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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6년 9월 4일 금요일
[(녹) 연중 제22주간 금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미리 심판하지 말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을 할 수야 없지 않겠냐며,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주님께서 마음속 생각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4,1-5
형제 여러분, 1 누구든지 우리를 그리스도의 시종으로,
하느님의 신비를 맡은 관리인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2 무릇 관리인에게 요구되는 바는 그가 성실한 사람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3 그러나 내가 여러분에게 심판을 받든지 세상 법정에서 심판을 받든지,
나에게는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나도 나 자신을 심판하지 않습니다. 4 나는 잘못한 것이 없음을 압니다.
그렇다고 내가 무죄 선고를 받았다는 말은 아닙니다.
나를 심판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5 그러므로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미리 심판하지 마십시오.
그분께서 어둠 속에 숨겨진 것을 밝히시고
마음속 생각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때에 저마다 하느님께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그들도 신랑을 빼앗기면 단식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33-39
그때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33 예수님께 말하였다.
“요한의 제자들은 자주 단식하며 기도를 하고
바리사이의 제자들도 그렇게 하는데,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기만 하는군요.”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을 할 수야 없지 않으냐?
35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36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또 비유를 말씀하셨다.
“아무도 새 옷에서 조각을 찢어 내어 헌 옷에 대고 꿰매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만 아니라,
새 옷에서 찢어 낸 조각이 헌 옷에 어울리지도 않을 것이다.
37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된다.
38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39 묵은 포도주를 마시던 사람은 새 포도주를 원하지 않는다.
사실 그런 사람은 ‘묵은 것이 좋다.’고 말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의 도입부에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께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자주 단식하며 기도를 하고 바리사이의 제자들도 그렇게 하는데,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기만 하는군요”(루카 5,33).
자신들은 그토록 열심히 단식하며 기도하는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왜 자주 단식하지 않느냐고 따져 묻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을 할 수야 없지 않느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5,34-35).
예수님의 이 말씀이야말로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금육과 단식의 정신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희생되신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그 수난과 죽음이 가져다준 구원에 감사하기 위해 오늘날에도 금육과 단식을 합니다. 그러기에 금육과 단식은 무엇을 먹었고 먹지 않았는지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적어도 교회가 정한 그날만큼이라도 진지하고 성실하게,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생각하며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시간을 가졌는지의 문제로 생각해야 합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이, 신앙 안에서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의 말씀이 진정으로 바라는 근본정신이 무엇인지 깨닫고 이를 실천하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왕태언 요셉 신부)
이 세상을 즐기고 만끽하십시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어떤 대상을 바라볼 때, 우리는 오로지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 바라보고, 그걸로 평가하고, 단죄하는 경향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요즘 저도 그런 체험 종종 하게 됩니다. 쓰레기를 열심히 치우고 있을 때, 변기 뚫으러 갈 때, 트럭 몰고 나가서 대절 버스 짐칸에 있는 짐을 옮겨 실을 때, 대체로 사람들은 존중하는 분위기가 아닙니다. 말도 함부로 합니다. 그래서는 정말 안되는 데 말입니다.
눈으로 바라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시선이 있습니다. 마음의 눈이요 영혼의 눈입니다. 영혼의 눈은 곧 하느님 아버지의 시선이요 연민과 측은지심의 시선이요, 너그럽고 관대한 시선입니다.
언젠가 공동체에 비상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한 형제가 문제를 해결하느라 미사 시간 직전까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내려왔다, 올라갔다 하다가 겨우 해결을 했습니다. 미사 시간에도 늦었고, 성당에 들어왔는데 몰골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손과 발이 흙투성이인데다, 땀에 절은 티셔츠에서는 쉰내가 펄펄 났습니다.
그 모습을 본 한 형제, 영적 생활에만 몰두하지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형제는 땀 흘리며 들어온 형제를 마음으로 단죄합니다. ‘저 형제는 맨날 미사 시간에 늦어. 그리고 이 거룩한 미사에 옷차림이 저게 뭐람. 해도해도 너무 하구먼.’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딱 그랬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꼬일대로 꼬였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외칩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자주 단식하며 기도를 하고 바리사이의 제자들도 그렇게 하는데,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기만 하는군요.”(루카 5,33)
사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먹고 마시기만 한 것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이 지방 저 지방 두루 다니면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했습니다. 스승님을 도와 끊임없이 몰려드는 군중들의 질서를 잡아주었고, 스승님으로부터 치유의 은사를 받아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려주기도 하면서 쌍코피 터지도록 사목을 했습니다.
