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4일 온고을교회 주일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 바울의 바람 》
살후 2:1~3
〈 사과나무 명언 〉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올지라도 오늘 나는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
매우 유명한 말입니다. 한국에서 이 말은 네덜란드 철학자 스피노자의 말로 알려졌습니다.
한때는 이 말이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가 한 말로 알려지도 했습니다.
결국 이 말의 출처는 “알 수 없다”는 것이 정답인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이 말이 인구에 회자되는 이유는, 삶의 지표로서 매우 합당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세상의 종말이 내일일지, 언제일지는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모든 것은 끝이 있다”는 것뿐입니다.
“있는 것들은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라는 진리에 대한 확신뿐입니다.
언제일지 알 수 없는 종말, 그럼에도 우리는 오늘 하루 충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이러한 삶의 태도를 매우 적절하게 표현한 말이, “사과나무 명언”입니다.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올지라도 오늘 나는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
〈 종말 신앙 〉
성경은 창조로부터 종말에 이르기까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조에 대해서 성경은 분명히 밝힙니다.
창조에 대한 선포와 같이 종말에 대한 선포를 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는 종말의 날을 “여호와의 날”이라고 표현합니다.
신약성경에서는 “주의 날”이라고 합니다. 본문 2절에서도 “주의 날”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동안은 사람들이 막연히 ‘세상도 언젠가는 끝이 나겠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이 끝나는 날, 종말, 그 날에 대해서 아무런 지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선포했습니다. “종말의 날은 ‘심판의 날’입니다!”
그냥 안개가 사라지듯이 종말이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날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악을 심판하시는 날입니다.
☞ 사람들이 화들짝 놀랐습니다.
☞ 성경은 종말과 함께 심판을 분명하게 선포합니다. 이것이 종말 신앙입니다.
☞ 그날은 언제일까요?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마 24:35~36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36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천지가 없어지는 날, 종말의 날에 대한 예수님의 언급입니다.
영적인 존재인 천사들도 그 날을 모를뿐더러, 성자 예수님 당신조차도 모른다고 선포합니다.
☞ 그날이 언제인가는 오직 성부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 2천 년 전 초대교회 시대, 기독교인들은 종말에 대한 관심이 매우 컸습니다.
종말의 날은 예수님의 재림날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 보는 앞에서 공중으로 떠올라 구름에 가려져 안 보였셨습니다.
하늘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제자들에게 천사가 말했습니다.
행 1: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기독교 신앙에서 예수님의 재림, 파루시아, 스펙타클 파루시아는 중요한 교리가 되었습니다.
“종말 신앙” 이는 기독교인에게 매우 중요한 교리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지나치게 종말에 치우치는 현상입니다.
〈 성급한 종말 신앙을 경계함 〉
주님을 영접하고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종말을 굳게 믿는다는 뜻입니다.
단지, 종말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의 문제가 남습니다.
사도 바울이 기독교를 전파하자, 성도들이 지나치게 종말에 집착하는 현상을 드러냅니다.
☞ 오늘 본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성급한 종말신앙에 대한 경책입니다.
(1절)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이렇게 운을 뗀 바울 사도는 종말신앙에 대하여 3가지 당부 사항을 전합니다.
저는 이것을 《 바울의 바람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고자 합니다.
《 바울의 바람 》은 바울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입니다.
바울과 예수님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바라시는 바입니다. 할렐루야~
“바울의 바람은 주님의 바람이요,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바라심입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우리에게 3가지를 당부합니다.
첫째 “흔들리지 말라!”(2절) 둘째 “두려워 말라!”(2절) 셋째 “미혹되지 말라!”(3절)
〈 ① 흔들리지 말라 〉
(2절) “영으로나 또는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
마음이 흔들리거나 / 하지 말아야 한다
마음이 흔들린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요?
마음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마음’ 사전을 찾아봤습니다.
[마음] 사람의 지식·감정·의지의 움직임
그 사람에게 어떤 ① 지식이 들어가느냐가 마음을 좌우할 수 있습니다.
지식을 바탕으로 ② 감정이 움직입니다. 지식과 감정을 바탕으로 ③ 의지가 형성됩니다.
본문 2절에도 마음의 움직임에 영향을 주는 3가지가 거론됩니다.
“영으로나 또는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 ”
영(영혼), 말(언어), 편지(문서)입니다.
우리의 영혼, 외부로부터 듣게 되는 말, 살면서 접하게 되는 각종 문서입니다.
영혼, 언어, 문서에 의하여 우리는 복음을 영접합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에서 말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롬 10:17)라고 선포합니다.
“누군가로부터 어떤 말을 듣는냐?” 여기서 마음이 결정됩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우리가 살아생전에 온대!” 초대 교회 때는 이런 말이 성행했습니다.
“우리 살아생전에 주님이 다시 오신다고?” 이렇게 되면 마음이 흔들리게 됩니다.
어떻게 흔들려요?
“머지않아 지구의 종말이 온다면 굳이, 오늘 사과나무를 심을 필요가 없잖아?”
이것을 두고 “마음이 흔들렸다”라고 하는 겁니다.
사도 바울이, 주님이,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에게 “흔들리지 말라” 하십니다.
