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질방 나들이/靑石 전성훈
설 명절을 맞이하여 포천으로 당일치기 온천에 가려고 했는데, 쏟아붓는 눈으로 도로가 얼어붙어 교통사고가 잦다는 뉴스를 듣고 그 대신 찜질방 나들이를 간다. 찜질방은 20년도 넘은 오래전에 자주 찾았던 곳이다. 그때에는 찜질방이 한동안 유행하던 시절이다. 아내도 나도 찜질방을 좋아해, 장기 할인권을 구매하여 시간이 나면 주말에 이용하곤 했던 기억이 난다.
손자녀까지 가족 모두 찜질방과 사우나를 함께 운영하는 스파에 갔더니 사람이 많다. 처음 간 곳인데 아주 복잡하지는 않고 적당히 붐비는 정도여서 찜질방 이용에는 아무 지장이 없다. 명절 연휴에 몸과 마음을 푹 쉬려고 찾아온 사람들처럼 보인다. 주변 일에 무관심한 편이라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런 시설이 있다는 것을 그동안 모르고 지냈다. 요금을 내고 열쇠를 받아 입장한 후 잠시 머뭇거린다. 워낙 오랜만이라서 찜질방 옷으로 갈아입을 때, 팬티까지 벗어야 하는지 어떤지 생각이 나지 않아서 순간적으로 망설이며 옛 기억을 더듬는다.
처음 들어간 곳은 숯불 황토방이다. 둥그런 작은 문을 열고 출입문에 머리를 부딪치지 않도록 고개를 숙이고 들어간다. 사람들이 편하게 앉거나 누워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옛날에는 책이나 신문을 보았는데 지금은 대부분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목침을 베고 누워 눈을 감는다. 조금 지나니까 등과 허리가 따듯해진다. 쓸데없는 잡생각이 훨훨 날아갈 듯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렇게 20분에서 30분 정도 땀을 쏟고 나른한 기분을 느끼며 황토방을 나온다. 어디로 갈까? 하고 갈 곳을 찾는데, 손자가 다가와 손을 잡고 휴게실에 가자고 한다. 휴게실에서 매트를 깔고 앉아 음료수를 마신다. 각자 취향에 따라 음료수를 고르고 손녀와 손자는 서로 다른 주전부리를 골라온다. 찜질방에서 땀 흘리고 나서 마시는 음료수로는 식혜가 최고다. 시원한 식혜 한 모금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면 시원하면서 달콤하다. 식구들과 이야기하다가 소금방을 찾아간다. 바닥에 산처럼 엄청난 물량의 조약돌을 깔아놓아서 마치 맨발로 지압을 하듯이 조약돌 위를 걷는다. 실내 온도는 황토방보다 낮다. 빈자리를 찾아 소금을 뿌린 조약돌 위에 눕는다. 스르르 눈이 감기고 잠이 찾아오기에 나도 모르게 한동안 잠을 즐긴다. 어느덧 시간이 점심때가 되어 찜질방 음식점을 찾아가 떡라면을 주문하고 기다린다. 순서가 되어 나온 떡라면 그릇에 국물이 한강처럼 가득하다. 수저로 국물을 떠서 맛을 보니 맹물처럼 무척 밍밍하다. 순간적으로 내가 라면을 끓여도 이것보다는 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여태껏 먹어 본 라면 중에서 정말 최악이다. 맛없는 라면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불가마를 찾는다. 옛날 어느 불가마에서 너무나 뜨거워 얼굴을 수건으로 감싸고 마대를 뒤집어쓰며 혼났던 기억이 난다. 이곳 열기는 그 정도는 아니다. 불가마에 들어가니 몸이 바로 반응한다. 금세 땀이 송송 맺히고 등허리가 젖어온다. 벽에 기대려고 하니까 무척 뜨겁다. 옆에 있던 며느리가 폭이 넓은 막대기를 집어서 등 뒤에 세워 준다. 막대기에 기댄 채 한동안 땀을 흘리고 나서 휴게실로 나온다. 이번에는 안마의자를 이용한다. 15분 동안 온몸을 이리저리 비틀어대며 욱신욱신 쑤셔준다. 어느 틈에 찜질방에서 3시간을 훌쩍 보내고 마무리로 사우나에 간다. 사우나탕에도 사람들이 많아서 웅성웅성하고 왁자지껄하다. 적당한 온도의 탕에 들어가 몸을 풀고 건식과 습식 사우나에서 땀을 낸다. 바닥이 따듯한 곳에 누워 잠시 눈을 감는다. 사우나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건물 밖으로 나오니 여전히 눈이 내린다. 주차장을 나오면서, 3시간 무료 주차증과 함께 2시간 초과에 대해 추가 요금을 낸다. 기회가 되면 또 가고 싶다. 힘들게 운전하며 멀리 가지 않고도 피로를 풀고 적당히 즐길 수 있어 좋다.
꿩 대신 닭, 온천 대신 찜질방을 찾아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다행이다. 닭이든 꿩이든 음식은 취향대로 골라 맛있게 먹으면 된다. 요즈음 시절이 하도 이상하게 요동치니, 닭이 꿩 노릇을 하려고 발버둥 치고 있다. 그런 모습은 진기 묘기에나 어울린다. 인간은 가축이나 야생동물이 아니다. 사람은 사람다워야 온전히 사람 노릇을 할 수 있다. (2025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