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 12,1-8.11-14; 1코린 11,23-26; 요한 13,1-15
+ 찬미 예수님
우리는 오늘 주님 만찬 성목요일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오늘 미사 중 특별한 점이 세 가지가 있는데요, 첫째, 발 씻김 예식이 있습니다. 둘째, 양형 영성체가 있고, 영성체 후에 성체를 수난 감실로 모셔가는 예식이 있습니다. 셋째, 제대를 벗기는 예식이 있습니다.
제대는 그리스도를 상징하기 때문에, 제대에서 모든 제구를 걷어내는 것은, 주님께서 당신의 모든 권능을 내려놓으시고 죽음 앞에 서신 ‘자기 비움’을 의미합니다. 또한 체포되신 후 옷이 벗겨지고 제자들에게마저 버림받으신 채 홀로 남겨지신 주님의 고독과 수난을 상징합니다.
오늘 오전에는 대흥동 성당에서 ‘성유 축성 미사’가 봉헌되었는데요, 주교님께서 1년간 교구 내 모든 본당에서 사용하게 될 성유를 축성하셨고, 사제들은 사제 서품 때의 서약을 갱신했습니다.
오늘 본당 사목회장님과 부회장님들께서 함께 미사에 가셔서 저와 보좌 신부님에게 꽃다발을 주셨는데요, 오늘이 예수님께서 사제직을 세우신 날이라 사제들의 생일이라 불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관례가 있는데요, 저는 우리 본당에 오기 전까지 22년간 특수 사목을 했기 때문에, 22년간 꽃다발을 받을 일이 없었다가, 우리 본당에 부임한 다음부터 이렇게 꽃다발을 받고 있습니다. 오늘 마르티노 신부님과 베니뇨 신부님도 성유 축성 미사에 오셨는데, 꽃다발을 못 받으셨을 텐데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왜 오늘이 예수님께서 사제직을 세우신 날일까요?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최후의 만찬 때에 성체성사를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사제직은 성체성사, 즉 미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성체성사의 근본정신은 다른 사람의 발을 씻어주는 것이라고 복음은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잡히시던 날 밤에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만찬을 드십니다. 이 파스카 만찬은 제1독서가 소개하는 바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하기 전날 먹었던 식사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파스카’는 ‘건너뛰다’, ‘지나가다’라는 뜻으로서,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이스라엘 백성의 집에는 재앙이 건너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제1독서에는 집집마다 어린 양이나 염소를 마련하여 그 피를 문설주와 상인방에 바르고 그 고기를 먹으라고 하는데,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에는 어린 양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자신이 파스카의 어린 양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파스카는 예수님의 수난으로 말미암아 인류가 죄와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음을 의미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만찬 중에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줄 내 몸이다.” 또 같은 모양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죄를 사하여 주려고 너희와 많은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이 말씀은 탈출기 24장의 말씀과 관련이 있는데요, 하느님께서는 시나이산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과 모세를 통하여 계약을 맺으셨습니다. 모세는 동물의 피를 가져다 백성에게 뿌리고 말하였습니다. “이는 주님께서 이 모든 말씀대로 너희와 맺으신 계약의 피다.” (탈출 24,8) 이 계약이 옛 계약, 즉 구약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구약을 넘어서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인 ‘새 계약’ 즉 ‘신약’을 맺으십니다. 이 새 계약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피로 맺으신 계약으로서, 우리는 예수님의 몸 즉 성체를 영함으로써 이 계약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신다는 계약이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는 계약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제2독서에서 말씀하십니다. “사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미사 중 성체와 성혈 축성 후에 사제가 ‘신앙의 신비여’라고 노래하면 우리는 바로 이 말씀으로 화답합니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나이다.” 우리는 이 기도를 통하여 세 가지 신비를 고백합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현존, 그리고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재림입니다.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시면서 우리에게 해주신 마지막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앞 못 보는 사람의 눈을 뜨게 하시거나 죽은 사람을 되살리시는 것과 같은 엄청난 기적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아들께서 사람이 되시어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으니, 사실은 기적적인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직전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서로 섬기라는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죽음을 상징합니다. 셋째, 세례성사를 상징합니다.
