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상 변호사가 《월간천관》에 '이청준문학관 건립을 위하여'라는 주제로 故 이청준 작가의 인물과 문학세계를 심층적 소개 중이다.
2022년 8월호를 시작으로 9월호, 10월호, 11월호, 12월호, 2023년 1월호, 2월호, 3월, 4월호, 5월이다. 이번 5월호가 열 번째 연재기고이다. (편집자 주)
이청준과 <목포행>-이청준 문학관(10)을 위하여
1, '목포행 남행열차' 노래들
트롯가수 '장윤정'이 2019년에 느린 템포로 애잔하게 부른 <목포행 완행열차>는 퍽 인상적이었다. '떠나가는 마지막 열차'를 말했어도, 거기엔 '이별, 빗물, 눈물'이 없고, "아직 미련이 남아서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나는 그날을 기다린다고 했다. "그냥 편히 웃을 수 있고, 편히 안을 수 있는 여유“를 남겨놓고 있다.
그러나 돌이켜, 1935년경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에는 호남선 종점이 되는 '목포의 설움‘, 이별의 눈물, 삼백년 원한, 항구의 절개로 가득했었다. 1956년경 '안정애'의 <대전부르스>는 '대전발 영시50분 목포행 완행열차'를 지목하며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의 말도 없이, 기적소리 슬피 우는 변치 말자던 맹세, 눈물로 헤어지는 쓰라린 심정'을 노래했다.
같은 1956년경에 '손인호'는 <비 나리는 호남선> 에서 '목이 메인 이별가, 죄도 많은 청춘'을 한탄하였다. 1980년경에 '조용필'은 <대전부르스>의 '대전발 목포행 완행열차'를 울부짖듯 열창했다. 1989년경에 '김수희'의 <남행열차>는 종합판이었다. '비 내리는 호남선, 남행열차, 마지막 열차'를 외치면서 "빗물도, 눈물도, 잃어버린 첫사랑도 흐르고, 다시 만날 순 없어도 잊지 말자"고 다짐하였다. 한편, 2019년경 '송가인'은 <서울의 달>에서 호남선 길이 아닌, '내 고향 남쪽 바닷가를 생각하면서 '서울살이 타향살이 고달픈 삶, 서울의 성공'에 여전히 목이 메고 있다.
이청준의 소설 <잔인한 도시>에 해당할 '서울'에 뜬 달빛 아래에서 고향에 계신 '엄마'를 그리워하였다. 정리하면, 앞의 노래들에 등장한 '목포행 완행열차, 호남선 남행열차'는 그 굴곡진 세월의 빗길 속을 멈출 줄 모르고 오가던 '애 향철마'였다. '이별, 빗물, 눈물, 맹세'와 더불어 '서울살이 성공'에서 비켜난, '호남선 울분'을 털어내고 역전하리라 기약하던 '응원가'가 되었다. 일제기 1911~1914에 개통된 '호남선'은 일제의 수탈도구이자, 호남인들의 상경통로였 다. 2003년에야 '광주송정~목포' 구간의 복선화가 이루어졌다지만 그 고속전철 효과는 다른 지역보다 한참 늦었다. 2023년 2월경 어떤 이는 ㅈ신문기사에서 그 젊은 날에 목격한)창문 깨지고 남루한 호남선 충격'이라 회고했지만, 이제는 들어도 안들어도 무방할 언사라 하겠다. 호남지역은 지난 선거판구호, 이른바 GTX 효과와도 요원하다.
