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행하시는 하나님(렘33:1-16)
갈등
1.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습니다. 폭발로 인해 도시 전체가 불길에 휩싸였고, 한순간에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하늘에서 떨어진 폭발은 도시 전체를 삼켜버렸습니다. 검은 연기와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찬 그곳에서 더 이상 생명이 있을 수 없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몇 주 뒤, 잿더미 사이에서 조용히 올라오는 작은 초록 싹 하나가 보였습니다. 그 싹은 말없이 이렇게 외치는 것 같았습니다. 여기 아직 희망이 있다. 그것은‘은행나무’였습니다. 그 잿더미 속에서 조용히 올라오는 새싹은 연약해 보였지만, 그것은 생명이 다시 시작된다는 상징이었습니다.
이 나무는 히로시마의 상징이 되었고, 황폐 속에서도 생명이 자랄 수 있다는 희망을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레미야가 본 황폐한 예루살렘의 모습을 마주합니다. 잿더미와 절망 속에서 그는 무엇을 보았을까요? 하나님은 그에게‘다윗의 가지’라는 새로운 생명을 약속하셨어요. 황폐 속에서도 하나님은 희망의 새싹을 틔우시는 분입니다. 대림절 첫 주일, 우리는 이 희망의 새싹을 발견하길 원합니다. 우리의 삶이 아무리 황폐해 보여도, 하나님은 그곳에 생명을 시작하십니다. 오늘 본문의 시작은 1절,“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두 번째로 임하니라 이르시되.”
2. 예레미야는 31:31에 새 언약-신약을 선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시는 새 언약이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신약시대를 가장 먼저 선언한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가 있었던 곳은 시위대 뜰이었습니다. 여러분은 꿈꾸던 미래와 지금의 현실이 너무나 다르게 느껴졌던 적이 있나요? 때로는 모든 게 엉망이고 소망조차 보이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비전을 보았지만, 그의 현실은 차가운 감옥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때 예레미야에게 임하시고 말씀하셨습니다.
2-3절,“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어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내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하나님은 그에게 나는 일을 하고 끝내 성취하는 하나님-그 이름을 여호와, 스스로 있는 자, 창조자-이다. 네가 내게 부르짖으면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보여줄 것이라고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비전과 약속만 주시는 분이신가요? 이런 하나님의 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었을까요?
갈등 심화
3. 감옥에 갇힌 예레미야는 이렇게 외쳤을지 모릅니다.‘하나님, 왜 저를 여기 두십니까? 저를 통해 말씀하시면서도, 제 삶은 왜 이렇게 황폐합니까?’하나님은 조용히 응답하셨습니다.‘나는 일을 행하는 여호와다. 나는 한 일을 끝내 성취할 것이다.’하나님은 일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생각이나 계획만 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성취하시는 분이세요.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무슨 일을 행하시겠다고 말씀하셨는지 봅니다.
4-5절,“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무리가 이 성읍의 가옥과 유다 왕궁을 헐어서 갈대아인의 참호와 칼을 대항하여, 싸우려 하였으나 내가 나의 노여움과 분함으로 그들을 죽이고 그들의 시체로 이 성을 채우게 하였나니 이는 그들의 모든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얼굴을 가리어 이 성을 돌아보지 아니하였음이라.”이스라엘-유다 왕국이 하나님께서 보내시고 말씀을 전한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을 끝내 듣고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유다 왕국을 멸망시키시는데 갈대아인-바벨론 제국을 사용하셨어요. 그들로 유다인들을 죽이고 그들의 시체로 이 성을 채우게 하실 것이라고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4. 칼과 불이 휩쓸고 간 예루살렘. 벽돌들은 잿더미로 변했고, 거리마다 죽음의 침묵이 감돌았습니다. 사람들의 통곡 소리도 멈추고, 남은 것은 하나님의 분노가 드리운 무거운 그림자뿐이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나의 노여움과 분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5절)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에 조금도 따르지 못한 유다 왕국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고, 이 말씀은 그대로 이뤄졌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공의와 정의로 이스라엘을 잔인하게 심판하실 것이라는 말씀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6-7절,“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읍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안과 진실이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 내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여 그들을 처음과 같이 세울 것이며.”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읍을 치료하고 고쳐 낫게 할 것이다. 이방에 포로로 붙잡혀갔던 남 유다인들과 북 이스라엘 모두 돌아오게 하여 처음과 같이 세우게-회복하게 할 것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은 잿더미였습니다. 거리마다 죽음의 냄새가 진동했고, 하나님의 분노가 그 도시 위에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잿더미 속에 갇힌 그들에게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나는 이 성읍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리라.’
5. 이러한 하나님의 모습은 세상 어느 나라나, 어느 신들의 이야기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모습입니다. 8-9절,“내가 그들을 내게 범한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며 그들이 내게 범하며 행한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라, 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나이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요 그들은 내가 이 백성에게 베푼 모든 복과 모든 평안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며 떨리라.”하나님의 생각과 마음을 이해하기가 벅차요. 노여움과 분노는 사라지고 그들이 행한 모든 죄악을 사하시고, 그들에게 복과 평안을 주실 것이다. 이런 경우를 창조 후에 보여준 케이스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왜 유독 이스라엘을 향해서 이렇게 대해주셨을까요?