그러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에게 그런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전도 여행하느라 너무 배가 고파 오랜만에 잔칫집에 가면,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있을까 싶어, 원없이 먹고 마시던 그런 모습만 기억하고 헐뜻고 있는 것입니다.
제 개인적으로 예수님의 제자들이 신나게 먹고 마셨던 모습, 너무나 마음에 들고 재미있기도 합니다. 그렇게 제자들이 마음껏 먹고 마시게 놔두신 예수님도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 보내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물론 예수님을 본받아 열심히 하늘나라를 선포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도 중요하겠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측면도 무시하지 못합니다.
영혼을 지닌 우리지만 엄연히 육체도 지닌 우리입니다. 기도도 열심히 해야 하지만, 육체의 건강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고 잘 숙성된 포도주도 원 없이 마시고 마음껏 즐기고 만끽하라고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셨다고 확신합니다.
오늘 우리가 새날을 맞이하고, 새 아침 눈을 떴다면, 그것은 하느님께서 또 다시 우리를 축복하시고, 우리에게 새로운 하루를 선물하셨다는 확실한 징표입니다. 하루 하루 눈뜨는 것이 사실 기적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밤에 떠날텐데 말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이 세상을 즐기고 만끽하는 것입니다. 우울한 표정은 멀리 떨쳐버리고 매일 매 순간 천국을 앞당겨 사는 것, 얼마나 행복한 일이겠습니까? 그렇게 사는 것이 우리 주님께서 간절히 바라시는 바입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휴가 중에 동창 신부님을 만났습니다. 저와 동창 신부님은 1982년 같은 본당에서 함께 신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같은 날 같은 출발선에 섰지만, 두 사람의 기질과 성격은 달랐습니다. 신부님은 정해진 길을 반듯하게 걸어가는 성향이고, 저는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성향이었습니다. 우리의 모습은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을 떠올리게 합니다. 숲속에서 두 갈래 길을 만난 나그네는 두 길을 모두 갈 수 없기에 한 길을 선택합니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습니다. 한 사람이 모든 길을 다 걸을 수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익숙하고 안전한 길을 선택하고, 어떤 사람은 낯설고 새로운 길을 선택합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길이 더 훌륭한가를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선택한 길을 얼마나 성실하게 걸었는지, 그리고 그 길에서 하느님의 뜻을 얼마나 충실하게 찾았는지가 중요합니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지와 사랑’에도 서로 다른 두 인물이 등장합니다. 나르치스는 수도원에서 규칙과 학문, 절제와 성찰을 통해 진리를 찾습니다. 반면 골드문트는 수도원을 떠나 세상을 여행하며 사랑과 고통, 아름다움과 죽음을 체험하면서 삶의 진실을 배웁니다. 한 사람은 책과 규칙을 통해 배우고, 다른 한 사람은 만남과 체험을 통해 배웁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에게 없는 것을 상대방에게서 발견합니다. 지혜만으로는 삶이 메마를 수 있고, 체험만으로는 삶의 방향을 잃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 다른 두 길은 대립하는 길이 아니라, 더 깊은 진리를 향해 서로를 비추어 주는 길이었습니다. 신학생 때 본당 신부님께서는 저와 동창 신부님의 성향을 잘 알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동창 신부님에게는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는 일과 첫영성체 교리를 가르치는 일을 맡기셨습니다. 차분하고 꼼꼼하게 자료를 정리하고, 아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는 일이 신부님의 성격에 잘 맞았습니다. 반면 제게는 여름 캠프에 함께하도록 하셨고, 주로 성당 밖에서 움직이는 일을 맡기셨습니다.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밖으로 나가 활동하는 것이 제 성향에 더 잘 맞았기 때문입니다.
