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집에 계신 다섯 여자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 연예인의 석,박사 논문이 표절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생긴 논란(기자는 만든 논란이겠지만)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결론은 그 분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심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엄마가 최근 무슨 일 때문에 우리 나라 최고의 대학이라고 하는 S대의 석, 박사 논문들을 몇 개 살펴보았는데, 표절이 너무 심하더라. 저 가수는 연예인이라고 저렇게 드러나지만 밝혀지지 않는 사람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한국의 대학에서 표절은 너무나 흔한 일이고 쉬운 일이었다. 물론 지금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아무튼 이천 년대 초반 내가 대학원을 다닐 때만 해도 그랬다.
본질적인 문제는 학위를 하나의 ‘스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력서에 한 줄 넣을 수 있는 스펙. 근데 누구의 말처럼 스펙이란 사람이 아닌 기계 제품의 중요한 제원을 의미하는 말이다. 우리는 그런 용어를 기계가 아닌 사람에게 갖다 붙이며 ‘스펙 쌓기’에 여념이 없다. 점점 사람이 기계가 되어 버리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학문을 한다기보다는 학위 하나를 받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버렸다. 왜 공부해야 하는지,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의 사고가 팽배하다. 안타까운 것은 큰 학문을 공부한다는 ‘대학’(大學)에서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제목은 독자의 눈을 유혹한다. ‘지식 경영법’이라는 제목에서 ‘경영’이란 말이 무엇인가 쉽고 편한 방법이 있는 것처럼 독자를 현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기대와 소망은 독자의 몫이지 저자의 몫이 아니다. 저자는 다산의 공부법을 정리하면서 단순히 공부 방법만을 다루지 않고 정보판단과 지식편집의 문제를 생각하여 ‘경영'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음을 이미 책의 서두에서 밝히고 있다. 그러니까 단순히 효과적인 정보 수집이나 학습의 방법만이 아니라 그 정보를 어떻게 조직하고 따져보고 헤아려 보며, 더 나아가 토론하고 논쟁하며 타인을 설득하기 위해 전개하고 전달할 것인지를 다루고 있다. 또한 그 가운데 독창성(권위)을 어떻게 정립할 것인지, 현실이라는 삶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도 명확하게 말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공부의 그 다음 단계도 언급하고 있는데, 이것을 오늘날의 용어로 다시 표현하면, 어떻게 다른 이들과 협업(協業)할 것인지, 어떻게 멀티태스킹(다중작업, Multitasking)할 것인지, 쏟아지는 정보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다룰 것인지도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 정도의 내용도 고수 중의 고수가 아니면 도달하거나 익히기 어려운 것들이다. 학습 자체가 안 되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학습이 되더라도 단순히 지식의 습득이나 축적 정도로 끝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만의 관점, 곧 독창성을 유지한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하지만 저자는 거기까지 가야 진정한 공부이며 지식 경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 우리 같은 하수들에게는 도달하기 어려운 신의 경지이다. 매일 일상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공부하고 생각하고 단련하지 않으면 도저히 오를 수 없는 없는 정상인 것이다.
이 정도면 공부와 지식 경영에 대해서 거의 모든 것을 다루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18세기 조선의 학자가 엄청난 과학 문명의 발달을 이룩한 21세기 현대인에게 이 정도 수준으로 지식 경영법을 제시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경이로운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매력, 진정한 지식 경영법의 ‘화룡점정’은 마지막 두 장에 있다고 생각한다. 자칫 지식을 깊이 다루다보면 메마르고 건조해지기 쉽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마지막 두 장은 단순히 지식 수집과 처리를 뛰어넘어 인간미와 매일 살아가는 현실 위에 그 의미와 가치를 두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특히 ‘정취’(심미에 바탕을 둔 정서적 흥취)라는 말과 ‘실용’(실제로 쓰거나 쓰임)이란 말이 따뜻하게 다가온다. 이론을 위한 이론과 사람을 교만하게 만드는 지식, 현실 삶과는 상관 없는 언어 유희와 자신들만의 리그로 끝나는 엘리트들을 수 없이 보고 있다(오늘날 검사와 의사들이 그렇다).
다산은 인간미를 강조한다. 성품을 기르고, 의미를 찾으며, 공간을 경영하고, 일상을 만끽하고, 여유를 가지고, 품위를 유지하며, 맑은 꿈을 간직하라고 말한다. 더 나아가 실학파 답게 단순한 이론과 원리의 논쟁으로 그치지 말고, 백성을 살피고 따뜻하게 보듬고, 현실을 고발하고 분노하고 규탄하며, 위기 속에서도 좌절하지 말며, 실상을 파악하고 합리를 지향하여 실용을 우선시 하고, 장점을 강화하고 개성을 추구하며, 무엇보다 주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지금 여기’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이것이 ‘공부함’의 목적이다. 인간다운 인간이 되는 것이며, 현실을 직시하며, 동시에 좀 더 나은 현실을 만들어 가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것, 그것이 진짜 공부하는 이유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저 스펙을 쌓고 경쟁에서 이겨 개인의 성공만을 지향하는 삶은 인간다운 삶이 아니다. 우리는 다시 다산을 통해 공부를 해야 하는 방법만이 아니라 자신의 삶 전체를 경영하는 방법과 더 나아가 시대적 사명 앞에 지식인으로서 어떻게 응답하고 지식을 경영해야 하는지를 배워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지식 경영법이다. 자신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위한 지식 경영법 말이다.