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날 많은 학생들이 불렀던 동요 중에 ‘동물농장’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가사중에『닭장속에는 암탉이 문간 옆에는 거위가 배나무 밑엔 염소가 외양간에는 송아지 닭장속에는 암탉들이 문간 옆에는 거위들이 배나무 밑엔 염소들이 외양간에는 송아지 깊은 산속엔 뻐꾸기 높은 하늘엔 종달새 부뚜막 위엔 고양이 마루 밑에는 강아지』라고 되어 있습니다. 어떤 장소를 보면 그 장소에 어떤 동물이 살겠구나 우리는 추측해 보고 그 장소에 그 동물이 살고 있어야 바른 위치에 있구나 우리는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그 모양에 맞는 그 위치에 맞는 것이 그 동물의 정체성이 바로 된 것이고 그 모양과 그 위치에서 살아갈 때 제대로 살아갈 수 있었을거라고 생각해 봅니다. 나무도 마찬가지입니다. 사과나무에서는 사과가 나와야 하고 배나무에서는 배가 나야 합니다. 감나무에는 감이 매달려야 하고 포도나무에는 포도가 달려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 주님께서 세상 사람들의 모습을 나무와 그 열매로 비유하십니다. 우리의 삶이 어떤 열매를 맺는 지를 보면서 우리가 어떤 나무인 지를 알게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면 그리스도인 다운 열매를 맺고 그 열매를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그리스도에 붙어 있는 나무라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참된 신앙인, 바른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려고 한다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열매를 맺을 때 가능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20절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우리가 우리의 열매를 통해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서 나오는 열매들이 우리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우리가 맺어야 할 열매는 어떤 것인지 알아보고 그 열매들로 인해 우리가 주님의 백성이고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삶에서 보여주는 인생 열매, 첫째는 악한 열매를 내는 존재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12장 34절입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이 본문은 지난 주 본문 뒤로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서 귀신의 왕을 힘입어서 귀신을 쫓아낸다”는 아주 악의적인 소문을 내는 것에 대해 책망하십니다. ‘성령모독죄’라는 가장 무서운 죄를 마음에서부터 품고 입으로 말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책망하십니다. 여기서 ‘독사의 자식들’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욕설이 아닙니다. 인간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고 세상에 죄악이 들어오도록 만든 존재가 바로 뱀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그 ‘뱀의 추종자’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바알세불을 힘입어 한 행위’라고 비난하는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사탄마귀를 상징하는 ‘뱀의 자손’이 바리새인들이라는 사실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은 “악하기”때문에 “선한 말”을 할 수 없습니다. 뱀의 혀는 두 갈래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한 입으로 두 말하는 자들’을 뱀으로 지칭하며 뱀의 상징이 분열과 이간질, 거짓말등이기에 악한 행위를 하는 존재를 뱀으로 비유합니다. 우리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을 함부로 판단하거나 시기심이 발동하여 거짓말로 사람들을 중상모략하게 될 때, 그리고 과장을 더해 사람들을 헐뜯을 때 바로 이 ‘독사의 자식’이 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모든 말은 마음의 생각을 그대로 나타내기에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악한 말을 할 수 없고 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선한 말을 할 수 없습니다.
