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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는 세대의 부모공경
20: 12
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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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에는 역사와 전통을 중요하게 여겼으나 이제는 변화와 개혁을 사람들이 더 중요하게 여기는 시대입니다.
그 변화의 속도가 갈수록 더욱 빨라지며 만일 그 같은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게 되면 평생토록 몸을 담았던 직장에서도 하루아침에 퇴출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냉엄한 현실입니다.
간혹 박물관에 가보게 되면 옛날 조상들이 사용하던 도구들이 연대별로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물론 그와 같은 골동품은 문화재로서는 가치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을 지금 사용하라고 하면 다 사양할 것이며 대신 백화점에 가서 신제품을 살 것입니다.
컴퓨터나 디지털 제품들은 그 변화의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신제품을 사가지고 돌아오면 며칠 후에는 또다시 업그레이드 된 신 모델이 출시되기 때문에 내가 산 것은 금방 중고가 되고 맙니다.
그러나 서점에 가게되면 신간과 더불어 고전들이 함께 진열되어 팔려 나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젊은이라고 해서 신간만 읽는 것이 아니며, 또한 나이든 사람이라고 해서 고전만 읽는 것이 아니며 지식은 모든 시대를 넘나드는 것입니다.
이처럼 새것과 옛것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인간의 문화가 아무리 급속히 발전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외형적인 변화일 뿐이지 인간 본질이나 내면이나 정신마저 발전하거나 진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좋은 예가 옛날 사람과 현대인과 옷의 패션은 물론 다를 수밖에 없지만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서적이나,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위인은 오히려 골동품을 사용하던 옛 어른 들 가운데 더 많은 것입니다.
흔히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일컫는 후기현대주의자들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문화가 달라지 듯이 인간의 도덕적 규범이나 가치관도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특히 젊은 세대가 이에 많은 동조를 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그와 같은 변화 속에서 교회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절대 불변의 하나님을 믿으며 수천 년 전에 기록된 성경은 일점 일획도 변할 수 없는 영원한 진리라고 믿고 그것을 후손들에게 가감하지 않고 그대로 물려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교회와 성도들은 변화 무쌍한 세대 속에 무엇이 변화되고 개혁되어야 하고 무엇이 잘 보전되고 지켜져야만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아무리 시대가 급속하게 변한다고 할지라도 성경 말씀에 입각한 우리의 생활 규범은 잘 지켜지고 보전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 중에 하나가 아무리 무신론이 판을 치고 윤리 도덕이 땅에 떨어졌다고 개탄을 하는 세대에서 변치 말고 잘 보전되어져야 할 윤리 도덕과 생활 규범은 무엇인지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해서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1.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사랑
하나님은 영원 불변하시기 때문에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도 역시 영원 불변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시 117:2)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고 진실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할렐루야”
그 증거가 바로 하나님이 나 같은 죄인 하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일입니다.
하나님은 그 계획을 영원 전부터 하셨으며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변경치 않으시고 때가 되자 본래 계획하신 대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이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신 이유도, 독생자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이유는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죄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가 된 우리를 도리어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로 삼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엡 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엡 1: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그 같은 예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감히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녀들이 되었으며, 하나님의 사랑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때를 따라 적절하게 우리를 도우시는 은혜로 우리가 매일 매일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히 4: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자식이 어렸을 때는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지만 장성한 후에는 부모님을 사랑하고 그 은혜를 보답하는 효도를 해야 한다면, 그 같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공경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신 10:12)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하나님이 그렇게 요구하시는 것은 생색을 내시는 것이 아니라 알고 보면 우리 자신의 유익과 행복을 위해 그렇게 명령하시는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신 10:13)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원하신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는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것이 마음과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공경하고 사랑하는 것일까요? 그것을 구체적으로 가르쳐주는 말씀이 바로 십계명인 것입니다.
