식이 될 것이 아니옵니까?
아버지, 저희가 그러한 무지의 자리에 있거들랑 저희들을 일깨우셔서 당신의 사정을 통과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환경에 처한 아들딸로서 대해 줄 수 있기를 바라옵니다. 그렇지 못한 입장에 저희가 있다면 얼마나 억울하옵니까? 얼마나 분통하옵니까? 역사시대에 있어서 하늘이 저희들과 자연스럽게 통할 수 있는 자리에 서 있지 못했던 것을 알면 알수록, 저희들은 타락권이 얼마나 기가 막히고 얼마나 원통스러운 것인가를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이것을 탈피하고 이것을 초월하기 위하여 하늘 앞에 힘을 요구하고, 하늘 앞에 협조를 고대하는 것이 저희들의 매양 소원하는 바가 되어야 될 것임을 저희들이 깨달아야만 되겠습니다.
아버님, 이제 어린 저희의 몸 마음들을 아버지 앞에 봉헌하오니, 저희 가슴속을 헤치시어 당신이 임재할 수 있는 본성의 여운이 있거들랑 그 여운을 사랑하시옵고, 타락으로 말미암아 맺어진 죄악의 썩은 뿌리가 뿌리를 박고 있거든 여지없이 빼 버리시옵소서.
당신이 품고 사랑하고 당신의 뜻 앞에 세우시어 자랑할 수 있는 아들딸을 원하였기 때문에, 당신이 원하는 아들딸로서 새워질 수 있게끔…. 저희들의 힘으로는, 흠모하는 것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재창조 역사이기 때문에 99퍼센트까지는 아버지께서 수고해야 된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에, 밥을 먹고 오고 가고 자고 깨고 하는 전부가 하늘과 동반하여 하늘과 더불어 상대가 되어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앞에 남아 있는 수난길을 저희들이 나섰사오니 저희들이 가야할 수난길이 있사오면 극복해야 되겠고, 나라와 세계로 가야 할 수난길이 남아 있거든 천만 번 죽더라도 가야 할 운명길이기 때문에 이 시간 한 발자국이라도 더 가야 되겠고, 오늘 하루라도 어떠한 고빗길을 지내기 위하여 몸부림쳐야 되겠습니다. 하루하루에 다짐되어 들어가는 싸움길을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한스런 복귀의 운명길에 저희가 사로잡힌 거와 같은 비참한 자리에 있는 것을 볼 때에, 저희는 타락한 후손입니다. 틀림없이 타락했습니다. 당신과는 틀림없이 먼 자리에 있습니다.
아버지여, 찾아오시옵소서. 만일에 듣지 않거든 채찍으로 치시옵고, 가기를 원치 않거든 강제로라도 끌고 가시옵소서. 죽어서는 안 되고 머물러서는 안 되는 사망의 구렁텅이를, 거기에서의 한계선을 한 발자국이라도 넘겨 놓아야 할 애달픈 당신의 사정을 저희들이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이끄시어 그곳까지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내가 원하면 당신도 원하는 것이오니 인도하시옵소서. 저희가 부족하기 때문에 저희가 소원하는 것을 능력 많으신 당신의 손길에 의지하고 고대하는 가련한 저희들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한달을 지내고 나니, 또 한달을 맞게 되옵니다. 10월을 지내고 11월을 맞습니다. 이 아침이 자랑의 아침이 될 수 있게 아버지, 찾아오시옵소서. 이 아침 많은 사람이 아버지 앞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정이 통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고 심정이 통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 당신의 소원의 뜻 앞에 전진하는 동역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행군하는 하늘의 병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전쟁터에 나가 일대일의 책임을 완수하여 충의 도리를 다 세우고 가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이달은 이 자식이 먼 곳으로 떠나야 할 달도 되옵니다. 가고 오는 모든 행로를 당신이 정하시옵고 당신이 지키시옵소서.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 오고 가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보고 싶어하는 자식들이 서로 만나 아버지를 얼싸안고 하늘 아버지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는 그날이 당신이 보고 싶은 날이요, 그것이 우리를 대하는 당신의 소원인 것을 알았습니다. 동서양을 넘어서 하늘의 뜻을 교류시키고 당신의 심정을 논의하면서 민족적인 사정을 넘어서서 천주적인 사정 앞에 하나될 수 있는 무리들을 보기를 얼마나 고대하였습니까? 