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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29일 토요일 [(백)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 학자 기념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가타리나 성녀는 1347년 이탈리아의 중부 도시 시에나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자신의 앞날을 짐작할 수 있는 신비스러운 체험을 하였다. 그래서 완덕의 길을 걷고자 일찍이 소녀 시절 때 도미니코 제3회에 들어갔다. 그녀는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지역들 간의 평화를 위하여 노력하는 가운데 특히 교황의 권리와 자유를 옹호하는 데 앞장섰다. 자신의 신비 체험을 모아 책으로 남긴 그녀는 1380년에 선종하였고, 1461년에 시성되었다. 이탈리아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고 있는 가타리나 성녀는 1970년 교회 학자로 선포되었다. 제자들이 늘어나자 사도들은 스테파노를 비롯해 성령이 충만한 사람 일곱을 뽑아 기도하고 안수하여 식탁 봉사를 맡기고, 자신들은 기도와 말씀 봉사에 전념하기로 한다(제1독서). 제자들이 배를 타고 호수 건너편 카파르나움으로 가는데, 예수님께서 물결이 높게 이는 호수 위를 걸어오신다. 제자들이 두려워하며 예수님을 모셔 들이려는데 배는 어느새 목적지에 닿는다(복음). <성령이 충만한 사람 일곱을 뽑았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6,1-7 1 그 무렵 제자들이 점점 늘어나자, 그리스계 유다인들이 히브리계 유다인들에게 불평을 터뜨리게 되었다. 그들의 과부들이 매일 배급을 받을 때에 홀대를 받았기 때문이다. 2 그래서 열두 사도가 제자들의 공동체를 불러 모아 말하였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식탁 봉사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3 그러니 형제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에서 평판이 좋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찾아내십시오. 그들에게 이 직무를 맡기고, 4 우리는 기도와 말씀 봉사에만 전념하겠습니다.” 5 이 말에 온 공동체가 동의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인 스테파노, 그리고 필리포스, 프로코로스, 니카노르, 티몬, 파르메나스, 또 유다교로 개종한 안티오키아 출신 니콜라오스를 뽑아, 6 사도들 앞에 세웠다. 사도들은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였다. 7 하느님의 말씀은 더욱 자라나, 예루살렘 제자들의 수가 크게 늘어나고 사제들의 큰 무리도 믿음을 받아들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어오시는 것을 보았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6-21 저녁때가 되자 예수님의 16 제자들은 호수로 내려가서, 17 배를 타고 호수 건너편 카파르나움으로 떠났다. 이미 어두워졌는데도 예수님께서는 아직 그들에게 가지 않으셨다. 18 그때에 큰 바람이 불어 호수에 물결이 높게 일었다. 19 그들이 배를 스물다섯이나 서른 스타디온쯤 저어 갔을 때,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시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였다. 20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21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을 배 안으로 모셔 들이려고 하는데, 배는 어느새 그들이 가려던 곳에 가 닿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사람 심장을 닮은 갈릴래아 호수의 크기는 남북이 18킬로미터, 동서가 11킬로미터 정도입니다. 제자들이 배를 저어 나간 거리는 약 6킬로미터입니다. 그들은 어두운 저녁에 호수 한가운데를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호수 위를 걸어서 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유령으로 착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하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을 안심시키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안전하게 목적지인 카파르나움에 도착하였습니다. 호수 위를 걸으신 예수님과 제자들이 탄 배는 이 세상을 항해하는 교회의 모습을 예시합니다. 교회가 정치적인 혼란과 충돌 속에 휘말려 구원의 정체성을 지키지 못하는 위험에 빠져 있을 때, 교회가 세속화되고 이전투구의 장소가 될 때, 예수님께서는 구원의 방주인 교회를 지켜 주시고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인도하십니다. 시에나의 가타리나 성녀는 중세 말기의 신비 영성을 대표하는 분이지만, 교회가 혼란에 빠졌을 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해 준 예언자였습니다. 성녀는 어렸을 때부터 하느님께 선택받아 특별한 환시를 보았고 1375년 피사의 성당에서 오상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성녀는 33세의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교회의 구원 사업을 위해 많은 기도와 희생을 그녀의 정배이신 예수님께 바쳤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녀에게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신앙의 갑옷을 입고 모든 적과 맞서 이기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녀는 심한 갈등과 대립 속에 있었던 서유럽의 군주들과 종교 지도자들을 찾아다니며 교회의 평화를 꾀하였습니다. (류한영 베드로 신부) |