십계명의 내용은 크게 둘로 나누어지는데 첫째로는 하나님을 어떻게 공경해야 하는가? 하는 것을 일 계명에서부터 사 계명에까지 말씀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일 계명에서 사 계명과 같이 다른 신을 섬기거나 우상을 만들거나 그 앞에 절하지 말고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고 하나님의 날로 구별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변할지라도 달라질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계명인 것입니다.
(느 1:5) “가로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가 바뀌었다고 핑계를 하면서 우상 앞에 절을 하고 주일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변질되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시대에 따라 변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2. 부모님에 대한 사랑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간다고 해도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이 변함이 없는 것처럼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 중에 또 하나는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입니다.
그 얼굴이나 성격이 미우나 고우나 부모는 다 자기 자식을 제일 예뻐하며, 형편이 허락되지 않기 때문이지 자기 자식을 위해서 누구보다 제일 좋은 것을 주려고 하는 마음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태 중에 잉태한 아이를 열 달 동안 잘 키우기 위해 감기에 걸려도 아기에게 해로울까봐 약도 먹지 않고 버티며, 입 덫을 심하게 하여 수개월 동안 구역질을 하며 음식을 먹지 못할지라도 원망하지 않고 아이에게 좋다는 것을 골라 열심히 태교를 합니다.
세상에 태어나 가장 고통스러운 해산의 진통을 겪다가 어떤 산모는 기절을 하기도 하지만갓 태어난 아이를 보면 그것조차 행복하게 여기는 것은 자식에 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아이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는 일도 어려운 일이지만 태어난 아이를 훌륭하게 믿음으로 잘 키우는 일은 더더욱 어렵고 힘드는 일입니다.
경제적인 뒷바라지를 하는 일이 쉽지 않지만 직장 생활을 하면서 자존심이 상하고 건강을 해치는 일일지라도 자식을 공부시키기 위해 돈이 되는 일이라면 마다하지 않으며, 자신을 위해서 먹는 것과 입는 것을 아끼면서 남들에게 구두쇠 소리를 들으면서도 자식을 위해서는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는 것이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입니다.
그 같은 부모의 사랑은 옛날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도 그렇게 하였으며 지금 부모가 자식들에게 그렇게 사랑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갈수록 더 심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러므로 자식이 그와 같은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부모님께 감사하고 사랑하는 일은 인종이나 문화나 종교를 초월하여 인간의 기본적인 도리인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종교가 부모에 대한 효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가 부모님에 대한 효도를 강조하는 것은 어느 다른 종교와 비교하여도 뒤지지 않습니다. 심지어 구약 시대에는 부모에게 하나님 아버지를 망령되이 하거나 부모에게 불효하는 자를 돌로 치게 하였을 정도로 부모에 대한 효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출 21:15)“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레 20:9) 무릇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 그가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였은즉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 마땅히 지켜야 할 십 계명 중에 이웃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 것인가를 십계명 중 다섯 번째에서부터 마지막 열 번 째까지 계명을 통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부모를 공경하고, 이웃을 살인하거나, 간음하거나, 도적질하거나, 거짓말하거나, 탐내지 않는 것이 곧 이웃을 사랑하는 것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처럼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 오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 계명과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 계명과의 한 가운데서 서로 연결해주는 교량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데 과연 그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인가 하는 것은 자기를 낳아 키워준 부모를 얼마나 사랑하는 사람인가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토록 죽을 고생을 하며 키워주신 부모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효도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남남인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실이 아니라 인간적인 계산에서 나온 거짓된 술수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부모를 사랑하는 것은 별개가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부모와 이웃을 사랑해야 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정말 하나님을 진실하게 믿는 사람이라면 부모님을 마땅히 공경해야하고 이웃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요일 4: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하나님께서도 당신에게 예배만 잘 드리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을 기뻐하시지 않고 육신의 부모와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을 더욱 사랑하시고 축복하시는 분이십니다.