파스카 식사는 이집트에서의 지긋지긋한 종살이의 마지막 날 식사를 기념하는 축제입니다. 이제 더 이상 노예 생활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기대와 환희에 부풀어 있는 이 순간에, 주님께서는 일어서시어 종들이나 하던 일을 하십니다. 당시 사람들은 샌들을 신거나 맨발로 다녔기에, 발이 더러웠습니다. 식사 초대를 받아서 가면, 그 집 종이 나와서 손님의 발을 씻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 일을 우리에게 하십니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서로 섬기라는 의미에서 발을 씻어주십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의 죽음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신 것은 스스로 낮추신 것이고, 죽으신 것은 낮추심의 절정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제자들 앞에서 엎드려 발을 씻어주신 것은 이러한 낮추심과 사랑의 절정인 십자가 죽음을 상징합니다.
베드로가 “제 발은 절대로 씻지 못하십니다.”라고 말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거부하면, 주님의 생명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셋째, 세례를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드러내기 꺼려 하는 발을 씻어주심으로써, 우리가 드러내기 꺼려 하는 죄를 용서해 주시고 새로 태어나게 하십니다. 베드로가 “발만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십시오”하고 말씀드리자, 예수님께서 “목욕을 한 이는 온몸이 깨끗하니 발만 씻으면 된다. 너희는 깨끗하다.”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이 말씀은 세례로 새로 태어난 우리 모두 깨끗하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렇기에 발을 씻으신 것은 ‘고해성사’를 상징할 수도 있겠는데요, 판공성사 다들 받으셨죠? 고생들 하셨습니다. 제가 고해소에서 가장 많이 듣는 얘기가 뭘까요? “고해성사가 부담스럽다”는 말씀입니다. 그럼 저는 뭐라고 말씀드릴까요? ‘다 부담스럽습니다.’
부담스러움을 무릅쓰고 고해성사를 받으셨으니 수고들 많으셨습니다. 그러면 교우들께서는 “신부님들이 수고하셨지요”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누가 더 수고했을까요?
예수님이 제일 수고하셨습니다. “이는 … 내 피의 잔이니 죄를 사하여 주려고 너희와 많은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라고 말씀하시며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느라 제일 고생하셨는데 우리가 더 고생했다고 생각지는 말아야겠습니다.
오늘은 신임 구역장 반장님들이 대표로 세족례에 참여하시게 되었습니다. 이 세족례는 주례 사제가 대표들의 발을 씻어드리는 시간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발을 씻어주시는 시간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우리를 섬기는 시간이고, 나를 위하여 돌아가신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시간이며,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시간입니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감추고 싶은 나의 더러움을 주님 앞에 드러내 보여야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인간의 발을 씻어주시는 기적을 보여주십니다. 그 주님의 몸을 받아 영하는 나 역시 그 기적을 베풀도록 초대받았습니다. 우리도 누군가의 발을 씻어줄 수 있을까요?
최근에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우리가 가장 친절해야 할 대상은,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인데, 우리는 막상 그 사람을 가장 함부로 대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생각해 보면, 생판 모르는 남에게는 친절하려 하면서,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 우리 가족에게는 친절하지 않은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낯선 이들이 아니라, 매일 함께 먹고 자며 동고동락했던 사람들의 발을 씻어주십니다. 그들이 얼마나 약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고, 이제 몇 시간 뒤면 그들은 당신이 씻어주신 이 발로 당신을 배반하고, 당신으로부터 달아나리라는 사실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발을 씻어주십니다.
너무나 익숙해져서 때론 소중함을 잊게 되는 우리 가족들, 그가 부끄러워하는 그의 발을 우리도 씻어주어야겠습니다. 가족에게 건네는 친절한 말, 다정하게 잡아주는 따뜻한 손길, ‘고마워’, ‘사랑해’라는 말 한마디가 우리의 일상에서 기념하는 발씻음 예식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준 것이다.”
https://youtu.be/zqyU0fAnqCU?si=S0zB9VD2Ih1mcqOy
슈베르트, 독일 미사곡 중, 주님의 기도 (우리나라 가톨릭 성가에는 334번 '사랑의 성체성사'로 되어 있습니다.)
알베르트 에델펠트,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심, 1898년
출처: File:Albert Edelfelt Jesus Washing the Feet of his Disciples (1898).jpg - Wikimedia Comm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