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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진도초등학교 총동문회 원문보기 글쓴이: 56이세진
비 바람 구름 안개를 벗 삼아 – 북한산(망운대,백운대,문수봉,용출봉)
1. 백운대에서 바라본 도봉산, 가운데는 자운봉
등산은 모험과 같으며 그밖에 다른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제나 오늘이나 인간능력의 범위에서 하고 싶었
다. (…) 오늘날 모험이 문제가 되지 않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것은 확실하다. 이런 것을 모험이라고 한다
면 나는 결코 인정할 수 없다. 그것은 일종의 기만행위로 모두의 눈을 속인다. 즉 모험 아닌 것을 모험이라고 내세우
고, 그것을 개척자들의 진짜 모험인양 위장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모험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다. 고독과 미지와 경악이 거기에는 없다. 이것들이 갖추어야 인간의 창의력과 역량이 제대로 시험대에 오르고 그것
을 통해서 인간의 창의성이 자연 이루러진다.
―― 발터 보나티 저, 김영도 옮김, 『내 생애의 산들』(조선매거진, 2012)
▶ 산행일시 : 2026년 8월 22일(토), 비 바람 구름 안개
▶ 산행코스 : 밤골,사기막봉,망운대(영장봉),숨은벽능선,대동샘,백운대,용암문,일출봉,성덕봉,대성문,대남문,
문수봉,남장대,증취봉,용혈봉,용출봉,가사당암문,국녕사,법용사,백운동계곡,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북한산성 입구
버스정류장
▶ 산행거리 : 도상 13.9km
▶ 산행시간 : 8시간 7분(07 : 03 ~ 15 : 10)
▶ 갈 때 : 전철 타고 구파발역으로 가서, 양주 37번 버스로 환승하여 효자2동에서 내림
▶ 올 때 : 북한산성 입구에서 704번 버스 타고 구파발역으로 가서 전철 타고 옴
▶ 구간별 시간
06 : 32 – 구파발역, 양주 37번 버스(06 : 47)
07 : 03 – 효자2동, 산행시작
07 : 48 – 밤골, 사기막봉능선
08 : 11 – 마당바위
08 : 28 – 사기막봉(552m)
08 : 36 – 망운대(영장봉, 550m)
09 : 13 – 대동샘
09 : 58 – 백운대(836m), 휴식( ~ 10 : 16)
11 : 00 – 용암문, 일출봉(618m)
11 : 45 – 성덕봉(623m), 휴식( ~ 12 : 00)
12 : 26 – 문수봉(727m)
13 : 50 – 용출봉(569m)
14 : 13 – 가사당암문
14 : 25 – 법용사, 백운동계곡
15 : 10 – 북한산성 입구 버스정류장, 산행종료, 704번 버스(15 : 15)
15 : 30 - 구파발역
2. 산행지도
소설가 나림 이병주(那林 李炳注, 1921~1992)는 산꾼이기도 했다.
그는 1961년 5.16이 일어난 지 엿새 만에 <조국은 없고 산하만 있다>는 내용의 논설을 쓴 이유로 혁명재판소에서
10년 선고를 받아 2년 7개월을 복역하기도 했다.
다음은 그의 에세이집 『산(山)을 생각한다』(바이북스, 2021)의 머리말 첫 부분이다.
“산에 오른다는 것은 한 걸음 한 걸음 나를 높여가는 노릇이다.
산에 오른다는 것은 한 걸음 한 걸음마다에 나를 확인하는 노릇이다.
산에 오른다는 것은 걸음마다에 나를 발견하는 노릇이다.
하늘 아래에 산이 있고, 산 위에 하늘이 있고, 그 사이에 내가 서 있다는 이 단순한 사실이 어쩌면 이처럼 고마울
수가 있을까. 누가 뭐라고 해도 이 순간 천지간(天地間)에 나의 위상은 확고 부동한 것이다.
능선은 무한한 과거로부터 무한한 미래에 뻗어 있는데 나의 현재가 그 과거와 미래를 이어 발자국 소리를 낸다.
그러고 보니 산을 걷는다는 것은 인생을 걷는 것이다. 돌부리 하나하나가 반가운 것은 우주의 섭리가 그처럼 겸허하
게 자기 표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무들의 가지마다가 반가운 것은 내 속의 식물성을 그렇게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름 모를 꽃들이 그처럼 반가운 것은 내 생명의 호사를 그 꽃들에 보기 때문이다.”