실마리
6. 우리 인생에서 제일 큰 복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는 것이(Knowing God) 쉽지 않아요. 하나님을 아는데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예레미야도 평생 하나님을 알아가며 그의 나라를 여러 왕들과 고관들에게 전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레미야의 말을 듣지 않았고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이 멸망하는 원인이 되었어요.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전하는 자(대변인)이고, 그를 가장 신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왕들과 고관들이 회개하고 순종하는 것인데 그의 평생에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의 마음이 아프고 낙심되고, 눈에는 눈물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예레미야는 천상 선지자였습니다.
렘20:9,“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하나님의 말씀은 예언자를 통해서 선포되었다고 해서 바로 이뤄지지 않았어요. 하나님의 시간(카이로스)과 우리가 기대하는 시간(크로노스)이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서 새 언약(신약) 시대를 예언하게 하셨지만, 이 일은 400 여 년이 지난 후 예수님이 오셔야 될 일이었습니다. 시드기야 왕과 고관들은 예레미야를 통해서 자기들에게 전해준 하나님의 말씀에 조금도 귀를 기울이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의 종인 예레미야를 감금했어요.
7. 예언자가 하나님의 비전을 선언하고 당시에 이뤄지지 않았다고 하나님이 일하지 앟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감옥에서 신음하는 예레미야에게 나타나셨어요. 선지자의 유일한 소망의 시간은 하나님의 음성이 분명히 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나는 일을 행하는 여호와-그것을 만들어 성취하는 여호와-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스스로 있는 자, 창조주)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예레미야에게,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기도를 멈추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언자-하나님의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길은 이것밖에 없습니다.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교제가 지속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제가 이어질 때,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는 이 땅에서 끝내 이뤄집니다. 하나님은 답답해하는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이 이루실 공의를 먼저 선언하셨어요. 하나님께서 갈대아인들-바벨론 사람들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잔인하게 심판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노여움과 분함이 무엇인지 이스라엘 사람들이 혹독하게 당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목적은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그들이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예루살렘을 다시 치료하고 고쳐서 낫게 하고 평안하게 할 것이다. 이미 앗수르에게 멸망하고 포로로 잡혀갔던 북이스라엘 사람들만이 아니라,
8. 이후에 바벨론에게 멸망하고 포로로 잡혀갈 남유다인들도 다시 돌아오게 해서 처음과 같이 회복시킬 것이다. 하나님은 죽음의 그림자 아래서 다시 생명을 불어넣으셨습니다. 벽돌 잔해 위로 작은 싹이 자라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분의 손길은 모든 상처를 어루만지고, 평강과 진실의 강물이 다시 흐르게 합니다. 이 말씀의 성취는 출애굽 이후에 있을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세계사에 전무후무한 일을 오직 이스라엘을 향해서 이루셨어요.
하나님이 유독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행하신 목적은 9절, 이 일로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고 내가 이스라엘에게 베푼 모든 복과 평안으로 말미암아 세상이 두려워하며 떨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세상 누구도 어떤 신도 계획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일을 시작하고 반드시 성취하신다는 말씀을(2절) 그대로 이루셨습니다. 스스로 하나님이심을 만방에 드러내셨습니다. 희망은 잿더미 속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단지 파괴의 하나님이 아니라, 회복과 생명의 하나님이십니다. 예레미야에게 ‘다윗의 가지’를 약속하셨고, 그 가지는 메마른 땅에서 자란 나무처럼 보였지만, 결국 온 세상을 덮을 만큼 자랐습니다.
복음 제시
9. 성경의 주인공은 예수님이십니다. 역사의 모든 일은 그에게서 해결되었습니다. 14-15절,“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대하여 일러준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씀하셨는데, 그 날 그 때에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라. 그 가지는 메마른 땅에서 자란 나무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온 세상을 덮을 만큼 자라나, 열방의 빛과 그늘이 될 것입니다.
그 가지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고 선포하셨어요. 이 말씀은 궁극적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을 통해서는 정의와 공의가 이뤄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정의와 공의는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뤄질 것입니다. 롬3:23-24,“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기대
10. 오늘은 성탄을 기다리는 대림절 첫 번째 주일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서 예언하게 하신‘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될 분’이셨어요.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유다 지파를 통해서 이 땅에 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귀한 예언의 말씀을, 한 예언자가 너무 암담하고 소망 없이 궁중의 감옥에 있을 때 주셨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예레미야의 예루살렘처럼 혼란스럽고 황폐합니다. 하나님은 그때도 희망을 준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가지'로 오셔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히로시마의 은행나무처럼, 하나님의 희망은 우리의 삶의 폐허 속에서 새싹으로 시작됩니다. 대림절은 그 새싹을 발견하는 시간입니다. 우리의 황폐한 마음에 생명을 불어넣으시는 하나님을 신뢰합시다. 오늘, 우리의 잿더미 같은 삶 속에서도 하나님이 심으신 새싹을 찾아보십시오. 그분은 일을 시작하셨고, 반드시 성취하실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새 소망을 심고 계십니다. 예수께서 오심으로 우리의 인생 문제는 모두 해결되었습니다. 주님 없이는 세상에 소망이 없습니다.
11. 성탄을 기다리는 대림절 한 달을 보내면서 주님으로 말미암아 새 소망을 얻고 나갈 수 있도록 이 시간 우리 모두 기도합니다. 이번 대림절, 여러분의 삶 속에서도 새싹이 자라고 있음을 믿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소망을 심으셨습니다. 다윗의 가지로 오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잿더미 같은 삶에 들어오셔서 새롭게 하십니다. 이번 대림절, 여러분의 삶에 들어오시는 예수님을 기대하며, 그분이 심으신 희망의 새싹을 함께 발견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