방금 읽은 마태복음 12장 34절을 다시 보십시오.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하반절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라는 말은 헬라어로 ἐκ γὰρ τοῦ περισσεύματος τῆς καρδίας τὸ στόμα λαλεῖ (에크 가르 투 페릿슈마토스 테스 카르디아스 토 스토마 랄레이)인데 이 문장을 문자 그대로 직역하면 ‘입은 마음에 가득 찬 것에서 말하기 때문이다’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삶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어쩌면 ‘마음에 무엇을 담고 살아가는가’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독사의 자식들로 지칭된 바리새인들의 삶의 모습은 항상 악했고 그 악함은 더러운 마음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실 삶의 열매가 더러웠지만 그 열매를 보여주는 속 마음도 더럽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마태복음 15장 1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마태복음 15장 19,20절입니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인간 됨됨이는 언행으로 나오지만 그 언행은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으로 마음이 어떤 지에 따라 인간 됨됨이, 즉 인품, 인격이 보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의 악함을 지적하시면서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들의 삶에서 보여주는 외형적 나쁜 열매를 지적하신 것입니다. 이런 ‘독사의 자식들’은 말을 할 때 ‘아니면 말고’라는 식으로 헛된 소문을 퍼뜨립니다. 상대방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비판하기도 합니다. 이런 비판으로 하는 것은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비판하는 자들의 혀에는 독사의 독이 있어서 말로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심지어 죽음으로 몰아가기까지 합니다. 요즘 일어나는 온갖 악한 일들속에 상대에 대한 비방과 명예훼손, 온갖 악성 댓글로 인해 사람을 죽이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특히 최근 큰 문제가 되고 있는 딥페이크문제도 어쩌면 전혀 그런 행위를 하지 않은 사람을 딥페이크 기술로 음란하거나 가짜 뉴스를 만든 사람으로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이런 모든 것이 타인을 판단하며 비방하고 비난의 대상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아닐까요? 그들의 마음이 악하기에 이런 악한 행위가 나오는 것입니다.
로마서 3장 13~15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우리는 항상 남을 판단하는 말은 조심, 또 조심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으로써 스스로 제왕 자리에 앉은 것입니다. 스스로 오만과 교만으로 사람들을 판단하게 되는 것이고 이것은 인간의 죄성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말로 지은 죄가 주먹으로 때리는 것보다 혹은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더 악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분별은 하되, 함부로 입 밖으로 내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말을 들었을 때 그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 소문을 퍼뜨리든지 그 사실에 동조한다면 어리석은 짓을 범하는 것입니다. 제 3자에 대한 말을 타인으로부터 들었을 때 그 사실을 직접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또 다른 사람에게 그 사실을 알리면 그것이 바로 독사의 자식이 되는 짓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을 것이다”라고 경고하십니다. 사도 야고보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야고보서 4장 11,12절입니다.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내가 말로 상대방을 함부로 판단하면, 일단 겉으로 보면 별 문제 아닌 듯 보입니다. 직접 폭력을 쓴 것도 아니고 직접 그 사람과 언쟁을 벌린 것도 아니니 그 사람에게 직접 피해를 준 것 같아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담과 하외를 타락시킨 뱀도 이렇게 항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직접 선악과를 따먹은 것도 아니고 하와에게 강요한 것도 아니며 단지 잘못된 정보를 전달했을 뿐인데 왜 나에게 죄가 있다고 하느냐?”라며 말입니다. 하지만 뱀의 말때문에 잘못된 판단을 한 아담이 인류 전체에게 비참한 죽음이 찾아오고 영원한 멸망의 인생, 영원한 지옥불속에서 살아가며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영원한 낙원에서 살 기회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하나님과 떨어져서 살아가는 악한 존재는 결국 멸망의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삶의 열매속에서 독사의 자식같은 모습이 없는 삶을 살으시기를 바랍니다. 독사의 자식과 같은 인생이 되어 멸망으로 떨어질 삶은절대 되지 않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삶에서 보여주는 인생 열매, 둘째는 선한 열매를 내는 존재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12장 35절입니다.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할 그리스도인의 열매로 깨끗한 마음을 말씀하십니다. 선한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말과 행동이 우리가 맺을 열매입니다. 악한 사람은 마음이 악하여서 항상 악한 말이 먼저 나오고 악한 생각에서 악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우리 마음은 하나의 방입니다. ‘마음에 무엇을 담아 두느냐’, ‘마음에 누가 함께 하고 있느냐’에 따라 삶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우리들이 지내는 방에 밥상을 놓고 거기서 밥을 먹으면 식당이 됩니다. 책상을 갖다놓고 책으로 채워두면 공부방이 됩니다. 방석을 깔고 낮은 테이블을 두면 응접실이 될 것이고, 이불을 깔고 잠을 자면 침실이 되겠죠? 요강을 갖다 놓으면 화장실도 되고 화투를 치려고 담요를 깔아 놓으면 금세 도박장이 될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누구와 함께 하는지, 어떤 마음을 채워두었는 지에 따라 완전히 달라집니다. 우리들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우리 속에서 함께 하시기를 원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그분을 우리 마음의 방에 영접하면 우리는 삶이 새로워지고 평안해집니다. 변화된 삶, 확신이 넘치는 삶이 됩니다. 날마다 기쁨이 충만합니다.
