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제12시단 을지사 초개 최성민 법사 /bbs]
법사로 생활하면서 가장 힘들 때는 사람들에게 싫은 소리를 해야 할 때입니다.
그러나 상대방의 잘못된 행동을 보고도 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은 내 욕심이 아닐까요?
부처님이 죽림정사에 계실 때 일입니다.
니간타 나타푸타라는 사람이 아바야 왕자를 통해 부처님을 비난하려 한 적이 있었습니다.
부처님께 '당신도 다른 사람에게 불쾌한 말을 하는지' 여쭤보고
만약 그렇다고 하시면 보통 사람들하고 뭐가 다른가 비난하고
만약 그렇지 않다고 하시면 교단의 화합을 해치려 하였던 제바닷다를 질책하셨던 일을 비난하려 하였습니다.
아바야 왕자는 부처님의 말씀을 논박하면 명성을 얻을 수 있다는 유혹에 빠져
부처님을 집으로 초청하여 그 질문을 하였습니다.
"존자님, 여래도 다른 사람에게 불쾌한 말을 합니까?"
지혜로운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왕자님, 그 질문에 대해 일방적인 대답은 없습니다."
아바야 왕자는 그런 질문을 드리게 된 경위를 설명하였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부처님은, 왕자의 무릎을 베고 누운 어린 아기를 보면서 말씀합니다.
"아기가 만약 입에 막대기 조각이나 돌을 집어넣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즉시 꺼내야 합니다. 아기의 입에서 피가 나더라도 손가락을 집어넣어 꺼낼 것입니다.
그것이 아기에 대한 자비심입니다."
부처님은 말씀합니다.
"여래는 진실되지 않거나, 상대방에게 유익하지 않은 말은
상대방에게 불쾌함을 준다 해도, 유쾌함을 준다 해도 말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진실되더라도, 상대방에게 유익하지 않은 말은 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진실되고 상대방에게 유익한 말은
상대방에게 불쾌함을 주더라도, 즐거움을 주더라도
말을 해야 할 적절한 때를 알아서 합니다.
여래는 중생을 향한 자비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 '아바야왕자의 경' http://cafe.daum.net/santam/IaMf/324
현명한 사람들은 이치에 어긋나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다만 진실된 말은 무조건 상대방에게 도움이 된다고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진실된 말이라도 상대방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말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진실되고 유익하다면 적절한 시기에 말씀한다고 하십니다.
적절한 시기는 언제일까요?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순간입니다.
우리는 많은 말을 하면서 살아가고, 대다수의 말들은 누군가를 향합니다.
상대방에게 잘못을 지적하거나 조언을 할 때, 우리는 그를 위해 말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말할 때 마음을 차분히 관찰해 보면, 그의 잘못이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그 불편한 마음을 해소하기 위해서 상대방에게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 잘못을 보면 분노나 짜증이 일어납니다.
상대방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도 우리는 말을 합니다.
그렇게 말을 하면 그런 마음이 잦아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준비가 안 된 상대방은 불쾌함을 느낄 뿐, 변하지는 않습니다.
그럼 그 말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결국 나를 위한 것일 뿐입니다.
사실 올라오는 격한 감정을 말로 표현하지 않고 침묵하기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럼 참아야 할까요? 참으라는 말씀을 드리기도 어렵습니다.
참으면 상대방에게 안좋은 감정이 쌓이고 마음이 답답해집니다.
쌓이고 쌓인 안좋은 감정은 가장 안좋은 방법으로, 극단적으로 표출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 감정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이 마음이 나에게도 상대방에게도 좋지 않음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받아들일 수 있는 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반드시 두 가지를 필요로 합니다.
감정에 휘말릴 때 마음을 관찰할 수 있는 '선정력'과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에 있는지를 아는 '지혜'입니다.
이 두 가지는 평소에 차분한 마음을 유지하고 참된 이치를 사유하고 관찰하는 수행에서 생겨날 수 있습니다.
수행은 출가수행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부처님의 제자들'이 반드시 수행을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아무리 마음을 관찰하여 지키는 선정과, 상대방을 위해 말할 때를 아는 지혜를 지녀도
상대방이 전혀 반성하지 않고, 조언을 받아들일 시기가 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기 전에 제자 아난다 존자가 묻습니다.
"찬다카 비구는 성미가 급하고 괴팍하여 욕지거리를 잘하고 말이 많습니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후에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부처님은 대답하십니다.
"여래가 열반하고난 후에는 찬다카를 위해 대중들이 침묵을 지키고, 그를 상대하지 말아라.
그러면 그는 부끄러움을 느껴 저절로 뉘우치게 될 것이다."
악한 마음을 지닌 이는 침묵으로 대하라는 말씀입니다.
스스로 뉘우칠 때까지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어떤 말도 의미를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가르침을 알면서도 '나는 알아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지키는 일과 지혜를 키우는 일을 포기하고 계신 분들이 많습니다.
분노에 휩싸였을 때 마음을 차분히 관찰하라는 것은 사실 누구에게나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해야 합니다.
사람이 가장 큰 기쁨을 느낄 때는 성장할 때라고 합니다.
차분한 마음으로 참된 이치를 배우고 관찰할 때
우리는 가장 큰 성장을 이룰 수 있습니다.
☞ 부처님도 어쩔 수 없는 사람 “나도 또한 죽여 버린다” http://cafe.daum.net/santam/IQZL/237
(아함경) 남의 허물을 지적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http://cafe.daum.net/santam/IaMf/87
※ 기심(機心)
옛날에 어느 농부는 해오라기와 매우 친해져서 어깨에 와서 앉기까지 했는데 아내에게 자랑을 했더니 한 마리 잡아오라고 했다. '해오라기를 잡아야지' 생각하고 강가에 나갔더니 그 날은 해오라기가 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잡으려는 기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의도하고 공작하며 이득을 노리려는 다른 은밀한 의도가 있는 것을 기심이라 하는데, 우리 조상들은 정의를 위한 폭로라도 그 배후에 무엇을 노리는 기심이 있으면 부정적으로 보았다. (김대중 비자금 폭로 정국 (97년 10월) 에 대한 어느 일간지 칼럼에서)
첫댓글 감사합니다()
"침묵을 지키고 상대하지 말아라"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있는 때에 말하라 하였는데 보통사람들은 그말을 받아 들이기 보다는
내가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변명을 하기에 더없이 좋은 찬스입니다.
뉘우치는 것도 그사람의 몫이므로 저 같으면 침묵하고 상대하지 말아라에 한표!!
예, 충분히 공감이 가는 말씀입니다.. ㅎㅎ ^^
고맙습니다 햇빛엽서님...^^
예, 저도 고맙습니다.. 은혜로운숲님.. ^^
네네 반성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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