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세병관(統營洗兵舘) 1.> 해암(海巖) 고영화
통영세병관(統營洗兵館)은 국보 제305호이다. 이 건물은 1603년(선조 36) 충무공 이순신의 전공을 기념하기 위해 제6대 통제사 이경준(李慶濬)이 세운 객사(客館), 즉 관사(館舍)이다.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해 두룡포(頭龍浦)에 설치했던 삼도수군통제사영(三道水軍統制使營)의 중심 건물로, 궐패(闕牌)를 모시고 출전하는 군사들이 출사(出師) 의식을 거행하던 곳이다. 앞면 9칸, 옆면 6칸의 단층팔작지붕 건물로 여수의 진남관(鎭南館)과 함께 남아 있는 군사용 건물 가운데 평면적이 가장 넓은 건물 중 하나이다. 가구(架構)는 11량가(樑架)이며 기둥 사이에 비해 기둥이 높은 비례로 돼 있다. 원래는 벽체가 있었으나 현재는 사면이 모두 개방돼 있다. 내진(內陣)에 높은 기둥을 세우고 다시 대들보[大樑] 아래에 굵은 사이기둥을 세워 당당함과 위엄을 보여준다. 천장은 연등천장이며 바닥에는 마루를 깔았고, 중앙 3칸의 뒤편에는 궐패를 모셨던 시설이 남아 있다. 처마의 무게를 고루 나누어서 받도록, 기둥머리 바로 위에 여러 개의 나무쪽을 짜맞추어 올린 주심포 후기양식인데, 법주사 팔상전(捌相殿)과 함께 대표적인 예이다.
<세병관 통영(洗兵館 統營)> 신좌모(申佐模,1799년∼1877년) 이조판서.
統轄三南一大營 삼남 모두를 관할하는 하나의 대규모 진영,
元戎裘帶屹長城 통제사의 가죽옷과 띠, 긴 성(城)이 우뚝 산을 둘렀네.
老冲牙下多名將 노련하고 어금니 깨무는 명장은 많은데
小范胷中足勝兵 소범로자(范老)의 가슴속에만 뛰어난 군사가 넘쳤구나.
已具舟船防斗絶 이미 큰 배를 갖추고 단단히 방어하니
且將簫皷樂升平 장차 풍악소리 즐겁고 나라가 태평하리라.
此來快遂桑蓬志 이제야 유쾌히 상봉지지(桑蓬之志) 이루어
三宿譙樓枕海聲 재삼 머문 문루(門樓)엔 바다소리 잠겼어랴.
[주1] 소범노자(小范老子) : 범노(范老), 송(宋) 나라 범중엄(范仲淹)을 가리킨다. 그가 용도각 직학사(龍圖閣直學士)로 있다가 섬서 경략사로 나가 서하(西夏) 지역을 수년 동안 변방을 지킬 때에 강족이 그를 존경하여 '용도노자' 또는 '소범노자'라 부르면서, “소범로자(小范老子)는 가슴속에 수만의 갑병(甲兵)이 들어 있으므로, 속일 수 있는 대범로자(大范老子)와 비할 데가 못된다"며 두려워하여 감히 침범하지 못했다.
[주2] 상봉지지(桑蓬之志) : 남자가 사방(四方)으로 활약하려고 하는 큰 뜻. 陵雲之志(능운지지). 청운지지(靑雲之志) 푸른 구름의 뜻을 품었다.
<세병관대열(洗兵館大閱), 통영에 있는 객사(館在統營)> 남용익(南龍翼).
刁斗聲宏畫角鳴 동라(銅鑼)소리 널리 퍼지고 화각(畫角)소리 울리니
九枝燈燭滿船明 아홉 개의 등불과 촛불이 온 배(船)안을 밝힌다.
靑袍從事紅蓮幕 푸른 도포 입은 종사(從事), 붉은 연꽃 휘장,
玉帳將軍細柳營 장군의 장막(帳幕), 군율이 엄한 모범적인 군영이다.
高館揷雲天欲近 높은 객사 구름사이 솟아, 하늘 가까운 듯,
遠山蟠海地無平 먼 산들이 바다 둘러 평평한 땅이 없다.
何時截得鯨鯢浪 언제 드넓은 만경창파 다스릴까?
手挽銀河淨洗兵 은하수 잡아당겨 무기를 깨끗이 씻으련다.
[주1] 대열(大閱) : 조선시대에 행해진 군사사열인 교열(敎閱:교련과 열병) 가운데 국왕의 참관하에 행하는 습진(習陣)을 일컫는 말.