이런 분들이 있어 나의 산행이 핑계가 되고 위안이 된다. 일기예보에 오늘 하루 종일 비가 내린다고 했다. 비가 내린
다고 하여 일주일에 겨우 한 번 가는 산행을 거를 수는 없는 일이다. 집에서 가까운 북한산이나 가볍게 얼른 갔다
오자 하고 새벽에 집을 나선다. 그런데 일단 산에 들면 ‘가볍게’라는 당초 생각은 온 데 간 데 없어지고, 번번이 죽자
살자 하는 산행이 되고 만다. 오늘도 그랬다.
새벽부터 부슬비가 내린다. 구파발역 가는 전철이나 구파발역에서 북한산 쪽으로 가는 버스에 등산객은 나 혼자 뿐
이다. 북한산 밤골 들머리는 효자2동 버스정류장에서 내려야 한다. 국사당 방향표지판이 밤골 안내판이기도 하다.
한때 북적이던 국사당 굿당이 한산하다. 이번에도 무지개다리로 계류 건너 사기막고개에서 능선을 오르지 않고
밤골계곡으로 간다. 세 군데 폭포가 궁금해서다, 활엽나무 숲길에서는 한층 소란스런 빗소리를 들으며 간다.
계곡이 바짝 말랐다. 너덜이 드러났다. 너덜을 건너고 건넌다. 부슬비에 젖은 너덜이라 미끄럽기도 하다. 계곡을
건널 때 널따란 너덜이 나오면 갈 길을 몰라 두리번거리고 방향표지판이 안내한다. 가파른 데크계단 오르막 직전에
서 보던 폭포도 말랐다. 발품을 던다마는 아쉽다. 그 위쪽 폭포도 마찬가지다. 그 옆 슬랩을 트래버스 하기가 상당히
까다롭다. 자칫하다 미끄러지면 깊은 골로 간다. 비가 내리니 이런 뜻밖의 잔재미를 보게 된다.
Y자 갈림길. 오른쪽은 밤골 계곡 너덜을 계속 오르고, 왼쪽은 가파른 사면을 올라 사기막봉능선으로 가게 된다.
왼쪽으로 간다. 오르막은 더욱 후덥지근하다. 땅에 코 박는 오르막이다. 부슬비 보다 내가 흘리는 땀이 더 흥건하다.
고도 100m 올라 347m봉을 내린 사기막봉능선 안부이다. 완만한 슬랩 두 차례 길게 오르면 가파르고 긴 데크계단
이 이어진다. 데크계단은 경점이기도 하여 노고산과 상장능선 상장봉을 바라볼 수 있다. 안개구름이 그 정상 부분을
가렸다.
3. 앞은 망운대(영장봉), 왼쪽 멀리는 도봉산 오봉
4. 앞은 상장능선, 뒤는 도봉산 오봉
6. 인수봉 설교벽
7. 앞은 상장능선, 뒤는 도봉산
8. 파랑새능선 장군봉
9. 앞은 영봉, 그 뒤 왼쪽은 수락산, 오른쪽은 불암산
10. 영봉, 왼쪽 뒤는 불암산
11. 망운대에서 바라본 인수봉
데크계단이 끝나면 암벽구간이다. 직등은 위험하다고 막았고 오른쪽 암벽 밑을 오를 것을 안내한다. 핸드레일 붙들
고 오른다. 긴 한 피치 가쁜 숨 헐떡이며 오르면 마당바위 암벽 아래다. 왼쪽 슬랩을 핸드레일 붙들고 트래버스 한
다. 이때 정면에 보이는 암봉인 망운대가 위압적이다. 데크계단에 이어 돌계단 오르면 마당바위다. 바람이 세차게
분다. 바람에 쓸려나갈라 마당바위 한 가운데에 선다. 여느 때는 마당바위에서 여러 등산객들을 만나곤 했는데 오늘
은 나 혼자다.
마당바위는 일대경점이다. 멀리로는 계양산이 언뜻 운해 위 고도로 보이고, 가깝게는 노고산 연릉, 상장능선, 그 뒤
로 오봉, 바로 앞은 인수봉 설교벽, 숨은벽능선, 백운대, 파랑새능선과 장군봉이 찬란하다. 염초봉은 그 뒷모습이 보
이는데 왜소한 느낌이다. 완만한 그러나 미끄러운 슬랩을 한 차례 더 오르고 바위 돌아 숲길 잠시 오르면 통신중계
탑이 있는 사기막봉이다. 곧바로 망운대를 향한다. 목책 넘어 흐릿한 인적 쫓는다.