사제가 된 후에도 우리는 걸어온 길은 달랐습니다. 동창 신부님은 주로 본당에서 사목하였고, 신학교에서 학생들을 돌보았습니다. 신자들과 오랫동안 함께 지내며 공동체를 돌보고, 후배 신학생들을 가르치는 길을 걸었습니다. 저는 본당 사목을 8년 정도 하였고, 오랫동안 교구청에서 일했습니다. 새로운 사목을 기획하고 여러 단체와 사람을 만났습니다. 캐나다, 뉴욕, 달라스에서 지내며 해외 생활도 어느덧 10년이 넘었습니다. 은퇴에 관한 생각도 다릅니다. 동창 신부님은 정해진 나이까지 사목하고 은퇴하고 싶다고 합니다. 저는 가능하다면 정해진 나이보다 조금 일찍 은퇴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생활 방식도 다릅니다. 동창 신부님은 혼자 식사를 준비하고 생활하는 것이 힘들다고 합니다. 저는 해외에서 오랫동안 혼자 지내다 보니 장을 보고, 음식을 준비하고, 혼자 생활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같은 날 신학교에 들어왔고 같은 사제의 길을 걸었지만, 살아가는 모습과 생각은 이처럼 다릅니다.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은 예수님께 묻습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자주 단식하고 기도하며 바리사이의 제자들도 그렇게 하는데,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는군요.” 그들은 신앙생활의 기준을 단식과 규칙에 두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신앙의 중심이 규칙의 횟수나 외적인 모습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기뻐해야 하고, 신랑을 빼앗길 때에는 단식하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새 포도주는 아직 발효 중이기 때문에 계속 움직이고 팽창합니다. 낡고 굳어진 가죽 부대에 넣으면 부대가 터지고 포도주도 쏟아집니다. 새 포도주를 담으려면 부드럽고 유연한 새 부대가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 새 포도주는 무엇이겠습니까? 새 포도주는 새로운 성격이나 특별한 재능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하는 것만이 새 포도주도 아닙니다. 오래된 전통을 버리고 새롭게 행동하는 것만을 뜻하지도 않습니다.
새 포도주는 하느님을 향한 새로운 열정이며, 예수님을 향한 사랑입니다. 복음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이웃을 사랑하며, 하느님의 뜻에 자신을 내어 맡기는 살아 있는 믿음입니다. 아무리 새로운 일을 하여도 사랑이 없다면 낡은 포도주가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오래된 전통과 규칙을 지키더라도 그 안에 사랑과 열정이 있다면 언제나 새 포도주가 될 수 있습니다. 새 포도주를 담는 새 부대는 열린 마음입니다. 나와 다른 사람을 인정하는 마음입니다. 내가 걸어보지 않은 길에도 하느님께서 함께하심을 믿는 마음입니다. 상대방을 내 기준에 맞추려 하기보다, 그 사람에게 주어진 은사와 사명을 존중하는 마음입니다. 나르치스는 골드문트가 필요했고, 골드문트는 나르치스가 필요했습니다. 저에게는 동창 신부님과 같은 성실함과 반듯함이 필요하고, 동창 신부님에게는 제가 걸어온 새로운 길과 다양한 체험이 작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길을 걸어갑니다. 가정에서 살아가는 모습도 다르고, 일하는 방식도 다르며, 신앙을 표현하는 방법도 다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담아야 할 포도주는 하나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열정, 예수님에 대한 사랑, 이웃을 향한 자비입니다. 서로의 차이를 판단하기보다 서로의 은사를 인정할 때, 우리 공동체는 새 포도주를 넉넉히 담을 수 있는 새 부대가 될 것입니다.
“무릇 관리인에게 요구되는 바는 그가 성실한 사람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여러분에게 심판을 받든지 세상 법정에서 심판을 받든지, 나에게는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함께 닮은>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을 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루카 5,34)
믿음과 함께 믿음 닮은 믿음
홀로와 함께 홀로 닮은 홀로
희망과 함께 희망 닮은 희망
고난과 함께 고난 닮은 고난
사랑과 함께 사랑 닮은 사랑
아픔과 함께 아픔 닮은 아픔
기쁨과 함께 기쁨 닮은 기쁨
슬픔과 함께 슬픔 닮은 슬픔
채움과 함께 채움 닮은 채움
비움과 함께 비움 닮은 비움
낮춤과 함께 낮춤 닮은 낮춤
오름과 함께 오름 닮은 오름
빚음과 함께 빚음 닮은 빚음
있음과 함께 있음 닮은 있음
죽음과 함께 죽음 닮은 죽음
부활과 함께 부활 닮은 부활
오늘의 성인
성녀 로살리아(팔레르모)(St. Rosalia of Palermo)
신분 : 동정녀, 3회원
활동지역 : 비테르보(Viterbo)
활동연도 : 1234?-1251/1252년
같은이름 : 로싸, 로즈
13세기부터 시실리아에서는 성녀 로살리아 공경이 보편화 되었으나, 옛 순교록에는 그의 생애가 기록되지 않고 있다.
