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찾아서] 어머니…… 이 땅의 나무 풍경을 가장 따뜻하게 완성하는 이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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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17]
한가위 명절이 며칠 앞입니다. 이맘 때면 조상님들의 묘를 찾는 발길이 잦아집니다. 성묘 준비로 먼저 벌초부터 해야 하니까요. 자연히 이 즈음 도로는 무척 혼잡하게 마련입니다. 게다가 또 다시 밀려오는 태풍으로 모두가 마음이 분주합니다. 저도 엊그제 연재 칼럼에서 써야 할 나무를 답사하기 위해 답사를 떠났는데, 길 위에서 참 긴 시간을 머물러야 했습니다. 강원도 정선까지 거의 여섯 시간 정도 걸린 듯합니다.
고향 찾을 설렘도 더불어 일어나는 때입니다. 고향에 홀로 남으신 늙은 어머니는 지금 어떻게 지내실까요? 고향 찾을 자식들의 설렘, 그 두 배 세 배, 혹은 열 배 백 배가 넘도록 고향에 돌아올 자식들 기다리는 마음으로 설레시겠지요. 벌써부터 고향 집 사립문을 활짝 열어놓고, 하염없이 동구 밖을 내다보고 계신 건 아닐는지요. 어쩌면 마을 어귀의 둥구나무 곁에 나와 앉아 신작로를 오가는 자동차들을 이리 기웃 저리 기웃 살펴보시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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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담양 봉안리라는 마을에 가면 꼭 그렇게 우리의 늙은 어머니들이 고향 떠난 자식들을 기다리기에 알맞춤한 나무 그늘이 있습니다. 담양 봉안리는 농촌 마을 가운데에서는 비교적 규모가 큰 마을입니다. 마을 어귀에서 먼저 만나게 되는 면사무소도 이 마을이 주변 다른 마을을 포함한 중심지라는 상징이겠지요. 그리 큰 건물은 아니지만, 면사무소가 있는 마을이라면 인근에서는 가장 큰 마을이겠지요. 면사무소 곁으로는 파출소도 있고, 소방서도 있습니다.
면사무소 앞에는 자동차 대여섯 대 정도를 세울 공간도 있습니다. 자동차를 세우고 면사무소 담장을 따라 이어지는 골목 안쪽으로 들어서면 빨간 간판이 돋보이는 예쁘장한 우체국이 반갑게 나그네를 맞이합니다. 손편지를 많이 쓰지 않기 때문인가요? 어디에서라도 우체국은 이유 없이 반갑습니다. 딱히 손편지를 써서 보내야 할 일이 없을 뿐 아니라, 우체국도 사실 손편지 배달보다는 다른 업무를 더 많이 하고 있지만, 우체국은 언제나 정겹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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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 앞으로 난 골목을 돌아들면 큰 나무 한 그루를 만나게 됩니다. 바로 담양 봉안리 은행나무입니다. 천연기념물 제482호인 키가 15미터나 되는 큰 은행나무입니다. 줄기 둘레가 8미터이고, 사방으로 펼친 나뭇가지의 폭이 23미터 정도 되는 나무이니, 무척 큰 나무임이 틀림없습니다만, 봉안리 은행나무는 특별한 느낌이 없는, 어찌 보면 큰 나무 가운데에는 매우 평범한 나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저 편안한 느낌을 주는 나무입니다.
주변에 울타리를 치고 가까이 다가서지 못하게 한 다른 천연기념물 나무들에서 느끼는 위압감이 전혀 없는 나무입니다. 나무가 서 있는 골목 한켠에는 2미터 정도 되는 높이의 단을 쌓아서 나무가 서 있는 자리를 보호하고 있지만, 누구라도 나무 줄기 가까이 다가설 수 있습니다. 단 아래에는 천연기념물임을 알리는 근사한 입간판이 있지만, 그렇다고 거리감을 느낄 만큼의 압도적인 건 아닙니다. 단 위에는 역시 여느 정자나무 아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평상이 놓여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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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나 그림을 그리기에는 매우 못마땅하다는 생각을 주는 전봇대와 어지러이 늘어진 전깃줄이 오히려 편안하게 느껴지는 건 나무가 뿜어내는 평범한 분위기 탓이지 싶습니다. 은행 열매를 탐스러운 청포도알처럼 주렁주렁 맺고, 차근차근 익혀가는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편안한 시골 풍경을 정겹게 즐길 수 있어, 좋았습니다. 사진을 찍는다거나 마을 누군가를 만나서 취재하는 것도 귀찮아 질만큼 나른해지는 여름날 오후였습니다.