내 조각배 위로 예수님께서 올라오시기를 “모골(毛骨)이 송연(悚然)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너무나 두렵고 떨려서 머리카락이 온통 곤두서고 등골이 오싹해진다는 의미입니다. 어린 시절 밤길을 홀로 걷다가 공동묘지 앞을 지나 갈 때라든지 폐가 속에서 한 걸인이 갑자기 튀어나올 때 모골이 송연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예수님에 앞서 갈릴래아 호수 건너편 카파르나움으로 배를 타고 먼저 떠난 제자들이 그랬습니다. 밤바다, 거센 바람, 높은 풍랑으로 갈팡질팡 힘겨워하던 제자들이었습니다. 마침 그때 스승님께서 물위를 걸어 다가오셨습니다. 이 세상 그 누구라도 딱 두려움에 떨 조건입니다. 제자들은 그야말로 혼비백산했습니다. 스승님을 보고 반가워하기는커녕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 아직도 제자들이 갈 길이 많이 남아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아직도 제자들의 내면에는 스승 예수님의 신원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스승인 예수님이 삼라만상을 다스리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느님, 하늘과 바다마저 주재하시는 능력의 하느님이시라는 깨달음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의 보편적인 이치와 상식을 훨씬 능가하는 초월자이심을 제자들을 아직도 파악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스승님의 출현 앞에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 안에 들어있는 제 모습을 바라봅니다. 때로 저 역시 하느님이 신뢰의 대상이기보다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때로 하느님은 아직도 너무 먼 당신, 너무 막연한 대상입니다. 저 역시 제자들 이상으로 통과해야 할 관문이 많이 남아있는가봅니다. 예수님을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본 것인데, 예수님 안에 자비와 인내로 충만하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현존해계시는데, 하느님은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를 당신 눈동자보다 더 아끼시는 사랑의 하느님이신데... 하느님은 우리가 두려움에 사로잡혀 힘겹게 살아가는 것을 결코 원치 않으십니다. 두려움을 떨치고 힘차게 일어서기를 바라십니다. 결코 만만치 않은 이 세상, 때로 호의적이지 않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마음의 평화를 누리며 안심 속에 살아갈 것을 바라십니다. 그러기 위해서 방법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인생이란 이 작은 우리 각자의 조각배 위로 예수님께서 올라오시는 것입니다. 그분과 함께 밤바다를 항해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높은 파도 앞에, 휘몰아치는 세속의 광풍 앞에, 칠흑처럼 어두운 인생의 긴 터널 속에서 두려움에 떨고 우리를 향해 다가오십니다. 분노로 가득 찬 무서운 얼굴이 아니라 인자함과 따뜻함으로 가득 찬 사랑의 얼굴로 우리가 타고 있는 조각배 위로 올라오십니다. 환한 웃음과 함께 당신 자비의 두 팔을 활짝 벌리시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마침내 한없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이렇게 말씀을 건네십니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요한복음 6장 20절) “나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의 하느님이니 겁내지 마라. 내가 너의 힘을 북돋우고 너를 도와주리라. 내 의로운 오른 팔로 너를 붙들어 주리라.”(이사야서 41장 10절)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성체조배의 힘
전에 어떤 신부님으로부터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자신의 교구에 한 중년 신부님이 계신데 그동안의 사제생활에 지쳐서 1년 안식년을 하셨다고 합니다. 교구에서는 좀 평판이 좋지 않은 신부님이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안식년동안 무엇을 하셨는지는 몰라도 사람이 180도 바뀌어서 돌아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본당을 맡아 하루에 성체조배 3시간을 매일 하셨다고 합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1년 뒤에 미사 참례 숫자가 두 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신부님도 다른 것은 하나도 한 것이 없고 성체조배만 했는데 본당 활성화가 그렇게 잘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에 공감을 했습니다. 저도 성체조배의 효과를 조금은 알기 때문입니다. 작년 논문 발표 할 때도 그 효과를 톡톡히 보았습니다. 논문 발표 전 날 저는 성당에서 자다시피 했습니다. 그리고 발표시간 전까지 오전에도 계속 성체조배를 하였습니다. 하도 성체조배를 많이 한 탓인지 막상 논문 발표 때는 긴장이 하도 되지 않아서 교수님들의 질문조차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대충 생각나는 대로 대답했습니다. 끝나고 생각하니 너무 엉망으로 대답한 것 같아서 후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녹화한 것이 있지만 지금까지도 한 번도 돌려보지 않았습니다. 발표가 끝나고 지도 신부님께 논문발표를 망쳐서 죄송하다고 했더니 어떻게 그렇게 잘 했느냐고 말해주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교수님들도 좋은 점수를 주는 것을 보았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매우 만족스러운 점수가 나왔습니다. 기도만 하면 잘된다는 것은 예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큰 일 때에 다시 한 번 체험하니 기분이 더 좋았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사도들은 외적인 일에 너무 치중하다보니 말씀의 봉사에는 소홀해지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여 7명의 부제를 뽑아 외적인 일을 맡기고 자신들은 기도와 말씀의 봉사 직무에만 전념하겠다고 합니다. 교회를 움직이는 것은 자신들의 노력이 아닌 그리스도와의 만남과 그 분의 말씀을 잘 받아 전하는 역할이 핵심임을 잊지 않았던 것입니다. 외적인 일 때문에 바빠서 기도를 못하고 말씀 준비에 소홀해 진다면 그것은 본질을 잃고 사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제자들은 호수 건너편으로 가려고 하지만 바람이 거세서 스물다섯이나 서른 스타디온 거리에서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한 스타디온이 약 190미터 되니 4.7킬로미터에서 5.7킬로미터 거리에 있었던 것입니다. 