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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숙한 신앙인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 음성을 듣습니다.(삼상3:1-9)
2024, 8/18 설교문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삼상3:1-9절 말씀으로“성숙한 신앙인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 음성을 듣습니다.”이런 제목으로 말씀 전할 때 주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이곳에 함께하길 원합니다.
올 여름은 정말 역대급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 이런 더위가 근래에 없던 더위랍니다. 그러나 해가 뜨면 지고, 꽃도 피면 지듯이 더위도 때가 되면 끝이 납니다. 다음 주부터는 열대야도 사라지고 아침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 것으로 기대하는데, 이렇게 때가 되면 장마도 끝나고, 여름도 끝나고, 한 해도 끝나고 우리인생도 끝납니다. 그렇게 우리인생이 끝나면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살아온 삶에 대한 평가를 받고 그에 대한 보상이나 대가를 치러야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천국은 차별이 없고 평등하다고 말하는데, 천국만큼 심는 대로 거두는 자본주의적 법칙이 적용되는 곳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상 주시는 이를 바라보며 신앙을 지켜야할 것입니다. 그런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는지요? 우리 인사 나누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반갑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3가지로 은혜를 주셨습니다.
첫째로, 홍수가 나면 물은 많지만 정작 마실 물은 없습니다.(1절)
둘째로, 성경을 가까이 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3절)
셋째로, 신앙이 어리면 하나님 말씀을 사람의 말로 듣습니다.(5절)
그러면 본문말씀을 따라가면서 말씀을 가까이하는 성숙한 신앙인이 하나님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성령께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홍수가 나면 물은 많지만 정작 마실 물은 없습니다.(1절)
본문 1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아멘.
아이 사무엘이 성전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하나님의 이상을 볼 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다 말씀하셨기 때문에 더 이상 계시가 필요 없지만, 당시에는 성경이 완성되지 않은 시대라서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알리고자 할 때는 당신이 택한 사람들을 통해서 꿈과 이상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사무엘이 아직 나이 어릴 때, 엘리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 하나님의 계시가 희귀했다고 말씀하시는데 여러분, 하나님이 당시에 왜 말씀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가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하실 말씀이 없어서일 것이고, 또 하나는 그 시대가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너무도 타락해서 하나님이 아예 입술을 닫아버리신 경우일 겁니다.
여러분도 알고 있듯이 당시 사사시대가 얼마나 변질되고 타락했습니까? 백성들이 하도 하나님 말씀을 떠나 지들 맘대로 살다보니 신앙도 엉망이었고, 신앙이 엉망이니 당연이 윤리 도덕도 땅에 떨어졌겠지요.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을 외면하셨고, 결국 말씀을 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런 걸 우리는 신학적으로‘유기’라고 말합니다. 유기는 백성들이 무슨 짓을 해도 상관하지 않는 것인데, 그냥 놔두는 것이 더 무서운 법입니다. 잔소리하고 야단치는 것도 그나마 정이 있다는 뜻입니다. 부부가 싸우는 것은 부부니까 싸우지만 이혼하면 그때는 남남이라 상대가 무슨 짓을 해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이스라엘백성들의 행태가 하도 꼴 보기 싫어서 아예 관심을 끊은 겁니다. 말라기 때도 말라기서를 끝으로 400년 동안 하나님의 계시가 전혀 없었다가 주님이 이 땅에 오시기 6개월 전에야 세례요한을 보내 이때부터 말씀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기도의 응답이 없고, 하나님이 주무시는 것처럼 아무 반응이 없다면 하나님을 원망하기 전에 먼저 신앙에 문제가 없는지 점검해봐야 할 것입니다. 왜냐면 아모스8:12절은 계시가 희귀한 것을 하나님 심판의 한 부분으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사시대 말기는 엘리 대제사장의 아들들의 가증한 죄악이(2:12-17, 22) 보여주듯이 영적, 도덕적으로 타락이 너무 극심했습니다. 하여 하나님말씀이 희귀하게 된 것은 당연합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백성들은 더욱 타락의 길로 가게 되었고, 마침내 하나님은 블레셋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여 저들에게 쓰라린 고통을 안겨주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이 희귀하다는 것은 시대가 그만큼 타락했다는 증거요, 하나님의 인내가 한계에 이르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해야합니다. 다행히 오늘날은 우리가 원하기만 하면 언제 어디서나 말씀을 접할 수가 있어서 다행입니다. 아니 말씀의 홍수 속에 빠져 산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말씀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당장 수많은 교회에서 주일마다, 수요일, 금요일, 매일 새벽에 또 특별기도회, 예배 등을 통해 하나님 말씀이 선포되고, 핸드폰 하나면 실시간으로 말씀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래서 요즘은 예배도 핸드폰으로 드리는 분도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 말씀이 회귀했던 엘리시대와 비교하면 참으로 천지가 개벽할 일이고,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복 받은 사람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하나님 말씀의 홍수 속에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처럼(요8:32) 그 말씀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순종의 삶을 살고 있을까요?
