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넷째 계단 - 거듭남과 헌신
헌신의 이야기
예배 시간에 교회에 앉아 있던 어린 영수는 걱정이 되었다. 오늘은 후한 헌금을 하나님께 바치라고 장로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영수는 많은 것을 주님께 바치고 싶었다. 앞자리에서부터 집사님이 헌금 바구니를 돌리고 계셨다. 점점 가까워 오는 헌금 바구니를 바라보며 영수는 무엇인가 결심한 듯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드디어 헌금 바구니가 앞에 오자 영수가 집사님에게 속삭였다. 집사님! 헌금 바구니를 조금 내려주세요. 조금만 더요! 조금만 더&. 영수의 부탁에 따라 집사님이 마침내 헌금 바구니를 바닥에 내려놓자, 영수는 그 바구니에 들어가 앉았다. 집사님! 저를 다 예수님께 바치고 싶어요!
헌신과 거듭남
회개와 자복 뒤에 오는 헌신과 거듭남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에 있어서 매우 획기적인 변화가 오는 단계이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자복한 사람의 생애에는 전격적인 변화가 찾아온다. 곧, 죄를 버리고 온 마음과 영혼과 몸을 하나님께 바친 결과로 그는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바람이 임의로 불매 &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요 3:8).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영향은 분명히 볼 수 있고 감촉할 수 있는 바람처럼, 하나님의 성령께서도 사람의 마음 안에 그렇게 역사 하신다. 사람이 죄를 회개하고 자복할 때, 새로운 하늘의 능력이 임하여 그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든다.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이 거듭나게 하는 능력은 사람의 마음 안에 새 생명을 나게 하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새 사람을 만들어 낸다.
마음이 변하여 과거의 죄와 죄악적인 습관이 싫어진 새 사람의 생애에는 온전한 헌신이 뒤따른다. 회개하고 자복한 사람들은 반드시 온 마음을 하나님께 바쳐야 하며, 그런 헌신이 생애의 매 순간에 지속되어야 한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시키고 주 안에서 자라나게 하는 변화가 계속 일어날 수 없다. 자신과 싸우는 싸움은 모든 싸움 중 가장 큰 싸움이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키며 자신을 바치는 일에는 투쟁이 요구된다. 그러나 회개하고 마음과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친 사람은 즐거운 마음으로 자신을 하나님께 헌신하고 순복할 것이다.
거듭남의 증거
자신이 거듭났다는 증거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전격적인 변화가 없이, 또한 자신이 거듭난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없이 거듭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마음이 하나님의 성령으로 새로워진 사람은 그 생활이 거듭난 사실을 증명할 것이다. 변화는 우리 품성과 습관과 우리의 일 등 모든 것에 걸쳐서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거듭나고 하나님의 편에 속하였다는 것을 어떤 방법으로 알 수 있을까? 그것은, 누가 마음을 지배하는가? 생각이 누구에게 가 있는가? 누구에 대하여 말하기를 좋아하며, 가장 열정적인 애정과 최대의 정력을 누가 지배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스스로 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께 속한 거듭난 사람이라면 우리의 생각은 그에게 있을 것이며, 예수님을 생각하고 그분과 동행하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소유와 우리의 몸을 기쁨으로 다 그에게 바치게 될 것이며, 그의 형상을 입고, 모든 일에 그의 정신을 나타내며, 그의 뜻을 행하여 범사에 그를 기쁘시게 하기를 원할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 지음을 받은 사람은 생애에 성령의 열매인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갈 5:22,23)를 맺을 것이다. 다시는 예전의 욕망이나 정욕을 따라 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그의 품성을 반사하고, 그의 깨끗하심같이 자신을 깨끗하게 할 것이다. 전에 미워하던 것을 사랑하게 되고, 전에 사랑하던 것을 미워하는 변화가 생길 것이다. 교만하고 자기주장만 세우던 사람이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해질 것이며, 허영심이 많고 거만하던 사람이 침착해지고 겸손해질 것이다. 음주하던 사람은 절제하게 되고, 방탕하던 사람은 깨끗한 생활을 살 것이다. 세상의 유행을 따르는 허영적인 습관은 버려지게 될 것이다. 행위가 개선되는 결과가 반드시 따라야 진정한 거듭남의 증거가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믿음과 순종
새로 거듭나고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기 시작한 사람들이 특별히 조심해야 할 점이 두 가지 있다. 그 첫 번째는 하나님께 마음을 바친 이후로 자기 자신을 하나님과 융화하기 위하여 자신의 행실과 자신의 힘을 의지하는 것이다. 자신의 힘으로 행함으로 계명을 지키고 거룩해지려고 하는 사람은 전혀 불가능한 일을 하려는 사람이다. 그리스도를 떠나서 행하는 모든 일은 사사로운 욕심에 빠지게 한다. 믿음으로 받는 그리스도의 은혜만이 오직 우리를 성결케 할 수 있다. 두 번째 조심해야 할 것은,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의무에서 벗어난다고 말하는 것이다. 즉, 믿음으로만, 예수님의 은혜로만 구원을 받으며 우리의 행하는 것은 구원의 문제와 아무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순종 은 다만 외양적으로만 행하는 것이 아니고 사랑으로 하는 봉사이다. 하나님의 계명은 그분 품성의 표현이며, 사랑의 대원칙의 근본이기 때문에 이것은 하늘에서나 땅에서나 하나님 나라의 기초가 된다. 우리의 마음이 새로워져서 하나님과 같이 되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심령에 심어지면 저절로 하나님의 법이 우리의 생애에 실천될 것이며,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히 10:16)고 하신 새 언약이 성취될 것이다. 순종, 곧 사랑으로 하는 봉사와 충성은 거듭나고 헌신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참된 증거이다. 그러므로 성경에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요일 5:3),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 (요일 2:4)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믿음은 순종의 책임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믿음이 우리로 하여금 순종할 수 있도록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게 한다. 우리는 순종하므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다. 그러나 순종은 그 믿음의 열매이다.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요일 3:6).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약 2:17).
계속되는 헌신과 순종의 생애
회개하고 자복하고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난 사람의 매일의 생활에서는 자신을 온전히 바치는 헌신의 생애가 계속 지속되어야 한다. 마음을 하나님에게서 떠나게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버려야 한다. 돈을 사랑하고 재물을 탐하는 것, 명예와 세속적 권세는 우리를 사단에게 붙들어 매는 사슬들이다. 이기적인 안락의 생애와 책임을 면하려고 하는 것은 사람들의 우상이 되고 있다. 이런 노예적 속박은 끊어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반은 주의 것이 되고 반은 세상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마음에 거하실 때에 그분의 사랑과 또 그와 함께 교통하는 기쁨으로 충만해져 예수님을 그리워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헌신하며 따를 것이다. 하나님께 자신을 헌신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명상하는 가운데 자신을 잊어버릴 것이다.
억제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요구에 응하고자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바치고 헌신할 수 있는지 물을 것이다. 하나님께 마음과 몸과 영혼을 바치는 헌신은 거듭난 사람의 생애의 매일 매 순간 속에서 지속되어질 것이며,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삶이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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