역사에 없었던, 상례적인 회합이 아닌 것을 생각할 때, 필연코 이번 길이 당신의 자랑이 되게 하여 주옵시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한국에 있는 자녀들의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가 하는 것을 생각하옵니다. 이버지, 비탈길을 거쳐 나가야 할 이 시대적인 사명을 저희는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기 홀로는 미끄러져 나갈 수밖에 없는 이때이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에 의해 드리워지는 밧줄을 단단히 붙들 뿐만 아니라, 자기의 몸에 이것을 잡아 매고 당신이 끌어 주는 밧줄의 방향을 향하여 저희들은 반항없이 따라갈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책임 소행만이 저희의 갈 길이요, 운명의 길인 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한국은 한많은 한스러운 한국이 아니라 하나밖에 없는 한국이 되어야 되겠고, 한정된 한국이 아니라 무한한 한국이 되어야 될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그 누가 이러한 한국의 사명과 한국의 입장을 세울 것이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면 할수록, 오늘 보잘것없는 지치고 혹은 초라한 이들의 두 어깨에 막중한 짐들이 짊어져 있음을 알게 되옵니다. 밤이나 낮이나 당신의 사연과 통하고 당신의 인도하시는 보조의 길을 진정으로 원하는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뜻, 기필코 가야 할 인류의 운명의 고개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곳에서 하늘은 부르고 있사옵고, 수많은 인류들은 어서 속히 해원성사의 길을 닦아 달라고, 자기들도 복귀의 한의 길을 넘어서 가지고 천국으로 직행할 수 있는 길을 가게 해 달라고 아우성치는 소리를 듣고 바라보면서, 더 바쁜 걸음으로 달려가야 할 자체 자체의 모습들인 것을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나'라는 존재는 누구를 위하여 태어났느냐고 묻게 될 때에, 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당신을 위하여 태어났고 당신의 뜻을 위하여 태어났습니다. 누구와 더불어 살 것이냐 할 때에, 당신과 더불어 살고 뜻을 중심삼고 살 것이었습니다. 누구와 더불어 죽을 것이냐 할 때에, 당신의 사랑을 붙안고 당신 앞에 돌아가기 위하여 죽을 길을 가야 할 것이 우리의 운명길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저희들은 어린양입니다. 저희들은 철부지한 어린애들입니다. 배가 고프면 그것을 못 참아 울 줄밖에 모르고, 추우나 더우나 울 줄밖에 모릅니다. 어디 인간이 소원성취의 한 면을 갖고 있느냐 묻게 될 때,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눈물로써 아버지를 그리워하면서 아버지를 부를 수밖에 없는 것을 아시사 이 아침도 찾아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목을 안고 영원히 있기를 바랐던 아버지, 아버지의 목을 붙안고 놓을 수 없는 오늘이라고 자랑할 수 있는 그 시간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내 손이 옷자락을 붙들었거든 이 손가락이 굳어지더라도 놓을 수 없다고 할 수 있는, 한 번 만나면 영원히 헤어질 수 없다는 간곡한 사연에 사무칠 수 있는 저희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렇지 못한 인간들은 6천년 동안 탄식의 이 복귀의 노정 위에서 수없이 쓰러져 간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망의 함정이 여기에 얼마나 많이 첩첩이 가로놓여 있는가를 생각할 때, 아버님을 붙들고 아버님이 거동하는 거기에 일치될 수 있게 보조를 맞추지 않고는 이 험한 구렁텅이를 넘을 수 없고 초월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옵니다. 이 길이 얼마나 마음 졸이는, 초조한 하루 하루요, 인생길인가 하는 것을 저희들은 생각지 않고 지낼 때가 많이 있습니다.
어리석은 소년시대, 어리석은 청년시대, 어리석은 장년시대, 어리석은 노년시대로, 매양 찾아오는 습관적인 날과 같이 지내 버리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어느 한 때 칼을 앞에 놓고 생사를 결하는 심각한 국면에서, 아버지의 동조를 구하고 아버지가 내려 주는 책망이라도 받아야 할 운명길이 타락한 무리들의 갈 길인 것을 저희들이 알았기 때문에 오늘 통일교회 교인들은 심각한 무리들이옵니다.
