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11일 온고을교회 수요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 22. 성령 하나님이 우리의 보혜사이심을 믿습니다! 》
요 14:26
〈 부활의 주님은 왜 승귀하실까? 〉
부활하신 예수님이 이 땅에 계속하여 계셨더라면 어땠을까요?
그 당시 나이가 서른셋쯤 되었으니 부활 후 4~50년간 이 땅에 더 계실 수 있었을 겁니다.
그랬더라면 오늘날 부활이 사실이냐 아니냐에 대한 논란도 없을 겁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부활 이후 40일간 이 땅에 더 계셨습니다.
그리고 감람산에서 제자들 보는 가운데 하늘로 들리워 구름 속으로 가려졌습니다.
☞ 부활의 주님은 왜 굳이 승천하셔야 했을까요?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영으로 계신 분입니다.
본디 영이신 하나님이 사람의 형체를 가지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순전한 희생제물이 되어 죄인들이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받고 구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오신 예수님은 우리 인간과 똑같은 모습이었고, 사람이 가진 한계를 똑같이 가졌습니다.
사람이 가진 한계는 무엇입니까?
육신을 가진 사람은 동시에 두 곳 이상의 장소에 있을 수 없습니다.
한국과 미국, 동시에 존재하지 못합니다. 어디든 한 곳의 자리에만 있어야 합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도 이러한 한계를 고스란히 지닙니다.
제2의 위격인 성자 하나님이 사람의 형체로 오실 때 감수해야 하는 한계였습니다.
그렇게 오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써 사명을 완수했습니다.
예수님이 기꺼이 희생제물이 되어주심으로써 죄인인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지상의 사명을 완수한 예수님은 영이신 하나님의 자리로 승귀하셔야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이 땅에 계속 계신다면 육신을 가진 사람으로서 한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 하나님의 속성이 본디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영이시며, 아니 계신 곳 없이,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분입니다.
예루살렘에 계셨던 예수님은 다시 영이 되어 무소부재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육신을 가지고는 결코 무소부재의 하나님일 수 없기에 예수님은 승천하십니다.
요 16: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 하나님이 영으로 계시는 뜻 〉
하나님이 영으로 계셔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무소부재를 위해서입니다.
우주만물, 어느 곳 한 군데라도 하나님이 아니계신 곳이 없습니다.
그렇게 계시기 위해서는 하나님은 영으로 계셔야 합니다.
성육하신 예수님은 2천 년 전 이스라엘에만 계셔야 합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다시 영으로 가셔야 합니다. 이것을 ‘승귀’라 합니다.
승귀(昇歸) 오를 ‘승’자에 돌아갈 ‘귀’를 씁니다.
육신으로 오셨다가 다시 영으로 되돌아가신다, 이 뜻입니다.
☞ 영이신 하나님은 육신을 가지고 사는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하나님 보여줘, 그러면 나도 하나님 믿을게”
만일 하나님이 육안에 보인다면, 하나님은 우리 눈에 보이는 그곳에만 계신 분이 됩니다.
하나님은 무소부재, 없는곳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육안으로 볼 수 없습니다. 역설입니다.
☞ 이에 대한 유비(類比)가 하나 있습니다. 공기입니다.
공기는 전세계를 덮고 있으면서,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우리 눈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공기가 지구상에 무소부재합니다. 공기없는 곳이 없습니다.
공기가 있으므로 생물체가 살 수 있습니다.
생물체 중에서 만물의 영장, 사람만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4)”
우리와 똑같은 형체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 이제 승귀하셔야 합니다.
그러면 이 땅에는 하나님이 아니 계신 상태가 되는가요?
예수님이 이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요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예수님은 하나님이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로 계심을 너무나 잘 압니다.
영으로 계셔야 하고, 그러므로 무소부재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부활 하시고나서 ‘승귀’하여야 함을 제자들에게 미리 알립니다.
“내가 승귀하지만, 너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겠다!”
