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쓰러지고 말았다. 날마다 아프다고 말해도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거뭇거뭇한 저승꽃이 곳곳에 피고 삭신이 비틀어져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비가 오려고 구름만 몰려와도 전신이 아파 누워 있을 정도가 되었지만, 나이 들면 다 그렇다며 외면했다.
섭섭했다. 한때는 하루에도 몇 번씩 뻔질나게 드나들더니 언제부턴가 근처에도 오지 않았다. 어쩌다 문 앞에 와도 눈도 잘 마주치지 않고 슬슬 피하다가 돌아갔다. 늙고 병들면 대접받기 어렵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홀대할 줄은 몰랐다. 상태가 빠르게 나빠질 줄 몰랐던 게 불찰이었다. 내 몸부터 가꾸고 남들처럼 멋도 부리며 살아야 했는데 이제 와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싶다.
평생 누구를 차별한 적이 없다. 그렇다고 지독하게 좋아하거나 흠모해본 기억도 나지 않는다. 삶이 다 그렇듯이 그저 무덤덤하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사랑받고 다정하게 지내는 모습을 볼 때마다 부러웠지만, 함부로 따라 할 처지는 아니었다. 그래도 버림받거나 모진 대우를 받은 것은 아니다. 해마다 한 번쯤은 폼 나게 단장도 해주었다. 사소한 일에 다사스럽게 간섭하지도 않지만 살아온 세월 때문인지 누가 참견하는 것도 싫었다.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 앞산처럼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고 찾아들면 받아 주고 재워주었다.
대부분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이면 돌아온다. 눈비가 오는 날이면 급작스럽게 몰려들기도 한다. 십중팔구는 단골손님들이다. 말이 그렇지 누구도 반기지 않을 만큼 지저분하고 남루한 차림이 많다.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지도 잘 모른다. 각자 바쁜 세상이라 설사 안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싶어 자세히 묻거나 군소리하지 않고 그냥 받아 준다. 온갖 나그네들이 다 모여드는 봉놋방처럼 그저 밤이슬이나 비바람만 피하는 정도라 특별한 대가를 바라지도 않는다. 냄새가 진동하고 왁자지껄 떠들어 대지만 텅 빈 공간을 혼자 지킬 때보다는 훨씬 좋다.
밤이면 중요한 정보를 교환하거나 소통의 장소가 되기도 한다. 워낙 직업이 다양한지라 정치 경제 문화 할 것 없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굳이 돈 들여가며 TV나 신문을 볼 필요도 없다. 온종일 돌아다니며 물고 온 이야기는 증권가 지라시에서나 볼 수 있는 검증되지 않은 정보와 매스컴에도 등장하지 않은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관심을 끄는 대목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지는 고관대작들의 은밀한 거래나 연예인들의 사생활이다. 번듯한 겉모습이 일시적이나마 허물어지는 상상만으로도 통쾌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어떤 날은 거의 가수면假睡眠 상태까지 들어갔다가 화들짝 일어난 적도 있다. 심각하고 무거운 기사보다는 다소 신빙성이 떨어져도 가십거리의 파급력이 훨씬 더 크다.
늘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자리 쟁탈전도 벌어진다. 썩은 냄새를 풍기는 곳에는 자리가 널찍해도 늘씬하고 잘생긴 놈들이 모여 있는 곳에는 늘 북새통이다. 때가 되면 일터로 나가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돌아오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불의의 사고나 험한 일을 당해 영영 불귀의 객이 되거나 전신에 상처를 입고 겨우 숨만 쉬며 돌아오기도 한다. 운이 좋으면 바로 병원을 찾아가 치료받지만, 형편이 여의치 않으면 그길로 시름시름 앓다가 존재감 없이 생을 마감한다. 자신들도 언젠가는 그렇게 될 줄 알기에 그런 날은 분위기가 숙연해진다. 단지 시차만 있을 뿐 모두가 가야 할 길이기에 침울한 분위기가 한동안 이어진다.
유별난 사랑을 받아본 기억은 없어도 계륵 같은 존재는 아니었다. 온갖 궂은일을 말없이 처리하는 마당쇠처럼 늘 중심에서 비켜나 있었을 뿐이다. 한평생 숙명이라 생각하며 살다 보니 앞에 나서는 것 자체가 불편했다. 남들이 곱게 단장하고 몸치장을 해도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석진 곳에서 그냥 지켜보기만 했다. 따라 하고 싶은 마음이 울컥거릴 때마다 언감생심 꿈도 꾸지 말자며 스스로 다독였다.
세월은 비켜 가지 않았다. 전국이 초토화된 태풍 매미호 때도 잘 버텼는데 지난 장맛비에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전조증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곳곳에 생긴 틈새로 바람이 들어오고 틈만 나면 부르지도 않은 담쟁이넝쿨이 머리를 들이밀었다. 불혹을 넘기자 삐딱하던 벽이 점점 바깥쪽으로 기울더니 용마루가 날아가고 슬레이트가 깨져 비가 새기 시작했다. 급기야 잔잔하게 내리는 장맛비도 견디지 못하고 대들보가 내려앉았다.
무너진 헛간을 철거한다. 내 손으로 지었던 집을 종일 부수고 뜯은 부재들을 들어낸다. 거무튀튀한 슬레이트와 검게 변한 시멘트 블록 벽이 사라진 자리에 깔끔한 강철 패널을 세운다. 언젠가는 또 없어질 줄 알지만, 몇 주째 벽을 만들고 지붕을 올리느라 휴일마다 땀범벅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