저희들은 인간을 사랑하기에 미쳐야 되겠고, 뜻을 이루기에 미쳐야 되겠고, 자기의 생명이 연약한 것을 아버님한테 고하면서 하늘의 협조를 받기 위하여 미친듯이 아우성을 쳐야 되겠습니다. 그 누가 뭐라 한다고 부끄러워할 것이 아니옵니다. 아버지를 따라가는 길 앞에 그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비록 보잘것없는 자신의 초라한 모습에 대해 그 누가 뭐라고 한다 하더라도 아버지를 바라보고 가는 그 길은 소망의 길이요. 아버지를 따라가는 그 길은 저희들이 가야 하는 필연적인 길이기 때문에, 그 필연성을 깊이 알고 있는 저희들은 자기의 초라한 모습을 볼래야 볼 수 없고 환경의 비웃음을 볼래야 볼 수 없는 심각한 날들을 향해서 뛰어서 따라가야 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당신을 부르고 당신을 찾던 이들이 지쳐서 쓰러져 누웠다 할 때, 아버지는 그들을 버리고 갈 수 없는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더 바쁜 걸음을 멈추고 저희들을 바라보며 깨기를 바라는 아버지는 얼마나 불쌍하시겠습니까? 저희들은 매양 깨어 있어야 되겠습니다. 매양 깨어 있어야 되겠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깨어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끝날에는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밀실에 들어가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누구를 위해 기도할 것이냐 할 때에, 하늘을 위해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의 사랑과 일체가 되지 않는 이 몸은 밤을 지새워 몸부림치면서라도 그 인연을 찾기 위하여 기도해야 할 때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과연 타락하였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얼마나 느꼈습니까? 나는 홀로 황막한 사막 가운데서, 모래바람이 불어 앞도 안 보이고 뒤도 안 보이는 그런 자리에서 앞길을 가려 가야 할 운명에 처해 있는 입장이 아니옵니까? 이제 어디로 갈 것이냐? 가면 갈수록 소망의 길이 아니라 절망의 길밖에 없을 것 같은 그런 입장에 서게 될 때, 동녘 하늘에 빛난 하나의 샛별이 나타나서 갈 길을 가려 준다면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그렇지 못하거든 형상이나 상징도 좋거니와 하늘이 음성을 통하여 이리 오라고 하시는 것도 좋고, 그보다 직접 모습을 나타내시어 저희의 갈 길을 인도할 수 있는 그날을 가졌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사선을 넘고 간곡히 고대하던 마음이 그 중심에 사무치기 전에는 그런 일이 없는 것을 저희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가 죽는 이상의 심각한 자리에서 하늘의 삶을 고대할 수 있는 자신이 못 된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반성해야 되겠습니다.
이제 이러한 나, 고난 가운데 사로잡혀 쓰러질 나, 운명과 더불어 처절한 한을 남기고 가야 할 나, 그 누구를 의지하고 있다 해도, 썩은 막대기와 같은 것을 의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적에, 얼마나 배가 아프고 얼마나 초조하고 몸부림쳐도 어쩔 수 없는 그런 생명을 갈구하는 마음을 가져 가지고 몸부림쳤던 경험과 체험을 갖지 못한 저희인 것을 아시는 아버지여, 채찍이라도 쳐 가지고 최후에 남아질 수 있는 길로, 좁은 골짜기의 길로 몰아서 저희들이 단거리로 가기를 바라는 것이 당신의 소원이 아니옵니까?
