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까다로운 명제들 중 하나는
'대립쌍의 이원성'이라는 양극성(polarity)의 반복되는 문제에서 비롯된다.
간단한그림이 이 반복되는 모순의 해결에 도움이 될 터인데,
왜냐하면 대립쌍의 모순은 끊임없이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 귀착되어
마치 그러한 대립쌍이 대안적인, 뚜렷이 분리된 실상이나 가능성들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대립쌍은 전혀 대립하지 않는다.
그것은 다른 선 위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동일 선상에서의 선형적이고 점진적인 변하일 뿐이다.
| 예 1 | 예 2 |
| 화씨 온도 | 가치 |
3,000도 2,000도 1,000도 500도 100도 50도 0도 -50도 -100도 -200도 -200도 미만 | 고귀한 가치 있는 쓸모 있는 강점 A+ 중립적인 매력 없는 방해 지독한 추한 혐오스러운 |
살펴보면, 예1은 다양한 정도의 열의 존재를 나타내고,
예2는 바람직성 혹은 바람직성의 부재를 나타낼 뿐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덥다 대 차다' 나 '고귀한 대 무가치한' 등의 '대립쌍'은 사실상 없다는 것이 눈에 띌 것이다.
실제로, 전부가 다 동일 선상에 있지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두 개의 다른 선 위에 있는 것은 아니다.
| 예 3 | 예 4 |
| 좋음 | 빛 |
천국 같은 정말 좋은 좋은 상쾌한 '괜찮은' 그럭저럭 '괜찮은' 그저 그런 썩 좋지는 않은 불만족스러운 나쁜 지독한 무서운 오싹한 소름끼치는 | 눔부시게 찬란한 아주 환한 빛 환한 밝은 빛 빛 부드러운 빛 희미한 빛 어스름 어둠 '칠흑 같은 어둠'
|
점진적 변화들은 모두가 두 개의 대립하는 선이 아닌 동일한 연속선상에 있다,
하나의 연속적 성질의 궤도가 있을 뿐이다.
사람은 '나쁘다'와 대립되는 '좋다'란 없음을 알게될 것이다.
왼쪽 척도는 사랑(Love)의 존재 혹은 부재를 가리키며,
오른쪽 척도는 빛의 정도를 표시하는 것이지
빛 대 어둠의 대립쌍을 가리키는 거이 아니다.
명백한 '사실'이란 진실의 환상이고,
그래서 그와 같은 지시(指示,사실)가 사실상 전적으로 맥락에 의존하는 것은 분명하다.
절대적 수준에서, 전체적 맥락은 영원 속 어디선가 일어난 사건에 기여한 일체의 것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연루된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의 카르마의 전역사에 대한 동등한 지식을 포함할 것이다.
이것은 "심판하지 마라."와 "주께서 이르시되, '심판은 나의 것이다'"라고 한 영적 선언의 의미를 설명해 준다.
에고가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에고는 어떠한 표면적 사건에 대해서도 정확히 이해할 능력이 없을 뿐이다.
판단과 비판을 포기할 때 평화로운 안도감이 찾아드는 것은,
그러한 것이 징벌에 대한 두려움은 물론 끊임없는 무의식적 죄책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자기(自己)는 자신이 타인에게 할당한 바로 그 징벌과 선고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사는데,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동안에 보복에 대한 두려움을 설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사람은 죽음, 심판의 날, 자신의 환상이 빚어낸 가혹한 신을 두려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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