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시간 위에 세워진 성곽
이번 보수공사에 앞서 진행된 발굴조사에서는 흥미로운 사실도 확인되었다. 현재의 조선시대 성곽 아래에서 고려시대 문화층이 발견된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은 돌뿐인데 그 아래에는 또 다른 시대가 잠들어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게 느껴졌다. 고려의 시간 위에 조선의 성곽이 세워졌고 오늘날의 수리가 그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한 장소에서 서로 다른 시대가 겹겹이 쌓여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홍주읍성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고 있었다.
수리는 돌 하나를 구하는 일부터
성곽 수리는 무너진 돌을 다시 쌓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장 설명을 들으며 생각이 달라졌다. 성곽 수리의 시작은 돌을 쌓는 일이 아니라 돌을 찾는 일에 가까웠다.
홍주읍성의 성돌은 주로 태안석으로 축조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과거처럼 필요한 석재를 충분히 확보하는 일은 이제 쉽지 않다. 석산 주변 개발이 늘어나면서 발파가 어려워졌고, 원하는 크기와 형태의 석재를 구하는 일도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고 했다.
이번 공사에서도 전문가 자문을 거친 끝에 일부 구간에는 문경석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부족한 돌을 대신 채워 넣는 일이 아니다. 기존 성돌과 색감과 질감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지 세심하게 검토해야 한다. 우리가 보는 성벽은 단순한 돌의 집합이 아니라 수많은 고민과 선택이 쌓인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주름진 손에 새겨진 시간
현장 한편에서는 석공들이 망치와 정을 들고 돌을 다듬고 있었다. 굳은살이 박인 손등과 깊게 파인 주름에는 오랜 세월 수리 현장에서 축적된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듯했다. 조금의 틈도 허용하지 않기 위해 돌을 여러 번 맞춰보고 다시 다듬는 모습에서 장인의 고집과 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문득 우리가 지금까지 만나온 성곽과 궁궐, 사찰의 석축들도 모두 누군가의 이런 손길을 거쳐 완성되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었다. 현장에서 만난 석공들 대부분이 오랜 경험을 가진 장인이었지만 상당수가 고령이었다. 수십 년 동안 몸으로 익힌 기술은 하루아침에 전수될 수 없다. 국가유산을 지키는 일은 돌을 남기는 일인 동시에 그 돌을 다루는 기술과 사람을 남기는 일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수리는 돌을 다듬는 사람의 손끝에서
답사를 마치고 다시 성벽 앞에 섰다. 처음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성곽이 먼저 보였지만 돌아갈 때는 사람이 먼저 떠올랐다. 원형에 맞는 석재를 구하기 위해 고민하는 사람들, 오래된 성돌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돌을 다듬는 사람들, 그리고 하루 종일 망치와 정을 들고 성벽을 다시 세워가는 석공들의 모습 말이다. 어쩌면 홍주읍성의 성벽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돌만이 아니라 그 시간을 묵묵히 이어온 사람들인지도 모르겠다.
올가을 홍주읍성 앞에서는 홍성 글로벌바비큐페스티벌이 열린다고 한다. 많은 사람이 찾는 공간 한편에는 새롭게 단장된 성곽이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성곽을 따라 불어오는 계절이 되면, 수리된 홍주읍성 북서측 성곽을 천천히 걸어보길 권한다. 수백 년의 시간과 장인들의 손길이 켜켜이 쌓인 성벽이 방문객들에게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2026 국가유산 수리 현장 중점 공개]
국가유산청은 국가유산 수리 과정에 관한 국민의 이해도를 높이고, 현장 체험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2026년 전국 주요 국가유산 수리 현장 15개소를 선정해 올해 12월까지 일반에 공개한다.
※ 홍주읍성 북서측 성곽 복원정비 현장은 5월 22일부터 8월 30일까지 공개되며, 매월 넷째 주 목요일 오후 3시부터 4시까지 1시간 동안 1회 공개된다. 다만 세부 사항(집결 장소, 시간, 입장료 등)은 홍성군 문화유산과에 문의한 후 예약이 반드시 필요하다.
☎ 홍성군 문화유산과 041-630-1300 mjh4184@korea.kr
[홍성 홍주읍성 북서측 성곽 복원정비 현장의 핵심 공정]
1. 석재가공
보충 석재는 기존 석재와 질감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가공 정도를 같게 한다. 기존 성돌이 거친정다듬 단계까지 가공되었기에, 끝날이 뾰족한 정을 사용해 한 차례 다듬질하여 표면을 평평하게 정리한다.
(석재가공 순서) 혹두기 → 정다듬 → 도드락다듬 → 잔다듬 → 갈기
2. 돌쌓기
석재가공이 끝나면 성곽의 원형에 맞추어 돌을 쌓는 작업이 진행된다. 돌쌓기는 면석을 기준선에 맞춰 정렬하며, 뒤뿌리가 짧고 긴 것을 적절하게 섞어 구조적으로 안정되게 쌓는다. 내부에는 뒤채움돌을 면석 뒤뿌리와 서로 함께 엇물려 시공하는 방식으로 구조적 안정감을 확보한다.
자료, 정리 국가유산청 수리기술과 | 사진 고인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