스틸팅 신부의 연구에 따르면, 성녀 로살리아는 젊어서 고향을 떠나 시실리의 비보나 교외 몬떼 꼬쉬나의 어느 동굴에서 은수자로 살았다.
후일 그녀는 팔레르모에 페스트가 유행했을 때, 그녀는 이 도시의 주민을 구했기 때문에 그녀가 팔레르모로 주민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으며, 그녀의 은둔소 위에 큰 성당을 세웠다.
1624년 이탈리아의 팔레르모 시에는 무서운 페스트가 발생하여 어떠한 치료 수단도 효과 없이 희생자가 속출했으며 사람들도 매우 불안했다.
사람들은 하느님의 도우심 외에는 구할 길이 없다하여 모든 성인의 호칭 기도를 외우며 시가행진을 했는데, 이상하게도 마치 주님의 묵시나 받은 듯이 제각기 다른 길로 열지어 가는 성가대원들이 성녀 로살리아의 이름을 호칭 기도문에 덧붙여 노래했다.
더구나 이상한 것은 이 행렬이 끝나자 그처럼 맹위를 떨치던 열병도 즉각 멈추었다는 것이다.
로살리아는 어렸을 때에 부친과 같이 팔레르모에 와서 부친이 왕궁에서 근무하는 동안, 그녀는 왕비 마르가리타의 총애를 받아 그 감독 하에 좋은 교육을 받았다.
성년이 되어 어떤 귀족에게 출가시키려는 무렵 로살리아는 돌연 종적을 감추었다.
그녀는 우선 어떤 수녀원에 숨었다가 곧 인기척 없는 동굴 속에서 살았다.
그 소재지를 안 사람을 왕비 마르가리타 뿐이었으며, 그녀는 더 조용한 장소를 로살리아에게 택하여 주며 일생을 그 곳에서 지내도록 했다.
로살리아는 기도와 묵상으로 세월을 보냈다.
비바람을 가릴 만한 집이 페레그리노 산 위에 있었는데, 때때로 한 신부가 찾아와 그곳에서 미사를 지내 주었다.
로살리아가 아무도 모르는 이런 산중에서 일생을 마쳤으므로 그녀의 죽음과 묘지를 안 사람도 극히 드물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녀의 묘소와 그녀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셨다.
팔레르모에서 시가행렬이 끝난 후였다.
성녀는 어떤 노인에게 나타나서 "페레그리노 산에 가 보세요, 거기에 내 무덤이 있습니다"했다.
노인이 가보니 과연 가르쳐 준 장소에 무덤이 하나 있었다.
그래서 무덤을 헤쳐보니 한 부인의 시체가 나왔다.
생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러나 과연 성녀 로살리아의 시체인가?
이런 의문을 둘러싸고 의사와 신부들이 면밀한 조사를 한 결과 거의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는데, 여기서 새로운 증거가 나타났다.
즉 묘지의 동굴 속에서 발견된 돌 한개에는 성녀 자신이 새겼는지 혹은 다른 사람이 새겼는지 다음과 같은 글이 기록되어 있었다.
"퀴스퀴나 및 로제스의 영주 시니발도의 영양 로살리아는 하느님의 사랑을 위해 동굴에 거처하기로 정했다."
팔레르모 시민들은 즉시 그녀를 주보 성녀로 결정했다.
성녀가 살던 곳에는 아름다운 성당을 건립하고, 주교좌 성당 옆에는 조그마한 성당을 세워 그곳에 성녀의 유해를 안치했다.
성녀 로살리아는 팔레르모 시민의 신뢰를 어기지 않고 주보로서의 임무를 다했다.
우선 전술한 페스트 종식을 시작으로 1693년의 대지진 때에도 구원의 손을 뻗쳐 다른 도시 촌락에서는 수많은 사상자가 났었지만 팔레르모 시민만은 그 참화를 면했다.