[주2] 조두(刁斗) : 군대에서 야경(夜警)하느라고 치던 동라(銅鑼).
[주3] 화각(畫角) : 목기 세공품의 공예기법, 옛날 군중에서 쓰던 대나무나 가죽 따위로 만든 나팔의 일종.
[주4] 세류영(細柳營) : 유영(柳營), 장군이 머무는 군영, 한 문제(漢文帝) 때에 주아부(周亞夫)가 군사를 주둔시켰던 군영이다. 군령이 아주 엄하였기 때문에 후에 모범적인 군영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주5] 정세갑병(淨洗甲兵) : 무기를 깨끗이 씻다. 즉 전쟁이 끝나는 것을 비유한다.
● 남용익(南龍翼) : 1628년~1692년, 본관 의령, 호는 호곡(壺谷), 부(父)는 남득붕(南得朋), 효종3년 1652년 암행어사. 임란 후에 둘러본 통영 세병관에서 느낀 감회를 적은 글이다.
<통영세병관(統營洗兵舘)> 조긍섭(曺兢燮 1873∼1933).
欲洗無兵况洗兵 씻으려 해도 병사가 없는데 때마침 세병관의
楣間大字尙虛名 기둥사이 큰 글자가 오히려 명성에 헛되네.
滄波萬斛淸如許 푸른 파도 수많은 물결 이다지도 맑은데도
一任蠻兒舞棹行 오랑캐에게 일임하니 노가 춤추듯 다닌다.
[주1] 세병관(洗兵舘) : 전쟁을 그만두고 평화를 염원하는 시성 두보의 시, ‘세병마행(洗兵馬行)’의 마지막 두 구에서 따서 '세병관'이라 했다. 세상이 다시 평화로워져서 전쟁할 필요가 없으므로 갑옷과 병기를 씻어두고 군마를 풀어 사용하지 않음을 읊은 노래이다.
[주2] 오랑캐에게 일임 : 한일 합병으로 일본에 나라 빼앗긴 시절을 표현 함.
● 조긍섭(曺兢燮) : 1873년(고종 10)∼1933년. 한말의 학자.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중근(仲謹), 호는 심재(深齋). 조병의(曺柄義)의 아들이다. 당시 영남 사림에서 거목으로 1910년 합병소식을 듣고부터는 두문불출하면서 아무도 만나지 않았으며, 동서의 학설을 비교 궁리하여 《곤언(困言)》을 저술하였다. 정통 유학자로서 주체적 사고를 강조하였고 나라를 빼앗긴 시절 통영에서 지은 글로 다시금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한다.
<통영 세병관(統營洗兵舘) 2.>
<통영세병관(統營洗兵舘)> 조태억(趙泰億,1675∼1728) 1720년 경상도관찰사.
三路舟師節制間 삼로의 수군절제사 사이에서
將軍䧺鎭擁重關 장군은 뛰어난 지휘로 중요한 관문을 지켰다.
城頭逈壓滄溟水 성곽 위에는 푸른 바닷물이 멀리서 압박하는데
案外低看巨濟山 뜻밖에 거제도의 산들이 낮게 보인다.
地勝樓臺偏爽塏 경치 좋은 곳의 누대가 확 트여 상쾌한데
時平鼓角自淸閑 태평시절 고각소리는 절로 청아하고 한가하다.
腐儒按察眞多愧 쓸데없이 안찰하는 선비는 참 부끄러움 많은데
五石强弓恨不彎 오석(五石)의 강한 활을 당기지 못하니 한스러울 뿐.
[주] 오석(五石) : 약 600근, 360Kg.
<통영세병관(統營洗兵舘) 懷李忠武公 二首> 이서구(李書九,1754∼1825) 실학사대가.
海國關防險 해양 국가는 변방방어가 험한데
樓船節制䧺 다락배 위 절도사 씩씩하도다.
㫌旗明曉日 군기가 아침 해에 밝게 빛나고
鼓角動春風 고각소리 봄바람 타고 울리네.
寵錫仍開府 임금의 하사품 관아에 늘어놨는데
威名舊揔戎 모든 병장기에 오랜 그 명성,
至今朱鳥外 오늘도 주조(朱鳥) 밖에서
猶說伏波功 가히 굴복하는 말(言)은 물결의 공(功)이리라.