그렇게 나른한 한낮의 시간이 조금 더 흘렀습니다. 그 사이에 나무 아래 쪽으로 난 길을 스쳐 지나는 노인들이 있어, 가벼이 인사를 올리기도 했지만, 이야기를 더 나누지는 않고 그냥 스쳐지나셨습니다. 그러던 중에 마을 안쪽에서 느릿한 걸음으로 나오신 한 노인께서 나무 그늘 안으로 들어와 평상에 걸터 앉으셨습니다. '나무 보러 왔다가, 나무 그늘이 좋아, 그냥 평상에 누워 있는 중이라'고 말씀 드리고 인사를 올렸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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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산댁'이라 불리는 할머니와는 나무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사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봉안리 은행나무에서는 그게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공연히 나무를 누가 심었는지, 당산제는 어떻게 지내는지 취재하듯 질문하는 건 이 나무 그늘에선 어울리지 않고, 또 소산댁 할머니에도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소산댁 할머니는 마치 오랫동안 가까이 지내온 이웃을 만난 것처럼 '어디서 왔느냐?' '몇 살이냐?' 같은 이야기를 편안하게 건네셨습니다.
그러다가 소산댁 할머니는 불쑥 '온 몸이 아파 죽겠어'라시면서, '이 나이 되면 안 아픈 데가 없는 법이여'라 하셨지요. 할머니 말씀에 '구순이 가까운 제 어머니도 그렇다'고 대거리하자, '어머니랑 같이 살아?'라고 물으셨어요. '어머니 아버지 다 모시고 산다'는 대답을 드리긴 했는데, 그게 잘못인 듯했어요. 제 짐작인지는 몰라도 소산댁 할머니의 눈자위가 갑자기 붉어지는 듯했거든요. '어머니는 자제 분이 몇 있으세요?'라고 물을 수밖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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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남이녀를 두었지'로 시작하신 소산댁 할머니의 이야기는 오락가락했지만, 자식은 여럿 두었지만, 모두가 사는 일에 바빠서 고향에 잘 오지 않는다는 말씀이었습니다. 할아버지도 이미 돌아가시고 홀로 남은 시골 집에서 아이들 기다리는 마음으로 온몸에 스며드는 알 수 없는 통증을 부여안고 살아가신다는 거지요. 자식들이 보고 싶지만,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피곤한 자식들을 어떻게 부르냐며, 전화조차 안 하신답니다. 그저 이제나 저제나 손주녀석들과 함께 고향마을에 찾아오기만을 기다릴 뿐입니다.
이야기 중간중간에 소산댁 할머니는 '같이 산다니, 좋으네' 라는 말씀을 여러 번 되풀이하셨어요. 바쁘게 살아가는 소산댁 할머니의 자식들을 야단칠 수도 없는 상황에서 공연히 노부모를 모시고 산다는 이야기를 한 듯해 고개가 숙여지고 죄송한 마음에 어찌할 바를 알 수 없었습니다. 아래의 링크는 나무 그늘에서 소산댁 할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오래 나누고 돌아와 쓴 신문 칼럼입니다. 칼럼에서 저는 시골 마을 둥구나무의 풍경은 나무 그늘에서 고향 떠난 자식들을 기다리는 늙은 어머님이 완성시킨다고 썼습니다.
[나무와 사람 이야기 (92) - 담양 봉안리 은행나무] 신문 칼럼 원문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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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의 명소,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 풍경. |
이번 추석에는 소산댁 할머니의 아홉 자식들 모두가 손에 손 잡고 고향마을을 찾을 수 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물론 홀로 계신 어머니를 자주 찾지 못하는 자식들의 마음이야 오죽하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면,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만, 그래도 소산댁 할머니가 이번 추석에만큼은 어린 손주들에 둘러싸여 활짝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오늘은 환중의 노모께서 복용하실 약을 받으러 병원에 가야 하는 날이네요.
이 땅의 풍경을 가장 아름답고 가장 따뜻하게 하는 마지막 한 점으로서,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을 한번 더 생각하는 하루였으면 좋겠습니다. 태풍 대비도 잘 하시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고규홍(gohkh@solsup.com) 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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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번 벌초때 고향에 갔더니 저의 노모님도 자식 안부보다
손주.손녀들 잘들있느냐고 물어보실때 마음이 뭉쿨 하더군요..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
고향, 큰나무, 어머니, 자식들... 이것들은 모두 하나로 묶여야 하는데 그걸 마음대로 못하는 어려운 시대에 우린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