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속사적 성경묵상 ● (셋째 해_1월 18일)
<마태복음 18장> “교회 내에서 실천되어야 할 천국의 질서”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예수께서 한 어린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마18:1-10)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18:19-20)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이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회계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회계할 때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그 종이 나가서 제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관 하나를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가로되 빚을 갚으라 하매.....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저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이에 주인이 저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 (마18:21-34)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요일3:15)
『마태복음 16장에서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신앙고백을 했고, 예수님은 그 신앙고백을 들으시고 반석 위에 주님의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했는데, 그 반석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동시에(고전3:31) 베드로가 했던 신앙고백을 말하는 것으로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과 구주로 믿는 신앙고백 위에 교회가 세워질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마태복음 18장에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이후에 세워질 교회에서 이행되어야 할 원리들에 대해서 말씀을 주고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위에 세워지는 교회는 이 땅에 실현된 천국의 실체로서, 세상의 질서와 반대가 되는 천국의 새로운 질서를 보여주는 대조사회(contrast-society)가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교회에서는 강한 자가 큰 자로 높임을 받는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처럼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자가 높은 자가 되며, 연약하고 작은 자를 영접하는 것이 곧 왕이신 예수님을 영접한 것으로 간주됩니다. 반면에 연약하거나 소외되는 등 작은 자를 무시하거나 실족케 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단호한 징벌이 있을 것을 말씀하시는데, 그것은 작은 자를 업신여기는 것은 그들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일과 다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비록 교회는 이 땅에 임한 천국의 실체이기는 하지만 아직 완성이 되지 않았기에 구성원들 가운데에는 범죄하는 자가 있을 수 있는데, 이에 대해서 교회는 순결성을 지키기 위하여 적절하게 치리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치리는 어디까지나 사랑의 마음으로 범죄한 형제가 회개하도록 하는 데 그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하심으로써 비록 적은 숫자의 사람들일지라도 예수님을 믿는 자들의 모임이 곧 주님이 임재하시는 성전이 될 것을 말씀하시면서(고전3:16), 그 두 세 사람이 합심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면 들어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베드로가 자기에게 잘못이 있는 형제를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하는지 묻는 질문에 대해서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는 대답을 하시는데 그것은 끝까지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일만 탈란트 빚진 종’의 비유를 말씀하시는데, 이 비유에서 자비로운 임금은 물론 주님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임금에게 일만 달란트의 어마어마한 빚을 탕감 받은 신하는 예수님의 은혜로 죄의 용서를 받았음을 믿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처럼 주님의 용서를 받았다고 입술로는 고백하면서도 자기 이웃이나 형제의 잘못에 대해 용서할 줄 모르는 사람은 사실상 주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은 적이 없는 자임을 예수님은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리적 지식이나 주관적 감정을 기초해서 자신의 구원을 확신합니다. 그러나 참된 구원의 확신은 주님의 은혜로 아무 공로 없이 죄 사함을 받았음을 알기에 내 이웃이나 형제의 잘못을 용서할 수 있는가의 여부에 달려있는 것입니다(요일3:14).』
● 오늘의 기도 ● “주님의 교회들이 세상의 논리와는 반대가 되는 천국의 모습을 나타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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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멘
천국의 질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