☞ 영이신 “~또 다른 보혜사~” 그 분께서 이 땅에 오신다! 선포합니다.
〈 삼위일체 하나님 〉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는 이 정도의 진리는 알아야 합니다.
이를 모르고 막무가내로 “믿습니다. 아멘~”만을 외친다면 신앙이 성장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하나님은 아니 계신 곳이 없다! 무소부재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육신을 가진 자의 눈으로는 뵐 수 없다!
하나님은 이렇게 계시는 분입니다.
자연스럽게 성부하나님, 성자하나님, 성령하나님! 삼위일체 하나님의 진리가 드러납니다.
하나님은 애초부터 이렇게 성부 성자 성령으로 계셨습니다.
세 위격으로 계시면서 한 본체이십니다.
☞ 삼위일체로 계신 하나님을 설명하고자 초대교회때부터 교회지도자들이 애를 썼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유비를 찾아서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이땅에 있는 사물들을 빌어서, 삼위일체를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어거스틴은 계란을 유비로 설명했습니다.
계란이 껍질과 흰자 노른자로 되어있음이 삼위일체의 유비라고 했습니다.
껍질도 계란이고, 흰자도 계란이고, 노른자도 계란입니다.
각각이 계란이면서 전체가 계란입니다.
하나님의 삼위일체가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혹자는 사람도 마찬가지라면서 설명을 시도했습니다.
사람은 살과 뼈 그리고 피로 이루어짐을 예로 들었습니다.
나의 살도 나이고, 뼈도 나이고, 피도 나입니다. 셋이 모두 나 자신입니다.
셋으로 있으면서 각각이 ‘나’이면서, 셋이 모두 유기적으로 결합해 있으면서 ‘나’입니다.
과일도 마찬가지입니다. 껍질과 과육과 씨로 구성됩니다.
우리 주변에 삼위일체의 유비는 매우 많습니다.
하나님은 창조하실 때, 하나님이 삼위일체로 계심을 피조물 속에 이렇게 드러내십니다.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으로 삼위가 각각 하나님이시면서 함께 또한 하나님이십니다.
성자 예수님은 이 땅의 죄인을 구원하고자 기꺼이 육신을 입으시고 성육신하셨습니다.
십자가와 부활로써 사명을 완결지으시고, 다시 승귀하면서 성령 하나님을 말씀하십니다.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 하나님의 계심에 대하여 〉
창조주이시며, 사랑의 하나님, 공의의 하나님은 이렇게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입니다.
이렇게 계시는 중에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피조물인 우주만물, 하나님은 구석구석에 아니 계신 곳 없이, 영으로 무소부재하십니다.
그때 이미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구에 살도록 지었는데, 사람이 타락했습니다.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고자 영으로 계신 삼위 중 제2의 위격 성자 하나님이 성육신합니다.
예수님은 죄 형벌을 담당하고 다시 영으로 승귀하십니다.
승귀하시면서 “너희를 고아처럼 두지않고 보혜사 성령이 오신다” 말씀하십니다.
사실은 성자 하나님의 성육신 이전으로 되돌리시겠다는 말씀입니다.
☞ 삼위일체 하나님, 세 위격의 위치와 역할을 굳이 나누어보면 이렇습니다.
성부 하나님은 하늘 보좌에 계신 분으로 우리에게 드러내십니다.
성자 하나님은 하늘 보좌 우편에 계십니다.
성령 하나님은 피조물 세상에 두루 다니십니다. 우리에게 계시된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은 이 상황을 제자들에게 설명하면서 성령 하나님을 ‘보혜사’라고 하십니다.
이제 ‘보혜사’의 의미를 살펴볼 차례입니다.
보혜사(保惠師)는 한자로 지킬 보, 은혜 혜, 스승 사를 씁니다.
보혜사라는 단어는 우리 국어사전에 이렇게 나옵니다.
[보혜사] 성령
너무 간단합니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조회를 해 봤습니다.