마태복음 12장 33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겠습니다.
“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열매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
나무가 건강하면 열매도 튼실한 것이 나옵니다. 나무가 좋지 못하면 열매도 좋지 못합니다. 병든 나무에서는 병든 열매가 나오고 건강한 나무에서 좋은 열매가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열매를 통해 우리가 어떤 나무인지, 어떤 나무에 붙어 살아가고 있는 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나무인지를 보여주는 것은 우리 속에 있는 성령님을 드러내며 우리의 삶 가운데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과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속에 하나님으로 가득차 있음을 보여줘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의 삶을 닮아가려고 한다고 말하는 그리스도인들도 창조주 하나님, 우리 주인이신 예수님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마음에 품고 살아간다면 그것은 우상숭배입니다. 마음속에 물질, 명예, 권력, 쾌락, 세상의 철학사상과 세상의 처세술에 빠져 세상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그것은 마음에 우상이 가득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발은 바알에게 두고 다른 한 발은 여호와께 두었던 것처럼 현대의 그리스도인들도 한 손은 우상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십자가를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상이 숨겨져 있으면 골다공증에 걸린 뼈처럼 더러운 영들이 들어올 수 있는 영적인 구멍들을 통해 타락의 미혹에 빠져 버릴 것입니다. 아무리 사과나무처럼 생겼어도 사과 열매를 맺지 못하면 이건 사과나무가 아닙니다. 마찬가지도 아무리 겉으로 그리스도인인 것처럼 보여도 그리스도인의 열매를 맺지 못하면 예수님께는 결코 신앙인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천국 문 앞에 가면 “분명히 예수 믿고 살았는데,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니...”라는 실랑이가 벌어질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바른 열매를 맺지 않은 가짜 나무이기 때문입니다. ‘바른 열매’란 농부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맺고자 하는 열매를 뜻합니다. “사랑과 생명이 열매”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우리의 인생에 열매 맺어 사람들에게 우리를 통해 예수님 사랑의 열매를 따먹도록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 열매를 먹고 예수님을 발견하여 예수님 믿고 새생명을 얻게 되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깨끗이 하고 하나님만 가득 채우고 하나님의 은혜만 사모하며 성령충만한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 마음의 중심에 항상 하나님의 가치관, 하나님 절대주의가 자리잡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5~8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맺을 열매는 그리스도의 마음이라는 열매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항상 낮아지고 겸손하며 생명과 구원을 위해 헌신하는 마음입니다. 이 마음은 십자가에서 죽어주심과 같은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열매를 맺기를 바랍니다. 말과 행동이 착한 것의 기준은 인간의 기준으로 봐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의 모든 기준은 그리스도의 마음이 우러났는 지를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정말 그리스도의 마음이라는 열매를 맺고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삶에서 보여주는 인생 열매, 셋째는 심판을 준비하는 인생입니다.
