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에서 온 사람들의 나라' 타타르스탄을 아세요?
한국이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서양에 알려지기 시작한 시기인 고려, 그 고려 중엽 몽골의 침입으로 수도 개성은 물론 경주까지 함락돼 점령지를 무자비하게 파괴하는 몽골군이 지나간 곳은 초토화되었고 신라의 상징이었던 황룡사 9층탑은 불타 누란의 위기에 처한 고려는 불교의 힘으로 외적을 무찔러보려고 8만 대장경을 만든다.
그 무렵 몽골은 파죽지세로 동은 중국과 한반도에서 서쪽으로는 지금의 동유럽 헝가리까지, 중앙아시아는 물론 카스피해와 흑해연안과 오스만투르크의 터어키까지 영향권에 두는 거대한 제국을 세우는데 해가지지 않는다는 전성기의 대영제국이나 지구의 1/5을 차지했던 구 소비에트연방보다도 더 큰 지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제국을 건설했다.
몽골은 흑해의 크림반도와 지금의 우크라이나 그 동북쪽 볼가르인이 살던 지역에 킵차크한국 세우고 그뒤 카잔한국으로 이어지는데 그곳이 지금의 타타르스탄이며 크림타타르는 현재 우크라이나에 속해 있다.
타타르스탄은 240년간 지속되다가 1552년 러시아의 이반4세에게 점령돼 러시아에 합병당했으며 이질적인 문화와 인종과 종교적 갈등 근래 유전개발 등으로 끈임없이 러시아에서 분리하려는 성향을 보이고 있다.
타타르스탄의 '타타르'(현지 발음은 따따르)는 '동방에서 온 사람'이란 뜻이며 '스탄'은 광장 또는 영어의 land (잉글랜드, 뉴질랜드)와 같이 파키스탄, 아프카니스탄 등과 같이 쓰인다.
러시아 150개 민족(러시아인이 82%) 중 타타르족은 소수민족으로는 가장 인구가 많지만 타타르스탄 공화국은 타타르인이 51% 정도, 종교는 러시아인은 크리스트정교 타타르인은 이슬람교도로 오랜 역사와 수많은 문화재를 간직한 수도 카잔은 타타르 민족 마음의 고향이며 인구는 110만 정도이다.
카잔은 시가지 전체가 고색창련한 문화재이지만 가장 유명한 곳은 볼가강 언덕위에 세운 성채, 유네스코 등록 문화재로 러시아에서 유일한 타타르 민족의 유산인 카잔 크렘린이다.
크렘린 안에는 정교와 이슬람교의 유서깊은 사원이 함께 있으며 박물관과 미술관 대통령 집무실도 이곳에 있고 볼가강이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다.
(크렘린은 특정 건물명이 아니라 산이 없는 평원지역에서 외적을 막기 위해 강이나 언덕을 배경으로 쌓은 성과 부속건물들을 말하며 러시아의 오래된 도시엔 대부분 크렘린이 있다.)
타타르스탄은 우리와 뿌리를 같이한 몽골족이 세운 나라지만 800년 동안 이민족과의 혼혈에 의해 동양인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며 러시아인보다 키가 작고 일부는 아직까지 흑발을 유지하고 있다.
얼굴은 백인에 가깝지만 어딘가 모르게 동양적인 모습이 남아 있어 친밀감을 갖는 우리를 그들은 신기한 듯 처다볼 뿐이다.
공용어로는 알타이어에 속하는 타타르어와 러시아어를 함께 쓰며 관공서나 상점의 간판도 2개국어를 동시에 쓴다.
국립 카잔대학교는 타타르스탄은 물론 중앙아시아에서 인재들이 몰려드는 러시아에서도 전통있는 명문 대학의 하나이다.
사회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레닌과 유명한 시인 고리키도 이 대학에서 수학했기 때문에 '레닌의 집 박물관'과 '고리키 문학관'도 카잔에 있다.
타타르민족은 한때 세계를 지배하던 대제국의 후예들이지만 몽골족이라는 자부심은 잊어버린 듯하며 이미 주민의 반 가까이 러시아인들이 들어와 살고 있어 그들이 독립국가를 세우기는 힘겨워 보인다.
카잔은 세계에서 가장 물가가 바싼 모스크바보다는 좀 낮지만 서울과 비슷한 수준인데 국영상점은 비교적 싸지만 상품이 다양하지 못하고 민영상점은 터무니 없이 비싸다.
