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제1화는 ‘도원에서 세 호걸이 의형제를 맺고 황건(黃巾)을 쳐 공을 세우다.’는 내용이다. 황건적의 난이 온 천하를 휩쓸 때 유비(劉備), 관우(關羽), 장비(張飛) 세 사람이 만나 천하의 대사(大事)를 논의했다. 그때 장비가 말했다. “우리 집 뒤뜰에 복숭아밭[挑園]이 하나 있는데 마침 한창 복사꽃이 만발했소. 내일 복숭아밭에 모여 하늘과 땅에 제사 드리고 우리 세 사람이 함께 형제의 의를 맺도록 합시다. 그리하여 세 사람이 일심동체(一心同體)가 되어 협력하기를 다짐한 뒤에야 비로소 큰일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외다.” 유비와 관우도 이 제의에 찬동했다.
다음날 곧바로 도원에서 제례(祭禮)를 갖춘 세 사람은 무릎 꿇고 절을 하며 천지신명께 맹세했다. “유비, 관우, 장비 세 사람은 비록 각기 성씨는 다르지만 이미 형제의 의를 맺기로 하였으니 한마음 한뜻으로 협력해서 곤란하거나 위험에 빠진 경우에는 서로 돕고 부축하며, 위로는 나라에 보답하고 아래로는 백성을 편안하게 하도록 하소서. 동년 동월 동일에 태어나지 않았지만 오직 동년 동월 동일에 죽기를 바라나이다. 황천후토(皇天后土.하늘의 신과 땅의 신, 천지의 신령)께서는 이 마음을 굽어 살피시어 의리를 배반하거나 은혜를 잊는 일이 생긴다면 하늘과 사람이 함께 죽여주소서.” 맹세를 마치고 차례로 절하여 유비를 형님으로 모시고 관우는 둘째, 장비는 막내가 되었다.
이 내용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로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더 그 영향력이 넓고 커져 옛사람들은 의형제를 맺을 일이 있으면 흔히 이들의 고사를 모델로 삼았기에 술자리에서도 ‘도원결의(挑園結義)’라는 유행어가 생겨났다. 그러면 이 이야기는 과연 진실일까 허구일까? 기본적으로는 허구이지만 역사적인 흔적도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도원결의 내용이 사서(史書)에서는 그 증거를 찾기 어렵지만 결코 완전한 허구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세 사람의 관계가 확실히 친동기간 이상으로 친밀했기 때문이다.
『삼국지(三國志)ㆍ관우전』에는 ‘선주(先主.유비를 말함)가 평원상(平原相)이 되자, 관우와 장비를 별부사마(別部司馬)로 삼아 산하의 군대를 나누어 통솔하도록 했다. 선주는 두 사람과 더불어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잘 정도로 그 정이 친형제와 진배없었다. 두 사람도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종일토록 모시고 서서 언제나 선주의 주위를 떠나지 않으면서 시중을 드는데 어렵고 위험한 일을 피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있다.
노필(盧弼)은 『삼국지집해(三國志集解)』에서 청(淸)나라 양장거(梁章鋸)의 말을 인용하여, ‘세속에서 유행하는 도원결의는 바로 이 설명에 근거하고 있다.’고 했다.
『삼국지ㆍ장비전』에서도 ‘장비가 젊은 시절에 관우와 함께 선주를 섬겼는데, 관우가 몇 살이 많아 그를 형으로 섬겼다.’는 내용이 나온다. 유비가 관우, 장비에게 형제와 같은 정으로 대했고, 장비가 관우를 형님으로 섬겼다고 했으니, 이들 세 사람은 의형제를 넘어서 친형제와 다름없는 관계였음을 알 수 있다.
『삼국지ㆍ관우전』에는 관우가 유비의 고향인 탁군(涿郡)으로 망명해 오자, ‘선주는 향리에서 무리를 모으고 있었고, 관우는 장비와 더불어 경호 역할을 담당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에서 우리는 세 사람이 만난 장소가 결코 장비의 장원 복숭아밭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이야기꾼들에 의해 그들이 의형제를 맺은 것으로 되었고 이로서 예술형상속 세 사람의 관계는 더욱 친밀하게 되었다. 의형제를 맺은 장소도 복사꽃 만발한 도원으로 설정함으로써 현란한 색채에 의한 시각적 미감이 더욱 증가되었다.