우리는 매년 크고 작은 홍수를 겪습니다. 홍수는 물이 너무 많아서 생기는 재앙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홍수 속에서 가장 귀한 것이 바로 물입니다. 홍수가 나면 보이는 게 물이고, 넘치는 게 물이지만 정작 마실 물은 없다는 겁니다. 물이 넘치는 홍수 속에서 물이 부족한 기갈을 만난다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입니까?
그런데 말씀도 그럴 수 있다는 겁니다. 암8:11절에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늘날 우리도 넘쳐나는 말씀의 홍수 속에 살고 있지만 정작 생명의 말씀, 삶을 변화시키는 말씀이 부족해 기갈이 없지는 않는지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말씀의 기갈을 두 갈래를 생각해볼 수 있는데, 하나는 설교자가 하나님 말씀을 해석하면서 사람의 비위를 맞추는 인본주의적 해석과 세상과 타협하는 세속주의 설교로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지 못하거나 말씀을 벗어남으로 오히려 사람을 죽이는 오염된 물을 마시게 하는 꼴을 만드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듣는 사람들이 말씀을 듣고 싶은 것만 선택적으로 듣고, 또 선택적으로 순종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하나님말씀이라도 내 생각과 다르면 듣지 않거나 순종하지 않음으로 말씀의 기갈을 겪는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과 더욱 멀어지고 있으며, 결국 하나님께 유기되는 상황까지 이르고 있고, 또한 말씀은 흘러넘치지만 세상은 더 악해지고, 사람들은 영적기갈로 고통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거야말로 논리적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많으면 그 시대가 선하다는 것이고, 그러면 세상이 더 좋아져야하는데 왜 더 악해지고, 신앙인들은 힘을 잃어 가느냐는 겁니다. 답이 무엇일까요? 하나님 말씀이 순전하지 못하고 섞여서 혼탁해져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베뢰아 사람들처럼 말씀이 맞는지 안 맞는지 상고하여 듣고, 말씀 앞에 순종한다면 우리는 분명 생명의 샘물을 먹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말씀의 홍수 속에서도 생명의 말씀을 통해서 영적기갈을 해소하고 참된 평안을 누리시는 여러분 되시기 간절히 축원합니다.
둘째로, 성경을 가까이 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3절)
본문 3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 아멘.
사무엘이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에 누웠다고 했는데, 사무엘이 하나님의 궤가 있는 지성소에서 누웠다는 말은 아닙니다. 지성소는 대제사장만 일 년에 단 한번 대속죄일에 들어갈 수 있는데,(레16:33, 34) 만약 그 외의 사람이 지성소에 함부로 들어가면 죽음을 면치 못했기 때문에 사무엘도 그곳에서 잘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지성소에서 잔 것처럼 표현한 것은 그만큼 사무엘이 하나님과 가까이 지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 같습니다.