[보혜사] 성부, 성자와 함께 성삼위의 하나
왜 이렇게 간명하게 표기하고 있을까를 곰곰 생각해봤습니다.
설명을 하자면 국어사전 한권 분량을 모두 할애해도 부족할 겁니다.
그런때는 이렇게 한 단어, 혹은 한 문장으로 표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쨌든 ‘보혜사’는 성경이 천명하는 성령하나님을 표현하는 매우 귀중한 단어입니다.
보혜사는 헬라어(희랍어) 파라클레토스παρακλητος를 우리말로 번역한 단어입니다.
성경을 한글로 번역할 때, 보혜사라는 말을 조어하여 쓴 것입니다. 적절한 번역입니다.
보혜사의 뜻을 보겠습니다.
〈 보혜사 保惠師, 파라클레토스παρακλητος, 패러클리트paraclete 컴퍼러comforter 〉
保惠師, 지킬 보, 은혜 혜, 스승 사,
성령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시되 은혜로 지켜주십니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에게 참 스승이 되어주십니다. 할렐루야~
영어 표기는 주로 헬라어 파라클레토스παρακλητος를 어원으로 합니다.
패러클리트paraclete로 번역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패러클리트는 성령을 의미하면서 변호사, 조정자 혹은 위로자, 상담자의 뜻을 가집니다.
그래서 어떤 영어 성경 버전에서는 카운슬러counselor를 쓰기도 합니다.
☞ 삼위일체로 계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
하나님은 이렇게 치밀하게, 그리고 정교하게 계시면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에는 대충 대충이 없습니다. 그럭저럭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심부터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섭리와 경륜은 세상 어떤 것보다 치밀합니다.
세상의 어떤 통치자가 이렇게 치밀하고 정교하게 다스립니까?
인류 역사에서 아무리 빼어난 통치자일지라도 하나님의 발등상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이 크리스천입니다.
우리는 예수 부활의 두 번째 열매입니다.
우리도 이 땅의 삶을 마치면 영이 됩니다.
영이 되어 하나님의 나라 천국으로 올라갑니다.
그때 비로소 하나님을 면전에서 뵙게 됩니다.
우리가 영이 되어 천국에 들어갈 때, 육신은 흙으로 돌아갑니다.
흙으로 돌아간 육신도 ‘나’입니다. 천국으로 입성하는 영혼도 ‘나’입니다.
그리고 아직 이 땅에 살아있는 사람들, 특히 유족의 마음에 ‘내’가 남게됩니다.
아까 사람은 살과 뼈와 피로 된 삼위일체라고 말씀드렸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한 평생을 살다가 소천하면 육신은 흙으로, 영은 하늘나라로 갑니다.
그리고 유족의 가슴속에 기억으로 남게 됩니다.
사람이 삶을 마치면서 영은 하늘, 육은 땅, 기억은 유족의 가슴, 이렇게 셋이 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지어진 사람의 실체입니다.
유족의 가슴에 남은 나, 흙으로 돌아간 나는 유한합니다. 머지않아 소멸합니다.
☞ 하늘나라로 간 나의 영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이것이 영생입니다. 할렐루야~
〈 보혜사와 우리의 생애 〉
모태에서 태어나 한 생애를 시작합니다.
세상의 것이 다인 줄 알고 열심히 삽니다. 그러나 이것이 다가 아닌 줄 알게 됩니다.
물질계가 있다면 영의 세계 영계가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인생은 물질계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영계와 이어집니다.
물질계에서 영계로 이어지는 중에 사람도 삼위일체의 모습으로 한 주기를 이룹니다.
영적인 세계에 진입할 때 하나님을 대면하게 됩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과 대면합니다.
하나님을 뵈올 때, 하나님으로부터 ‘의인’으로 평결받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서려면, 이 땅에 사는 동안 보혜사 성령의 인도를 따라야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공의의 하나님!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에 살다가 하나님을 뵙게 됩니다.
하나님과 마주할 때, 부끄럽지 않으려면, 보혜사 성령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