가파른 반침니 내리막이 오늘은 험로다. 첫발자국 내리기가 어렵다. 홀더가 마땅치 않아 여기저기 더듬다가 미끄러
지고 내 날래기 망정이다. 반사적으로 맞은 편 암벽에 붙는다. 그리고 자세 낮추어 엉금엉금 내린다. 야트막한 안부
지나 소나무 숲길을 가다 배낭을 벗어놓고 망운대 오른쪽 암벽 밑을 돌아 오른다. 가파른 대슬랩이 나온다. 바위틈
풀포기를 움켜쥐고 오른다. 망운대도 바람이 거세다. 암반 한가운데에 서서 건너편 인수봉의 위용을 우러른다.
방금 전에 올랐던 슬랩이 내릴 때가 더 어렵다. 슬랩을 마주보고 엎드려 바위틈 재밍하여 내린다. 다 내리고 나니
이런 데가 더 없어 섭섭하다. 사기막봉 오른쪽 사면을 길게 돌아 능선에 오르고 숨은벽능선 자락에 붙는다. 오늘만
큼은 날등을 삼간다. 바람이 거세고 미끄러워서다. 왼쪽 우회로가 안전하다. 다만 막판에 약간 비스듬한 테라스를
트래버스 하여 지나기가 까다롭다. 외길이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끝 모를 수직절벽이라 겁난다.
절벽과 테라스 사이의 바위틈에 양손을 번갈라 끼워가며 한 발 한 발 옮긴다. 이런 젖은 암벽에서 로바 비브람창은
전혀 맥을 못 춘다. 맞은편 빨래판바위 한 번 바라만 보고 나서 핸드레일 붙들고 긴 슬랩을 내린다. 밤골 계곡에서
올라오는 너덜과 만나고 암릉 닮은 너덜을 기어오른다. 대동샘에 올라선다. 샘물이 넘쳐흐른다. 한 바가지 떠서
마시는데 시원하기가 얼음물이다. 너덜을 좀 더 오르면 돌계단과 만나고 이어 안부인 호랑이굴 가까워서는 데크계
단 오르막이다.
석문을 지난다. 아울러 오늘 산행의 험로는 끝난 셈이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백운대를 향한다. 돌길 내리다 몇
미터 슬랩 오르고, 숲길 사면 돌아 백운대 성곽 길에 든다. 이때서야 오늘 등산객을 처음 본다. 말을 나누지 않아도
(오가는 사람이 많아 수인사 나누기도 멋쩍다) 반갑다. 백운대를 오를 때는(우측통행이다) 오른쪽 등로가 왼쪽의
그것보다 약간 더 까다롭다. 맞은편에 내려오는 사람이 뜸할 때는 얼른 왼쪽으로 오른다.
바람에 등 떠밀려 오른다. 이윽고 백운대다. 여태와는 다른 별유천지가 펼쳐진다. 좀처럼 볼 수 없는 안개구름의
유희가 가히 장관이다. 서울은 운해에 잠겼다. 운해는 도봉산마저 넘실댄다. 바위벽에 기대 바람을 피하고서 차근하
니 그 광경을 목도한다. 성호 이익(星湖 李瀷, 1681~1763)의 감흥도 아마 이러했으리라. 그의 「북한산 4수(北漢
四首)」 중 제4수이다.
한번 올라 볼 때마다 눈이 활짝 열리니
산신령은 말이 없이 오르라 재촉하네
강물 빛은 그 위로 먼 누대에 닿아 있고
바위 감싼 안개는 해와 달을 가로막네
소매 떨치고 잠시나마 홍진에서 벗어나
지팡이 짚고 느릿느릿 청산을 밟았어라
승려가 인도하여 서암사에 다다르니
끝이 없는 구름 이내 술잔에 어리누나
一度登臨一眼開
山靈與我默相催
水光上接樓臺迥
石氣橫欄日月回
拂袖俄從紅輭出
扶筇徐踏翠微來
孤僧引到藤蘿外
無限雲嵐照把桮
ⓒ 한국고전번역원 | 이기찬 (역) | 2015
12. 앞은 상장능선, 뒤는 도봉산
13. 앞 안부는 육모정고개, 건너편은 수락산
14. 앞은 상장능선, 뒤는 도봉산 오봉
15. 인수봉
17. 도봉산 연봉, 왼쪽 뒤는 사패산
19. 앞은 노적봉, 뒤는 의상능선 연봉
순식만변하는 운해다. 운해가 백운대까지 덮칠 기세여서 내려간다. 백운대암문(위문 衛門) 지나 데크계단 내리고
만경대 산허리는 데크로드로 돌아간다. 가다말고 뒤돌아보는 백운대는 언제나 그렇듯 천주(天柱)처럼 의연하고,
바로 앞에 보는 노적봉은 아담하다. 만경대와 용암봉 산허리 길게 돌아 용암문(龍巖門)이고, 성곽 길을 오르며 뒤돌
아보는 용암봉 병풍바위와 만경대 동벽은 사시사철 수려하다.