여러분!!! 지성소에 있던 법궤 안에는 율법의 핵심인 십계명을 기록한 돌 판이 보관되어 있어서 하나님 말씀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사무엘이 하나님의 궤가 있는 여호와의 전에 누웠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사모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분명 잠자리가 없어서 성소에서 잔 것은 아닐 겁니다. 그곳에서 말씀도 읽고, 연구하며 묵상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런 와중에 사무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런 사실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가까이할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율법은 오늘날의 성경이고, 성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같은 맥락에서 우리도 성경을 가까이하여 깊이 연구하고 묵상하면 분명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사실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하나님 음성을 듣기 원합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하나님 음성을 듣겠다고 은사집회를 찾아다니는 분들이 많았는데,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은 그렇게 들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이미 신구약 성경을 통해서 모든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에 더 이상 이상이나 환상으로 말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사무엘처럼 밤중에 부르거나 사도바울에게 들려주셨던 것처럼 음성을 들려주지도 않습니다. 사도바울 때도 성경이 완성되지 않아서 그랬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성경말씀을 통한 계시가 이미 끝났기 때문에 만일 누가 하나님음성을 듣게 해주겠다고 유혹하면 그는 분명 사단의 졸개가 분명합니다. 물론 지금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경우가 있지만, 귀에 직접 하시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통해 당신의 뜻을 깨닫게 하심으로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경우에도 직접 음성을 들려주시는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지금도 여전히 계시를 주신다면 굳이 신구약 성경을 줄 필요가 없고, 또 이 사람 저 사람이 다 하나님음성을 듣는다고 주장하면 세상이 얼마나 혼란스럽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음성 듣기를 원하는 사람은 성경을 가까이하여 읽고, 듣고, 묵상하고, 연구하면 깨달음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런다고 누구나 하나님 음성을 듣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진정으로 사모하여 성경을 읽고, 듣고, 묵상하고, 연구한다면 분명 하나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건강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말씀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기쁨으로 신앙생활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신앙이 어리면 하나님 말씀을 사람의 말로 듣습니다.(5절)
본문 5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엘리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그가 이르되 나는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하는지라 그가 가서 누웠더니." 아멘.
사무엘이 성소에서 잠을 잘 때 그때까지 하나님이 백성들을 외면하시다가 마음을 바꾸어 드디어 당신의 음성을 들려주시기 시작합니다. 이걸 볼 때 신앙공동체에서 한 사람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자 사무엘은 엘리가 부른 줄 알고 엘리에게로 달려갑니다. 두 번째 부를 때도, 세 번째도 엘리가 부른 줄 알고 달려갔지만 허사였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무리 천하에 사무엘일지라도 그의 나이가 어려서 아직까지 하나님의 음성을 듣거나 경험해본 적이 없어 하나님의 부름을 사람의 부름으로 들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당시 사무엘의 나이는 대략 12살 정도로 추정됩니다. 사무엘이 하나님과 교제하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입니다. 때문에 그가 비록 여호와의 성소에서 생활하며 하나님 말씀에 관심이 많았다고 해도 그의 나이로 볼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또 당시에는 하나님의 계시나 음성이 희귀하여 사무엘이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는 것도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사무엘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사람의 소리로 착각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여러분!!! 이처럼 신앙의 나이가 어리면, 다시 말해 신앙이 성숙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말씀하실 때 기록된 성경을 통해서만 말씀하시는데, 설교자의 설교나, 또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 성령의 감동으로 깨달음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이때 신앙이 어린 사람들은 설교자의 설교를 사람의 말로 듣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오해하고 시험 들기도 하고, 시시비비를 가리려고도 합니다. 또 오늘도 그냥 좋은 말 하나보다 이렇게 생각하거나, 아무 생각 없이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버리기도 합니다.
또한 성경을 사람의 창작물쯤으로 생각하는가 하면, 이스라엘의 역사책 정도로 평가절하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아무리 성경을 읽어도 감동이 없고, 하나님 음성으로는 더더욱 들리지 않습니다. 이런 것은 비단 새신 자들에게만 있는 현상이 아니라 신앙생활을 오래한 사람에게도 해당됩니다.
왜 그럴까요? 그들의 신앙이 사무엘처럼 어리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까 새 신자든 기 신자든 신앙이 자라지 않으면 어린아이일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면 여러분은 설교자의 설교가 어떻게 들리는지요? 또 성경이 정말 하나님 말씀으로 여겨지시는지요? 설교가 사람의 말로 들리면 아직도 신앙이 어린아이와 같은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가 없어서 신앙인으로서 온전한 삶을 살수가 없습니다. 신앙인은 남을 섬기고, 형제를 세워주며, 희생하고 헌신해야 하는데, 어린아이 신앙은 그게 안 됩니다. 그러니 항상 자신을 드러내려고만 하고, 대접만 받으려하고, 남의 섬김만 받으려고 하다 보니 삐지고 시험 들고 형제에게 자꾸 상처만 주는 사람으로 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사무엘처럼 신앙이 어리다면 속히 성숙한 신앙으로 바뀌어야하고, 설교와 말씀이 하나님 음성으로 들려야하며, 음성을 들었다면 그 음성에 순종할 수 있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야합니다. 그래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이 말씀이 여러분의 삶속에서 성취되어 날마다 기쁨과 감사함으로 살아가야합니다. 그런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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