그 뒤 성녀 로살리아에게 대한 흠모는 각국에까지 퍼졌고, 특히 페스트와 지진에 대한 구원의 성녀로 공경을 받게 되었다.
성녀 로사 (Rose)
활동년도 : 1234-1252년
신분 : 동정녀, 3회원
지역 : 비테르보(Viterbo)
같은 이름 : 로싸, 로즈, 노사, 노싸
이탈리아의 비테르보에서 태어난 성녀 로사(Rosa)는 병을 앓던 8세 때에 성모 마리아의 환시를 보았는데, 이때 성 프란치스코의 수도복을 입으라는 말씀을 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후에도 집에서 그냥 지내면서 평범한 여성으로 자랐다. 병에서 회복된 그녀는 평신도의 회개 복장을 하였고, 우리 주님의 고난을 더욱 절실히 체험하게 되었으며, 죄인들의 무례함과 배은망덕을 대신 속죄하였다. 그 후 12세경부터 그녀는 타오르는 하느님의 사랑을 이길 수 없어 거리로 뛰쳐나가서 설교하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그 당시의 정치 지도자들에게 무수한 경고를 하였다. 그로 인해 그녀는 집에 감금되었고, 만일 다시 정치 지도자들을 비방하면 사형에 처한다는 경고를 받았다. 결국 성녀 로사와 그녀의 부모는 추방되어 소리아노(Soriano)로 갔는데, 여기서 그녀는 그 당시의 독재자인 프레데릭 황제의 죽음을 예고하였고, 그것은 꼭 13개월 후에 일어났다. 이때부터 그녀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고 고향으로 귀향할 수 있었다. 그 후 그녀는 비테르보에 있던 로사의 성 마리아 수녀원 입회를 청했지만 거절당하였다. 그래서 그녀의 본당사제가 성당 곁에 수녀원을 만들고 몇몇 동료들과 함께 살도록 주선하였으나 집으로 돌아와서 곧 운명하였다.
성 마리노 (Marinus)
활동년도 : +4세기?
신분 : 부제, 은수자
지역 : 산 마리노(San Marino)
같은 이름 : 마리누스
성 마리누스(또는 마리노)는 달마티아(Dalmatia) 해안의 사람으로 채석공이었다. 그는 리미니(Rimini)의 성채를 재건한다는 소문을 듣고 다른 석수 레오(Leo)와 함께 그곳에 가서 몬테 티타노(Monte Titano)의 채석장에서 일하였다. 그들 가운데에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중노동을 하고 있던 일단의 신자들이 섞여 있었다. 성 마리누스와 레오는 그들을 위로 격려하면서 또 다른 개종자들을 얻고 있었다.
그 후 레오는 리미니의 주교로부터 사제로 서품되어 몬테펠트로 갔고, 성 마리누스는 부제가 되었으나 이전의 석공 일을 계속하였다. 12년 동안 그는 수로공사 일을 하면서 뛰어난 기술자일 뿐만 아니라 신자 노동자의 모델로 추앙받았다. 그러나 불행한 일이 발생하였는데, 한 달마티아 여인이 그를 자기 남편이라고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는 즉시 부인하지 않고 가만히 물러나서 몬테 티타노로 가서 숨어 살았다. 그 후 그는 계속하여 은수자 생활을 하며 여생을 지냈는데, 그가 살았던 곳을 중심으로 하여 오늘날의 산 마리노 도시가 탄생하였다.
성 모세 (Moses)
활동년도 :
신분 : 구약인물, 예언자, 율법학자
지역 :
같은 이름 : 모이세스
성 모세(Moyses)는 출애급 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요 예언자이자 율법의 중개자였다. 그의 절대적인 권위는 구약과 신약성서 시대는 물론 오늘날가지 이스라엘의 율법이 ‘모세법’이라고 불리는 전통이 철저히 지켜지는 데서도 드러난다. 구약성서의 모든 신학이 흘러나오는 가장 중요한 원천이 ‘출애급 사건’과 ‘시나이 산 계약’이라고 한다면, 야훼 하느님이 모세를 선택하여 이 해방 사건과 계약의 중개자로 삼은 것은 바로 이스라엘 안에서 모세가 가지는 절대적인 권위의 근거가 된다. 출생에서부터 특별한 일화를 남기고 있는 모세는, 비록 모세오경 외의 구약성서에서 그 이름이 자주 언급되지는 않지만 율법 중심의 이스라엘 사회에서 계약과 율법의 중개자로서의 그 독보적인 권위는 확고하다.