월급은 노동자나 대학교수 의사 등 별 차이가 없이 7,000~10,000루블 정도(40~50만원) 직장생활 외에 부업을 할 수 있는 직종이 여기에선 가장 인기 직업이다.
구소련 시절 중공업이나 군수산업에 진력하다보니 소비재 생산은 빈약해 주로 중국제품이 많이 들어와 있으며 야채와 과일은 우즈베키스탄에서 많이 수입한다.
전자제품는 한국의 삼성과 LG, 자동차는 현대.기아와 대우의 우주벡 공장 생산품이 많이 들어와 있다.
PC방은 전화국에서 운영하는 것과 개인 운영이 있는데 오전 8시부터 밤 9시까지 열며 전화국 PC방은 1시간에 32루블, 한국 돈으로 약 1500원이며 인터넷 이용이 대부분이고 게임은 거의 없다.
개인 인터넷은 속도가 느려 사이트에 한번 들어가는 시간이 10분이나 걸리며 한글 노트북에 연결해 문서 하나 작성하는데 몇 시간이 걸리고 PC방은 조금 빠르지만 한국 포털사이트를 볼 수는 있으나 한글 변환이 않되 한국 카페에 글을 올릴 수 없으며 USB에 저장해도 현지 PC방에서 연결되지 않는다.
카잔에는 한국의 마트와 백화점을 혼합한 형태인 스웨덴의 '이케아'와 최근 '레알'이라는 체인점이 문을 열었는데 한국 대형마트의 10배 정도나 되는 엄청난 규모이며, 우즈벡시장(중앙시장)과 베트남시장이라는 큰 재래시장이 2개 있는데 베트남시장은 베트남전쟁 때 그들을 도운 구소련이 베트남 난민 일부를 받아들였으며 그 난민들이 세운 시장인데 주로 중국상품을 들여와 도.소매를 하고 있었고 조선족도 여기서 장사하는 분이 있었다.
연변에서 온 조선족 신선생님이라는 분을 알게 되었는데 장사를 하며 인터넷으로 신학 공부를 하시는 분으로 지난 일요일엔 그분 집에 초대되어 조선족 몇 분과 함께 예배를 드리며 한국 음식도 대접받았다.
카잔에는 한국어교수 부부와 선교사 카잔대 유학생 등 한국인이 10여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연변에서 온 조선족이 20여명, 고려인도 상당 수 살고 있으며 그리고 탈북자도 있다고 하는데, 조선족은 우즈벡시장이나 베트남시장에 가게를 얻어 장사를 하지만 시민권이 없어 현지인을 대리인으로 두고 있고 불법체류자들이라 불안하긴 해도 생활은 괜찮은 편이라고 한다.
러시아가 사회주의 체제에서 시장경제로의 개방이 늦어 소비재가 부족하고 개인 소득도 아직은 낮은 편이나 광대한 국도와 풍부한 자원 그리고 속도를 더하는 성장은 머지않아 서구의 선진대열에 함께 하게 될 것이며, 자본주의가 무르익은 미국이나 일본 그리고 인적 물적 대국으로 향하는 중국보다는 우리의 자본과 기술이 시장경제로 전환하는 러시아의 풍부한 자원과 어우러진다면 상호 성장의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카잔은 이슬람 문화 속에 동양인의 숨결이 흐르는 러시아 속의 이방지대이며 성장의 로드맵을 그리는 단계지만 2013년 세계 유니버시아드대회를 한국의 광주광역시와 경쟁하여 유치한 도시며(아이스 하키가 유명함) 우리가 학교에서 비옥한 흑토지대라고 배운 이곳의 인근에서 유전이 개발되면서 활발히 도약하려는 유럽에서 제일 큰 강 볼가유역의 중심도시이다.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는 어느분의 말처럼
"한국의 젊은이여! 카잔으로 오라."
찬란한 문화와 예술의 도시에서, "바비인형보다 더 예쁜 미인들과 함께 당신의 웅대한 꿈을 펼처보라."
다음은 제가 이곳에 온 이유인 볼가강에 관해 쓰겠습니다.
'08, 10.17 카잔에서 손창열 드림.
출처:http://cafe.daum.net/dhdudtn2009/IxPn/74?q=%EB%9F%AC%EC%8B%9C%EC%95%84%EC%96%B4%20%EC%95%8C%ED%83%80%EC%9D%B4%EC%96%B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