『삼국지연의』의 저자 나관중(羅貫中)은 바로 이 내용을 첫머리에 배치하여 전체 이야기의 발단으로 삼았는데, 이는 뒷부분으로 갈수록 세 사람 사이의 생사를 초월한 정을 더욱 짙게 그림으로써 역대 중국 사회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게 되었다.
중국의 저명 교수인 풍원군(馮沅君)은 『삼국지연의 추론(芻論)』에서 ‘유비, 관우, 장비 세 사람의 의형제 이야기는 당시의 사회적 기초를 바탕으로 삼았기 때문에 후인들을 감동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세 사람이 각기 다른 날 태어났지만 한날 한시에 죽기를 바라는 의기라든가, 명분상으론 군신의 관계이지만 정의상으론 형제와 같은 관계였다는 것은 모두가 고대사회 민중들의 선망의 대상이거나 즐겨 이야기하던 것이거나 또 직접 실천했던 것들이다. 여기서 결의는 그들이 서로 돕고 성심성의껏 단결하는 일종의 조직 형식이 되었으며, 의기는 계급간의 우애와 힘을 합쳐 반항하는 내용을 부여했고, 명분상은 군신이지만 정의상으론 형제와 같은 관계는 결국 당시 농민들의 눈에 이상적 정권의 형식으로 비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 중에는 ‘도원결의’를 사실(史實)로 여기는 인사가 있다. 원(元)나라 말엽에 관우를 칭송하는 시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도원결의 그 날에는 형이요 아우이더니 / 挑園一日兄和弟,
천 년 제사 모심에는 황제요 왕이더라 / 俎豆千秋帝與王.
청(淸)나라 심일림(沈日霖)은 『진인진(晋人塵)』에서 관우의 사당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읊었다.
바람과 연기 한나라 제업으로 되돌리니 / 風裊餘烟歸漢鼎,
꽃피는 춘삼월에 도원의 결의 생각나네 / 花開三月憶挑園.
지금도 중국 하북성(河北省) 탁현(涿縣)의 도장(挑庄.忠義店), 혹은 탁현의 현성 남대가(南大街) 수문구(水門溝) 옆(三義廟가 건립된 자리)을 도원의 유허지(遺墟地)라고 추측하는데, 이 모두가 『삼국지연의』의 도원결의 이야기로 말미암아 견강부회(牽强附會)한 것일 뿐, 역사적인 진실이라고 믿어서는 안 될 것이다. (끝)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사진은 중국포털 Baidu에서 전재함.
첫댓글 복사꽃 핀 그늘에서 의형제를 맺다... 저희도 휴일에 등산을 하면서 ' 중한고전대역 삼국연의'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世上萬物充滿變化. 特別是古時候...群雄四起, 合合分分, 分分合合, 分久必合, 合久必分....
올해초 "도원(挑園)"이라는 음식점에서 지인들의 신년모임이 있었다. 거기에서 올 한해는 산행을 비롯해서 여행도 자주하고 먹고 마시는것보다는 사유하고 움직이는 모임을 자주 하기로 약속했고 송년모임에서 그 실천을 점검하기로 했다. 그런데 년말이 다가오는데도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것같으니 우리의 '도원결의(挑園結義)'는 이루어지지 못한것이다.
서울 프라자호텔 중식당 도원(桃園)에서는 서울역 KTX역사 4층에서 "T園, 티원"이라는 음식점을 직영,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뷔페식으로 운영합니다. 저희들은 주말에 서울역 'T園'에서 친목회 모임을 가끔 했습니다. 플라자호텔에서는 연세대 등 여러 곳에 "T園"이란 이름의 중식당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티원(T園)은 중국어 桃園(TAO YUAN)의 의미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