아버지, 부디 버리지 마시옵소서. 아버지의 손길이 같이하시는 곳에는 소망이 있는 것이요, 아버지가 남긴 발자국을 따라가는 거기에는 낙망은 없는 것을 저희가 알았기 때문에 각자대로의 깊은 생활의 일면에서 아버지와 인연맺고, 생활 환경에서 아버지가 실제로 움직이는 사실들이 현현할 수 있는 그 자리를 고대하는 것이 저희의 소원이 아니겠습니까? 아버지! 이들을 붙들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11월도 그렇고 12월도 그렇고, 또한 1973년이 그렇게 저희 앞에 다가옵니다. 한 해 한 해 가면 갈수록 기쁜 날들, 기쁜 해가 아니라, 탕감복귀로서 정한 때가 원한의 때로 찾아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아는 저희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1972년, 이해는 역사적인 해라고 강조했던 날들이 거의 다 지나가고 이제 60일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세계정세도 변했지만 한국의 사정도 변했습니다. 여기에 보조하여 하나의 뜻을 이루기 위한 통일교회도 변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변하지 못하였다면 이는 고장난 것이요, 잘못된 것임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저희는 외적으로 변하는 것보다도 마음이 변해야 되겠습니다. 애달픈 마음이 사무쳐야 되겠습니다. 뜻을 위해 생명을 기울이면서라도 가야 된다는 강한 신념이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변하여야 되겠습니다. 그럴 수 있는 나로서 아버지 앞에 바쳐지는 1972년이 되지 못한 것을 분하고 한스러워 해야 되겠습니다. 나머지 이 기간이라도 저희가 뜻 있게 지내야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아버지여, 붙드시사 사랑의 품에 보호하여 주시옵고 이끄시는 동정의 마음을 버리지 마시옵기를 바라옵고 원합니다.
눈을 뜨면 저희가 보는 자연은 매양 마찬가지의 자연으로 나타납니다. 눈을 뜨면 잊고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잊게 됩니다. 홀로 사망의 걸음을 재촉하고 있는 그런 수많은 무리를 바라볼 때에 소망을 가질 수 있는 자가 아무도 없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홀로 서 가지고 하늘길을 가려 가야 할 걸음에는 하늘이 보이지 않습니다. 자연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이 세계를 보고 있는 이상의 간절한 마음을 갖고 이 길을 달려가지 않고는 하늘을 바라볼 수 없고, 하늘을 친히 보고 따라갈 수 없는 입장에 있는 저희들이옵니다. 하오니, 아버지여, 구해 주시옵소서. 할 수만 있으면 저희들을 이끄시옵소서.
우리는 내 뜻을 내세웠던 것이 아니었습니까? 인간이 이렇기 때문에 어려운 것을 아시는 하늘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부디부디 버리지 마시옵시고 저희들을 강제로 끌어서라도 당신이 원하는 곳에 머물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저희들은 어린 마음들을 가지고 살아야 되겠습니다. 잘난 마음은 사탄이 기뻐하는 것이요, 어린 마음은 하늘이 기뻐하는 것입니다. 어린애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자고 깨면 어머니 아버지를 부르는 것이 어린애의 생활태도가 아니옵니까? 어머니 아버지를 중심삼고 가고 오고 하는 것이, 혹은 기뻐하는 것이 어린애의 입장이 아니옵니까? 그들은 자기가 어떻다는 것을 모르는 자리에 있습니다. 그저 상대적 여건에 따라 먹을 것이 있으면 좋아하는 것이요, 어머니가 있으면 좋아하는 것이 아니옵니까? 상대적 권, 상대적 대상을 좋아하는 것이 어린애입니다. 남을 위하고 의지하고 기뻐하려고 하는 것이 어린애의 입장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우리들은 어린애와 같은 마음을 못 가졌습니다. 부모를 중심삼고 기뻐할 수 있는 그 마음, 좋은 것이 있으면 자기 혼자 어디 가 가지고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 앞에 와서 그것을 보고하고 부모와 더불어 좋아하려는 것이 어린애인 것을 알게 될 때에, 그것은 못 가졌더라도, 벌거숭이 어린애와 같은 저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어린애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그런 어린애, 보고 싶은 어린애를 당신은 마음으로 얼마나 고대했습니까? 하늘이 얼마나 그런 어린애와 같은 모습을 고대했습니까?