갈릴레아 호수 크기를 생각하면 그 정도 거리는 바로 호수 중앙쯤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어오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유령이라고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당신이시라며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고, 제자들은 그 분을 배에 모시려고 합니다. 그런데 배는 어느 새 목적지에 닿은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다른 복음에서처럼 물위를 걸은 예수님의 기적에 초점이 맞춰진 것과는 달리,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은 것보다는 고생하며 노를 저어도 나가지 않던 배가 예수님을 맞아들이려 할 때 목적지에 도달하게 되었다는 기적에 더 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배는 물론 교회를 상징하고 우리 자신을 상징합니다. 아무리 노력을 하며 목적지에 도달하려고 해도 예수님을 자신 안에 맞아들이려는 노력만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맞이하는 방법이 여러 개가 있을 수 있겠지만 저는 성체조배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도 예수님은 배에 타지 않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성체조배도 성체를 영하는 것처럼 우리 안에는 들어오시지 않지만 끊임없이 그 분을 우리 안에 모시려고 다가가는 행위입니다. 그렇기에 성체조배만 열심히 해도 기적이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성체조배 1시간씩 매일 하라고 권해서 그렇게 한 사람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이루어내지 못한 경우를 보지 못했습니다.
1981년 성 베드로 바실리카 대성전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성체조배에 관해 강조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구상에서 지속적인 평화를 정립시키는 가장 훌륭하고 가장 확실하고 가장 효과적인 길은 지속적인 성체조배의 위대한 힘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내가 마더 데레사와 함께 차를 타고 자비의 집의 한 수도원에서 캘커타 시내에 있는 또 다른 수도원으로 여행할 때였습니다. 다섯 번째 마리아의 교의에 관한 마더 데레사의 질문(공동구속자)에 답해 준 후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마더 데레사 수녀님, 미국을 회개시키는 데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마더 데레사는 주저하지 않고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만일 미국에 있는 모든 본당이 하루에 3시간씩 성체조배를 한다면 미국은 회개할 것입니다.’”
-마리아 2001.105호-
그렇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들이 있거든 그것을 위해 하고 있는 노력들을 잠시 멈춥시다. 내가 노력해서 될 것이었으면 벌써 되었을 것입니다. 이젠 조용히 감실 앞에 앉아서 예수님을 먼저 내 마음에 받아들이는 노력을 합시다. 성체조배와 성경묵상을 병행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러면 어느 새 이미 내가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walking on the w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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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29일(토) 음4/4 시에나의 聖女 가타리나 님 |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Cathar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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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리나 베닌카사(Catharina Benincasa, 또는 가타리나)는 그녀는 터키인을 대항하려는 십자군을 모집하는
*자료집에서 발췌 |
염색업자의 25명 자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나 얌전하라는 충고를 받을 정도로 생기발랄하였으나
겨우 6살에 신비 체험을 한 후 16세 이후에는 주님, 성모님, 성인 등의 환시와 오상 체험의 은혜를 입었던 매 순간 느낄 수 있도록 천상의 기도로 저희를 이끌어 주옵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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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29일(토) 음4/4 聖 김성우 안토니오님 순교하신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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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김성우 안토니오 님 | |||||||||||
경기도 광주 구산(龜山)에서 부유한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난 김성우님은 성품이 강직하고 도량이 넓어 모든 이에게 존경을 받았다. 천주교를 알게 되자 두 동생과 함께 곧 입교하였고, 열렬한 신앙으로 전교 활동을 펼쳐 자신이 사는 마을을 교우촌으로 만들었다. 부모가 세상을 떠나자 세례를 받고 서울로 이사한 뒤 자신의 집에 공소를 만들어 신부들을 도왔다.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천주교인으로 밀고되었으나 미리 피신하였고, 고향에 남아 있던 두 동생만 체포되었다. 그러나 김성우님도 이듬해 1월 가족들과 함께 체포되었고, 감옥에서도 외교인 죄수들에게 전교하여 2명을 신앙의 길로 인도하였다. 옥살이 15개월 만인 1841년 4월 28일 치도곤 60대를 맞고 이튿날 교수형을 받아 47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 주교교회의 중앙협의회의 자료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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