맡겨진 소녀 / 클레어 키건 / 허진 / 다산책방
번역서를 볼 때면, 나는 주인공의 이름을 별도로 적어 가며 읽곤 한다. 이름이 익숙지 않아 등장인물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등장인물을 적어나갔다. 이상하게도 소설이 끝날 때까지 주인공 아이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은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주인공 소녀의 이름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텐데, 누구나 맡겨진 아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굳이 넣지 않은 것이 좋지 않았을까 싶다가도, 아저씨나 아빠나 엄마 누구도 아이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다는 것이 조금은 섭섭했다.
자세하게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아도, 흩어 놓은 말들이 상황을 알려준다. 왜 그런 말을 했을지, 왜 아줌마가 울었을지, 짐작을 해 나가고 있는데, 갑자기 터뜨린다. 아! 이런, 이럴 필요가 있을까?
나에게 주의 깊게 다가온 것은 "말"이다. 몇 번 나오지만, 관련된 마지막 문장(말)을 100%이해할 수 없다. 그러니 왠지 나를 꽉 누르는 힘이 있다.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원문을 찾았다.
"아빠." 내가 그에게 경고한다. 그를 부른다. "아빠."
‘Daddy,’ I keep calling him, keep warning him. ‘Daddy’
누군가를 "누구"로 부른다는 것은 참 중요하다. 하나는 아저씨이고 다른 하나는 아버지가 아닐까 싶다. 이제 "아빠"를 부를 수 있다. 아빠를 어렴풋이라도 경험했으므로....
소설을 덮을 때 내 눈에는 따스한 물이 고이고 있었다. 짧지만 강한 소설, 흑백의 동양화처럼 내용과 말이 절제된 소설이다.
* * *
이제 나는 평소의 나로 있을 수도 없고 또 다른 나로 변할 수도 없는 곤란한 처지다. 17
모든 것은 다른 무언가로 변한다. 예전과 비슷하지만 다른 무언가가 된다. 33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기를, 이 편안함이 끝나기를 - 축축한 침대에서 잠을 깨거나 무슨 실수를,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거나 뭔가를 깨뜨리기를 - 계속 기다리지만 하루하루가 그 전날과 거의 비슷하게 흘러간다. 45
"입 다물기 딱 좋은 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는 사람이 너무 많아." 75
입을 다물기 딱 좋은 기회다 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