2, 이청준의 <목포행>
소설가 이청준은 '소매치기 연작 3부작'의 2편 <포행>을 <월간중앙, 1971년 8월호>에 발표했다. 과연 뜬금없이 엉뚱한 해프닝이었을까? 부제는 <소매치기, 글쟁이 2, 다시 소매치기>이다. 이청준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청준의 <목포행> 완행열차'는 9시10분 정시발이고, 소매치기 사내가 등장한다. 사내의 고향은 목포가 아니며, 목포와 여수의 중간쯤에 있는 'J' 출신이다. 어릴 때 고향을 떠난 육촌형이 목포에서 사망했다는 소문을 확인하기 위하여 목포에 난생 처음 내려가는 길이다. 이청준은 소설 <목포행> 시점을 1971년경 으로 특정하지는 아니했다. 다만, 그는 소설 안에서 "소설은 어떤 시대에서 그 시대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정신과 말을 담아내는 그릇이며, 소설쟁이는 자꾸 어두운 곳 그 힘들고 어려운 곳들만 들춰내 보여주는 심술꾸러기일 뿐"이라고 언급했다. 또한 '지갑 주인과 대결하는 소매치기의 대결의식은 날치기 들치기와는 그 차원이 다른 것이며,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기술적으로 훔쳐내는 소매치기 작업은 마치 글쟁이가 글감을 모아 소설을 쓰는 것과 유사하다'고 피력했다. 모름지기 소설가라면 시대상황과 시대의식을 반영한 사회적 진실을 전하는 소명의식에 투철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당숙의 아들, 육촌형은 여러 소문 속의 불사신이었다. 일제기에 일본군학도병으로 남중국해에 종군했다가 미군 비행기폭격으로 전사했다는 전사통지서를 받았고, 인천에 살다가 6.25 전쟁 때 인민재판에 걸려 처형되었다는 소문이 있었고, 부산에서 살다가 약국으로 돌진해 온 화물트럭 때문에 사고사 했다는 소문이 있었고, 서울에 살 때는 4.19의거 희생자 명단에 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항구도시 목포에서 죽었다고 전해져 온 것이다. 사내에게 전해지는 육촌형 모습은 우리 역사의 현장 곳곳을 유령처럼 배회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죽고 또 죽는, 죽어도 또 사는 육촌형'은 '불사신'인가? 이번에도 '불패자'가 될 것인가? 항구도시 목포는 열린바다를 두고 있다. 소설의 말미는, 기차가 목포역에 들어서면서, "아니, 그 보다는 저 목포 바다가 보이기 시작하고 있어요. 저쪽을 보세요, 바다가 아닙니까? 드디어 목포에요"로 끝이 난다. 이청준은 말하지 아니했지만, 육촌형은 바다 건너 제주도로 갈 수도 있을 것이다. 바다는 탈출, 재생이요, 부활을 상징할 수 있다. 소설 <목포행>에 대화체 문장이 나오기는 하지만, 소매치기 사내의 독백이며 방백이겠다. <연작, 소매치기 1>에 나온 '오메가시 계'를 가진 소매치기는 <연작, 소매치기 3>에서 '오메가 금딱지'를 찬 '선생'으로도 지칭된다. <연작, 목포행 소매치기 2>에서도 이청준은 '사내의 독백과 더불어 '선생'으로 지칭되는 동승자와 대화를 전개하는데, <목포행> 첫머리에 "아, 더군다나 목포가 바로 선생의 고향이시라구요. 어쨌든 저로 서는 반갑고 즐거운 일입니다”라고 목포가 고향이 아닌 사내가 대꾸하고 있다. 이청준이 보여주는 소설기법에는 '1인 2역. 다중가면 분열, 의식과 무의식의 대결구조'가 종종 등장한다. 그렇다고 '목포가 고향인 사람'과 '고향이 아닌 사람이 서로 대립하는 것은 아니며, 같은 사람의 두 모습일 수 있다. 또한 이청준 소설의 어떤 주인공들은 한없이 서글피 보이면서 그저 담담한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한다. 이청준은 과연 목포사람과 남도사람을 위로하러 그 소설 <목포행>을 부러 썼던 것일까? 언젠가는 이청준 소설의 정치적 지향을 살펴 볼 기회가 있었으면 하지만, 크게 보아 '개인적 자유와 사회적 평등, 권력질서와 소외론'에서 벗어날 것 같지는 않다.
<덧붙임>
1, 1971. 4. 27.에 제7대 대선이 있었으며, 목포 출신 김대중이 근소한 차이로 패배하였다. 다음 해에 '10월 유신이 있었다.
2. 지역차별, 지역감정에 관한 이청준의 소설로 <굴레(1966), 가학성 훈련(1970), 안질주의보(1974)>이 있는데, 그 접근태도와 방법에 있어, 그 선배세 대 '이광수, 오영수 사례와 대비될 수 있다.
3. 이청준과 김승옥의 문학관 차이는 <이청준, 목포행>과 <김승옥, 순천행(무진기행)>의 간격을 통하여 가늠할 수 있겠다.
4, ‘J읍' 출신에 가까운 이청준의 남행열차는 '용산역~영산포역' 구간이었다. 나주 영산포, 장흥읍, 대덕면소를 거치는 1박 귀향길도 되었다.
5. 지난 시절 대덕회진 사람들은 '물길 목포행과 '물길 여수행'을 선택했는데, 이청준은 '버스길 광주행'을 거쳐 호남선 상경을 한 셈이다.
박형상 변호사 (前서울중구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