(요 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 15: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3. 부모를 공경하는 방법
국가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헌법조차도 때로는 변하는 시대에 따라 개정을 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인간이 얼마나 유한하며 변하기 잘하는 존재인가 하는 것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원하신 하나님이 변하시지 않고 인간의 본성이 변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시대가 변한다고 할지라도 인간의 타락한 본성을 다스리기 위해 제정하신 하나님의 법이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아무리 오래 된 책이라고 할지라도 개정판이 나올 수 없는 영원한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세대가 변한다고 할지라도 인간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법인 성경은 변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성경이 인간을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성경을 따라 살아가는 것만이 인간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요, 또한 인간이 그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비결인 것입니다.
그 중에 하나가 위로는 하나님 아버지를 공경하고 아래로는 육신의 부모를 공경하라는 법을 지키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육신의 부모를 어떻게 공경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은 변하는 시대에 따라 그 기준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변함이 없고, 부모의 사랑이 변함이 없는 것처럼 하나님을 공경하는 예배와 부모를 공경하는 효도도 무슨 새로운 방법을 요구하는 것이 아님을 수천 년이 지나도록 신구약 성경에 동일하게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은 출애굽한 세대에게도 하나님과 더불어 부모를 공경해야 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출 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2) 하나님은 광야에서 태어난 새로운 세대에게도 동일하게 하나님과 더불어 부모를 공경해야 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신 5:16)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3) 예수님께서도 이를 재확인하셨을 뿐 아니라 친히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마 19:19)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4) 서신서에서도 역시 이방신들을 섬기는 문화권 속에 사는 에베소 사람들에게 역시 동일하게 부모를 공경해야 할 것을 명하였습니다.
(엡 6: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만일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맞는 성경을 또 하나 기록하신다면 역시 동일하게 하나님을 공경하고 더불어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씀하실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온갖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시고 나를 품으시고, 나를 낳으시고, 나를 길러 주신 육신의 부모를 어떻게 공경하는 것이 성경적인 효도일까요?
첫째로 말씀을 청종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마치 하나님의 말씀을 귀기울여 듣고 순종하는 것처럼 부모님에 말씀도 귀기울여 듣고 잘 순종하는 것부터 시작이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잠23:22)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좀 컸다고, 부모도 아는 것이 많아졌다고, 부모 도움 없이도 살게 되었다고 부모를 경홀히 여기 부모의 말씀을 무시하는 것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신자의 도리가 아닌 것입니다. 왜 그것이 중요할까요? 그것이 바로 부모님의 심기를 평안하게 해드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즐겁고 기쁘게 하여야 합니다.
사람이 나이가 많아지면 먹고 싶고, 입고 싶은 욕망보다는 하루라도 마음이 즐겁고 기쁘게 살아가는 것이 최상의 낙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부모님에게 근심과 염려를 끼쳐드리지 말아야합니다.
(잠23:25)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네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부모님을 마음을 아프게 하면서 아무리 부모에게 좋은 옷이나 선물이나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 효도가 아니라 자기 과시입니다. 그것은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한 후에 해도 늦지 않은 것입니다.
셋째로 허물을 덮는 일을 해야 합니다.
자식은 태어날 때부터 약점과 허물 투성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은 그 자식의 허물조차 감싸주시며 예쁘게 보시고 사랑하면서 길렀기 때문에 이제는 장성한 어른이 되된 것이지 저절로 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부모님이 나이가 들게 되면 어린아이처럼 허물과 약점이 많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럴 때 자식은 그 부모를 허물하거나 핀잔을 주거나 부끄럽게 생각해서는 안되고 내가 철부지였을 때 부모님에 내게 하신 것을 기억하고 나도 부모의 허물을 덮어야 합니다.
홍수 심판 때 당대에 의인이었던 노아도 술에 취하여 자식들 앞에 허물을 드러내 보인 적이 있었습니다. 셈과 함과 야벳 세 아들 가운데 함은 아버지의 허물을 드러내어 비난하였으나 셈과 야벳은 뒷걸음질을 하여 옷으로 아버지의 허물을 덮었습니다.