출애굽기 1장에 의하면 모세는 불어나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고 위협을 느낀 이집트의 왕 파라오가 이스라엘 백성이 낳은 자식 가운데 사내아이를 모두 죽이도록 명령한 시대에 태어났다. 그는 레위 지파에 속한 아므람과 요게벳 사이에서 태어났고, 그의 누이는 미리암이었으며 형제로는 아론이 있었다(출애 2,1; 6.16-20; 7,7; 민수 26,59; 1역대 23,12-14). 모세의 부모는 파라오의 눈을 피해 석 달 동안 기르다가 더 이상 숨기가 어려워지자 왕골 상자에 아기를 넣고 강물에 띄웠다. 파라오의 딸인 공주가 그 상자를 발견하고 아이를 안아 들자, 이를 지켜보던 아기의 누이(미리암)는 아기의 친어머니를 유모로 소개하여 아기는 다시 어머니의 품에서 자라다가 파라오의 딸에게로 보내졌다.
모세는 공주의 양자로서 이집트 궁중 안에서 성장하였다. 청년이 된 모세는 어느 날 이집트인이 한 히브리인을 때리는 것을 보고 그 이집트인을 쳐 죽여 몰래 모래 속에 묻어 버리지만, 이 일이 탄로난 것을 알고는 광야로 도망을 갔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시뽀라라는 여인과 결혼하고 장인 르우엘(혹은 이드로라고도 함, 출애 2,18; 3,1; 4,18; 18,1)의 집안에서 양 떼를 치는 목자 생활을 하다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불꽃이 이는 가운데에도 타지 않는 떨기 가운데 신비로이 나타나신 야훼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극심한 노역에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셨고, 또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과 맺은 계약을 기억하신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모세에게 이집트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해 당신이 약속하신 땅 즉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데려갈 것을 명하셨다(출애 3,1-12).
야훼 하느님의 사명을 받고 파견된 모세는 이집트의 왕 파라오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 야훼를 섬길 수 있도록 해달라는 말을 전하지만, 파라오는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에게 노역을 더욱 심하게 부과하여 모세는 같은 민족들로부터 원성을 듣게 되었다. 모세는 파라오의 고집을 꺾기 위해 야훼의 말씀에 따라 이집트 땅에 열 가지 재앙을 선포하였다. 결국 열 번째 재앙에 파라는 굴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 주었다. 모세는 백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해 나오지만 곧 이집트 군대의 추격을 받았다. 이 때 갈대 바다가 갈라져 이스라엘 백성이 걸어서 바다를 건너고, 뒤쫓던 이집트 군대는 갈라진 바다 한가운데에서 다시 합쳐지는 물에 휩쓸려 몰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성서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급을 한 지 석 달째 되는 초하룻날 시나이 광야에 이르게 되었다(출애 19,1). 야훼 하느님은 모세를 산 위로 부르시고 그를 중개자로 삼아 이스라엘 백성을 당신 백성으로 삼아 계약을 맺으셨는데, 여기에서 모세의 특별한 위치가 분명히 드러났다. 모세는 산을 오르내리며 하느님의 말씀을 백성에게 전해 주었다. 모세가 백성 앞에 내놓은 하느님의 말씀은 곧 계약의 말씀으로서 주된 내용은 십계명이었다. 모세가 하느님의 이 모든 말씀과 법규들을 백성에게 전하자 이스라엘의 온 백성은 환호하며 야훼 하느님의 말씀을 충실히 따라 살 것을 서약하고, 모세는 하느님과 백성 사이에 맺어지는 계약의 제사를 드렸다(출애 24장). 이로써 야훼는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야훼 하느님의 백성이 된 것이다.