마태복음 12장 36,37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오늘 본문에 기록된 “무슨 무익한 말”의 헬라어 πᾶν ῥῆμα ἀργὸν (판 흐레마 아르곤)은 문자적으로 ‘모든 무익한 말’인데, “무익한”이라는 단어에 쓰인 헬라어 ‘아르고스’(ἀργός)는 ‘일없는, 나태한, 고용되지 않은, 게으른’ 등의 뜻이기에 오늘 본문의 이 ‘무슨 무익한 말’이라는 단어는 ‘쓸데없고 아무런 유익이 되지 않는 말’을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바리새인들은 지혜롭고 부지런한 사람들이었지만 예수님께서 보시기엔 쓸모없는 무익한 말을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구절은 말의 중요성을 지적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악한 말의 위험성뿐 아니라 ‘무익한 말’ 또는 ‘무가치한 말’, 즉 가치가 없기에 하지 않은 것이 더 좋은 것, 조심성 없는 말이 얼마나 위험한 지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서 책망의 직접 대상은 바리새인들인데 그들의 가르침은 정말 무익한 말들 뿐이었습니다. 한글성경에 ‘무익한 말’이라고 번역된 단어가 NIV영어성경에서는 ‘every careless word’(부주의한 말)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악한 말’뿐만이 아니라, ‘별 해가 되지 않아 보이는 말’도 심판을 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교인들끼리 별 없이 아무런 생각없이 툭 던진 농담이 영적인 관계를 깨기도 하고 서로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재미있으라고 했던 말이 오히려 상대방에게 엄청난 충격을 가져다 주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루하루 순간순간 얼마나 말 실수를 많이 하면서 살아가는 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생각없이 했던 말이 사람들에게 큰 어려움을 줄 때가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우리 인간이 조화로운 평안의 관계를 무너뜨리도록 사탄과 사탄의 영향에 있는 악한 사람들이 수 없이 시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천지창조 후 이 관계를 깨뜨리기 위해 첫 번째로 시도한 동물은 뱀이었고 이 때 사용된 도구는 뱀의 혀였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인간 또한 혀에 힘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상처를 주는 말’, 즉 ‘해로운 말’, ‘무익한 말’을 하면 ‘심판을 받는다’고 말씀합니다. 말에는 능력과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무익한 말에도 사람을 상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함부로 하는 말은 사람을 죽이거나 다치게 합니다.
잠언 18장 21절 말씀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잠언 12장 18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는 자가 있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과 같으니라”
저와 여러분이 한 말은 내 마음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말은 우리속에 있는 생명과 죽음의 본질적 표현입니다. 그래서 내가 내 생명을 입으로 표현하면 그 생명이 다른 사람에게 생명으로 새겨지는 것이고 내가 죽음을 가지고 죽음으로 표현하면 그 사람에게 죽음이 심겨집니다. 우리의 언어는 선하게 새겨지든 악하게 새겨지든 그 사람의 영혼 깊숙한 곳에 새겨집니다. 그렇게 새겨진 언어는 그 사람을 살게도 하고 죽게도 합니다. 언어는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기 위하여 주신 은사이며 하나님께서 인간을 복되게 하기 위해 우리에게 허락하신 도구입니다. 그리고 우리들 개개인이 사용한 모든 언어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모두 천둥소리처럼 재생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언어는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힘이 있습니다. 악한 말은 사탄마귀로부터 오는 것이고 훼방과 중상모략은 마귀가 즐겨쓰는 무기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생명을 살리는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 완성은 십자가였습니다. 예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지상에서 말씀하신 복음의 말씀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선하신 복음을 따라 영혼을 살리는 축복의 말, 생명의 말을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정말 심판에 어떤 자리에 서게 될지 우리를 돌아볼 때 우리의 말에 조심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말이 심판의 가장 중요한 증거자료가 될 것입니다. 저와 여려분이 정말 믿음에서 우러나는 신실한 말, 정말 사랑에서 우러나는 힘이 되는 말, 정말 참 구원을 위해 영혼을 품어주는 말을 하고 그로 인해 심판대에서 칭찬받고 천국에 입성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을 까 합니다.
우리 앞에 놓인 선택지는 두 가지입니다. 나무가 좋으면 열매도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나무가 나쁘면 열매는 나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삶의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아름답고 튼튼한 건강한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어둡고 초조하고 불안하고 나약한 썩은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은 열매를 보며 그 나무를 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어떤 열매인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바른 나무에 붙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5장 5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한복음 15장 16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새는 그 새소리를 들어보면 어떤 새인지 알 수 있고 나무는 그 열매를 보면서 무슨 나무인지를 알게 됩니다. 배 나무에서 배를 따고 사과나무에서 사과를 따먹게 됩니다.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을 것이요 좋지 않은 나무는 좋지 않은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나무가 좋으면 열매는 좋을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그 말을 들어 보면 그 사람의 속마음과 됨됨이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좋은 사람인지 아닌 지도 어떤 가지에 붙어 있지는에 따라 분별할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이라는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입니까? 그래서 저와 여러분의 삶에 예수님의 향기가 드러나는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우리의 말과 행동, 우리의 모든 삶가운데 그리스도의 열매를 맺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고 결국 심판 때에 우리 주님께서도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아름다운 삶을 살다가 온 하나님의 자녀라고 우리를 기쁘게 맞이해 주시는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