공은 왜 침략에 방어해 여러 번 승리했다. 명나라 조정의 하사품인, 동관방(銅關防), 귀도(鬼刀), 곡병(曲柄), 징(鐃), 영패(令牌) 각 1령(各一令), 깃발 2면이 지금도 진영에 보관중이다.(公禦倭屢捷 皇朝賜銅關防鬼刀, 曲柄鐃令牌各一令 旗二面 今尙留營中)
世亂英才出 세상이 어지러울 때 영재가 나타나니
如公更逸群 공과 같이 출중한 분이 이어받아
七年成保障 7년 동안 나라를 보호하였고
一死報明君 한 번 죽어 총명한 임금에게 보답했다.
䧺釰收星彩 영웅이 별빛을 받으니
靈旗閃海雲 신령스런 깃발이 바다구름에 번쩍인다.
遺祠迎送曲 옛 사당의 영송곡(迎送曲),
重吊鄧將軍 등장군(鄧將軍)을 삼가 조문하도다.
노량해전에서 명나라 총병 등자룡과 공은 동시에 전사했다. 명 조정에서 본국에 사당을 세우라 명하여, 노량사당에 등자룡 홀로 제사드릴 겨를이 없다하니 이것이 바로 잘못된 의식입니다.(露梁之役 鄧揔兵子龍與公同時戰死 皇朝命立祠本國 而露梁之祠 鄧公獨未暇享 是爲闕典).
[주1] 주조(朱鳥) : 남방의 수호신(神)은 적조(赤鳥, 또는 朱鳥) 또는 주작(朱雀)이다.
[주2] 영송곡(迎送曲) : 송영하다, 송영 곡조, 마중과 바램 가락, 맞이하고 보내는 곡조.
<세병관(洗兵館) 판 차운(次板韻)> 오숙(吳䎘) 1632년 경상감사.
置鎭南維控制雄 남쪽 끝에 진영을 배치하여 웅장하게 다스리니
異時籌策藉群公 훗날의 계책이라고 여러 공들이 업신여겼다.
銀潢注海腥膻洗 은하수에 바다를 쏟아 붓듯 비린내를 씻으니
銅柱橫天職貢通 구리 기둥 하늘을 가로질러 공물이 통하네.
棨戟千行光射日 두 갈래 창에 수많은 햇빛이 비추고
艨艟萬軸勢培風 전선의 굴대는 기세 좋게 바람을 탄다.
將軍自是凌煙客 당연히 장군은 신선을 얕잡아 보듯,
更佇餘氛一掃空 쌓아둔 남는 기운으로 말끔히 쓸어내었네.
당시 통제사는 변흡으로 진무공신이었다(時統制使邊潝 乃振武功臣). 1632년2월~1633년4월 재임.
[주1] 변흡(邊潝) : 1568(선조 1)년∼1644(인조22)년.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원주(原州). 1603년(선조 36) 무과에 급제, 1617년(광해군 9) 종성부사(鍾城府使)가 되었다. 1622년에는 등극부사(登極副使)로 상사(上使) 오충겸(吳充謙)을 수행하여 명나라에 다녀왔고, 여러 관직을 거쳐 경상도병마절도사가 되었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 때에는 황해도병마절도사로서 양서순변사(兩西巡邊使)를 겸하여 난의 평정에 크게 공헌하였으므로 진무공신(振武功臣)2등으로 책록되어 원흥군(原興君)에 봉해졌다. 1629년 강화도의 수비를 강화할 목적으로 교동현(喬桐縣)을 교동부(喬桐府)로 승격시키고 경기도 수영(水營)을 교동부로 옮기게 할 때 경기도수군절도사 겸 교동부사에 임명되었다. 뒤에 삼도수군통제사와 오위도총관을 역임하였다.
[주2] 연객(煙客) : '안개를 마시며 사는 사람'이란 뜻으로, '신선(神仙'을 일컫는 말.
<세병관(洗兵館) 각 수영(水營)을 통제하는 웅대한 청사(廳事)> 이식(李植 1584∼1647)
巨港呑滄海 푸른 바다 집어삼킨 거대한 항구
華軒起半空 공중에 우뚝 솟은 화려한 전각
山形連棨戟 산세는 마치 의장대가 도열한 듯
水怪避艨艟 물속의 괴물들도 전함이 무서워 피하리.
一帶襟喉壯 웅장하도다! 일대의 요해처여~
三方節制通 세 방면 모두가 절제를 받는구나.
銀潢不可挽 은하수 물 끌어다 씻어 버릴 수 없을까?
氛祲尙迷東 동방에 아직도 얽혀 있는 저놈의 요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