출애급의 해방 사건을 맞은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의 땅에 이르기까지 40년을 광야에서 보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나 가나안 땅을 향해 여행을 시작할 때, 광야에서 제일 먼저 부딪힌 문제는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모세에게 굶겨 죽이려고 이집트 땅에서 데려 내왔느냐는 식으로 대들고, 모세는 백성의 불평을 야훼께 아뢰어 만나와 메추라기와 물을 얻었다(출애 15,22-17,7).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광야생활을 하면서 단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수동적인 위치에만 있지 않고, 하느님의 법이 곧 삶의 길임을 백성에게 가르치고, 혹 그들이 하느님의 길을 벗어날 때에는 맹렬히 비난을 하면서도 백성을 향한 하느님의 분노를 풀어드리기 위한 기도를 끊임없이 드렸다.
이렇게 모세는 야훼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시켜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면서 시나이 산에서 계약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하느님의 백성으로 새로이 탄생하게 하는 중개자가 되었고, 40년의 광야생활에서 한편으로는 하느님 백성의 종교적이며 정치적인 지도자로서 백성에게 하느님의 길을 가르치고 그들의 모함과 질시를 받으면서도 그들의 죄를 일깨우고 하느님께 중재의 기도를 드려야 했고, 다른 한편으로 광야의 여정에서 만나는 이민족과의 전투에서는 군사 지도자로서 백성을 지휘하여 앞길을 터가야 했다.
40년 광야의 여정이 끝나고 예리고 맞은편 느보 산의 비스가 봉우리 위에서 야훼는 모세에게 요르단 강 건너편에 자리한 약속의 땅을 보여주셨다. 이때 모세의 나이는 120세였다. 그러나 모세는 그 강을 건너지 못하리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다. 이때 출애급을 몸으로 경험한 세대는 이미 광야에서 다 죽고 그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만이 남아 있었으니, 모세를 포함한 출애급 세대에게 허락된 몫은 자신들이 아닌 그 후손들로 하여금 약속의 땅의 풍요함을 누리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었다고 할 것이다.
모세가 어디에 묻혔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신명 34장), 그로 인해 그의 무덤은 전례적인 장소가 되지 못하였다. 하지만 모세는 고별사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가르치고(신명 32장), 축복 예언(신명 33장)을 하는 부분은 모세에 관한 성서 내용 중 아름다운 에필로그를 이루고 있다. 모세오경을 끝맺는 부분에서 이루어지는 모세에 대한 찬사는 모세의 업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복녀 가타리나 (Catherine)
활동년도 : 1486-1547년
신분 : 동정녀
지역 : 라코니지(Racconigi)
같은 이름 : 까따리나, 카타리나, 캐서린
카타리나 마테이(Catharina Mattei, 또는 가타리나 마테이)는 1486년 어느 가난한 노동자의 딸로 태어나 카타리나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녀가 낡아빠진 광에서 태어난 것은 묘하게도 그녀의 일생이 물질적으로 궁핍하며 건강치 못하고 또 이해받지 못한 사람으로 살 것임을 상징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그녀는 영적으로는 어느 누구보다도 풍요로운 삶을 살았다. 그녀는 이미 5살 때부터 아기 예수님과 성모님께 대한 남다른 신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집안에서 힘든 일을 하거나 굶주림으로 눈물을 흘릴 때마다 그녀는 아기 예수님을 찾아가서 큰 위로를 받곤 하였다.
1500년의 성 스테파누스(Stephanus) 축일에 그녀는 이 성인에게 기도하였는데, 참으로 기적적으로 성 스테파누스가 발현하여 성령께서 특별히 보살펴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였다. 이때 세 줄기의 빛이 그녀를 비추며, “나는 네 안에 내 거처를 정하고, 너의 영혼을 깨끗하고 밝게 할 것이며, 생기를 주리라”고 했다. 그 후 카타리나는 신비적인 신랑과의 동정 서원을 하였는데, 이상하게도 그녀의 손가락에는 신비스런 반지가 끼워져 있었고, 이때부터 그녀는 가시관과 주님의 오상의 아픔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육안으로는 볼 수 없었다.
그 후 카타리나에게는 수많은 기적이 일어났고 또 영적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을 짓누르는 악마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는 등 오랜 병고에 시달리기도 하였다. 그녀는 62세 때 카르마뇰라에서 운명하였다. 그녀에 대한 공경은 1810년 교황 비오 7세(Pius VII)에 의해 승인되었다. 그녀는 라코니지의 카타리나로도 알려져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