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광우 바이오그라피 49)
96년 초 나는 조사부를 떠나 외환업무부로 발령받았다. 외환업무부는 신용장 통지, 수입, 여행자수표, 타발송금, 외신, 대사(Reconcile)업무를 하는 부서였다. 부서의 특성상 여직원들이 다수를 차지하였기 때문에 여성의 파워가 높은 부서였다. 그러므로 말이 많은 부서이기도 했다. 또한, 직원 수가 많아서 직원들끼리 인사고과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서로 간의 각종 음해가 난무하는 각박한 곳이기도 했다.
나는 신임인사차 N부장실에 들어갔다. 그는 안암동에 있는 K대 경제과를 나온 약간 가학적이고 야비한 인간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아마 내가 만나 본 은행 사람 중에서는 가장 힘들게 느낀 사람이었다. 그가 모 영업점장을 할 때 그의 휘하 책임자 중 나의 입행동기 N이라는 대리는 그에게 너무나 시달린 나머지 토요일 날 영업이 끝나고 혼자 북한산에 올라갔다고 한다. 그는 산의 정상에 오르자 그의 이름에 XXX를 붙여 수없이 고함을 쳤다고 한다. 아마 그에게 평소 억눌린 감정을 그대로 삭이기에는 병이 날 것 같아 마련한 고육지책이었다.
언젠가 해외지점에서 거액의 신용장을 통지해 준 데 대한 사례금을 담당 책임자인 나에게 보내 온 적이 있었다. 나는 그 금액 전부를 N부장에게 전달했다. 사실 내가 가지고 휘하직원들 회식을 시켜줘도 문제가 전혀 없는 돈이었다. 그런데 그는 아무 소리 없이 그 돈을 자신의 업무추진비 계좌에 입금해 버렸다. 그리고 그 후 나에게는 고맙다는 일언반구도 없이 입을 닦고 마는 것이었다. N부장도 나도 퇴직하고 한참 세월이 지난 후, 어느 퇴직 직원의 자녀 결혼식에서 그를 우연히 만났다. 나는 그에게 아무 생각 없이 인사를 드렸더니, 그는 몹시 당황하여 말문을 열지 못했다. 아마 “도둑이 제 발 저리다”는 옛말이 생각나게 하는 어색한 장면이었다.
[에피소드199]
텔렉스가 잘못 전달되어 나에게 올 것이 J차장 쪽으로 갔었다. 그 전문(電文)은 동경 모 은행에서 온 것으로 나의 소관인 신용장수입 파트가 업무처리 속도가 느리다고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나중에 밝혀졌지만 그 내용은 전혀 근거가 없는 잘못된 내용의 전문이었다. 실제는 자기네 은행과의 거래가 줄어든 것에 대한 항의의 표시를 한 것이었다. J차장은 이것을 잠재적인 경쟁상대가 되는 나를 공격하는 호재로 삼아 나에게 전문을 전달함과 동시에 총무과장을 통해 부장에게 전문사본을 전달했다. 그러나 그 사안은 부장에게 보고할 정도의 내용은 아니었다. 전문의 내용을 읽어 본 부장은 나를 불러 업무처리에 대한 질책을 하였다. 나는 전문을 받아 내용을 파악한 후 즉시 동경에 있는 발신자 앞으로 항의 전문을 보냈다. 며칠이 지난 후 답신이 왔는데 자기의 판단 착오로 전문을 잘못 보낸 것을 사과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 전문을 부장에게 보여주면서 잘못된 오해를 풀어주었다.
이 전문을 부장에게 신고한 J차장은 나의 대학 후배였는데도 선배에 대한 최소한의 금도(襟度)도 없었다. 오직 그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그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만 전력을 기울이는 사람이었다. 그는 그 후 그가 그렇게도 원하던 미주지역(LA지역 환은 현지법인, 켈리포니아 코리아 뱅크, CKB)으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3년 후 미국근무로부터 돌아왔고, IMF사태 직후 해외 근무 때의 문제로 인해 진급이 힘들게 되자 은행을 그만두고 말았다. 그는 그 후 법무사자격 시험을 준비한다고 했고 미국 줄리어드 음대를 나온 부인이 피아노레슨을 하여 생활을 겨우 꾸려 나간다는 소문이 있었다.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은 일시적으로 흥할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하늘의 조정(調整)을 받는 것이다. 87년 4월 투신자살한 박건석 범양상선 회장이 유서에서 그를 배반하고 괴롭혀온 H 사장에게 남긴 “인간이 되시오” 라는 말이 생각났다.
첫댓글 진짜 각박하고 무섭네요. 직장이 그대로 약육강식의 정글입니다.
저 같으면 피가 말라서 잠시도 못 버틸 환경입니다.
오늘도 다저스님 글을 통해 몰랐던 세상을 보고 갑니다.
항아리님 은행은 그래도 기업환경에 비하면 온실이라고 합니다. 저는 좋은 직장에서 근무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은행을 떠난 후 부딪치는 세계는 정말로 험악하기 짝이 없었습니다ㅡ차차 그 이야기를 풀어 놓겠습니다ㅡ
ㅠ정말 은행 뿐 아니라
직장에서 남자들의 치열한 경쟁사회를 간접적으로 나마 느껴보게 되었습니다..
이러니 남자들이 술과 담배에 찌들고 수명도 짧은거 아닌가 싶네요..
저는 미혼시절에 국가 기관의 연수원에 근무하고 있다가 결혼을 해서
그야말로 천국에서 놀다온거 같으네요..ㅎㅎ
샤론님도 결혼 전에 직장생활을 하셨군요. 요즘은 여성들도 직업을 가진 커리어우먼이 늘어가고 사회참여가 많아지는 추세입니다. 저의 두 딸도 미국과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습니다. 두가지(직장과 가정)를 함께 하는 두딸이 대견하면서도 마음 한쪽에 안쓰러음이 많습니다ㅡ
제가 경험한 바로는,
보통 머리 좋고, 좋은 학교 나오고, 좋은 직장일 수록,
서로의 경쟁 의식이 첨예한 듯 합니다.
지능이 받쳐 주니까,
못된 짓도 더 지능적으로 하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중요한 건 능력이나 학벌보다 인성이겠지요~
ㅎㅎ
전적으로 맞으신 말씀입니다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