용암문 지나면서 자주조희풀(Clematis heracleifolia var. davidiana Hemsl.)을 본다. 공단에서 식재한 게 아닐
까 의심했는데 풀숲 곳곳에서 보이니 자생임이 분명하다. 자주조희풀은 이름에 ‘풀’이 들어가지만, 미나리아재비과
의 낙엽활엽 소관목이다. ‘조희’는 ‘종이’의 옛말이자 방언이라고 한다. 옛날에 줄기 아랫부분의 섬유질을 이용해
종이(창호지 등)를 만드는 재료로 썼다고 하여 조희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도 하고, 강원도 등지에서 어린잎을
삶아 나물로 먹어보았으나, 아무런 맛이 없고 마치 종이를 씹는 것 같다고 하여 붙여졌다고도 한다.
속명 크레마티스(Clematis)는 ‘덩굴 줄기’를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klema에서 유래했다. 종소명 헤라클레이폴리
아(heracleifolia)는 그리스 신화의 영웅 헤라클레스의 이름에서 유래한 식물 ‘Heracleum(어수리속)’과 라틴어로
‘잎’을 뜻하는 ‘folium’의 합성어로 ‘어수리의 잎을 닮은’이라는 뜻이다. 변종명 davidiana는 프랑스의 가톨릭 신부
이자 식물학자였던 아르망 다비드(Armand David, 1826~1900)에 헌정된 이름이며, 명명자 Hemsl.은 영국의
식물학자 윌리엄 보팅 헴슬리(William Botting Hemsley, 1843~1924)이다.
일출봉을 넘고 기룡봉(589m)과 반룡봉(584m), 동장대(601m, 보수가 끝났다)를 오른쪽으로 길게 돌아 넘어 대동
문이다. 잰걸음 한다. ┫자 칼바위 갈림길인 591m봉(‘복덕봉’이라고 한다) 넘고 보국문 지나 성곽 길 돌계단을 내쳐
오른다. 성덕봉(628m)은 경점이다. 맑은 날에는 멀리 관악산이 보이고, 가깝게는 보현봉과 그 왼쪽 자락을 둘러
올망졸망한 형제봉, 백악산, 인왕산, 안산이 마치 소백산 민봉 자락의 구봉팔문을 연상케 한다.
성덕봉 암반에 앉아 그 가경을 바라보며 점심 먹는다. 봉봉 순례는 계속된다. 화룡봉(638m) 넘으면 대성문이다. ┫
자 보현봉(722m) 갈림길인 잠룡봉(693m)은 오른쪽 사면의 우회로로 길게 돌아 넘어 대남문이다. 예전에 이 근처
에 야호샘이 있었는데, 그 위치를 모르겠다. 문수봉(728m)은 직등한다. 숲속 가파른 오르막이다. 정상 직전 712m
봉이 문수봉 정상 노릇을 한다. 한 차례 뚝 떨어진 안부는 청수동암문이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기 시작한다. 소낙비다.
한 손에 우산 받치고(우비를 입으면 더워서 비보다 땀을 더 흘린다), 다른 한 손에는 스틱을 짚으니 남장대(716m)
슬랩을 오르기가 퍽 까다롭다. 비를 맞고 말 일이다. 남장대에서 의상능선으로 방향 튼다. 길고 가파른 슬랩 내리막
이다. 핸드레일 붙들고도 살금살금 내린다. 남장대를 오르려는 일단의 등산객들이 안부에서 비를 피하며 전전긍긍
하고 있다. 나한봉(683m)은 오르지 않는다. 안개가 자욱하여 아무 볼 것이 없어서다. 무딘 릿지를 내린다.