다같은 노아의 아들들이지만 아버지의 허물에 대한 자세는 똑같지 않았습니다. 정반대였습니다. 그 결과는 아버지의 허물을 드러내었던 함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 까닭은 그것이 개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창9:25)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오늘도 부모를 공경하는 방법은 성경대로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동일하게 축복을 하실 것입니다.
(시 89:33) “그러나 나의 인자함을 그에게서 다 거두지 아니하며 나의 성실함도 폐하지 아니하며 (시 89:34) 내 언약을 파하지 아니하며 내 입술에서 낸 것도 변치 아니하리로다”
결 론
점점 우리 사회가 고령인구가 많아지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얼마 전 신문에 보니까 2020년이 되면 65세 이상 된 고령인구가 전체 인구의 15% 정도가 될 것이라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우리나라는 점점 핵가족이 되면서 가정에서 부모님을 모시는 것이 점점 적어지게 되고 그래서 노인복지가 잘 되어야 한다는 얘기를 하지만 사실 사회복지보다 자녀들이 부모님을 잘 모셔야만 해결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변함 없으신 사랑으로 구원함을 받고, 부모님의 변함 없으신 사랑으로 장성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나를 낳아 길러주신 육신의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자랑거리가 아니라 당연히 해야할 책임과 의무입니다.
세상이 갈수록 사람들이 자기를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와 자기를 낳아 길러 주신 육신의 아버지를 공경하는 마음이 식어지는 말세 현상이 확연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딤후 3:2)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변하는 시대를 좇아 살 것인지 아니면 변함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 것인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태하고 결단해 할 때입니다.
(수 24:1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세상이 갈수록 변화가 심한 것과 비례하여 전통적인 윤리 도덕이 변질되고 또한 부모에 대한 효도도 퇴색되어가고 있습니다. 죽은 조상에게 제사는 열심히 하면서 실상 산 부모님은 서로 모시지 않으려고 합니다. 기독교는 무덤의 종교가 아니라 생명의 종교요 가정의 종교입니다. 부모님 생전에 제사드리는 심정으로 부모를 공경하고 잘해드려야 합니다.
사람마다 잘 되려고 하루 종일 밖에 나가서 수고를 많이 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성공의 길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셔야 됩니다. 우리 성도들이 부모님을 공경할 때 변함 없으신 하나님이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들에게 약속하신 축복도 변함이 없이 그대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출 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엡 6: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부모를 공경하는 자가 받게 되는 또 하나의 복은 내가 자녀들 앞에서 효도의 본을 보임으로 후일에 나의 자녀에게 그 같은 효도를 대 물림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효도는 희생이 아니라 빚이며 또한 후일 나를 위한 최상의 투자인 것입니다.
예화
지금 내혈관에서 뛰고 있는 피는 내 피가 아니라 우리 부모님이 주신 피인 것입니다. 우리 부모님은 내 생명의 제2창조자 입니다.
어느 가정에서 한 아들이 교통사고로 눈을 다쳤는데 결국 실명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되자 이 아들의 성격이 삐뚤어져가고 거칠어지는 것이었습니다.
하루는 그 어머니가 <얘야, 오늘 내가 안과에 다녀왔는데 사형수들이 죽을 때 기증한 눈으로 이식수술을 하면 네 눈이 시력을 회복할 수 있다고 하더구나, 수술할까?>하고 물었습니다.
안과에 와보니 과장님도 똑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식 수술후에 퇴원할 무렵이 되니 사람의 모습이 기둥같이 눈사람 같이 보이더니 온전히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 한쪽 눈에 붕대가 감겨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 왜 붕대를 감으셨습니까?> <응, 너를 병원에 입원시켜 놓고 몇일 동안 잠을 못자고 간호를 했더니 눈병이 났구나>
예감이 이상한 이 아들은 어머니를 끌어안고 붕대를 풀어보니 글쎄 어머니의 오른쪽 눈을 빼서 아들 눈에 이식 시켜주고 어머니는 대신 실명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부모님이 이러한 심정으로 우리를 낳고 기르고 교육시켰기에 효도받을 자격이 넉넉하게 있다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