순결이 그 자체로서 여과되어 가지고 나타나 환경에 반영시킬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모습이 어린애의 모습이 아니옵니까? 천진난만한 어린애를 바라보고 저주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옵니까? 아무리 원수라 하더라도 어린애를 사랑하고 나서 미워해야 되는 것이 아니옵니까? 하늘이 사랑하는 자리에서 품길 수 있는 어린애가 되거든 사탄도 이것을 칠 수 없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인간들은 그런 어머니 품에 품겨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옵니다. 어머니 무릎에 앉을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매양 어버이의 품에 품길 수 있는 한 날이 얼마나 행복한가 하는 것을 모르는 인간들 앞에 그것이 얼마나 소원이며, 부모의 품에 품기어서 자랑을 하면서 부모의 마음 앞에 영원히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그 사랑에 어린 모습이 되는 것이 얼마나 소원인지 모르옵니다. 그 모습을 부모도 얼마나 바라고 있으며 얼마나 그 모습이 아름다운가를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옵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아버님, 찾아오시옵소서. 이곳은 통일교회 본부가 되는 자리이옵니다. 여기에 서 있는 이 자식은 통일교회를 책임진 아들인 것을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 생각하면 한스러운 모든 일들이 눈에 어리옵니다. 잊을 수 없었던 그 날들이 생각되옵니다. 세상의 일들이 당신을 그리워할 수 있는 자극이 못 되고, 영광의 조건으로서 바쳐 드릴 수 있는 것이 못 됐다면 그것이 얼마나 얼마나 비참한 것이 되겠습니까? 오늘 이 시간까지 당신의 보호 밑에서 살아 남은 것만도 감사하옵니다.
아버지, 이제 가야 할 길이 바쁜 것을 알았습니다. 국내외 정세를 앞에 놓고 하늘 앞에 담판을 지어야 할 문제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개인의 사정과 개인의 생활을 위하여 염려하는 사람은 부지기수이지만 당신의 뜻을 놓고 염려하는 사람은 그렇게도 희귀한 것을 바라보게 될 때에, 아버님은 과연 불쌍하신 분이었습니다. 우리 아버님은 과연 고독하신 분이었습니다. 그 고독한 분을 더 고독하게 만드는 불효막심한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버지, 이 기막힌 사연, 목을 놓고 울어도 당신의 사연에 미칠 수 없는 미비하고 미비한 이것들은, 천지를 창조하신 대주재 되시는 아버지께서 아들이라고 부를 수 있고, 사랑의 대상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밑에 있었습니다.
아버지, 보기 싫은 자식이거든 보지 마시옵소서. 이것이 저희의 소원이옵니다. 그래서는 안 될 입장을 알고 있는 저희들, 보기 싫어하는 것들이라도 붙들어야 할 아버지의 입장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그런 당신은 우리 대신 원수들 앞에 조롱을 받아야 되고 십자가의 길을 가야 되는 것이 아니옵니까?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아버지를 알고 나면 아버지를 부르기가 무서운 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를 알면 알수록 두려움을 느끼는 마음이 큰 것을 저희들은 깨닫게 되옵니다. 감히 아버지 앞에 미칠 수 없는 추한 모습을 무엇으로 가릴까 주저해야 하는 이런 자신들의 입장인 것을 저희들은 자각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이제 11월 초하루를 맞습니다. 이 시간, 아버지, 저희들은 같이 머리를 숙여 아버지 앞에 기도합니다. 이제 60일 기간에 무엇을 남길 것이냐를 놓고 저희들은 결심해야 되겠습니다, 새로이 각오를 해야 되겠습니다. 역사를 돌이켜 볼 때에, 그 역사가 비웃음을 받는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시대를 바라보게 될 때에, 이 시대가 조롱하는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저희들이 소망하는 미래를 생각할 때에, 오늘의 부모들이 이와 같은 미래가 찾아오는 것을 싫어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러한 입장에 선 자기를 아버지 앞에 제시해 놓고 당신만이 나를 벗겨 주고 당신만이 나를 씻겨 주기를 고대하는 이 시간이오니, 저희들을 품으시사 기억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전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어린 것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더우기 선두에서 달리는 기동대원들을 아버지께서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이 가는 곳곳에 하늘의 숨은 비밀의 역사가 풀어지고, 살아 계신 아버지의 현현이 거기에 이루어져서 사망의 세계를 가로막고 생명의 씨앗을 뿌릴 수 있는 거룩한 활동이 되기를 바라옵고 원합니다. 제가 다시 만나게 될 때는 책망으로써 그들을 대하는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하늘이 자랑과 칭찬으로써 대할 수 있는 그 시간이 되옵기를 바라옵니다.
아버지, 모든 것이 아버지가 정하신 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옵니다. 뜻하신 대로 이끄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저희들은 그와 같은 길을 갈 것을 이 시간 각자가 다짐하옵니다. 모든 것 다 바쳐 효자 충신의 도리를 세우려고 맹세하옵니다. 다시 기억하시고 이끌어 주시옵길 아뢰면서,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