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6일(수) 사순절 19일 – 하나님이 보고 계시니 안심하세요
말씀제목
– 하나님이 보고 계시니 안심하세요
말씀본문 – 창세기 16장 13절
“하갈은 "내가 여기에서 나를 보시는 하나님을 뵙고도, 이렇게 살아서, 겪은 일을 말할 수 있다니!" 하면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주님을 "보시는 하나님"이라고 이름지어서 불렀다.”(새번역)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개역개정)
말씀묵상
우리 나라 큰 병원에는 ‘중환자실’이 있습니다. 영어로는 Intensive Care Unit(ICU)입니다. ‘집중적으로 돌보아 주는 병실’이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중환자실이라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무거워지지만, ‘집중적으로 돌본다.’는 말에는 안도하게 됩니다. 많은 간호사들이 ICU를 ‘I see you’(내가 당신을 보고 있습니다)라는 말로 이해합니다.
하갈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에게 속한 여종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아기를 갖지 못한 사라는 하갈과 남편을 동침하게 했고, 그 결과 하갈에게 아기가 생겼습니다. 하갈이 임신한 이후 둘 사이에는 갈등이 생겼고, 사라의 학대를 견디다 못한 하갈은 광야로 도망칩니다. 광야라는 공간, 그리고 도망친 여자 노예라는 신분, 누구도 관심갖지 않을 상황에 놓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광야에서 그녀를 만나주십니다. 하갈은 자신이 만난 하나님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 “보시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했습니다. 하갈은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겨보고 계셨습니다. 놀랍게도 성경에서 하나님에 대한 고백을 최초로 했던 사람이 오늘 하갈입니다. 자신의 하나님 이해를 언어로 표현하는 작업을 ‘신학’이라고 한다면, 하갈은 최초의 신학자라고 불러도 좋겠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코람 데오’의 가치를 소중히 여겼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자는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윤리적으로 반듯하게 살자는 뜻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선한 의도이지만 우리를 긴장하게 만드는 면이 있습니다. 친구들끼리 재미있게 놀다가도 어른이 다가오면 긴장하는 청소년들처럼 말이지요.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을 『개역한글판』에서는 “나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장로교회에서는 지역교회 모임을 ‘시찰회’라고 부릅니다. 로마카톨릭이나 감리교회에는 ‘감독’이라는 직책이 있는데, 본래 성경에서는 ‘보살피는 이’라는 뜻입니다. 원래는 포근한 돌봄의 언어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긴장하게 하는 감시의 언어, 권위의 언어로 바뀌어져버린 것이 안타깝습니다.
사도 바울은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롬8:27)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형편을 보고 계실 뿐 아니라 마음까지도 살피시는 하나님을 의식하기를 훈련하십시오. 우리 마음에 일어나는 소망과 기대, 욕심과 불만 모두를 하나님께서 알고 계심을 인정하십시오. 이전에 몰랐던 내 모습이 보일 것입니다. 이전에 무시하거나 억누르던 감정도 수면 위로 떠오를 것입니다. 어떤 감정은 깊은 골짜기 같지만, 그 골짜기에도 은총의 햇살이 비추인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나는 도망쳤습니다. 삶의 무게를 감당하기 힘들어서, 미워하는 이들의 시선이 아파서 도망쳤습니다. 아무도 없는 곳에 갔는데, 여전히 나를 보고 계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이제 주님이 나를 보고 계시고, 돌보고 계심을 믿습니다. 이 믿음으로 내게 주어진 삶을 감당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