〈 ② 두려워 말라 〉
두 번째는 “두려워 말라!” 무엇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뜻입니까?
종말, 주님의 재림, 최후심판!! 이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사실 예수 안 믿고 사는 사람들, 세상의 종말,, 별로 두려워하지 않고 삽니다.
아예 종말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면서 떳떳하게 삽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오히려 종말을 두려워합니다. 이것은 대단한 아이러니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재림, 파루시아! 그것은 죄에 대한 심판입니다.
그 심판에서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은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없습니다.
심판날에 승리를 만끽하게 될 사람들이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두려워할 사람들은 예수 안 믿고 최후 심판에서 지옥으로 떨어지게 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그들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오늘 사과나무를 심으며 삽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최후 심판 날에 대하여 미리 걱정하고,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말씀합니다. “두려워 말라!”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두려워합니까?
성경은 최후심판에 대해서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책이 ‘요한계시록’입니다.
유독 요한계시록을 파고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은 구약 39권 신약 27권 모두 66권입니다.
66권 중 65권은 제쳐두고 오로지 맨 끝에 있는 요한계시록만 붙잡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ㅅㅊㅈ’입니다. 그 사람들 만나면 시작부터 요한계시록 얘기만합니다.
“잘 된 겁니까, 잘못된 겁니까?” ~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이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바울의 당부를 망각한 잘못된 사람들을 미혹하는 것입니다.
〈 ③ 미혹되지 말라 〉
“① 흔들리지 말라!” “② 두려워하지 말라!”에 이어서 “바울의 바람” 3번째는?
“③ 미혹되지 말라!”입니다.
(3절)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미혹” 미혹이 무엇입니까?
최근에 tvN에서 방영한 “세작”이란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조정석이 임금으로 나오고, 신세경이 여장남자로 등장합니다.
여기서 ‘미혹’에 대하여 매우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랑할 때는 살기를 바라고, 미워할 때는 죽기를 바라는 모순이 있습니다.”
“살기를 바랐다가 죽기를 바라니 이것이 미혹이다!”
☞ 예수 안 믿을 때는 종말에 대해서 관심없이 살았습니다.
“종말이 있거나 말거나, 그건 모르겠고, 나는 오늘 사과 나무 한 그루를 심는다!”
이렇게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예수 믿었습니다. 갑자기 종말에 대하여 빠져듭니다.
요한계시록만 붙들고 늘어집니다.
종말에 대하여 “① 흔들리지 말라!” “② 두려워하지 말라!” 했는데,
예수 믿기시작하면서 요한계시록을 읽고 흔들립니다. 두려워합니다.
이것이 바로 미혹입니다.
예수 안 믿었을 때는 ‘종말’이 없기를 바랬습니다.
‘종말 그딴 것 있으면 뭐하고 없으면 뭐해? 내 인생과 무슨 상관이 있어?’
그러다가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갑자기 ‘종말’에 빠져듭니다.
그리고 이단사설을 만들었습니다.
특히 한국, 우리나라에 이런 현상이 심합니다.
“내가 예수다!”라고 외친 자들이 지그까지 한국에서 4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미혹에 빠진 결과 나타난 것이 이단입니다.
안 믿을 때는 “종말”에 관심 없이 살다가 예수 믿었다 하면서 “종말론”에 빠져듭니다.
성경은 그렇게 하라고 선포하지 않습니다.
예수 믿었다 하면서 빗나간 종말론으로 사람들을 미혹하고 세상을 미혹합니다.
예수 믿으나 안 믿으나 종말은 있습니다.
그 종말은 나 한 사람이 예수 믿었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습니다.
☞ 저와 여러분이 예수 믿으나 안 믿으나 종말은 분명히 예정되어 있습니다.
〈 바울의 바람 〉
예수 안 믿을 때, 오히려 종말에 대해서 두려워했어야 합니다.
예수 믿은 후 성경을 통해서 종말에 대하여 분명히 알았습니다.
“① 흔들리지 말라!” “② 두려워하지 말라!” “③ 미혹되지 말라!”
☞ 이것이 뒤집어져 있습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 종말에 대하여 흔들리지도, 두려워하지도, 미혹되지도 않습니다.
예수 안 믿을 때,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라면서 담대하게 삽니다.
예수 믿고 나서 오히려, 흔들립니다. 두려워합니다. 미혹됩니다.
☞ 예수 믿는다 하면서 잘못 믿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사도 바울이 당부합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사도 바울의 바람은, 예수님이 우리를 향한 당부입니다.
사도 바울과 예수님의 바람은 또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바람입니다.
주님께서 오늘 주일에 우리에게 당부하십니다.
“종말의 때에 대하여 이곳저곳에서 이런말 저런말로 미혹하지만, 거기에 빠지지 말라!”
“① 흔들리지 말라!” “② 두려워하지 말라!” “③ 미혹되지 말라!”
이제는 우리가 역으로,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올지라도 오늘 나는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자!”
이렇게 담대하게 살아야 할 줄 압니다.
본디 이렇게 사는 자세는 예수 믿고 구원받은 우리가 누려야 하는 특권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말씀에 순종하면서 오늘 하루 알차게 사는 것이 바울의 바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바람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바람입니다. 성령님의 바람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