21.1. 앞은 수락산
21.2. 염초봉
22. 도봉산 연봉
24. 왼쪽이 수락산
25. 백운대
26. 노적봉
27. 자주조희풀
29. 용암봉 병풍바위와 만경대
그리고 나월봉(648m, ‘환희봉’이라고도 한다)도 오른쪽 슬랩 사면을 돌아 넘는다. 예전에는 나월봉 정상 바로 아래
반침니를 올라 직벽을 어렵사리 트래버스 하였는데, 지금은 금줄을 쳐서 막았고, 굳이 거기를 가려는 사람도 없다.
나로서는 다행이다. 나도 가지 않는다. 비와 바람과 구름과 안개가 난무한다. ╋자 갈림길 안부인 부왕동암문에서
당초 목표했던 의상봉을 포기하고 탈출할까 한참을 망설인다. 왼쪽은 삼천사로 가고, 오른쪽은 백운동계곡으로 간다.
그런데 만약에 비가 그치고 안개구름이 걷힌다면 드러날 그 기경을 보지 못할 텐데, 그 아쉬움을 어떻게 달랠 것인
가. 가자! 간다! 부왕동암문 지나 슬랩을 오른다. 철모바위 암반에 올라서니 나의 기원이 통했는지 비가 그치고 안개
구름이 걷히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주변 경치는 시시하다. 등산객들과 자주 마주친다. 궂은 날 동병상린이라 서로
수고하신다고 수인사 주고받는다.
증취봉(589m) 넘을 때다. 한 줄기 번개가 치더니, 이어 우르르 꽝하는 뇌성이 온 산을 울린다. 잠깐 머뭇거렸던
소낙비가 더 쏟아져야 한다고 냅다 다그친 것이다. 다시 비가 줄기차게 쏟아진다. 예전에 용혈봉에서 낙뢰로 여러
사람이 목숨을 잃었던 사고가 생각이 나서 움츠러든다. 용혈봉(576m)에서 보는 건너편 용출봉의 단아한 모습은
오늘은 안개구름에 푹 가렸다. 재빨리 용혈봉 철계단을 내린다. 이어지는 릿지도 빗속이라 조심스럽다.
자명해인대(紫明海印臺) 각자(刻字) 바위를 지나고 철계단 올라 용출봉(569m)이다. 빗줄기가 가늘어지고 안개구
름이 걷히는 시늉한다. 왼쪽 맞은편 비봉능선의 비봉(560m)이 보일락 말락 한다. 그러나 그뿐이다. 안개구름이
다시 사방을 가린다. 데크계단 내리고 숲속 길 지나 바닥 친 안부는 가사당암문이다. 의상봉 0.3km. 거기에 올라도
안개구름이 걷힐 것 같지 않다. 의상봉을 그만 놓아준다. 제발 안개구름아 더 짙어다오! 소원하며 국녕사 쪽으로
하산한다.
데크계단 길게 내리고 숲길 잠시 지나면 국녕사다.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야 하는 대웅전은 들르지 않는다. 등로에서
뒤돌아 금색 대불에 합장(合掌)하고 내린다. 국녕폭포는 어떤 모습일까? 오늘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전모를 보려
고 굳게 마음먹었는데 물이 없다. 건폭 암장이다. 개연폭포도 이럴까? 서둘러 내린다. 법용사 대웅전 지나 백운동계
곡이다. 빗줄기는 가늘어졌다 굵어지기를 반복한다. 그럼에도 백운동계곡도 물이 말라 너덜투성이다.
개연폭포 쪽 계곡도 물이 마르기는 마찬가지다. 이럴진대 개연폭포를 들르지 않고 곧장 새마을교를 건넌다. 북한산
성탐방지원센터까지 아스팔트도로는 2.0km이고 오른쪽 계곡 길은 1.6km이다. 계곡 길로 간다. 그래도 물구경
폭포구경이 아쉬워서다. 안개는 여전히 칙칙하다.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 지나 주차장에서 으레 뒤돌아보는 의상봉
이며 용출봉 등도 안개에 가렸다. 차라리 그러기 개운하다.
30. 등로 주변
31. 보현봉 아래 형제봉, 백악산, 인왕산, 안산
33. (성덕봉에서 바라본) 가운데가 백운대
34. 보현봉과 사자능선, 오른쪽 뒤는 백악산
35. 부왕동암문 주변
37. (용출봉에서 바라본) 비봉능선 비봉
38. 국녕사 내리면서 바라본 원효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