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순희나는 글래들어 TV 문학관을 유티브로 다시본다.
한동안 법정스님의 글과 법정스님의 법문을 많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배웠던 등심불에 관한 생각이 났다.
그 때 그 등심불을 배우면서 불교의 輪廻, 業報, 착함 ,악함 그런것을 생각 하기도 했는데
한동안 TV에서 우리나라 문인들이 쓴 글을 배우들이 직접 연기해서 방송해주는 프로가 있었다.
아마 그때도 TV 문학관을 시청을 했었는데 시간 지나 다 잊어 버려 다시 핸드폰으로 시청을 해본다.
등심불 , 바라암 냄새 , 햇불, 그외 아직도 시청하지 못한 문학을 배우들이 연기하는 것을 다시 시청할 것이다.
등심불은 아마도 장순희 내가 시청하고 배운것중에 가장 마음에 남는 글 마음에 남는 因果應報에 대한 문학일 것이다.
그런데 부처님은 살생하는 것을 가장 싫어했는데 어떻게 인산이 자신의 몸을 부처님에 보시하게 나두었는지 그게 불교
에 대한 아직도 나에게 풀지 않는 의문점을 둔다.
자신의 산 육채를 불에 테워 부처님께 보시 하는 것은 불교진리에 위배되는 것 아닌지 ? 등심불에 이붓오누이를 위해
이붓형, 오빠가 자신의 몸을 부처님께 보시하다가 불에 탄 등심불 형상이 너무도 흉직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그것에 금을 옷으로 입혀 등심불이라 한다고 한다.
바라암은 결혼하지 않은 여자가 아이를 낳아 바라암이라는 암자에 있는 스님에게 아이를 길러 다라고 하며 어린 아이를 스님이 길렀는데
그 스님이 길를 아이도 스님이되어 친구처럼 같이 자란 여자이이를 좋아하다가 그 아이에게도 임심을 하게 만들고 파괴중이 되어
어디론가 갔다가 다시 바라암으로 왔을때 자신의 자식이 어린스님이되어 있는 그런 모습을 보고 자신은 업보가 많은 중생이라고 하며
어린 자식에게 사바세게에 있던 머리를 깍아 달라고 하여 어린 자식이 아버지 머리를 깍어 주는 그런 내용으로 끝난다.
예수는 동물을 양기양 잡아 예수님께 바치는 것 이웬 인간의 육체는 보시를 받지 않았다.
장순희 내가 아직 불도가 깊지 못해 이런 마음이 있는지는 모르나 불교의 생명중시 사상과는 조금 위배되는 것 아닌지 ?
문학은 인간의 마음을 기쁘게도 하고 슬프게도 하고 행복하게 만들기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